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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3. 7. 18:30 책에서 발췌

 

 

 

"우리는 동화를 일생에 두 번 그리고 두 겹으로 읽을 수 있다. 맨 처음 어린시절에 그 생생하고 다채로운 세계를 진짜라고 순진하게 믿으면서 읽고, 훨씬 나중에 그것이 지어낸 이야기라는 걸 완전히 의식하면서 읽는 것이다."

   - 슈테판 츠바이크Stefan Zweig

 

 

 

어릴 때, 아마도 한글을 떼기 전에 그림책으로 [요정들과 구두장이The Elves and The Shoemaker]를 본 것 같다. 조그만 요정들이 줄을 지어 신발을 만드는 장면이 희미하게 떠오른다. 하지만 뜻밖에도 원작에서 등장하는 요정은 단 둘! 뿐이다. 국내의 그림책에는 대부분 5명 이상의 요정이 등장하지만, 해외판에서는 몇몇을 제외하고는 요정은 둘이다. 간혹 남녀 한 쌍인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남자 모습이고, 왜소한 몸과 뾰족한 귀를 갖고 있다. 몸집은 구두 안에 쏙 들어갈 정도로 작게 그려지기도 하지만 대개는 꼬마아이 정도라서 구두보다는 훨씬 크다. elf는 난쟁이를 뜻하기도 하므로, 그림형제의 '백설공주'에 등장하는 난쟁이들처럼 '사람을 닮았지만 사람은 아닌' 존재인 것 같다.

 

 

 

 

옛날에 선한 구두장이가 있었다. 어찌어찌하여 그는 구두 한 켤레 분량의 가죽만 남은 곤란한 처지가 되었다. 그날 밤, 매우 창의적인 요정들이 나타나 구두장이 대신 솜씨를 발휘한다. 요정들이 만든 구두는 훌륭했고 구두장이 부부는 감탄한다.

 

 

구두장이가 재료만 준비해두면, 요정들은 계속해서 '밤마다' 새롭고 대단한 신발들을 지어냈다. 기울어 가던 구두방은 요정들의 자발적인 수고 덕분에 나날이 번창한다. 

 

덕분에 구두장이 부부는 활력을 되찾고 풍족해졌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자 부부는 요정들을 위해 손수 옷과 신발을 지어 선물한다. 그것들을 착용한 요정들은 춤추고 노래하며 기쁨을 표현했다. 

 

 

그들은 신이 나서 밖으로 달려나갔고, 더는 구두방에 와서 구두를 만들지 않았다. 하지만 어디로 떠나서 무엇을 하든지 그들은 구두장이 부부가 준 선물과 함께 할 것이고, 그것은 그들을 보호할 것이다. 구두방은 그 후로도 잘 풀려나갔다.

 

 

 

많은 그림책 중에서도 이 책은 정말 마음에 든다. 마치 나를 위해 준비된 것처럼 감탄이 절로 나오는 섬세하고 사랑스러운 그림체에, 천진난만한 어린아이로 그려진 요정들은 아담과 이브처럼 남녀 한쌍이다. 선물받은 옷가지들을 몸에 걸치고는 즐거워하는 모습, 더는 '구두짓는 요정'이 아니라며 바깥세상으로 신나게 달려나가는 모습은 성경 '창세기'의 설정과는 대조적이다. '호기심을 행동으로 옮긴' 죄로 쫓겨나는 인류의 조상 이야기는 그저 비유일 뿐이라고 해도 좀 무섭다. 신에게 성별이 있을리 없는데도 얼마나 자주 신은 남성으로 묘사되었던가. 하지만 이 이야기의 구두장이는 사이좋은 '부부', 즉 남성성과 여성성을 포괄하는 성품을 지녔다. 그저 창의력 고갈상태에 처한 창작자다. 제우스나 야훼처럼 세상을 뒤흔드는 힘은 없지만 나이 지긋한 '어른'이라는 점에서는 그런 신과 비슷하다. 마지막에 그림자로 처리된 아이들을 볼 때는 영화 [판의 미로] 오프닝이 떠올랐다. 그리고 '장면' 속에 있으면서도 벌어지는 일들을 그저 구경하는 고양이. 귀엽고 부럽다.

