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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 human doing but human being - P'ta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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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10. 13. 02:04 책에서 발췌

(원제: Lucid Dreaming, 2004)

 

 

<111쪽>

루시드 드림을 꾸는 사람은 세상에 대해 에고가 가진 욕망을 초월하기 위해서, 반드시 에고를 초월하는 어떤 것이 꿈을 통제하도록 해야 한다. 개인적인 경험을 말하자면, 천상天上이 이끄는 대로 나 자신을 맡겼을 때 가장 뚜렷하게 기억에 남는 그리고 깊은 의미가 있는 루시드 드림을 꿀 수 있었다.


여러 해 전의 어느 날 오전이었다. 나는 스포츠카를 타고, 꿈 속의 길을 달리고 있었다. 마음이 설렐 정도로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보며 나는 기쁨에 들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내가 꿈을 꾸고 있음을 완벽하게 알고 있었다. 그런데 차를 얻어 타려는 여자가 길가에 서 있는 게 보였다. 매우 매력적인 여자였다. 차를 세우고 그 여자를 태우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들었음은 말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나는 나 자신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예전에도 이런 꿈을 꾼 적이 있지. 이것 말고 새로운 건 뭐 없을까?" 


그래서 나는 그 여자를 그냥 지나쳤다. 그리고 대신 '천상'을 찾기로 마음먹었다. 그러자 곧바로 차가 빠른 속도로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로켓이 분리되듯이 자동차는 아래로 떨어지고 나만 하늘을 향해 계속 올라갔다. 구름을 뚫고 계속 올라갔다. 첨탑의 십자가를 지나치고, 다윗의 별을 지나치고, 또 많은 종교적 상징물들을 지나쳤다. 구름을 넘어 더욱 더 높이 올라간 뒤에, 마침내 나는 경계가 없는 신비로운 어떤 영역으로 들어섰다. 사랑이 넘쳐 흐르는 텅 빈 공간이었다. 마치 집처림 편안한 무한 공간이었다. 내 기분은 한껏 고조되었다. 나는 황홀경 속에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내 목소리의 음역은 놀라울 정도로 넓었다. 가장 낮은 음에서부터 가장 높은 음까지 마음대로 오갔다. 마치 우주 전체를 내 목소리의 반향 속으로 끌어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 꿈을 꾸고서 나는 내 정체성에 대해서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다. 마치, 나의 일상적인 자아 의식과 연결된 어떤 거대한 존재 형태를 발견한 듯한 느낌이었다. 나의 자아 의식이 한 방울의 물이라면 그 존재는 바다였다. 물론 이런 인식이 궁극적인 실체와 얼마나 가까운지 나는 알지 못한다. 경험을 했기 때문에 확실하다고 믿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렇게밖에 말을 할 수가 없다.

 

우리는 과연 깨어 있는가?
당대의 수피 스승이라고 일컬어지는 이드리스 샤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삶의 대기실에서 잠들어 있으면서도 살아 있다고 생각하는' 가장 근본적인 실수를 저지른다고 말했다. 우리가 '깨어 있다'고 말하는 의식은 실제로는 사물을 객관적 실체로 바라보는 상태가 아니며 좀 더 정확하게 규정하자면 '잠들어 있다'거나 '꿈을 꾸고 있다'고 바라보는 것은 신비주의 철학의 전통적인 관점이다.


전혀 다른 과정을 거치기는 했지만 버트런드 러셀도 역시 동일한 결론에 도달했다. 그는 이렇게 기술했다. '만일 현대 물리학을 믿을 수 있다면 우리가 깨어있는 지각이라고 부르는 꿈은, 잠들었을 때의 환상적인 꿈보다 객관적인 현실과 아주 조금 더 유사할 뿐입니다.'

 

철학자들 이야기는 잠시 접어두고 이런 예를 들어보자. 만일 누가 당신에게 '당신은 지금 깨어 있소?' 라고 묻는다면 당신은 아마도 '그럼요, 확실하죠!' 라고 말을 할 것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우리가 깨어있다고 확실하게 느낀다고 해서 실제로 깨어있다는 사실을 보장하지는 못한다. 새뮤얼 존슨이 돌멩이를 차면서 '우리는 무엇이 진짜인지 안다.' 라고 확신있게 말한 것과 같다. 그러나 그는 돌멩이를 차는 꿈을 꾸고서 똑같은 확신을 가졌을 수도 있다. 우리는 삶이 완전하고 시종일관 같을 것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에 윌리엄 제임스가 표현한 것처럼 '실체에 대한 설명을 너무 서둘러서 불완전하게 끝내고 만다.' 


우리가 지금 현재 깨어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오늘 아침에 잠에서 깨어 일어나던 때를 기억하기 때문이라고 말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도 꿈 속에서 잠에서 깨는 장면을 본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지금도 여전히 잠을 자며 꿈을 꾸고 있으면서도 그 사실을 알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어쩌면 우리가 '진짜 깨어 있는 상태'로 인식하는 것도 사실은 부분적으로만 깨어 있거나 혹은 깨어 있다고 착각한 것일 수 있다.  

