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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9. 30. 16:33 책에서 발췌

Death Is But a Dream: Finding Hope and Meaning at Life's End, 2020 

크리스토퍼 커, 카린 마르도로시안 지음 / 이정미 옮김 / 2020 / 알에이치코리아

 

 

 

<26쪽>

메리는 일흔 살의 예술가로 네 자녀를 둔 어머니였다. 한번은 메리의 병실에서 조촐한 가족모임이 열렸다. 메리가 '갱단'이라고 부르는 자녀들이 모두 모여 와인 한 병을 나눠 마시고 있었다.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와중에도 메리는 그 시간을 즐기는 듯 했다.

 

그런데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다. 메리는 아기를 품에 안은 것처럼 행동하기 시작했다. 마치 시공간을 벗어나 연극의 한 장면을 연기하는 사람처럼, 침대에 걸터앉아 상상 속의 아이를 '대니'라고 부르며 입을 맞추고 어르고 달래고,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순간이 메리를 더없이 행복하게 해주는 것 같았다. 자녀들은 놀라서 일제히 나를 바라보았다. "이게 무슨 일이죠? 환각 상태인가요? 약 기운 때문이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또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설명하기 어려운 문제이기도 했지만 그 순간 가장 적절한 대응은 의학적인 개입을 자제하는 것뿐이었다. 그 상황에는 다스려야 할 통증도, 해결해야 할 의학적 문제도 없었다. 내가 마주한 것은 의학적 지식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기쁨을 느끼고 있는 한 인간의 모습이었다. 나는 메리의 장성한 자녀들과 마찬가지로 경외심을 가지고 메리의 모습을 지켜봤다. 메리의 자녀들은 처음에는 크게 놀라 당황했지만, 어머니의 평온한 모습을 지켜보면서 이내 안도감을 느꼈다. 감사와 평화가 깃든 그 분위기는 정말이지 특별했다.

다음날, 메리의 여동생이 병원을 방문했다. 그녀에게 메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메리는 네 자녀를 출산하기 한참 전에 대니라는 태명을 가진 사산아를 낳았다고 했다. 메리는 아이를 잃고 큰 슬픔에 잠겼지만, 그 후로 단 한 번도 그 일을 언급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녀의 자녀들조차 대니에 대해 알지 못했던 것이다. 죽음의 문턱에서 메리는 잘못된 일을 바로잡기라도 하는 것처럼 과거에 겪은 트라우마를 다시 끄집어내고 있었다. 메리의 육체적 아픔은 치료할 수 없었지만, 그녀의 정신적 상처만큼은 치유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메리는 평화롭게 생을 마감했다. 

 

내가 어린 시절,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열두 살 때였다. 병상에서 죽어가는 아버지 곁에 나를 남겨두고 병실 밖으로 나가 외삼촌과 이야기를 나누던 어머니를 기억한다. 아버지는 그때 캐나다 북부에 있는 '시골집 낚시터에 데려갈테니 준비하라'고 말하며 내 윗옷의 단추를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낚시터에 가겠다는 말이 좀 엉뚱하게 들리기는 했지만, 아버지가 무슨 말을 하든 상관없었다. 평온해 보이는 아버지와 함께 했던 그 순간과, 아버지가 나와 함께 낚시를 하고 싶어 한다는 사실이 내게는 큰 위안이 됐다. 나는 그 시간이 아버지와 함께할 마지막 순간임을 직감했다. 손을 뻗어 아버지를 만지려는데 한 신부님이 들어와 나를 병실 밖으로 데리고 나가며 말했다. "네 아버지는 환영에 사로잡혀 있단다. 이제 그만 가자꾸나."

 

아버지는 그날 밤 늦게 세상을 떠났다. 당시 너무 어렸던 나는 평생 사라지지 않을 그 상실감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랐다. 나는 병상에서 아버지가 보였던 행동에 대해 논하기는커녕 언급조차 한 적이 없었다. 

