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실사나 다름없는 정교한 그림체, 단 12분으로 함축 아니 압축된 이야기.
왼쪽은 영화의 전반부, 오른쪽은 후반부의 화면캡쳐본이다. 소름끼치게 똑같다.
영화가 시작되면 한 남자가 거친 몸싸움 끝에 상대를 죽이고 숨을 헉헉 몰아쉬며 몸을 일으킨다.
문득 길 건너편 건물 창가에 서 있는 여자와 눈이 마주친다.
순간, 여자는 자신이 살인사건의 목격자가 되었음을 깨닫고 도망치기 시작한다. 남자는 허겁지겁 쫓아간다.
두 사람이 걸친 가운이 그들의 긴박한 상황을 설명해 준다. 남자는 계속해서 기다리라고, 할 말이 있다고, 진정하라고 외치지만 공포에 질린 여자에게는 소용이 없다. 그 와중에 여자는 마치 데칼코마니처럼, 여태 도망쳐 온 그 길을 거슬러 정확히 '살인현장' 즉, 그 남자의 집?으로 되돌아 간다. 떠날 때는 택시로 육교 밑을 지나갔지만, 돌아갈 때는 맨발로 육교 위를 달린다. 전반의 후반의 육교 풍경은 시간 경과에 따른 조도照度만 다르다.
전혀 의도하지 않았지만, 여자는 처음의 그 사건현장에서 몸싸움을 하다가 남자를 죽이게 된다. 숨을 헉헉 몰아쉬며 몸을 일으키고.. 건너 편 건물 창가에 서 있는 어떤 남자와 눈이 마주친다. 그리고 그 얼굴이 방금 자기가 죽인 남자와 똑같다는 걸 깨닫고 기겁한다. 여자는 그 창가의 남자가 아까의 자신과 똑같은 처지라는 걸 이해한 걸까. 이해했다면 쫓아가서 그를 안심시키고 '죽음'이라는 파국을 면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러나 남자는 공포에 질려 필사적으로 달아날테고...
영화 속 거리에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 일일이 그려넣기 번거로워서 생략한 건 아닐 것이다. 그 거리에 인파가 북적인다고 해도 어차피 마찬가지인 것이, 영화 [인셉션]에서처럼 그저 꿈꾸는 자의 내면이 지어내는 '투사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영화의 도입부에서 여자는 거울에 비친 자신을 본다. 후반부에서는 다가오는 남자를 보며 뒷걸음치는 장면에서 거울이 잠깐 보인다. 나르키소스처럼 자기자신과 놀고 있다.
두사람은 각자 다른 사람처럼 보이지만 '궤도에 갇혀 순환구간을 달리는 열차'의 앞칸과 뒷칸처럼, 또는 제 꼬리를 물고 있는 뱀 우로보로스처럼 한몸이다. 표면상으로는 타인이면서 서로에게 원인이자 결과로 작용한다. 영화에서는 번갈아 한 번씩 역할을 바꿨지만, 영화의 엔딩은 이 '역할 바꾸기 게임'이 반복되리라는 걸 암시한다. 두 번의 살인 사이의 소요시간은 늘려 잡아도 1~2시간인데, 이것을 하루, 또는 한 생애, 또는 윤회전생으로 바꾸면 인간이 빠져있는 곤경에 대한 은유가 된다.
이 영화는 [메멘토]를 닮았다. 기억이 10여분마다 리셋되는 탓에 '범인찾기 게임'은 진전이 없다(니가 범인이쟎아). 이해를 찾아 돌아다니면서 오해만 줍는다. 기억도 나지않는 '잃어버린 무엇'을 그리워하면서 비슷한 행동,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궤도에 갇혔다.
[매트릭스] 3편의 이 장면도 똑 닮았다. 네오는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지만 곧장 출발지로 돌아오게 된다. 정류장에 갇혔다. 여의봉을 들고 천지를 붕붕 날아다녀도 부처님 손바닥을 못 벗어나던 원숭이인간 손오공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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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몇 편 밖에 못봤지만, "팀 밀러와 데이비드 핀처가 제작한 성인용 연작 애니메이션"이라고 소개된 이 시리즈는 그냥 비범하다. 애니메이션과 청불이 만나 '표현의 자유'에 날개를 단 것 같다. 그리고 짧아서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