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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 human doing but human being - P'ta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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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3. 2. 01:20 낙서장

 

 

 

드디어 완경에 도달했다. 35년 이상 나를 구속했던 불편, 걱정, 통증 그리고 악몽과 임신의 두려움에서 놓여났다. 생리月經를 '마법에 걸렸다'고 표현하는 건 좀 의아하지만 그게 저주의 마법이라면 맞는 말이다. 나는 인생에서 가장 건강하고 생기 넘쳐야 할 시절을 시들시들한 몸으로 살았다. 저혈압과 탈모, 잇몸병, 피부질환, 변비, 입병...과 30여년을 함께 했다.

 

내 헤모글로빈 수치는 8g/dL 정도를 유지했는데 더 안좋을 때는 시력과 청력이 희미해지면서 의식을 잃곤 했다. 그럴 때면 '어딘가에 한동안' 다녀온 것 같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 느낌이 좋아서 가끔 안전한 곳에서 일부러 어지러움을 유도하기도 했었다.  

 

혈압이 85/45까지 떨어져도 정신줄을 잡을 수 있다는 것, 70일 동안 피를 흘려도 살 수 있다는 걸 배웠다. [빈혈의 이해]라는 책에서 '매달 월경기간에 흘리는 혈액은 평균 40ml 정도'라는 대목을 읽었을 때, 당장 생리대를 가져다가 물 40ml를 부어보고 웃었다. 장난하나. 다큐멘터리 [피의 연대기]에서 '한달에 약 5일, 큰 숟가락으로 3개 분량(25ml), 1년으로 치면 300ml...'라는 말을 들을 때는 울었다. 화면 위로 하염없이 흘러내려가던 피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철결핍성 빈혈은 단지 과다출혈에 따른 '기력 저하'이고 이제 그것과 작별이다.


언젠가 생리컵을 떨어뜨려 타일 위로 쏟아진 피를 본 적이 있다. 그 강렬한 색감과 피로 그려진 그림의 크기에 놀랐고 '덱스터' 생각이 났다. 여자들은 죄지은 것도 없이 쉬쉬하며 피묻은 손을 닦고 피묻은 옷을 빨면서 덱스터처럼 산다. 흔히 '피'는 섬뜩한 폭력을 연상시키기 때문에 숨기고 감춰야 하는 게 되었겠지만, 본래 피는 선하고 귀하고 소중한 것이다.

 

나는 시골에서 "예전에 며느리들은 애 낳은 다음날에도 밭에 나와 일을 했다"는 말을 들으며 자랐다. 나는 그 이야기의 의미를 아이를 낳고서야 알았다. 그 여자는 밑이 빠질듯한 통증과 현기증을 견디며 발 아래 흙을 피로 적셨을 것이다. 얼마나 아팠을까. '여성의 피'에 대한 우리사회의 터부와 무지가 개선되기를 소원한다. 


인간여성이 임신능력을 잃은 상태에서도 길게는 30년 이상까지 생존한다는 사실이 진화생물학계의 미스터리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인간남성을 포함하여 거의 모든 동물에게 생식능력의 상실은 죽음으로 이어지지만 인간여성은 예외다. 그러니 남성적 사회가 '폐경한 여성은 더이상 여자가 아니다'라고 말할 때 그건 뉘앙스에 상관없이 옳은 말이다. 지구에 거주하는 대부분의 동물은 가본 적도 없는 낯설은 존재상태, 새로운 경지에 들어섰으니 말이다. 어쩌면 인간여성은 생식력 없이도 잘 살 수 있는지를 실험중인 특별한 종이거나, 번식 말고도 뭔가 세상에 보탤 게 있는 희귀한 생명체인지도 모른다.^^ 

 

아들이 초등학생일 때 만화성경을 읽다가 '수염이 북실북실한 할아버지'로 그려진 야훼를 가리키며 이런 말을 했다. "엄마, 하나님이 남자였어요? 이상해요." 그 말은 내 정신을 환기시켜 주었다. 우리가 신을 남성으로 여기게 된 것은 물리적 힘을 우월성으로 보는 편견 즉, 마사 스타우트의 말처럼 '두려움을 존경으로 착각'하는 인간적 취약성 때문일 수 있다. 신은 여자도 남자도 아닐테지만, 굳이 인간성을 투사하고 싶었다면 '잉태하여 낳고 보살피는' 여성성과, '개척하고 건설하는' 남성성이 조화된 이상적인 신을 상상했어도 좋았을 것이다.

 

사람은 나이들면서 호르몬의 변화로 인해 남자는 여성적으로, 여자는 남성적으로 변해간다고 한다. '신의 형상대로' 지어졌다는 우리는 지상에서 번성하면서 남녀라는 차별성으로부터 인간이라는 동질성으로 향하는 존재, 그리고 영겁永劫의 세월을 통과하며 인간성에서 신성으로의 여정을 걸어가는 존재인 걸까. 그런 것 같다.

