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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 human doing but human being - P'ta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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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9. 4. 10:23 책에서 발췌

 

 

 

 

<20쪽>

그들은 제정신이 아닐뿐더러 위험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분명히 세상에 존재한다. 심지어 그들을 부르는 이름도 있다. 양심이 거의 또는 전혀 없는 상태를 일컬어 '반사회적 성격장애'라고 부르는데, 이 교정 불가능한 성격 손상은 오늘날 전체 인구의 대략 4%, 즉 25명당 한 명에 이르는 것으로 여겨진다. 양심이 실종된 이런 상태를 일컫는 또다른 이름으로는, 가장 자주 쓰이는 '소시오패시sociopathy'와 약간 더 친숙한 '사이코패시psychopathy'가 있다.

 


<25쪽> 

나는 정신적 외상trauma 경험자들을 전문적으로 치료한다. 지난 25년간 나는 유아기의 학대를 비롯한 과거의 끔찍한 경험 때문에 매일같이 심리적 고통을 겪어온 수백 명의 성인들을 진료했다. 내가 본 정신적 외상환자들은 만성불안, 무기력한 우울, 해리解離적 정신상태를 포함한 수많은 고통을 겪으며, 그들 가운데 다수는 삶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을 시도한 뒤에 나를 찾아왔다. 지진이나 전쟁 같은 재앙들에서 정신적 외상을 입은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개별 가해자들, 종종 소시오패스들 - 이따금 낯선 사람들이기도 하지만, 부모나 친척, 형제자매들인 경우가 더욱 전형적이다 - 에게 통제당하면서 심리적으로 붕괴된 사람들이다.

 

 

<37쪽> 

나는 이 책이 소시오패스의 파괴적인 영향력을 제한하는 데 어느 정도 기여하기를 바란다. 양심있는 사람들은 각자 '바로 옆에 있는 소시오패스'의 식별방법을 배울 수 있으며, 그 지식을 바탕으로 그들의 순전히 이기적인 목적들을 좌절시킬 수 있다. 또는 그들의 염치없는 술책으로부터 최소한 자기자신과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보호할 수 있다.

 

 

<66쪽> 

"양심은 우리 정신의 창이고, 악은 커튼이다"   - 덕 호튼

 

 

<81쪽> 

그 사례는 '스탬프맨Stamp Man'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 이유는 우체국에서 우표를 훔치는 일에 평생을 바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는 우표를 소유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파는 데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의 유일한 기쁨은 밤중에 우체국에 침입한 뒤 자신이 방금 턴 우체국으로부터 멀지않은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아침에 출근하는 직원들의 야단법석과 뒤이은 경찰의 긴급출동을 지켜보는 것이었다. 그 남자는 마르고 창백하고 쥐처럼 생겼으며 전혀 무시무시하지 않았다. ...... 그는 자기 나름의 게임을 만들었고, 단순히 우표를 훔치는 그 게임은 스킵의 기업적인 게임과 심리학적으로 놀라우리만큼 유사했다.

 

스킵의 경우와 달리 스탬프맨의 계획은 세련되지 못하고 빤히 들여다보였으며, 늘 발각되어 체포되었다. 법정과 감옥을 수없이 드나들었고, 이는 그가 살아가는 방식-도둑질하고, 지켜보고, 감옥에 가고, 출소하고, 다시 훔치고-이었다. 그러나 그는 개의치 않았는데, 자신의 계획이 초래하는 결과에는 신경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게임을 하는 것, 그리고 자신이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만드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매번 적어도 한 시간 남짓동안 확인하는 것 뿐이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사람들을 놀라게 할 수 있다는 것은 자신이 이겼다는 뜻이었고 이 점에서 그는 부유한 스킵에 못지않게 소시오패스가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잘 보여준다. 다른 사람들을 이기는 것-지배하는 것-은 다른 무엇보다도 더욱 매력적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소시오패스들은 대량학살자나 연쇄살인범이 아니다. ...... 그들 대부분은 우리들처럼 딱 실물크기이고, 오랜 기간동안 정체가 밝혀지지 않을 수 있다. 양심없는 사람들 대부분은 스킵이나 스탬프맨, 자녀들을 도구로 이용하는 어머니, 정신적으로 취약한 환자들의 자기통제력을 일부러 축소시키는 심리치료사, 유혹하고 조종하는 연인, 은행계좌를 몽땅 비워가지고 사라지는 동업자, 또는 사람들을 이용하면서 자신은 그런 적이 없다고 우기는 매력적인 친구에 더 가깝다. 소시오패스들이 다른 사람들을 조종하고 제어하기 위해 구상하는 방법들은 아주 다양하며, 그 가운데 소수만이 물리적인 폭력과 관련된다. 폭력은 쉽게 눈에 띄고, 어린이나 동물처럼 완전히 무력한 존재를 대상으로 삼지 않는 한, 그 가해자는 붙잡힐 가능성이 높다.

