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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 human doing but human being - P'ta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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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7. 31. 00:47 영화

 


이 영화에는 약물을 이용해 환각상태로 들어가는 장면들이 많은데, 대단히 예리하고 흥미롭다. 약물이 주입된 피험자는 곧바로 '현실같은' 환영 속에 놓이게 되고, 어리둥절해 하다가 곧 위험에 빠진 자신을 발견한다. 처음에 나타나는 환영은 이 '테스트 프로그램'의 제작진이 설정했겠지만, 피험자의 반응에 따라 환영은 변화한다. 피험자마다 각기 다른 임기응변을 발휘할테니 환영이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는 각자에게 달려있다. 

 

주인공 베아트리스(트리스)는 자신의 성향 또는 적성을 검사하기 위해 약물을 마시고, 순식간에 환각상태로 미끄러져 들어간다. 그 곳에는 거울이 있고, 거울에 비친 자기자신이 있다. 거울상은 이리저리 분화하면서 트리스는 자신의 분신들에 둘러쌓인다. 그 분신들은 자신과 똑같으면서도 똑같지 않다. 어깨를 만지고, 말을 걸고, 선택을 재촉한다. 나에게는 불교에서 말하는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을 구체화한 것처럼 보인다. 그 뜻을 '천지간에 자기가 가장 존귀함'으로 의역하지 않고, '온세상에 오직 나만 홀로 높음'으로 직역한다면 말이다. 즉 '보이는 모든 것이 나의 반영', '나의 내면이 외부에 투사된 것이 이 세상'이고, 그러므로 온세상이 나의 통제 안에 있음을 뜻한다면! 

 

 

핵전쟁으로 폐허가 된 지구에서 유일하게 안전한 그들의 도시는 거대한 울타리로 둘러쳐져 있다. 두 번째 환각에서 트리스는 한 번도 넘어보지 못한 그 울타리 밖에 혼자 서 있다. 한쪽에서는 들불이 번지고, 하늘에서는 까마귀가 떼지어 달려들고, 달아나려는데 발이 진창에 빠져서 걸을 수도 없다. 공포에 질려 넘어졌을 때 트리스는 작은 웅덩이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본다. 나르키소스 같다. 주인공답게 트리스는 그 상황이 실제가 아닌 환영임을 깨닫고 완전히 다른(헤르메스적) 방식으로 대응한다. 그러다가 갑자기 깨어난다.

 

이 세 번째 환영은 '소외'와 '익사'의 두려움을 보여준다. 역시 현실이 아닌 환각임을 인식한 시점에 두려움은 사라진다. 두려운 상황을 인간적 노력으로 극복하는 것보다 몇 배는 효율적이다. 빠져나오기 위해 필요한 것은 '실제가 아님'을 깨닫고 발버둥을 멈추는 것이다.

 

이건 드물게 꾸는 '꿈 속의 꿈'을 연상시킨다. 꿈 속에서 빠져나왔는데도 여전히 꿈이다. 한 번 깨었기 때문에 '현실'에 있다고 믿지만 여전히 꿈 속이다. 잠든 상태에서는 꿈과 현실을 구분할 수 없다. 다행히 트리스는 구분해 내고 최종 테스트를 통과한다. 

 

이 영화에서의 환각체험들은 단지 몇 분 안에 끝나버리지만, 만일 80년쯤 지속한다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트리스처럼 초창기에는 문득문득 자신이 '실재가 아닌' 내면적 환각계에 있음을 자각할 수 있겠지만, 점차 환영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의심하지 않게 될 것이다. 늙어 죽는다 해도 진짜!로 죽을 수는 없다. 어떻게 꿈 속에서 죽을 수 있겠나. 꿈 속에서 아기로 태어나든 노인으로 죽든 그저 꿈 속의 시간, 꿈 속의 변화일 뿐인데.

그리스 신화 속 '나르키소스'는 샘에 비친 자기자신의 모습과 사랑에 빠져서, 에코의 절절한 만류를 뿌리치고 샘에 뛰어들어 죽었다고 한다. 말이 안된다. 어떤 바보가 물에 비친 제 모습을 타인으로 보겠으며, 어떤 멍청이가 실체가 아닌 제 거울상에 홀려서 죽음을 택하겠나. 이 이야기는 아주 섬세하게 구성된 영지주의 우화다.

처음엔 이렇게 구경하듯 바라보았을 것이다. '정말 아름답구나'

 

 

그러다가 이렇게 조금씩 더 가까이 다가가다가, 자신이 '바라보는 자'임을 잊고 물에 비친 허상을 자신이라고 믿게 된 순간이 있었을 것이다. 

 

 

결국 그 허상에 코를 대고 들여다보는 지점에서, 내가 '무엇'인지를 완전히 잊고 물 속 깊이 가라앉았을 것이다. 어떤 식으로든 내가 나의 의식 '속'으로 들어가서 그 새로운 세계 속에서 걷고 놀고 탐험하는 게 가능하다면, 그 티켓이 아무리 값비싸다 해도 누구나 한 번쯤 거기에 입장하려 하지 않을까.

 

그런데 이 놀이동산은 한 번 입장하면 여간해서는 퇴장할 수 없는 '이상한 나라'다. 들어서면서부터 '떠나온 곳'을 잊게 만드는 망각의 세계다. '어디서 왔더라?' 하는 질문 자체를 할 수 없으니, '이제 그만 놀고 나가고 싶다'는 바람도 가질 수 없다. 그리고 꿈을 꾸면서 깨어있다고 착각하는 사람처럼, 혼미한 경험에 갖가지 의미를 부여하면서, 두려움과 싸우고, 싸우면서 점점 약해지고 악해져 간다. 진짜처럼 보이는 그 세계 자체가 '가짜'라고 에코가 아무리 외쳐도 그는 듣지 못한다. 그리고 그 놀이동산에서 '놀이'보다는 '일'을 하면서 대하드라마를 만들어 간다. 올림포스의 신들이 인간을 지칭하여 '죽어야 하는 존재'라고 말하듯이, 나르키소스는 그 곳에서 살고 죽고 또 살고 죽는다. 나르키소스는 익사한 바보가 아니라 잠들어버린 '우리'에 대한 은유다. 

 

나르키소스의 아름다운 이미지들 중 최근 작품: 방탄소년단의 'Singularity' 뮤직비디오. 
온세상이 나의 반영이라면, 삶이란 나자신과 추는 춤이고 내가 만나는 모든 이들이 나의 분신일 수 있다. 그러면 진짜 '나'는 어디에 있을까. 온세상에 투영되어 있는 동시에 세상 밖에 있겠지. 하나를 둘로 분리시킨 '얼어붙은 호수'의 두꺼운 얼음이 깨지고 녹아 흐르면서 언젠가는 봄이 온다는 가사. 아, 그런 날이 오면 얼마나 좋을까.

 

 

 

"밖을 보는 이는 꿈을 꾸지만, 안을 보는 이는 깨어난다"   - Carl Jung

 

 

"그대가 타인에게서 보는 것은, 그대 안에 존재하는 것. 
인생이 메아리임을 기억하라. 언제나 그대에게로 돌아온다."   - Zig Zigler

What you see in others, exists in you. remember, life is echo. it always gets back to you.


posted by moon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