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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8. 6. 18:01 영화

 

 

 

주제를 요약하는 두 장면; 'MEMORY IS TREACHERY', '기억은 기록이 아니라 해석이다'.

'기억'은 개인적 경험에 관한 것이고, 경험 중에서도 인상적인 것만 남긴다. 그나마도 꾸준히 채색+유실되고 순서는 뒤섞인다. '책'에는 목차나 페이지번호가 있지만 '기억'에는 그런 게 없다! 사진, 영상, 일기 또는 문신같은 메멘토(기억나게하는 물건)가 있지만 사실을 증언하기엔 너무나 부실하다. 해석은 수학보다는 문학에 가깝다. 그런데도 우리는 자기자신이 누구인지 또는 무엇인지 '안다'고 생각한다. 매일 착실하게 '자아개념'을 업데이트하며 제정신으로 살아간다고 믿는다. 택도없는 믿음이다.ㅋ 우리는 '자신'을 모른다.

 

주인공 레너드는 자신이 '기억손실증'이라고 말하지만, 스스로 그렇게 믿을 뿐이다. 온갖 것을 다 잊어도 자신의 병증(사고로 인한 뇌손상으로 10분쯤 지나면 다 잊는다)만은 결코 잊지 않는다.ㅋ 사고 후에 타도시로 흘러왔는데도 귀신같이 길눈이 밝다. 이름만으로 식당과 술집을 찾고, 한번 가 본 나탈리의 집은 주소 없이도 쉽게 찾아간다. 'MonteRest'라고 잘못 적힌 메모지를 들고 'Mountcrest'를 잘도 찾아낸다. 테드의 차번호를 메모하여 문신하는 과정에서 알파벳 I가 숫자 1로 바뀌지만 그는 언제나 I로 읽는다. 메모할 때 외운 것 같다.ㅋ 사고 이전의 기억은 온전하다면서 사고 이후에 그 과거기억(새미 관련)을 지속적으로 각색한다. 즉 뇌를 다친 사람이 뇌가 온전하던 시절의 기억을 변조 아니, 창조한다! 그냥 자기 암시에 의한 선택적 망각증같다.

그는 명석한 증거제일주의자이지만, 실제로 그를 인도하는 것은 본능, 느낌, 직관이다.

00:33:29   "뭔가 잘못된 것 같아. 누군가 날 이용해서 살인을 하려는 것 같아.

 

테디와 나탈리는 둘 다 그를 속이고 이용하지만, 두 사람을 대하는 그의 태도는 확연히 다르다. 매번 못알아보면서도 일관되게 차별적이다. 테디는 의심하고 경계하지만, 나탈리 앞에서는 한결 솔직하고 우호적이다. 심지어 살인할 장소까지 정해주는 나탈리의 말을 그대로 따른다. 지미를 죽인 후, 시신을 지하로 옮기던 그는 어떤 작은 음성을 듣는다. 시신이 말을 할 리가 없고 설사 잠깐 살아났다고 해도, 시신의 눈은 레너드의 손등 위에 있었으니 문신을 읽었을 뿐이라는 합리적 추론을 할 수도 있건만, 대뜸 범인이 아닌 사람을 죽였다고 확신한다.

 

그는 대략 5명(범인1, 범인2, 자신의 아내, 지미 그랜트, 테디)을 죽인 연쇄살인범이지만, 자신을 가해자를 쫓는 '피해자'라고 생각한다. 마치 '제 꼬리를 물고있는 뱀'처럼 피해자도 자신이고 가해자도 자신인 상황을 인식하지 못한다. 불교와 여타 고대종교는 '고통'의 원인을 자신이라고 가르친다. '내가 지금 겪는 고통은 이전에 내가 지어낸 원인Karma에서 비롯된 것이다. 피해자는 없다.'

 

영화는 시간을 거슬러가면서 '인과因果관계'를 '과-인'의 순서로 보여준다. 그 사이사이에 흑백장면(더 이전 사건들)까지 끼워넣어, 마치 관객의 머릿속에 수백피스의 직소퍼즐조각을 쏟아넣는 듯 하다. 나는 같은 영화를 세 번째 보는 처지라서, '기껏 인간의 기억은 믿을 게 못된다는 강의를 하려고 이런 영화를 만든걸까. 그러기에는 레너드의 입장을 헤아리려는 관객의 수고가 너무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꼼꼼하게 짚으며 따라가면서도 계속 길을 잃는 기분이 들었다. 감독이 군데군데 떨어뜨려놓은 빵조각들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놀랍게도 감독은 삶을 꿈에 비유하고 있다. 유명한 루시드드리머인 크리스토퍼 놀란은 관객에게 RCreality check를 권유한다. 흔한 RC중 하나가, 꿈 속에서 시계나 달력, 간판, 책제목 같은 걸 읽고 잠시후 다시한번 확인함으로써 자신이 꿈을 꾸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는 방법인데, 현실과 달리 꿈에서는 글자가 계속 바뀌기 때문이다. 