 

어쨌든 잔혹한 살인은 양심없는 사람들의 가장 그럴법한 결과가 아니다. 그 결과는 오히려 게임이다. 그 대가는 세계지배에서 공짜점심까지 아주 다양하지만, 그것은 늘 동일한 게임-제어하기, 다른 사람들을 소스라치게 만들기, '승리'-이다. 분명 이런 식의 승리는 애착과 양심이 부재할 때 인간사이에 남는 유일한 의미다. 관계의 가치가 거의 사라졌을 때 이따금 사람들을 죽임으로써 우월성을 확인하는 일이 벌어지지만, 보통의 소시오패스들이 우월성을 확인하는 수단은 침대로 끌어들이는 이성(異性)의 숫자를 늘려가거나, 친구들을 꾀어 이용하거나, 단지 사람들이 허둥대는 꼴을 보기위해 우표를 훔치는 것 등이다.

 

소시오패스들은 자신이 내리는 결정이나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지 않기로 유명하다...... 양심없는 사람들은 '나는 잘못한 게 없어'라고 말하는 스킵처럼 놀라운 진술들을 끝도없이 제공한다. 가장 유명한 사례 가운데 하나는 금주법시대의 잔인한 시카고 갱스터인 알 카포네의 말이다. "나는 내일 플로리다의 세인트피터스버그로 간다. 훌륭한 시카고 시민들이 마실 술은 이제 재주껏 손수 구하라고 해라. 나는 그 일에 신물이 난다. 도통 보람은 없고 고통만 가득하다. 나는 내 생에 최고의 시기를 공공의 후원자로 살아왔다." 분명 자신들의 소행인 어떤 파괴적인 결과에 직면할 경우, 그들은 간단히 '난 그런 적 없어'라고 말할 것이며, 그 빤한 거짓말을 스스로는 정말 믿는 듯 보일 것이다. 소시오패시의 이런 특징은 자기인식self-awareness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결국 다른사람들과 참된 관계를 맺지 못하듯이, 자기자신과도 아주 허약한 관계밖에 맺지 못한다. 

 

아무튼 양심없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세상살이 방식이 보통사람의 방식보다 우월하다고 믿는 편이다. 그들은 종종 다른 사람들이 너무 순진하며 그들의 도덕성이 우스꽝스럽다거나, 또는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가장 중요한 목표를 위해서조차 다른사람들을 조종하려 들지않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한다.

 

 

<112쪽>

같은 공간에 함께 자리하는 공식적인 권위자에게 적어도 10명 가운데 6명이 끝까지 복종하리라는 점을 보여준 스탠리 밀그램은, 또한 파괴적인 권위자에게 불복종하는 사람들도 심리적 고통을 겪는다고 지적했다. 불복종하는 사람은 종종 사회질서와 불화하게 되고, 자신이 사회적 관습에 줄곧 불성실했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다. 역설적이게도 밀그램의 표현을 빌리자면, '자기행동의 책임'을 짊어져야 하는 사람은 오직 불복종하는 사람뿐이다. ... 양심에 얽매인 사람들은 이 밖에도 또다른 어려움을 맞이하는데,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그 어려움이란 '소시오패스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145쪽

양심이 없는 자들은, '타인에게 친절하며, 남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을 즉각 알아볼 수 있다. 스킵은 누가 자신에게 폭죽을 구해다 줄 친구인지 정확히 알아냈다. 또 줄리엣을 보고는 그녀가 그와 수십년을 살면서도 그의 가식적인 행동들을 전혀 의심하지 않을 거란 점을 즉시 간파했다. 도린은 아이비가 자신의 편이 될 것임을 쉽게 알아챘고, 재키가 배려깊은 사람임을, 즉 정당한 몫 이상의 책임을 떠맡으리라고 기대할 수 있는 사람임을 완벽하게 이해했다.

