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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 human doing but human being - P'ta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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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3. 23. 00:13 영화

 

 

 

나는 맷 데이먼과 마크 월버그, 가수 임재범과 휘성의 얼굴을 좋아한다. 아, 리버 피닉스도 있다. 그들은 뭔가 공통된 이마와 눈썹을 가졌다. 어딘가 산적같이 생긴 그런 얼굴에 마구 끌리는 성향 때문에 이 영화를 10여년만에 다시 보면서 행복했다.^^ 


도서관에서 빌려온 DVD를 통해 새롭게 알게된 사실 하나. 이 영화를 완성했을 무렵 9.11사건이 터졌고, 그래서 특정 폭파장면들을 삭제하고 오프닝과 엔딩을 다시 촬영했다고 한다.

 

한국관객들이 본 엔딩. 화사한 화면과 해맑은 웃음이 보기좋긴 하지만, 무겁게 흘러온 영화의 분위기를 생각하면 좀 어색하다. 다른 엔딩이 훨씬 자연스럽다. 적적한 해변, 언덕 위에서 마리를 알아본 본의 표정, 먼길을 돌아 찾아온 이에게 걸맞는 허름한 차림과 짐가방, 본을 알아본 마리의 믿을 수 없다는 표정... 적적한 해변 풍경과 두사람의 감정이 사실적이고 영화 전체의 흐름에도 부합한다.

 

본은 자신을 하나의 '도구'로 사용해왔던 정보기관의 제안을 받고.. 돌아서서, 빠른 걸음으로 마리의 집을 향해 걷는다. 그를 발견하고 천천히 걸어나오는 마리와 가까워진다. 본은 고개를 약간 숙인 채 마주보지 않고 마리를 와락 껴안는다. 그러고서 얼굴에 키스하고는 마리의 어깨에 얼굴을 묻는다. 그렇게 잠시 있는다. 대화는 나중에 한다. 그 모습을 열번쯤 돌려봤다.^^
 
오디세우스가 20년만에 돌아온 집에서 어떤 대접을 받을지 알 수 없었던 것처럼, 본도 자신이 과연 환대받을지 의심스러웠을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남자'가 세상의 끝같은 곳까지 어렵게 찾아가서 '그 여자'를 만나고, 받아들여졌을 때 '세상에서 가장 약한 남자'처럼 보였다. 긴 여행(또는 모험)의 끝에 '집home'으로 돌아가서 자신이 원하는 여자(또한 자신을 원하는 여자)에게 환대받고 쉬는 것은 모든 남자들이 원하는 해피엔딩일 것이다.

 


<1편 '본 아이덴티티'에서 좋았던 대사>
01:23:14   "난 더이상 내 존재가 궁금하지 않아. 상관없어. 알고싶지 않아.
                    지금까지의 일은 다 잊겠어. 내가 누구든 무슨 짓을 했든 신경 안쓸거야"  
01:44:43   "이런 일은 이제 그만두고 싶어" 
01:45:11   "난 이제 내 편일 뿐이야"

<2편 '본 슈프리머시(The bourne Supremacy, 2004)에서 좋았던 대사>
01:15:59    "넌 과거에서 절대 벗어나지 못해. 삶은 그런거야. 
                     인정해. 제이슨. 넌 살인자야. 그 굴레를 벗어날 수 없어." 

애보트가 한 이 말은, "너의 아이덴티티를 아직도 못 찾았냐. 넌 그냥 살인자야. 정신 차려"로 들린다. 그러나 본은 자신의 목적(자신의 정체를 아는 것)을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목숨을 걸고 러시아로 간다.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자신이 죽인 정치인 부부의 딸을 찾아가 사과한다. 그 장면, 부모의 죽음에 얽힌 진실을 몰랐던 소녀에게 사과하는 장면은 나에게는 명장면이다. 어떤 이해관계에 따른 것도 아니고, 상대가 강력하기 때문도 아니고, 죄가 백일하에 드러나서도 아니고, 동정을 구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피해자나 사회가 강요해서도 아닌 그저 '사죄' 자체로서의 사과.

01:37:37    나라면 엄마가 아버지를 죽이고 자살한 게 아니라는 걸 알고싶을 거야.
01:37:50    네?
01:37:54    너의 부모님은 그렇게 돌아가신 게 아냐. ...... 내가 죽였다.......... 내가 죽였어. 

