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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3. 22. 18:21 낙서장

 



나는 詩를 정말 좋아한다. 학창시절에 시에 빠져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유행가의 노랫말도 시처럼 느껴지던 때, 좋은 시를 발견하면 예쁜(!) 글씨체로 연습장에 적고, 편지지에 적곤 했었다. 스무살이 넘어서도 서점에 가면 몇 줄의 싯귀라도 건져볼 요량으로 시집코너를 헤매곤 했다. 외우고 다니던 시도 많았다. 스물한살 때였나, 밤에 도종환의 '인차리' 연작시를 읽다가 울었던 적도 있다. 


이십대 후반쯤이 되었을 때, 온갖 '개폼'잡는 인텔리들의 '뜬구름'잡는 이야기에 서서히 염증이 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실제로 두어명의 시인을 직접 보게 되었는데 적어도 내 시각으로는 평균 이상의 속물이었다. 지금은 시인이란 웃긴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아니, 예술가를 자처하는 사람의 90%가 웃긴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에게 개인적인 유감은 없으나 속지 않기 위해서 경계한다. 재작년엔가. 매스컴을 시끄럽게 했던 학력위조자들의 대부분이 이른바 '예술계' 인물들이었다. 동화 '벌거벗은 임금님'에서 쇼를 벌였던 이들도 의상디자이너였지.

더이상 시집은 사지 않는다. 지금도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이 삼경인 제....."하는 시조가 참 아름답다고 생각하고, 때때로 유행가 작사가들의 감성에 감탄하지만 이제 시집은 필요하지 않다.

그런데, 며칠 전에 인터넷을 돌아다니다가 아주 우연히 어떤 시를 읽었다. '번역된 시는 향기없는 꽃'이라는 말도 있지만, 조미료를 쓰지 않은 음식과도 같이 간결한 일상언어로 쓰여진 시는 번역을 해도 별 손실이 없는 것 같다. 시를 읽으며 가슴이 찡해지는 경험, 참 오랫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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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

- 베르톨트 브레히트


나도 알고 있다. 
행복한 사람만이 인기가 있다. 
그런 사람의 말소리를 사람들은 즐겨 듣는다. 
그런 사람의 얼굴은 아름답다.

마당의 뒤틀린 나무는
토양이 좋지 않음을 말해준다. 그러나
지나가는 사람들은 그 나무가 불구라고 욕한다.
하지만 그것은 옳다.

준트 해협의 푸른 보트와 즐거운 요트를
나는 보지 않는다. 
내가 보는 것은 어부들의 찢어진 그물 뿐이다.

왜 나는 
마흔 살의 소작인 여자가 허리를 구부리고 걷는 것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가?
소녀들의 가슴은 예전처럼 뜨거운데.

내 시에 각운을 쓴다면
그것은 내게 거의 오만처럼 보일 것이다.

내 안에선 꽃피는 사과나무에 대한 열광과
칠장이의 연설에 대한 경악이 서로 싸우고 있다.
그러나 나에게 펜을 잡게 하는 것은

두 번째 것 뿐이다.





<2009/05/04에 쓰고 2018/3/22에 옮겨 옴>

posted by moon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