 

 

<161쪽

부모들, 특히 아버지들은 대개 아들에게 항시 권위에 복종해야 한다고 가르치는데...... 아이들에게 반사적이고 무조건적인 복종을 훈련시키는 것은 이미 초주검이 된 말에게 매질을 가하는 짓이다. 겉으로 보이는 권위에 복종하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서 전혀 훈련없이도 일어나는 반사반응인데, 이를 더욱 민감하게 만든다는 것은 우리아이들을 미래의 어떤 공격적이거나 소시오패스적인 '권위' 앞에 완전히 무방비 상태로 내던지는 것이다...... 과거에는 생존이 절실했던 까닭에, 아이들은 힘들여 세워놓은 계획을 망치지도, 상황을 너무 많이 의심하지도, 지시에 불복종하지도 말아야 했다. 삶은 신체적으로 고되고 위태로웠으며, 권위에 도전한 아이들은 아주 쉽게 죽음을 맞을 수도 있었다. 그래서 불과 몇 세기 전까지도, 세상은 도덕적 분노를 극도의 사치로 여기고, 권위에 대한 의문을 곧 생명의 위협으로 느끼는 인간들을 키워냈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세대를 거듭하면서, 우리는 뜻하지 않게 일부 소시오패스들이 세상을 장악하게 했다는 누명을 뒤집어썼다. 그러나 선진세계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경우, 과거와 같은 생존조건은 더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우리는 멈출 수 있다. 우리는 우리의 아이들로 하여금 상황을 의심하도록 만들 수 있다. 그리하여 우리의 아이들이 어른으로 성장하면, 그들은 자신의 감각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은 채, 불한당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할 수 있다. "그건 정말 비열한 짓이야. 그만 둬."

 

 

<166쪽> 

"사막에서 한 나이든 수도사가 여행자에게 조언했다. 신과 악마의 목소리는 거의 구별할 수 없다고"   - 로렌 아이슬리

 

 

<171쪽> 

 우리가 스스로의 세계를 안전하지 않게 느낀다는 점과 관련된 질문을 받고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세계는 살아가기에 위험한 곳이다. 사악한 사람들 때문이 아니라, 그와 관련하여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사람들 때문이다."

 

내가 거의 25년간의 경험-소시오패스에게 삶을 침해당한 내 환자들로부터 들은 소시오패스에 대한 이야기-을 바탕으로 "누구를 믿지 말아야 할지 어떻게 알 수 있나요?"라는 질문에 답변할 때면, 사람들은 대체로 놀랍다는 반응을 보인다. 사람들이 보통 기대하는 것은, 진실을 미묘하게 드러내는 어떤 불길한 행동이나 단편적인 몸짓언어 또는 위협적인 어법이다. 내가 그런 것들은 전혀 믿을만한 근거가 될 수 없다고 단언하면 많은 사람들이 놀라워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가장 좋은 단서는 '동정 연극'이다. 가장 믿을만한 징후, 부도덕한 사람들의 가장 보편적인 행동은 흔히 생각하는 바와 달리 우리의 두려움을 자극하지 않는다. 반대로 우리의 동정심에 호소한다.

 

내가 이 점을 처음으로 알게 된 것은 아직 심리학과 대학원에 다닐 때였는데, 당시 나는 재판에 회부된 한 사이코패스 환자를 면담할 기회가 있었다. 그는 폭력적이지 않았고, 그보다는 정교한 투자사기로 사람들의 돈을 갈취하는 데 관심을 보였다. 나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 또 그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싶은 마음-아직 어린 나이였던 나는 그와 같은 사람이 매우 드물 거라고 생각했다-에 이렇게 물었다. "당신의 삶에서 당신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당신이 다른 어떤 것보다도 더욱 원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나는 그가 '돈 벌기'나 '붙잡혀 들어가지 않기'라고 대답할 줄 알았다. 그런 일에 대부분의 시간을 쏟았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는 잠시의 주저함도 없이 이렇게 답했다. "오, 그거야 어렵지 않죠. 내가 다른 어떤 것보다도 더욱 좋아하는 것은 사람들이 나를 딱하게 여기는 순간이에요. 내가 내 삶에서 정말로 원하는 것은 사람들의 동정이에요."

