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piritual Doorway in the Brain, Kevin Nelson, 2010.
<218쪽>
1849년 4월 23일 새벽 네시, 상트페테르부르크, 차르의 비밀경찰대 장교가 도스토옙스키를 잠에서 깨워 감옥으로 끌고 갔다. 도스토옙스키의 혐의는 제정 러시아 농노들의 처지를 말과 글로 비판하는 진보적 지식인 집단에 가담했다는 것이었다.
도스토옙스키는 심문을 받고 투옥되어 두 달 동안 비참하게 지냈다. 12월 22일 아침, 간수들이 비슷한 혐의로 투옥된 도스토옙스키를 비롯한 죄수들을 살을 에는 추위 속에 줄지어 대기 중인 마차로 데려갔다. 죄수들은 얇은 옷만 걸치고 있었다. 마차들은 30분동안 달린 후에 멈췄고, 죄수들이 내린 곳은 세메노프스키 광장이었다. 무장한 군대가 그들을 둘러쌌고 군중이 모여있었다. 도스토옙스키는 광장 중앙에 검은 천으로 장식된 사형대가 새로 설치된 것을 보았다.
성직자가 말없이 죄수들을 사형대 위로 이끌었고, 거기에서 그들에게 사형선고를 하고 수의를 지급했다. 한 손에 성경, 다른 손에 십자가를 든 성직자가 그들에게 회개를 촉구했다. 그는 죄수 한 명 한 명에게 차례로 다가갔다. 죄수들은 성직자가 내미는 십자가에 입을 맞췄다. 확고한 무신론자인 도스토옙스키도 그 절차에 동참했다.
맨 앞의 세 명이 가까운 말뚝에 묶였다. 두 명은 무언가를 뒤집어썼지만, 나머지 한 명은 사격 자세를 취한 군인들을 노려보았다. 도스토옙스키는 다음으로 처형될 세 명 중 하나였다. 그가 죽음을 맞을 준비를 할 때, 북소리가 들렸다. 도스토옙스키는 장교로 복무한 적이 있었으므로 그 북소리가 후퇴를 의미하고 자신이 죽지 않을 것임을 즉시 알아챘다. 실제로 그러했다. 차르의 부관이 말을 타고 광장에 들어와 차르의 판결을 전달했다. 도스토옙스키는 시베리아 감옥으로 이송되었다.
이 가짜 처형식 도중 사격 자세를 취한 군인들 앞의 말뚝에 묶였던 한 남자는 도스토옙스키가 '신경 붕괴'라고 묘사한 증상을 보였다. 도스토옙스키는 수감 생활로 인해 정신상태가 허약했던 그 남자의 얼굴이 핏기없이 창백했다고 썼는데, 나는 그 남자가 실신하기 직전이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 남자는 그 때의 정서적인 충격을 끝내 극복하지 못한 듯하다.
반면 죽음을 직면한 도스토옙스키는 전혀 다르게 반응했다. 그는 영적으로 각성했다. 그는 감옥으로 돌아오자마자 당국이 그를 시베리아로 내치기 전에 서둘러 형에게 편지를 썼다. 죽음을 대면했기 때문에 삶의 의욕을 새롭게 얻었다고 썼다. 그는 불현듯 황홀한 깨달음에 휩싸이면서 삶 자체가 가장 큰 기쁨이며 우리는 각자 매 순간을 '영원한 행복'으로 만들 힘을 자기 안에 지녔다는 찬란한 진실에 이르렀다. 사형대 위에서 죽음을 기다리면서 도스토옙스키는 용서하고 용서받고 싶은 욕구를 느꼈다. 죽음에 직면한 도스토옙스키에게 무조건의 사랑과 용서로 타인을 보듬는 일은 인간의 가장 큰 미덕이 되었다. 이후 이 확신을 늘 간직한 그는 여러해 뒤에 아내에게 이렇게 이렇게 말하게 된다. "내 기억에 그날처럼 행복했던 때는 없소."
도스토옙스키는 영적인 부활을 통해 굳게 단련되었다. 시베리아 수감생활을 목전에 둔 그는 '나는 새 모습으로 거듭났다'고 썼다. 이후 종교적 신앙은 도스토옙스키의 중심을 차지하게 되었고 그의 남은 작가경력 내내 문학적 소재와 예술적 에너지를 제공했다. 가짜 처형을 겪은 지 20년 뒤에 쓴 마지막 소설 [백치]에서 원숙한 도스토옙스키는 자신이 세메노프스키 광장에서 겪은 시련과 거듭남을 예수를 닮은 주인공 미슈킨 왕자의 눈을 통해 묘사했다. 미슈킨은 비슷한 일을 겪은 한 사내의 생각을 이렇게 전했다.