 

 

<61쪽>
고령인 프랭크는 노쇠한 모습과는 사뭇 다른 놀라운 명민함을 보여 주는 환자였다. 그는 심한 울혈성 심부전으로 입원해 있었지만, 95세의 나이에도 여전히 주변환경을 분명히 인지했고 건설적인 대화를 나눌 줄 알았다. 프랭크는 마치 소중한 물건을 수집하듯 야구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수집했고, 야구 게임에 있어서는 그를 따를 자가 없었다. 프로리그 시작부터 야구의 역사를 줄줄 꿰고 있었고, 선수, 팀, 시즌, 역사적인 사건 등을 막힘없이 이야기했다. 프랭크는 1939년 처음 TV로 중계된 메이저 리그 경기를 기억했고, 야구의 전설이 된 선수들은 물론이고 그리 유명하지 않은 선수들의 이름까지 정확히 댈 수 있었다. 야구에 대한 그의 열정은 어린시절부터 그의 삶을 지탱해 준 원동력이었고, 야구는 여전히 그에게 깊은 만족감을 안겨줬다.

그런데 프랭크는 정확한 기억력과 활발한 소통 능력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휴식을 취하기 위해 눈만 감으면 고인이 된 친인척들이 병실 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프랭크만 볼 수 있는 모습이었다. 그는 그런 현상을 계속 반복해 겪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정신질환의 징후로 볼 정도는 아니었다.

하루는 프랭크가 휴식을 취하고 싶다며 약을 원해서 그의 병실로 찾아갔다. 그날 아침 프랭크는 담당 간호사 팸에게 큰 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빌어먹을 내 의사는 어디 있지?" 프랭크는 내가 병실로 들어가기 전부터 감정이 격해진 상태였고, 팸은 그날따라 그가 짜증이 심하다고 알려줬다. 프랭크는 철강 노동자였고, 그는 무엇이든 자기 뜻대로 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었다. 물론 나도 그 안에 포함됐다. 병실로 들어가니, 그는 침대에서 벌떡일어나 "잠을 잘 수가 없네. 이봐, 의사 양반, 해리 삼촌을 만나서 참 좋긴 한데, 그가 입 좀 다물었으면 좋겠어." 알고 보니 해리 삼촌은 46년 전에 죽은 사람이었다.

임종 전 마지막 단계에서는 보통 아주 깊고 편안한 잠에 빠지곤 한다. 가끔 수면을 방해하는 산발적 각성상태에서는 더 많이 자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은 예상치 못한 변화를 가져오기도 한다. ... 프랭크가 세상을 떠나기 3일 전 의식이 왔다갔다 하다가 갑자기 소리쳤다. "지금은 1927년이다! 내가 소년이야! 어떻게 된 거지?" 그는 꿈과 환영이 너무나 생생해 그러한 마술을 부릴 수있는 방법을 우리에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이 본 장면들이 실제로 일어난 일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의 신체는 그 기능을 점점 잃어가고 있었지만, 정신은 여전히 또렷했다. 프랭크는 자신이 누구고 어디에 있는지 분명히 알고 있었지만, 자신이 경험하고 있는 것 역시 또 하나의 현실로 인지하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프랭크의 내적 세계는 그의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 바로 아내의 사랑을 다시 떠올리게 했다. 꿈에 아내가 등장했고 꿈꿀수록 그녀의 존재가 더 생생하게 느껴지면서 그의 마음도 더 편안해졌다. 결국 그는 우리에게 치료를 중단해 달라고 요청했다. 치료를 거부하겠다는 그의 결정은 의학적으로 볼 때 적절한 선택이었다. 보통 환자가 의사보다 먼저 치료가 소용없다는 사실을 인지하며, 그 사실을 인지한 환자는 의사를 아무 의미없는 의무감에서 해방시켜 준다. 프랭크는 '천국에 있는 루시'와 함께하고 싶어했다. 우리는 그가 오랫동안 기다려 온 재회를 편안하게 할 수 있도록 도왔고, 그는 자기 본연의 모습으로 생을 마감했다.

나는 임상시험심사위원회 승인 도장이 아닌 프랭크 같은 환자들과 만남을 통해 임종 전 경험에 대한 증거를 수집하는 일이 우리의 도덕적 의무임을 확신하게 됐다. 죽음을 앞둔 환자들은 소통을 필요로 한다. 그들은 자신의 내면과 쇠약해진 몸 안에 갇혀 밖으로 잘 드러나지 않던 내적 세계를 표출할 시간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그들의 그런 경험은 의학적으로 인정받아야 마땅하다. 우리의 연구목적은 간단했다. 첫째는 임종몽臨終夢과 임종시臨終視가 보편적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고, 둘째는 환자의 관점에서 임종 전 경험의 보편성, 내용, 의미를 다루는 것이었다. 환자들이 직접 들려준 임종 전 경험을 문서화하기 위해서 우리는 보다 포괄적인 질문이 담긴 표준화된 설문지를 활용했다.