 

출혈이 사라지니 기운이 살아나는 것 같다. 거짓말처럼 피부트러블이 사라지고, 늘 흐릿했던 입술에 혈색이 도는 것을 보며 '나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고 혼잣말을 해본다. 혈압도 정상치에 근접했고, 입병도 안생긴다. 샤워 후에 주울 머리카락 뭉치가 없다는 게 제일로 좋다. 아, 저주의 마법이 풀렸구나. 하지만 인생을 1년에 빗댄다면 나는 철모르던 1, 2월을 제외하고 봄과 여름을 어리버리하며 보냈다. '어리바리하다'를 사전에서 찾아보니 '정신이 또렷하지 못하거나 기운이 없어 몸을 제대로 놀리지 못하다'라고 나온다. 뭔가 적절하다.ㅋ 나는 하루 중 저녁을 좋아하고, 깊은 밤에 혼자 깨어있기를 좋아하고, 봄보다 가을을, 새해보다 연말을 좋아한다. 이 삶에서도 남은 늦여름과 가을 겨울이 유복했으면 한다. 

 

돌아보면 사실 축복의 마법이기도 했다. 체력이 좋았다면 땡볕에서 뛰어노는 친구들과 떨어져 빈 교실에서 '책이나 읽으며' 어린시절을 보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빈혈 덕분에 세상의 인정을 받기 위해 뛰어다닐 에너지가 부족해서 다행이었다. 안그랬으면 뭔가에 잘 꽂히고 잘 미치는 나의 감정적 특성으로 인해 훨씬 더 높은 풍파에 휩쓸려 왔을 것이다.

 

'새옹지마塞翁之馬' 속 노인의 아들처럼 비교적! 평온하게 지내면서 '읽고 쓰고 감상하고 궁리하는' 차분한 취미를 가지게 된 것에 감사한다. 모든 것이 다 좋지는 않았지만,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지점이 정말로 마음에 든다. 한결 가뿐한 몸으로, 한결 쉬운 방식으로 이제는 좀더 '관찰자'로 살아보고 싶다. 반신半神demigoddess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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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레시아스의 역사]  - 주경철, 2002

 

<5쪽>

 

어느 날 올림포스 산정에 있는 신들의 궁전에서 제우스와 헤라는 흥미 있는 논쟁을 했다. 사랑을 할 때 남자가 더 행복한가, 여자가 더 행복한가? 남성신인 제우스는 사랑을 할 때 여자가 더 행복할 것이라고 주장한 반면, 여성신인 헤라는 남자가 더 행복할 것이라고 했다.

 

두 신이 아무리 오래 논쟁을 해도 끝내 결판이 나지 않자 제우스는 이런 제안을 했다. 지상에 남자로도 살아보고 여자로도 살아본 테이레시아스라는 인간이 있으니 그를 불러서 직접 이야기를 들어보자.

 

테이레시아스는 원래 평범한 남자였다. 어느 날 그는 산길을 가다가 굵은 뱀 두 마리가 서로 엉켜 있는 것을 보았는데, 무슨 마음에서였는지 들고 있는 막대기로 뱀들을 억지로 떼어놓았다. 그러자 뱀들은 신통력을 발휘해서 테이레시아스를 여자로 만들어 버렸다. 몸과 마음 모두 완벽한 여자가 된 테이레시아스는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으며 7년을 살았다.

어느 날 다시 산길을 가던 테이레시아스는 또 뱀 두 마리가 엉켜 있는 것을 보았다. 이번에도 그(녀)는 막대기로 그 뱀들을 억지로 떼어놓았고 그러자 이번에는 뱀들이 그를 다시 남자로 만들어 버렸다. 테이레시아스는 인간 중에 유일하게 남자의 삶과 여자의 삶을 완벽하게 살아본 사람이 된 것이다.

신들 앞에 불려온 테이레시아스에게 제우스가 물었다. "그대는 남자로도 살아보고 여자로도 살아보았으니 알 것이다. 남자로서 사랑하는 것과 여자로서 사랑하는 것 가운데 어느 편이 더 행복했는가?" 이에 테이레시아스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여자로서 사랑하는 것이 남자로서 사랑하는 것보다 아홉 배 더 행복했나이다."

 

 

 

"대자연은 형상(몸)에 나를 깃들게 하고, 삶으로 나를 수고롭게 하며,

늙음으로 나를 편안하게 하고, 죽음으로 나를 쉬게 한다."   - 장자

夫大塊 載我以形 勞我以生 佚我以老 息我以死

 

 

"우리는 젊을 때 배우고 나이들어 이해한다."   - 마리 폰 에브너 에셴바흐

 

 

 

posted by moon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