정말이지 영화 속 여기저기에 많이도 뿌려놓았다. 글자들, 사진, 풍경...들이 변한다. 폴라로이드 사진이니 원본은 한 장 뿐인데, 이게 볼 때마다 미묘하게 달라진다. 심지어 필름의 일련번호도 바뀐다. 네모 창문이 아치로 변하고, 차 번호판이 변하고, 타투집 유리창에 비친 풍경도 변한다. 감독은 '당신(관객)은 사실 잠들어 있어요. 깨어나요'라고 속삭이는 것 같다.^^ 그래서 인터뷰를 통해 '한 장면도 버릴 게 없는, 볼 때마다 새로운 걸 발견하는 영화'라고 힌트를 준 모양이다. 

 

지미 그랜트를 만나기 직전에 레너드(흑백)와 아내(컬러)가 비슷한 모션으로 교차되는 장면이 있다. 왜 현재와 과거를, 남편과 아내를, 생존자와 사망자를 한사람처럼 이어놓았을까. 영화자체가 '레너드의 꿈'이기에 둘은 동일인이라는 암시일까. 그렇다면 그가 잃어버린 건 아내가 아니라 자신이다. 시간이라는 흙에 덮혀 결국엔 희미한 '기억'이 되어버린다는 점에서 과거와 현재는 같은 것이다. 문제는 그것을 통과하면서 희미해진 '나'일 것이다. 나는 무엇일까.

 

헛수고를 반복하는 레너드처럼, 관객도 영화의 스토리를 따라가는데 정신이 팔려서 RC를 해볼 겨를이 없다. 레너드도, 관객도 공연히 분주하다. 감독은 [인셉션]보다 10년 앞서 '삶과 꿈의 유사성'이라는 '앎'을 영화 속에 녹여놓았다. 우리는 잠든 채, 환상illusion의 미로를 반복적으로 떠돌면서 '이 모든 것의 처음Inception'을 까먹었다는 '영지靈智'를. 

 

영화는 이런 독백으로 끝난다. '지금, 나는 어디에 있었지? Now, where was 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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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VD에는 20여분의 감독인터뷰가 실려있다. 그 중 재미있는 부분;

 

"영화 스토리 진행상 지나가는 시간이 몇 일인지, 몇 주인지도 분간하기 힘들죠. 실제 삶의 조건을 살펴보면 그런 것들이 굉장히 적절한 구성이라고 느껴집니다"

 

"(주인공은) 사실 기억상실증의 한 형태라고 할 수도 있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기억상실증은 아닌 겁니다. 그래서 제 영화에서는 주인공의 성격을 그릴 때 훨씬 더 제약이 많아요. 제게는 그게 굉장히 흥미로운 간격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건 현재의 당신과, 당신의 과거 사이의 간격이기 때문이에요. 스스로를 정의할 때, 이용할 수 있는 자신에 대한 모든 객관적인 정보들, 당신의 이름과 사는 곳 등등과 당신의 어린시절... 그런 것들 모두에 대해 접근 가능하긴 하지만 그것들을 현재와 연결하는 것은 어려운 문제가 되는 겁니다. 스스로를 바라보며, 내가 어떻게 여기에 이르게 되었는지, 15년 전의 자신과 비교해서 '지금의 나는 누구인가' 하는 문제 말이죠."

 

"저는 두번, 세번 반복해서 보고 싶은 그런 영화를 좋아해요. 그 때마다 경험하는 게 항상 다릅니다. 다시보면 다른 경험을 줄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어요. 그건 굉장히 매력적이죠. 그게 이 영화를 만들 때 가졌던 생각입니다. 특히 이 영화가 스토리를 계속 발전시키는 구조라서 영화 전반에 걸쳐 계속해서 재해석을 해야하고 영화가 끝나면 다시 한번 자세히 생각을 해보게 하는 거죠. 동시에 다시 볼 때는 다른 경험을 줄 수 있는 영화로요."

 

 

마찬가지로 루시드드리머인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웨이킹 라이프Waking Life]에는 이런 대화가 나온다.

"베네딕트 앤더슨이 정체성을 뭐라고 했는 줄 알아? 어린 시절의 사진을 봤을 때 그 2차원적 이미지를 보고 '저게 나야'라고 하지. 현재 자신의 이미지와 그 아기를 연관지어서 이야기를 만들지. '이건 한살 때의 나이고, 나중엔 머릴 기르고, 리버데일로 이사를 가서...' 이렇게 현재의 자신과 사진 속 아기를 동일시함으로써 정체성을 찾는 거야."

 

"재미있는 건 우리 세포가 7년마다 재생된대. 즉 7년마다 육체가 달라지는데, 처음 모습 그대로인 줄 알고 살지." 

 

 

중국의 노자를 닮은듯한 그리스의 헤라클레이토스는 이런 말을 남겼다.

“인간은 세계를 실체로 보는 경향이 있지만 그것은 특정 시공간 안에서 일어나는 순간적인 사건들이다. 모든 것은 흐름 속에 있다. 강은 하나의 사물이 아니라 끊임없는 흐름이다. 같은 강물에 두 번 들어갈 수는 없다.” 

 

 

"진짜 가치있는 것은 '직관' 뿐이다"   - 아인슈타인

 

 

 

posted by moon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