 

나는 깜짝 놀랐고 적쟎이 불쾌했다. 아울러 어리둥절했다. 왜 동정을, 다른 무엇보다도 동정을 바라는가. 나로서는 도저히 짐작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25년간 듣고 난 지금, 나는 소시오패스가 동정을 좋아하는 그 탁월한 이유를 이해한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처럼 이를테면 선한 사람들은 딱한 사람들이 무슨 짓을 하더라도 그냥 이해하고 넘어갈 테니, 무슨 게임이 되었든 그 게임을 지속하고 싶어하는 소시오패스는 다름아닌 동정을 위해 계속 연극을 꾸며야 하는 것이다. 선한 사람들의 동정은 두려움보다는 더 편리한 백지위임장이다.

 

 

<174쪽

소시오패스들은 사회적인 계약을 전혀 존중하지 않지만, 유리하게 이용할 줄은 안다. 그리고 여러모로 볼 때, 만약 악마가 존재한다면 그는 분명 우리에게서 아주 딱하게 여겨지기를 원할 것이다. 누구를 믿어야 할지 결정할 때는 반드시 기억하라. 시종일관 나쁘거나 지독하게 부적절한 행동을 보이는 동시에 당신의 동정을 받고자 빈번하게 연극을 꾸민다면, 이는 양심없는 사람이라고 이마에 써붙인 것이나 다름없다.

 

 

<220쪽> 

"어쩌면 우리는 꼭두각시, 사회가 조종하는 끈에 매달린 꼭두각시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는 지각을 지닌, 인식을 지닌 꼭두각시다. 그리고 아마도 우리의 인식은 우리를 해방하는 첫걸음이다."   - 스탠리 밀그램

 

 

<221쪽> 

그녀는 얼굴을 붉혔고 눈에는 눈물이 글썽였다. 아주 조금만 귀담아 들어줘도, 아주 조금만 친절히 대해줘도 그처럼 즉각적인 감정의 격발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사실에 나는 늘 깊은 인상을 받는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는 우리가 좀처럼 진심으로 귀담아 듣지 않기 때문이다. 심리학자로 일하면서 나는 누군가가 우리의 말을 들어주거나 우리의 행동을 눈곱만큼이라도 이해해주는 일이 얼마나 드문가를 날마다 깨닫는다.

 

 

<245쪽

우리는 너무나 자주 두려움을 존경으로 착각하고, 누군가를 두려워할수록 그를 더욱 존경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 인간의 존경은 강하면서도 친절하고 도덕적으로 용감한 사람들을 마주할 때만 자동적으로 나타나는 반응일 것이다. 당신을 겁주는 데서 이익을 취하는 사람은 그런 대상이 아니다. ...... 범죄나 폭력, 테러리즘의 가능성을 자주 상기시켜 국민을 위협하고, 그런 식으로 국민의 두려움을 증폭하여 지지를 얻는 정치가는 성공한 사기꾼일 가능성이 더 높다. 인간 역사 내내 그러했다.

 

게임에 동참하지 말라. 음모는 소시오패스의 도구다. 매혹적인 소시오패스와 경쟁하려는 유혹, 그를 이기거나 정신을 분석하거나 그와 상대하려는 유혹을 떨쳐내라. 그러지 못하면 그의 수준으로 전락할 뿐만 아니라, 당신을 보호해 줄 정말로 중요한 것을 놓치게 된다. 

 

당신 자신을 소시오패스로부터 보호하는 최선의 방법은 그를 피하는 것, 어떤 종류의 접촉이나 연락도 거부하는 것이다. 심리학자들은 대개 '회피'를 권유하고 싶어하지 않지만, 이 경우에 나는 예외를 둔다. 소시오패스를 대하는 참으로 효과적인 유일한 방법은 그를 당신의 삶에 조금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소시오패스들은 사회적인 계약에서 완전히 벗어난 삶을 살기 때문에, 그들을 관계나 그 밖의 사회적 합의에 끌어들이는 것은 위험하다. 당신의 삶에서 그들을 배제하기 시작하라. 누군가의 감정을 상하게 할 일은 없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그리고 어쩌면 아닌 척 할지도 모르지만, 소시오패스들에게는 '상처받을 감정'이랄 것이 아예 없다. 당신이 왜 어떤 사람을 피하고 있는가를 당신의 가족과 친구들에게 결코 이해시키지 못할 수도 있다. 소시오패시를 알아보기는 놀랄만큼 어려우며, 설명하기는 훨씬 더 어렵다. 어쨌든 그를 피하라.