"그는 5분 후면 죽을 운명이었다. 그 5분이 무한한 시간처럼, 엄청난 재산처럼 느껴졌다고 그는 나에게 말했다. 그 5분 안에 아주 많은 일을 할 수 있어서 아직 마지막 순간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시간을 쪼개면 쪼갤수록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아진다고 그는 느꼈다. 그는 동지들과 작별할 시간 2분을 떼어놓았다. 또 다른 2분은 마지막으로 생각하는 데 할애하기로 했다. 나머지 1분은 주변을 둘러보는 데 쓰기로 했다. 그는 시간을 그런 식으로 쪼갰던 것을 아주 잘 기억했다.
그는 27세의 힘세고 건강한 청년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중이었다. 동지들과 작별하다가 한 동지에게 다소 엉뚱한 질문을 던지고는 대답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였던 것을 그는 기억했다. 작별 인사를 하고 나자 홀로 생각하기 위해 준비한 2분이 시작되었다. 무엇을 생각할 것인지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그는 지금 살아있는 자신이 3분 뒤에 다른 무언가가 되는 것이 대체 어떻게 가능한지를 최대한 신속하고 명확하게 깨닫고 싶었다. 대체 어디에서 무엇이 된단 말인가? 그는 이 모든 질문에 2분 내로 답할 작정이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교회의 금박입힌 지붕에서 밝은 햇빛이 반사되고 있었다. 그는 자신과 그 빛을 분리할 수 없었다. 그 빛살이 자신의 새로운 본성인 듯 했고, 3분 뒤면 자신이 그 빛살 속으로 녹아들 것 같았다."
<224쪽>
다른 동물의 안와 앞이마엽orbital prefrontal region 구역이 주로 음식의 쾌락에 반응하는 반면, 현대인의 안와 앞이마엽 구역은 사실상 모든 유형의 쾌락(또는 보상)에 반응한다. 보상시스템은 우리의 행동을 이끄는 중요한 구실을 하지만 부정적인 측면도 지녔다. 보상시스템은 초콜릿 중독 뿐 아니라 헤로인, 코카인, 도박 중독의 토대이기도 하다.
신경학자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가 천국에 가거나 깨달음에 이를 때 얻을 보상을 영적 경험 중에 어렴풋이 대면하는 것은 안와 앞이마엽 구역 덕분인 것이 분명하다. 그 구역은 임사체험을, 아니 모든 영적 경험을 가장 중요한 보상으로 만든다. 도스토옙스키는 안와 앞이마엽 구역을 포함한 영적 통로를 통과하여 초월을 경험했고, 그 경험은 그의 삶을 바꿔놓았다.
<311쪽>
오래전부터 신경학자들은 표도르 도스토옙스키가 소설과 자서전적인 글에서 묘사한 그의 황홀경ecstatic 간질에 관심을 기울였다.
'나는 정말로 신과 접촉했다. 그가 내 안으로 왔다. 그래, 신은 존재한다, 라고 나는 외쳤다. 그밖에 기억나는 것은 없다. 당신들, 그가 말한 건강한 사람들은 우리 간질환자들이 발작을 앞둔 순간에 느끼는 행복을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그 행복이 몇 초, 몇 시간, 또는 몇 달 동안 지속하는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나를 믿으라. 나는 그 행복을 평생 누릴 기쁨 전부와도 바꾸지 않겠다. 그 행복은 평생만큼의 값어치가 있는 듯 하다.'
도스토옙스키는 자신이 느낀 영적 황홀경이 병에 의해 촉발되었을지 모른다는 의심을 품었다. '그것이 병이라면 어떨까? 그 결과가, 그 느낌의 순간이, 나중에 건강할 때 기억해내고 분석해보니, 조화와 아름다움의 극치이고, 그때까지 알거나 추측해보지 못한 완전함, 균형, 화해의 느낌과 더불어 생명의 최고 통합에 황홀하고 독실하게 흡수되는 느낌을 준다면, 그것이 비정상적인 강렬함이라는 점이 무슨 문제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