 

 

"하나님은 특별히 인간을 위해 만든 동산에서 인간을 추방한다. 그것은 참 어리석은 노릇이지만, 그 세계가 창조된 방식은 더욱 어리석다. 그들(기독교 문자주의자들)은 창조의 날들을 할당한다. 하늘이 만들어지지도 않았고, 땅이 정해지지도 않았으며, 하늘에는 태양도 달도 별도 없는데 어떻게 날이 존재할 수 있단 말인가? 더없이 위대한 하나님이 벽돌공처럼 '오늘은 이런 일을 하고, 내일은 저런 일을 하겠다', 그리고 셋째 날에는 또 이런 일, 넷째 날에는 저런 일, 다섯째와 여섯째 날에는 또 어떤 일을 하는 등 자기 일을 나누어 처리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처구니가 없지 아니한가! 그런 하나님이라면 보통의 일꾼처럼 지쳐서 여섯째 날 후에 쉬는 날이 필요하다고 해서 놀랄 것도 없을 것이다. 휴식이 필요한 하나님, 두 손으로 일하는 하나님, 막노동 십장처럼 지시를 내리는 하나님의 행동은 도무지 '하나님답지 않다'고 촌평할 거리도 못 된다."    - 켈수스(AD63~130) 

 

 

 

[불굴의 모험The Dauntless Adventure]이라는 소책자가 있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아침산책을 하던 중 시작된 '머릿속의 목소리'를 몇 주에 걸쳐 받아적은 내용이라고 한다. 여기에는 '신이 들려주는 천지창조 이야기'라고 이름붙일 만한 내용이 나오는데, 읽다보면 자꾸 [구두장이와 요정들]이 떠오른다. 한국어 번역본(번역자 미상)은 이렇게 시작한다.

 

"원초적 의식으로서... 모든 것이고 모든 개개의 것인 나는 심심해졌다. 존재하는 모든 것, 존재하게 될 모든 것을 가졌지만 창조해 온 무수한 시간에 걸쳐 나의 삶은 의미가 없어졌다. 나는 불꽃과 성장, 그리고 생명을 다시 가져오기 위한 길을 찾고 있었으나 소용 없었다. 그때 하나의 게임을 만들자는 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나 자신을 무제한의 실체들로 나누고, 그들이 서로 대항하게 내보낼 것이다. 무한의 한 쪽은 어둠Dark의 선수들이, 다른 쪽은 빛Light의 선수들이 될 것이다. ......"

 

 

  

 

 

어린시절에 이 동화는 '착한 구두장이 부부가 요정들의 도움으로 행복하게 된' 이야기였다. 세월이 많이 흘러 다시 읽으면 '인간과 세계의 관계'라는 심오한 주제에 대한 짧은 우화로 다가온다. 가끔 인생이라는 게 하나의 수수께끼처럼 느껴진다. 스핑크스가 오이디푸스에게 낸 수수께끼는 어린 나에게도 시시했지만, 어른이 되어 문득 그 질문의 무게를 이해하면 그게 2,400년 전에 쓰여진 연극대본이었음에 웃게 된다.

 

그리스신화도 그저 재미삼아 교양삼아 읽는 '인간보다 나을 것도 없는 신들'의 이야기였다가, 불현듯 '정교하게 지어진 교재'라는 걸 뒤늦게 깨닫고는 감탄한다. 살면서 무심히 지나친 이야기들과 일들 사이사이에 깨알같은 '힌트'들이 숨어있다. 언젠가는 나도 정답을 맞출 수 있겠지. 언젠가는.

 

이 동화에 대해 이것저것을 알아보다가 구두수선공을 뜻하는 cobbler라는 단어를 발견!했다. 영화 [인셉션]에 나오는 그 독특한 이름 '코브Cobb'는 구두장이 요정 즉, 신의 미니어처인 우리를 지칭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요정들처럼 밤(어둠 속)에 일한다. 우리는 스스로 원해서 기쁘게! 이곳으로 뛰어들었다. 비록 신에게서 멀어졌지만, 신에게서 받은 선물을 품고, 자신이 본래 무엇인지 잊은 채, 빛을 추구하고 앎을 추구하면서, 빛에 가까워졌다가 더 어두운 곳으로 떨어졌다가 왔다갔다 하면서.

 

 

 

 

posted by moon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