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여느 때처럼 까까할아버지는 주혁이를 태운 유모차와 함께 후문에서 기다리시고, 나는 가원이 머리를 빗겨주고서 함께 후문으로 갔다. 할아버지는 4층에서 내려다보며 소리치는 '상국이 아저씨'와 이야기하시고, 나는 주혁이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우리를 물끄러미 쳐다보시던 한 노신사(!)가 말을 걸어왔다.
"나도 손자, 손녀를 이렇게 손을 잡고, 유치원, 학교에 데려다 줬었다구. 그 녀석들 중학교 다닐 때에도 비오면 비맞을까봐 우산들고 학교에도 많이 갔는데 크니까 하나도 소용이 없어.... 지금 그 애들이 대학생인데 나를 언제 봤더냐 하더라구. 서운해. 가끔 찾아오고 그러면 좋은데....."
괜히 내가 미안한 느낌이 들어서, "아마 그 애들도 어색해서 그러는 걸 거에요." 하면서 웃었다.
연세를 여쭈어보니 87세라고 하셨다. 누가 보더라도 체격과 얼굴빛이 좋아서 그렇게까지 많게 보이지는 않았다. 지팡이는 들고 계셨지만 허리도 곧으시고, 어조도 차분해서 전형적인 '노신사'라고 생각되었다.
내가 이야기를 경청하자, 다른 이야기도 꺼내신다.
"집사람이 15년이나 앓았어요. 자식들이 요양원 같은 데로 보내자고 하더라구. 그런데 나는 그런 거 싫어하거던. 그런 데는 가족없는 사람들이나 가는 거지. 그래서 내가 15년동안 돌봐주다가 먼저 보냈어...... 엊그제 여기 가슴을 부딪혀서 지금 며칠째 침을 맞으러 다니고 있는데...."
가원이가 어린이집으로 출발하려고 할 때, 그 분도 서둘러 갈 길을 가셨다. 뒷모습을 보면서, 할 수만 있다면 그 분의 말동무가 되고 싶어졌다.
가원이와 할아버지를 배웅하고서 유모차로 동네를 한바퀴 돌았다. 아기를 업고 얼러주는 할머니도 보이고, 나란히 걸으며 운동하는 노부부도 보였다. 나는 가끔 걱정없이 나날을 보내는 것처럼 보이는 할머니들이 부럽기도 했었다. 건강만 잘 관리한다면 '가외의 인생' 아닌가. 그렇지만 어느 곳에 있어도 고립감을 느낄 것 같다.
언젠가는 나도 늙고, 부부 중 한사람은 먼저 떠나게 되겠지. 70세가 되고, 80세가 되고, 90세가 되고..... 자녀들과 시간을 함께 보내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그들의 부모가 그랬듯이, 언제나 자신의 인생에 열중해 있을 것이다. 노년을 표현하는 가장 적절한 단어는 '외로움'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