                   그게 내 임무였어. 그게 내 첫 임무였지 ..... (중략)..... 사실을 알게되면 모든 게 달라져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었는데......... 진실을 알아야지.
01:39:27    미안하다(I'm sorry).


사랑하는 사람(마리)을 잃고 절절하게 가슴아픔을 겪고, 진실을 찾아 험한 시간들을 통과한 남자는, 정당방위로서의 폭력조차 한사코 말렸던 마리의 뜻에 따라 복수를 하지 않는다. 그 대신 '아무도 시키지 않은' 사과를 하고, 영화는 끝난다. 기본 품성은 지녔으되 지난 삶의 기억은 잃은 채로 깨어나 '자신을 찾고자' 고군분투하면서 느끼고 깨닫고 잘못을 바로잡는다는 설정은, 불교의 환생과 카르마를 떠올리게 한다. 

제이슨 본은, 제임스 본드의 패러디 같다. 정부기관에 소속되어 국가를 위해 아니 세계평화를 위해 활약?하는 제임스 본드에게 정체성의 혼란은 없다. 살인면허 소유자로서 자신이 하는 일에 확신과 긍지가 있다. 언제나 맡겨진 임무를 완수한다. 잘생긴 데다가 밝고 유쾌하다. 능구렁이같은 매너로 예쁜 여자들을 잘도 낚고, 책임감 없는 관계를 즐긴다. '강력한 조직의 에이스'라는 명함이 그를 근사하게 한다. 아마도 남자들이 원하는 이상형일 것이다. 반면 제이슨 본은 정체성에 혼란을 겪는 정도가 아니라 과거의 기억이 아예 없다. 세계평화는 커녕 자신의 평화를 찾기도 벅차다. 맡은 임무는 잘못되었거나 실패했다. 자신이 해 온 일들을 의심하면서 추적 복기한다. 투박한 외모를 가졌고 어둡고 심각하다. 여자 앞에 목석같으면서도 여자와 지속적인 애착관계를 맺는다. '강력한 조직의 사냥감'이 되면서까지 자기 본연의 힘을 찾아가는 강력한 개인, 정말 대조적인 주인공이다.

나도 '나는 누구인가'를 찾고 있다. 그것을 찾으려고 오랫동안 사람들 사이를 헤매어 다녔지만, 이제는 인적 드문 길을 걸어가고 있다. 나이가 들어가는 동안 '나'는 달라져가고 그 달라져가는 내가 계속해서 나를 찾는다. '넌 이러이러하게 살아야 된다'는 식의 틀에 맞춰 사는 것이 마땅치 않기는 본이나 나나 누구나 같을 것이다. 내 뜻대로(Freewill을 '자유의지'라고 번역하는 건 좀 거시기함ㅋ) 사는 것이 가능하다면 그리스의 어촌마을에서 살든 인디아의 소도시에 살든 '장소' 는 그다지 문제되지 않을 것이다.

이 영화를 다시 보고 너무나 새로워서, 2편도 다시 봤다. 3, 4편도 볼 계획인데... 맷 데이먼이 다시 출연하는 5편이 내년에 개봉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기쁘다.

 

 

원작소설이 있다기에 찾아보니 로버트 러들럼(Robert Ludlum)의 본 시리즈가 있는데 직접 쓴 본의 이야기가 여러 권이고, 2001년에 작고한 후 그의 미완성원고를 바탕으로 후배작가들이 완성한 시리즈까지 합쳐서 총 몇 개인지 헷갈릴 정도로 많다. 본 아이덴티티, 본 슈프리머시, 본 얼티메이텀, 본 레거시, 본 오브젝티브(The Bourne Objective), 본 비트레이얼(The Bourne Betrayal), 본 도미니언(The Bourne dominion), 본 레트러뷰션(The Bourne Retribution), 본 임페러티브(The Bourne Imperative), 본 디셉션(The Bourne Deception), 본 생크션(The Bourne Sanction)... 그 중 첫 작품인 '본 아이덴티티'의 내용을 훑어보니 원작은 영화와 많이 다르다. 다행이다.^^

 

 

<2015/12/31에 쓰고 2018/03/22에 옮겨 옴>

 

posted by moon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