 

만약 당신이 종종 딱하게(또는 착하다고) 여기는 누군가가, 당신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해를 입힌다면, 또한 당신의 동정을 얻고자 적극적으로 노력한다면, 당신은 거의 100% 소시오패스를 대하고 있는 것이다. 굳은 표정으로 냉정하게 직시하기를 두려워 말라. 만약 양심없는 사람을 대하고 있다면 눈 딱 감고 손 떼는 법을 알아두라.

 

 

<284쪽

전세계적인 거물급 소시오패스들의 삶은 거의 불행하게 막을 내리며, 이런 현상은 보다 지역적인 소시오패스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결국 소시오패시는 그 규모와 상관없이 무조건 지는 게임으로 보인다...... 무자비한 행동은 삶의 좋은 것들을 정당한 몫 이상으로 가져다주지 않는다. 심지어 어떤 의심스러운 사람이 진짜 소시오패스인지 아닌지를 판가름하는 한 가지 방법은, 그 사람의 삶이 끝날 때까지 인내심 있게 기다렸다가 과연 그가 몰락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라고 까지 말할 수 있다......간디가 경탄과 안도의 목소리로 지적했듯이 "결국 그들은 예외없이 몰락한다. 예외 없이!"

 

 

<286쪽

그러나 양심없는 삶의 장기적인 실패에는 그 밖의 또다른 이유들, 즉 소시오패시의 심리에 원초적으로 자리잡고 있는 이유들도 있다. 

그 첫번째는 확실히 '지루함'이다. 지루함이 무엇인지는 우리 모두가 알지만, 대부분의 정상적인 어른들은 순전한 지루함을 별로 경험하지 못한다. 우리는 압박과 재촉, 근심에 시달리지만 그렇기에 완전히 지루한 경우는 거의 없다. 할 일이 거의 전혀 없는 시간은 대개 따분함이 아니라 잠깐의 휴식으로 느껴진다. 순전한 지루함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어린시절로 감각을 되돌려야 한다. 아이들에게 차 안에 오래 머물러야 하는 장거리 여행이나 집에만 있어야 하는 비오는 오후는 참을 수 없이 지루한 일이다. ... 극도의 지루함은 고통의 한 가지 형태라고 할 수 있다. 다행히 우리 어른들은 끊임없는 자극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반면 소시오패스들은 자신이 거의 '끊임없이 별도의 자극을 갈구한다'고 말한다. 어떤 사람들은 전율이나 위험에 '중독되었다'는 표현을 사용한다.

 

실험실의 연구에 따르면... 소시오패스들은 학습된 두려움조차도 일반인에 비해 훨씬 덜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시오 패스들은 오로지 자신들의 지배게임에만 몰두하고, 이런 게임들은 아주 빠르게 낡고 진부해진다. 그 게임들은 약물과 마찬가지로 더 크고 더 강하게 자꾸 되풀이되어야 하는데, 계속해서 더 큰 자극을 주는 게임을 즐기는 것이 불가능할 수 있다. 그래서 그들에게 지루함의 고통은 거의 끊임없을 수 있다. 지루함을 화학적으로 잠시 희석하려는 성향은 소시오패스들이 대체로 알코올과 약물을 남용하는 부분적인 이유다. 1990년에 발표된 연구는, 소시오패스들의 무려 75%가 알코올에 의존하며 50%가 그밖의 약물을 남용하는 것으로 추산한다.

 

아울러 그들은 지루함 이외의 또다른 이유들로 인해 자신의 처지를 달가워하지 않는다. 소시오패시의 절대적인 자기집착은 머리와 가슴을 살짝 스쳐가는 신체의 미세한 통증과 경련도 모조리 알아채는 감각을 갖게 하며, 빈대에서 리신ricin에 이르기까지 건강과 관련된 모든 정보에 관심을 기울이게 만든다. 관심과 인식이 오로지 자기자신으로만 향하기 때문에 양심을 결여한 사람은 이따금 극도의 신경증적 불안까지도 합리적으로 보이게 만드는 고통스런 심기증心氣症(건강염려증)적 반응에 시달린다. 종이에 베이는 것은 큰일이며, 입가의 발진은 종말의 시작이다.

