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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 human doing but human being - P'ta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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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8. 7. 21:32 영화

 

 

 

처음 봤을 때나 지금이나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장면들이 있지만, 이 영화는 아름답다. 인상적인 '스승과 제자의 대화', 한 편의 시와 같은 수미상관, 복도와 욕조와 아이스링크 등의 빛나는 흰색과 선혈같은 빨간색의 대비, 에스프레소와 각설탕의 대비, 꽃다운 여성성과 무자비한 남성성의 대비, 영상 그대로 미술관에 걸어야 될 것 같은 액션씬들, 창조자와 창조물이 함께 투영된 유리창, 의미심장한 대사들, 소문자로 된 영문타이틀까지... 

 

"무릇 움직이는 것은 나뭇가지도 아니고 바람도 아니며 니 마음 뿐이다." 

차분한 나레이션과 함께 바람에 흔들리는 버드나무의 색채가 점차 선명해진다. 밋밋한 밑그림에 화려한 생동감을 부여하는 것은 아마도 그 풍경을 바라보는 인간의식일 것이다. 어릴 적에 친구들이 말하기를, 꿈에서는 음식을 볼 수는 있어도 먹을 수는 없다고 했다. 어느날 꿈에 나는 음식을 먹었고 그건 정말 맛있었다. 꿈은 흑백이라는 말도 들었는데 어느날 나는 꿈 속에서 선명한 컬러를 보았다. 지금은 꿈 속에서 오감五感을 다 경험할 수 있다는 걸 안다. 운이 좋으면 하늘을 나는 초능력도 더해진다.ㅋ 하지만 잠에서 깨어나면(꿈을 창조하던 의식이 빠져나가면) 방금 전까지 생생했던 꿈 속의 풍경은 빛을 잃고 흑백처럼 허물어져 간다. 애초에 존재한 적이 없었던 듯이.

 

01:54:31 
어느 깊은 가을밤, 잠에서 깨어난 제자가 울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스승이 기이하게 여겨 제자에게 물었다.  
"무서운 꿈을 꾸었느냐."  "아닙니다."   
"슬픈 꿈을 꾸었느냐."  "아닙니다. 달콤한 꿈을 꾸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리 슬피 우느냐." 

제자는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며 나즈막히 말했다.

"그 꿈은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루어질 수 없는 꿈'. 영화를 다 보고나면 이 말이 너무 아프게 들린다. 선우가 가만히 앉아서 희수의 연주를 들을 때, 화면에는 '바람에 흔들리는 버드나무'가 스쳐 지나간다. 그 때가 영화 전반에 걸쳐 선우가 웃는 단 한번의 순간이고, 유일하게 '달콤한' 시간이다. 아마도 잠에서 깨어나 슬피 울던 제자는 삶에서 깨어난 선우였을 것이다. 재미있게도 한국어에서나 영어에서나 '꿈'이라는 단어는 '장차 이루고 싶은 소망'과 '잠들었을 때 경험하는 환영'이라는 두 가지 뜻을 가진다. 하나는 진짜이고 하나는 가짜인데 이름이 똑같다니... 어쩌면 '꿈'이라는 단어 자체가 꿈과 현실 둘 다 가짜라는 증거인지도 모른다.ㅋ

 

선우는 조폭세계의 모범생으로서, 강사장에게 최선을 다하여 충성한다.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은 아들같다. 아들의 마음은 순수하되 이 아버지는 그것을 받을 자격이 없다. 구약의 신처럼 변덕스럽고 냉혹하다. 가혹한 명령에 복종하여 제 자식을 제물로 바치려했던 아브라함과는 달리 선우는 희수를 처리하라는 명령을 따르지 않는다. 충직한 부하를 '시험에 들게' 하고 불복종할 시 폐기처분하는 보스가 있고, 그 처분에 굴복할 수 없는 한 인간이 있다. 강렬한 감정과 함께 상황은 폭발하고 거기서부터 영화의 흐름은 롤러코스터가 된다. 영화 [원티드Wanted], [이퀼리브리엄Equilibrium]에서처럼!