 

 

<120쪽>

누구나 적어도 한 번쯤은 이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어떤 물건을 가져오려고 방에 들어갔는데 가져오려고 했던 물건이 무엇이었는지 전혀 생각이 나지않는 경험...... 그런데 사실은 이보다 더 나쁜 경우도 있다. 아예 방에 들어간 목적을 잊어버리는 경우다. 그래서 방에 들어가서는 평소 그 방에서 하던 행위만 습관적으로 하고 나온다. 일상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런 사소한 정신병리학적 특성은 꿈이 아니라 우리의 삶 전반에서 경험하는 건망증과 매우 비슷하다. 예컨대 우리는 꿈을 꾸는 동안 우리가 꿈을 꾸기 전에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예를 들면, 잠자리에 든다는 것 따위를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또 우리가 그것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전혀 개의치 않고 관심도 없다. 이런 현상이 꿈이 아니라 우리 인생에서도 똑같이 일어난다. 우리는 지금 바로 여기에 살아 있음을 알고 있지만, 우리가 무엇을 하려고 이 자리에 왔는지 알지 못한다. 심지어 우리가 예전에는 누구였는지 혹은 어떤 사물이었는지 알지 못한다. 우리는 누구일까? 어디에서 왔을까? 무엇을 하려고 왔을까? 우리는 이런 질문에 대해서 실마리조차도 가지고 있지 않다. 

 

우리가 내가 누구인가에 대한 답을 가지고 있다고 혹은 가질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꿈에 대한 훈련을 하면 원래의 자신과 현실에 나타나는 의도를 깨달을 수 있다. 그리고 현재의 삶에서 우리가 무엇을 하려고 존재하는지 기억을 되살릴 수도 있다. 가능한 일이다. 이 가능성과 관련해서 독자에게 단서를 하나 주고 싶다. T. S. 엘리엇은 '시작하는 자리에 끝이 있다'는 말로 비밀의 반을 드러냈고, '끝나는 자리에 시작이 있다'는 말로 나머지 반을 드러냈다.


시작과 끝을 이야기하다 보니 문득 한 이야기가 생각난다. 해석에 따라서는 '세상의 모든 지혜'를 다 찾아낼 수 있는 이야기다. 어쩌면 독자도 어디에선가 한 번쯤은 듣거나 읽었을지도 모른다.

밝고 환한 빛의 나라에 훌륭한 임금이 있었다. 그에게는 아내가 있었고 잘 자란 아들과 딸이 있었다. 이들은 모두 행복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버지는 자식들을 불러서 이렇게 말했다. "이제 시간이 되었다. 모두가 다 그랬듯이 이제 너희들도 멀리 떨어진 다른 나라로 가야 한다. 가서 귀중한 보물을 찾아 오너라."


이들과 딸은 변장을 하고서 안내하는 사람을 따라서 낯선 나라로 갔다. 이 나라에 사는 사람들은 거의 모두가 어두운 존재로 살았다. 얼마나 어두웠던지 오누이는 마치 잠을 자듯 의식이 몽롱해져 서로 떨어져 각자 헤매고 다녔다. 그들은 온갖 환각을 보았다. 자기들이 살던 나라와 비슷한 것들을 보았고 또 보석을 보았다. 하지만 이런 환각은 두 사람이 빠져 있던 잠의 깊이를 더할 뿐이었다. 그래서 결국 두 사람은 이제 환각이 실제라고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이 소식이 임금의 귀에까지 들어갔고, 임금은 충직한 신하를 보내서 자식들에게 이 말을 전했다.
"너희들이 해야 하는 임무를 잊지 마라. 꿈에서 깨어나서, 둘이 함께 있거라.”
이 말을 듣고 두 사람은 잠에서 깨어났고, 보석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온갖 위기들을 돌파한 끝에 마침내 보물이 지닌 마법의 힘으로 무사히 빛의 나라로 돌아왔다. 그리고 예전보다 더욱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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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2012년에 읽었다. 심신양면으로 많이 힘들던 시기였는데 어느 날 밤, 불현듯 '빨리 자야한다'는 독촉을 느꼈다.ㅋ(다르게 표현할 길이 없다) 그래서 평소보다 일찍 잠들었고, 말그대로 꿈 속에서 '깨었다'. 꿈 속에서 나는 늦가을 들판에 혼자 서 있었고 등 뒤로는 산이 있었다. 그 즈음에 영화 '인셉션'을 보았고 그 여운이 남아있을 때여서 '내가 지금 왜 여기에 서 있지? 어쩌다가 여기에 오게 되었는지 왜 생각이 안나지? 아, 인셉션에서 꿈은 시작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어. 그럼 지금 꿈속인가?' 너무 놀라는 바람에 얼마 못가서 깨긴 했지만, '현실보다 더 현실같았던' 그 이상한 기분을 잊을 수가 없다. 다음날 하루종일 꿈 생각이 났고 그 때마다 기분이 붕붕 뜨는듯이 좋았는데 아쉽게도 그 효험은 몇일만에 사라졌다. 그리고 그와는 별개로 내 삶에 드리워졌던 먹구름들도 차차 걷혔다. 아니, 조금씩 걷어낼 수 있었다.

 

가끔 일상 밖에서 찾아오는 신기한 선물을 받는다. 어디서 오는지, 왜 일어나는지 알 수 없지만.. 시원한 바람처럼 삶을 환기시켜 준다. 

 

 

"세상에서 가장 황홀한 체험이 신비체험이다. 모든 참된 예술과 참된 과학이 이 기본 감정에서 비롯된다.

신비를 모르거나 더 이상 놀라워하지 않는 사람은

죽은 것이나 다름없으며 그의 눈은 이미 흐려져버린 것이다."   - 아인슈타인

 

 

posted by moon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