 

소시오패스들은 이따금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모면하기 위해 심기증을 전략적으로 이용한다. 청구서를 결제하거나 일자리를 찾거나 친구의 이사를 도와야 할 시간이 되면, 그들은 갑자기 가슴통증을 호소하거나 다리를 절뚝거린다. 그리고 이러한 가상의 의학적 우려와 허약함은 종종 특별대우를 얻어낸다. 마치 사람들로 가득한 방에서 마지막 의자를 차지하듯이 말이다.

 

소시오패스는 거의 언제나 단독으로 움직이는데, 이 또한 일시적으로는 효과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그렇지 못하다. 끊임없이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하기 때문에, 양심없는 사람들은 형편없는 팀플레이어가 된다. 소시오패스는 오로지 자기 생각만 한다. 다른 사람이나 집단을 대할 때면, 그는 거짓말과 아첨, 그리고 공포만으로 이익을 챙기려 든다. 성공을 추구하는 데 있어서 이런 방법들은 진정한 관계, 리더십, 협동보다 훨씬 무력하고 시효도 짧다. 그들의 배타적인 이기심은 만약 공동협력이나 꾸준한 집단노력을 통해서라면 달성되었을지도 모를 목적을을 대부분 좌절시킨다. 악명높은 폭군들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소시오패스 고용주들, 동료들, 배우자들도 대개 이런 길을 통해 종국적 실패로 나아간다.

 

소시오패스는 감정이 파산된 사람들이다. 이는 그들이 진정한 감성지능(공감능력)을 영원히 상실한다는 뜻이다. 양심을 결여한 사람은 설령 똑똑하더라도 대개 근시안적이고 놀랍도록 단순하며 ... 결국 쓰러지고 만다.

 

 

<295쪽

양심을 지닌다는 것은 우리의 내면으로만 느낄 수 있는 어떤 심오하고 아름다운 선물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사랑하는 능력은 마치 영혼이 신체와 한데 묶여있듯이 양심과 함께 묶여 다가온다. 양심은 사랑이 구현되어 우리의 생물체계에 스며든 것이다. 그것은 뇌 가운데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부분에 자리하며, 사랑하는 사람들이 우리의 주의나 도움, 심지어 희생을 필요로 할 때면 기꺼이 그것을 허락한다.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은 진정한 양심을 지닐 수도 없다. 양심은 다른사람들에 대한 감정적인 애착을 토대로 삼는 의무감이기 때문이다. 이제 이 심리방정식을 뒤집어 보자. 그러면 양심을 지니지 않은 사람은 결코 참되게 사랑할 수 없다는 뜻이 된다. 사랑에서 의무감을 빼면 남는 것은 얄팍한 소유의지 뿐이며, 이는 더이상 사랑이 아니다.

 

 

<305쪽> 

"벌떼에게 좋지않은 것은 벌에게도 좋지않다."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322쪽~> 

"자신은 배불리 먹으면서 이웃은 굶주리도록 내버려두는 사람은 완전한 무슬림이 아니다"   - 무하마드

"온세상을 얻고도 제 영혼을 잃는다면 무슨 소용이겠느냐"   - 예수

"인생이라는 미로를 안전하게 걸어나가려면 등불이 되어줄 지혜와, 길잡이가 되어줄 덕성이 필요하다"   - 부처

 

인류의 가장 오래된 상호성의 원리이자 아마도 가장 간명하게 실천할 수 있는 도덕철학인 황금률Golden Rule이 있다. "자기가 원치않는 짓은 남에게도 하지말라"는 공자의 말은 단지 훨씬 더 오래된 중국격언을 기록한 것일 뿐이며, "남들이 너희에게 해주기를 바라는대로 그들에게 해주어라"라는 예수의 말은 "너희가 싫은 짓은 동료에게도 하지말라. 이것이 율법이며 나머지는 모두 주석이다."라는 유서깊은 유대격언을 언급한 것이다. 마하바라타(인도고대 대서사시)는 힌두교도들에게 "이것이 다르마Dharma의 대요다. 자신에게 고통이 될 짓은 남에게도 하지말라"라고 이른다. 나이지리아의 요루바족은 이렇게 말한다. "뾰족한 막대기로 어린새를 찌르려는 자는 먼저 자신에게 그리해보고 얼마나 아픈지를 느껴봐야 한다". 또한 라코타족의 종교지도자인 블랙 엘크는 "모든 것이 우리의 동족이다. 우리가 다른 무언가에 하는 짓은 모두 우리자신에게 하는 짓이다. 모두가 진정 하나다"라고 가르쳤다.