'복수를 하려거든 관을 두 개 준비하라'고 했던가. 꼭 듣고 싶었던 '나한테 왜 그랬냐?'에 대한 대답도 못 듣고 선우는 죽는데, 아마 열 번을 물었어도 쓸만한 대답은 못 얻었을 것이다. 가슴에 맺힌 사정은 언제나 '제 사정'일 뿐 현실에서의 가해자들은 '양심'도 '기억력'도 없다. 같은 질문을 백사장에게 했을 때는 비록 동문서답이지만 쓸만한 답이 나온다. 

01:30:57 

"뭐야? 그 표정은? 억울해? 응? 억울한 거야? 니가 이렇게 된 이유를 모르겠지? 자꾸 딴데서 찾는거지? 그럼 날 찾아오면 안되는 거지. 이 사람아. 인생은 고통이야. 몰랐어?"

이건 불교의 가르침이다. '세상만물은 오직 마음이 지어낸다一切唯心造'. 바깥에서 백날 찾아봐야 헛일이다. 선우는 자기세계의 창조자로서 강사장 등을 지어냈고, 그들과 어울려 이야기를 만든 것이다. '넌 나한테 왜 그랬냐'에 대한 불교식 대답은... '넌 왜 나를 지어냈냐' 또는 '너의 드라마를 위해 역할을 했을 뿐'. 

 

첫장면에서 선우는 예쁜! 초콜릿무스를 먹고 있다. 쓴맛과 단맛이 농축된 그 디저트는 'a bittersweet life'의 적절한 견본이다. 그는 또 에스프레소에 각설탕을 넣어 마시는데, 이건 단맛을 잊을만큼 쓴맛이어서 '인생은 고통의 바다苦海'라는 부처님 말씀에 좀 더 부합한다. 긴장과 폭력으로 점철된 그의 인생에서 희수로 인해 느낀 달콤함은 잠깐이었지만, 그는 마지막 순간에도 그것을 부여잡으려고 애쓰다가 죽는다. 만약 죽지 않았다면 희수에게로 달려갔겠고, 죽어 환생한다면 그 곳에서도 희수와의 '달콤한 인생La Dolce Vita'을 찾아 헤매겠지.  

 

영화는 호텔의 정갈한 스카이라운지로부터 확장해 나가다가, 다시 그 곳으로 돌아와 유혈낭자한 총격전으로 끝을 맺는다. 스카이라운지로 통하는 복도는 눈부시게 밝다. 선우는 자신만만하게 걸어나갔던 그 복도를, 비참한 상태로 걸어들어간다. 인생의 시작과 끝을 보여주는 것 같다. 

 

보스에게 총을 겨누고 쏘기 직전, 선우가 바라보는 건 강사장이 아니라 유리창에 비친 자신이다. 유리창은 세 가지 상을 보여준다. 게임의 배경, 현재 그가 집중하고 있는 대상(강사장), 자신을 바라보는 '자신'. 셋을 합쳐 그냥 '거울상'.

 

영화의 마지막은 이렇다. 
말끔한 호텔지배인 선우가 스카이라운지의 유리창 앞에 서 있다. 에스프레소를 마시던 그는 유리창을 거울삼아 자신의 모습을 관찰하다가 섀도우복싱을 시작한다. 점점 격하게 주먹을 날리는데 그런 자신의 모습에 반한 것 같다. 여기서 유리창은 나르키소스가 들여다보던 샘물을 닮았다. 나르키소스처럼 선우도 자신의 거울상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그 때, 카메라는 건물 밖으로 이동하여 안을 비춘다. 경계 밖에서 선우를 지켜보는 관찰자 같다. 그런 다음 카메라는 선우의 눈이 된 듯 안에서 밖을 비춘다. 점차 유리창에서 선우의 상이 사라진다. 이어서 바깥풍경도 사라지고 결국 어둠만 남는다. 애초에 존재한 적이 없었던 듯이.

 

 

"내면을 바라볼 때, 나는 내가 무임을 안다. 그것이 지혜이다. 바깥을 바라볼 때, 나는 내가 모든 것임을 안다. 그것이 사랑이다. 이 둘 사이에서 내 인생은 맴돈다."   - 니사르가다타 마하라지

 

 

 

posted by moon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