환자들이 연구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연구에 참여하는 목적을 이해하고 동의할 수 있어야 했고, 그 내용은 임상시험심사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여러 페이지에 걸쳐 자세히 설명돼 있었다. 연구에 참여할 환자들은 참관인이 보는 앞에서 그 문서를 읽고 서명해야 했다. 우리는 치매, 섬망, 혼란과 같은 경미한 인지장애를 조금이라도 보이는 참가자들은 연구에 참여시키지 않았다. 참가자들은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거의 매일 인터뷰에 응했다. 앞서 다른 연구원들은 죽음이 임박한 순간을 무작위로 정해 그 순간에 한정된 데이터를 수집한 반면, 우리는 임종과정을 며칠에서 몇 달에 걸쳐 진행되는 하나의 과정으로 정의해 관찰하며 조사했다.

우리 연구에 참여한 참가자 대부분은 자신의 의견을 공유할 수 있음에 기뻐했다. 그들 모두 눈앞에 닥친 죽음과 그 죽음에 대한 강박관념을 초월해 의미있는 작업에 자신들이 동참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격했다. 그들은 더는 혼자가 아니었다. 환자들은 우리에게 항상 관심을 보였고, 안도감을 자주 표했으며, 때로는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그러니까, 제가 미쳤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씀이죠?"라는 질문은 일종의 만트라처럼 되어버렸다. 우리 환자들은 단순한 연구대상이 아니었다. 그들은 협력자, 평론가, 공동 연구원, 피험자, 주인공들이었으며, 모두가 하나로 뭉쳐 있었다.

 

 

<66쪽>
브리짓은 만성 폐쇄성 폐질환을 가진 81세의 독실한 루터교 신자였다. 브리짓은 환시를 겪고 나면 몹시 불안해져서 평소답지 않게 말이 없어지곤 했다. 꿈이 어찌나 생생한지 깨어있을 때와 구분이 안 될 정도가 되자 그녀는 계속해서 질문을 던졌다. "왜 이런 게 보이죠? 제가 미쳐가는 건가요?" 브리짓은 죽은 이모 두 명이 우두커니 서서 자신을 바라보는 꿈을 계속 꾸고 있다고 했다. 빛나는 흰색 롱 드레스를 입고 식탁에 앉아 뜨개질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기도 했다. 목소리를 듣지는 못했지만 어머니의 강렬한 존재감을 느꼈다. 브리짓은 스스로 '환시'라고 표현한 것들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했다. 삶의 끝자락에서 그녀가 본 것이 종교의 가르침과 달랐기 때문이다. 브리짓은 죽은 사람들이 아닌 천사를 볼 수 있기를 바랐다. 우리가 브리짓에게 그런 임종시가 흔한 현상이고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라고 설명하자 그녀는 안심했다. 

 

실제로 우리 환자 중 80% 이상이 연구 기간 최소 한 번은 임종몽이나 임종시를 경험했다고 보고했다. 환자가 자신의 임종몽과 임종시를 이야기하고 인정받을 수 있을 때, 삶의 마지막 여정은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 다시 온전한 삶을 되찾는 과정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연구를 통해 환자들이 자기 자신, 자신이 사랑한 사람들, 자신을 사랑해 준 사람들과 가까워지는 데 임종 전 경험이 도움을 준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임종 전 경험은 온전한 자아를 지키고 회복시키는 역할을 한다. 우리가 돌보는 말기 환자들의 이야기 속에는 그들이 발견한 특별한 의미와 자존감을 회복하고, 상처를 치유하고, 유대감을 회복하는 내적 여정이 담겨 있었다. 보통 그 여정은 그들을 가장 사랑했고 그들이 가장 필요로 했던 사람들과의 재회를 의미했다.