 

 

<327쪽>

[파괴적인 감정들-달라이라마와의 과학적 대화]에서 대니얼 골먼은 이렇게 말한다. "다른사람들의 안녕을 걱정하는 바로 그 행동이 자기자신에게 더욱 큰 안녕을 가져다주는 듯 보인다" 

 

나라면, 소시오패스 또는 '상호연결성에 기초한 의무감이 결여된 사람들'이라고 말했을 사람들에 관한 달라이라마의 묘사는 특히 내 마음을 잡아끈다. 그는 "잘 발달된 삶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이라고 지칭한다.

 

 

<330쪽>

산악지대를 여행하던 어느 여자마법사가 개울에서 보석을 발견했다. 이튿날 그녀는 굶주린 여행자를 만났고, 가방을 열어 음식을 나눠주었다. 굶주린 여행자는 보석을 보더니 자기에게 달라고 했다. 그녀는 망설이지 않고 그렇게 했다. 여행자는 자신의 행운을 기뻐하며 떠났다. 그 돌이면 평생 걱정없이 살 수 있을 터였다. 그러나 그는 며칠 뒤에 돌아와 그 돌을 여자에게 돌려주었다. 그가 말했다. "그 돌이 얼마나 값진지 알지만, 당신이 내게 훨씬 더 귀중한 무언가를 줄 수 있다는 생각으로 돌려드려요. 그 돌을 선뜻 내어줄 수 있도록 만든 당신 안의 그 무언가를 제게 주세요."   - 인도 고대우화 [현명한 여자의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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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책을 세 번쯤 읽었다. 글에는 글쓴이의 지문이 남는다고 했던가. 내용의 훌륭함과는 별도로, 마사 스타우트의 성품이 투영된 문체(번역자의 노고가 더해진)는 정답고 따뜻해서 읽는 이를 치유하는 효과가 있는 것 같다. 그렇지 않았다면 몇 년마다 다시 읽을 수 없었을 것이다. 고마운 책이다. 

 

여기에 정리하며 다시 훑어보는동안 자동으로^^ 지난 날들이 복기되었다. 나는 살아오는 동안 두 명의 소시오패스와 각각 10년 정도씩 엮였는데, 첫번째는 어린시절의 일이었으므로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경험으로부터 제대로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유급!되어 두번째 학습의 기회를 얻은 게 아닐까 한다. 어쨌든 다 지나간 풍파이고 뭔가 배웠으면 되었다. 

 

혼자 이런 질문을 해 본다. '내가 이 책을 미리 읽었더라면 두번째 경험으로부터 나를 지킬 수 있었을까?'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소시오패스 감별법도, 대처법도 소용이 없는 것이, '이미 알고있는' 이에게나 적용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감별과 대처가 필요한 상황이라는 인식이 없는 시점에서는 모든 지혜와 비상벨이 다 무용지물인 것이다. 그런 어리숙한 내게 이 책이 찾아왔었다해도 내용들이 절실하게 와닿았을 리 없으니 정독하지 않았을 것이다. 삶의 많은 사건들이 그렇듯이 숲 전체를 조감할 수 있는 때는 이미 숲에서 빠져나온 뒤인 것이다. 에피메테우스처럼 평지풍파가 휩쓸고 간 벌판에 멈춰서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를 궁리하는 능력이라도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세상이 완벽하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배울 수 없을 것'이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당신의 경험 속에서 악역을 맡았던 이들 덕분에 배움을 얻었음을 기억하라'는 글을 읽은 적도 있다. 당시에는 뭔 되도않는 개소리인가 싶었지만 차츰 이해해 가고 있다. 

 

 

posted by moon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