전이성 대장암 진단을 받은 51세의 개신교 신자 라이언도 처음에는 브리짓처럼 걱정했다. "제가 미쳐 가고 있는 걸까요? 이 사람들 중 일부는 못 본 지 한참 됐거든요." 그런데 임상적으로 개선효과가 나타나면서 임종몽과 임종시를 더 이상 겪지 않게 된 그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이제 현실로 돌아왔어요. 현실로 돌아오기 전이 그리워요." 라이언은 결혼한 적도 없고, 자신이 나고 자란 지역을 벗어난 적도 없었지만 그의 삶에는 기쁨과 애정이 있었다. 그에게는 의리로 똘똘 뭉친 친구들이 있었고, 그들 대부분은 어릴 때부터 친구였다. 라이언은 1970년대와 그 시절에 즐기던 음악과 문화를 사랑했고, 그 시절의 추억에서 벗어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죽음을 앞둔 시점에서 그는 꿈속에서 살아 있는 친구들과 이미 고인이 된 친구들을 동시에 만났고, 그동안 참석했던 모든 콘서트에 그들과 함께 가는 꿈을 꿨다. 주말마다 차고에서 중고물품을 판매하던 곳도 꿈에서 다시 찾아갔다. 그가 주로 오래된 앨범을 찾아다니던 곳이었다. 라이언은 강으로 낚시를 가는 꿈, 친척들과 함께 어디론가 여행을 떠나는 꿈을 꾸곤 했다. 말기 진단과 합병증은 라이언에게는 일종의 모욕이었다. 더 이상 활동적인 삶을 살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임종몽을 통해 다시 자유를 경험하면서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우리는 연구를 통해, 환자들의 죽음이 가까워짐에 따라 그들의 꿈에 등장하는 인물이 살아있는 사람에서 죽은 사람으로 바뀌어 간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가장 중요한 패턴을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었다. 임종이 가까워지면서 임종몽과 임종시의 빈도가 증가했고, 살아있는 사람보다 죽은 사람이 더 많이 등장했다. 고인이 등장하는 꿈은 사망의 전조를 보여 준다고 볼 수 있다.

설문 조사에 따르면, 환자들은 고인이 된 친인척이나 친구와 관련된 임종 전 경험을 통해 가장 큰 위안을 받았다고 평가했다. 환자들이 고인을 보면서 느끼는 위안의 강도를 점수로 매겼을 때 5점 만점에 4.08점이라는 평균값이 나왔다. 살아있는 사람을 보면서 느끼는 위안의 강도는 그 평균값이 2.86점이었다. 위안효과가 있는 것으로 가장 많이 보고된 임종 전 경험은 고인이 된 친구나 친인척과 관련된 내용이 72%로 가장 많았고, 생존해 있는 친구나 친인척, 죽은 반려동물이나 동물, 과거의 의미있는 경험, 마지막으로 종교인과 관련된 내용이 그 뒤를 이었다. 모든 데이터를 종합해 보면, 우리의 내적 세계가 우리가 사랑하고 떠나보낸 사람들로 더 많이 채워짐에 따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누그러지는 특별하고도 고유한 메커니즘이 임종과정에 내재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70쪽>
로즈메리가 임종 직전에 꾼 꿈 중 하나는 가족모임에 대한 것이었는데, 다 함께 모여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그 즐거운 꿈속에서 그녀는 딸 베스가 여행준비를 하는 환시를 동시에 볼 수 있었다. 로즈메리는 가족모임이 끝나갈 무렵 챙겨야 할 물건을 고르는 베스와 베스를 지켜보는 가족들을 볼 수 있었다. 베스는 자신이 직접 만들고 판매했던 아름다운 꽃무늬 실크 스카프들을 챙겨 짐을 싸고 있었다. 즐거운 가족모임과 딸이 곧 떠날 상황의 대비는 로즈메리가 삶의 마지막 여정을 두고 자주 언급했던 자신의 상반된 감정을 드러내 보여주고 있었다. 로즈메리는 가족 모임이 주는 따뜻함에 안도감을 느끼는 한편, 곧 있을지 모르는 헤어짐을 떠올리고 있었다. 

많은 환자가 자기 꿈속에 나온 죽은 친구와 친인척의 모습을 설명하면서 자기를 꼭 껴안아 주는 듯한 조용한 모습으로 바로 거기에 서서 '나를 기다린다'고 묘사했다. 이렇게 침묵하며 지켜보는 모습에서 그들은 어떤 판단도 개입되지 않은 순수한 사랑과 따뜻한 안내를 경험할 수 있었다. 브리짓은 고인이 된 두 이모가 그녀에게 나타나 가만히 서서 잠든 그녀를 조용히 지켜보고 있는 모습이 자기에게 큰 위로가 됐다고 단언했다. 브리짓은 두 이모의 사랑을 시공간을 초월해 느낄 수 있었다.

우리 연구에 참여한 환자의 3분의 1 이상이 임종몽이나 임종시를 통해 '여행하기와 떠날 준비하기'를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흥미롭게도 라이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여행에 목적지가 없다는 사실에 그들은 보통 불안감이 아닌 안도감과 위안을 느꼈다. 그들은 비행기, 기차, 자동차, 버스, 택시 등의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모습을 묘사했다.

 

임종 전 경험은 45%가 수면 중에 일어났고, 16%는 깨어 있는 상태에서 발생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39% 이상이 수면상태와 각성상태를 가리지 않고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면 중에 겪든 깨어있을 때 겪든 환자들의 임종 전 경험은 아주 생생했다. 그들의 보편적인 반응은 평상시의 꿈과는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다. 우리가 녹음한 진술 중 가장 흔한 내용은 '평소에는 꿈이 잘 기억나지 않지만, 이번에 꾼 꿈은 달랐다', '실제보다 더 현실감이 느껴지는 꿈이었다', '마치 실제로 일어난 일 같았다' 등이다. 환자들은 자기들이 꾼 꿈이 실제 같았을 뿐 아니라 너무나 생생했다고 강조해 말했다. 임종 전 경험에서 느낀 현실감의 강도를 묻는 질문에서 환자 대부분이 10점 만점에 10점을 부여했다. 그들은 임종 전 경험을 자신들이 지금까지 겪어 본 경험 중 가장 또렷하고 생생하며 실제적이었다고 묘사했다.  

 

 

<74쪽>
91세의 앤이 울혈성 심부전으로 우리 병동에 입원했을 때, 오래 전 세상을 떠난 언니가 보이는 환시를 아주 심하게 겪고 있었기 때문에 하루는 일어나자마자 주위를 둘러보며, "에밀리는 어디 있지?" 하고 물었다. 에밀리는 16년 전에 이미 세상을 떠났지만, 앤에게 보이는 에밀리의 모습은 눈앞의 의사를 보는 것만큼이나 현실적이었다. 앤은 그 뒤에 급성 호흡곤란 증상으로 다시 입원했고, 깨어난 후에는 아무 것도 없는 천장을 올려다보며 그곳에 뭐라도 있는 것처럼 행동했다. 한번은 그녀가 침대에 일어나 앉아 누군가를 껴안으려는 듯 천장을 향해 두 팔을 뻗기도 했다. 앤은 가족들에게 "이제 내가 죽으려나?"하고 묻곤 했다. 앤은 에밀리의 턱 모양과 느슨하게 묶어 올린 금발, 소매를 팔꿈치까지 걷어 올린 연두색 면 저지 드레스,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는 모습을 묘사했다. 에밀리는 거의 말이 없었지만 앤의 마음을 따뜻하게 했고 기운나게 했다.

 

앤은 언니처럼 젊어진 모습으로 언니와 함께 산책하는 자신의 모습을 마음 속에 그리곤 했다. 앤은 5남매 중에서도 자신을 길러주다시피 한 에밀리와 가장 가까웠다. 앤은 "나는 혼자 가지 않을 거야. 에밀리가 나와 함께 해줄 거니까."라고 말하곤 했다. 다음날에도 앤은 계속해서 언니가 보이는 꿈을 꿨고, 이틀 뒤 그녀는 임상적으로 안정을 취하고 다시 수면을 취할 수 있게 되자 퇴원했다. 대부분의 환자는 죽음을 향한 신체적 쇠퇴가 지연되면 그와 동시에 임종 전 경험도 중단된다. 라이언처럼 앤 역시 더 이상 환시가 나타나지 않는 상황을 못내 아쉬워했다. 앤은 한 달 후에 집에서 평화롭게 생을 마감했다. 

 

 

posted by moon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