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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 human doing but human being - P'ta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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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8. 12. 22:00 책에서 발췌

 

 

<229쪽>

나의 피험자들은 그 출신배경을 놓고 볼 때 가히 천차만별이라고 할 만 했지만, 그들은 한 가지 공통점을 보여주고 있었다. 최면을 통한 탐구에 개방적인 마음을 갖고 있었으며, 윤회의 가능성에 대해 긍정적인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들은 고정관념에서 멀찍이 벗어나 있는 사람들이었다. 물론 어떤 피험자들은 자신들이 최면중에 받은 인상이 평소에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생각과 상충된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어떤 피험자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늘, 태아들이 스스로 느끼고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래서 출생 전후로 내가 태아 속에 들어가 있는 시간이 극히 적었다는 사실을 발견했을 때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특히 이상했던 것은, 어찌된 영문인지 내가 태아의 형성과정을 돕고 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출생 전의 체험에 대해 얻은 인상을 답변지에 옮겨적은 어떤 피험자들은 나중에 자신들이 적어놓은 내용을 읽고 크게 놀라기도 했다. 그들은 최면중에 거의 자동기술과 같은 방식으로 글을 쓰고 나서, 최면에서 깨어난 뒤에 그 글을 읽고는 비로소 자신들이 어떻게 답변했는지 알게 된 것이다. 어떤 이들은 머릿속에 떠오른 답변 내용을 스스로 의식하고 갈등을 일으키기도 했다고 말했다.

 

"나는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답변이 너무나 터무니없다고 스스로 끊임없이 공박했습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박사님은 쉬지 않고 신속하게 질문을 던져왔기 때문에, 난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들을 일단 적어 내려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만일 질문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좀더 있었다면 아마 그 내용을 내 마음대로 바꿔 버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그 내용은 내가 믿는 바와 상충되기 때문이죠."

이 피험자는 낙태를 극구 반대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영혼들이 이 세상에 태어나길 바라기보다는 오히려 거부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아연실색한 것이다.

 

최면을 언제 실시하든, 최면중 얼마나 많은 체험을 얻든 출생체험에 관해서는 거의 언제나 52%의 사람들이 아무 응답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들 중 40%는 최면에 깊이 들어가면서 어떤 특정한 현상을 체험했다고 보고했다. 눈을 감은 상태인데도 불구하고 눈앞에 모종의 색깔들이 떠다니는 것을 보았다는 것이다.  ...  나는 출생 회상의 성공률이 저조한 이유를 알아내려고 무척이나 고심했다. 출생체험의 회상에 실패한 피험자들도 어린시절의 모습만큼은 아주 생생하게 기억해 냈다. 어떤 피험자들은 자신들이 출생의 장면으로 거슬러 올라가지 못하도록 방해를 하는 일련의 사념을 느꼈다고 보고했다.

 

"난 눈앞에 떠올린 영상에 너무 깊이 매료됐어요. 선생님이 표현하신 심상은 나와 함께 머물며 나를 이상한 곳으로 데려갔습니다. 그때 나는 내가 얼마나 신비로운 존재인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내가 잊어버린 과거 속에는 대체 어떤 가능성이 잠재되어 있을지 궁금해졌죠. 그런데 다음 순간 그 모든 인상과 느낌이 서서히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 다음 기억나는 것은 숫자를 세면서 우리를 깨우는 선생님의 목소리였습니다."

 

 

<236쪽>

"난 늘 이 세상에서 사는 것이 일종의 특권이며 나 자신이 삶을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래서 내가 태어나는 것을 얼마나 싫어했는지 알게 됐을 때 정말 충격을 받았습니다. 너무 이상하죠?"

나는 그녀에게 그런 응답은 아주 일반적으로 나오는 대답이라고 말해 주었다. 그녀는 안심하면서도 놀라워했다.

 

 

<246쪽>

나는 최면실험에 여러 번 참가한 피험자들 가운데 몇몇은 첫번째 최면워크숍보다는 두번째 최면워크숍에서 더 많은 정보를 얻어냈다는,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첫번째 워크숍이 끝나고 나서 다음 워크숍이 열리기 전까지의 몇달 사이에 그들의 의식은 전보다 더욱 각성된 듯 했다.

 

"첫번째 최면 워크숍에서 나는 출생의 기분에 대한 약간의 응답을 얻을 수 있었죠. 하지만 전생의 인연이나 이번 생애의 목적 같은 것에 대해서는 별로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두번째 최면워크숍에 참가했을 때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죠. 사실 첫번째 최면워크숍에 참가하고 나서, 나는 내 마음속에 떠올랐던 전생의 흥미로운 장면들을 꿈 속에서 자주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한 꿈들을 통해서 나와 내 주변 사람들 사이에 얽혀 있는 전생의 인연을 좀더 분명하게 알 수 있었어요. 내가 두 번째 최면워크숍에 참가하게 된 이유도 바로 이런 점 때문입니다."

 

출생회귀 최면에서 가장 놀라운 현상은 피험자들이 최면에서 깨어난 뒤에 보이는 반응이었다. 첫번째와 두번째 최면과정을 막 끝낸 피험자들은, 내게 물어보고 싶은 온갖 의문사항들로 머릿속이 꽉 차는 것을 경험했다고 했다. 하지만 마지막 과정인 출생체험을 다 끝냈을 때는, 대개 생각에 깊이 잠긴 표정으로 침묵을 지켰다. 이 현상은 절반의 피험자들이 최면 도중 깊은 잠에 빠진 데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지만, 최면 도중 출생체험에 대한 기억을 떠올려 답변지에 적었던 피험자들도 거의 침묵을 지켰다는 사실에 유의해야 한다. 이 경우에는 내가 먼저 그들에게 출생여행에서 무슨 일을 겪었느냐고 물어봐야만 의문을 해결할 수 있었다.

 

어떤 피험자는 내게 이렇게 답변했다.

"그것은 설명하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그때 난 분명 아주 강렬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죠. 하지만 설명하기가 거의 불가능한 느낌입니다. 난 마치 내 마음속의 어떤 낯선 지역으로 장기간의 여행을 떠나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죠. 내가 느낀 주된 감정은 애초에 내가 예상했던 두려움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애초에 난 출생체험에 대해 별로 기대를 걸지 않았어요. 산도를 빠져나와 어머니의 몸밖으로 빠져나가는 일은 무척 고통스러울 거라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렇지만 막상 그때의 체험을 되살려보니 전혀 고통스럽지 않더군요"

 

"그때 내가 느낀 것은 깊은 자비심이었습니다. 난 내 몸이 될 태아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어머니를 비롯하여 분만실에 있던 모든이들에게 자비심을 느꼈죠. 또 그것은 마치 내가 수많은 일들을 자유롭게 할 수 있었던, 아름답고 휘황찬란한 곳을 떠나 뭐가 뭔지 모를 답답한 세계로 내려온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그 당시 나는 앞으로 내가 당하게 될 갖가지 어려움을 잘 알고 있었으며, 그것이 인간들로서는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파괴적인 과정이라는 것을 느끼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웃음지으며)나도 지금 내가 이상한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압니다. 뭐가 진짜 문제인지 아세요? 난 우리가 인간 육체 속에서 살게 되면서 진정한 자아로부터 단절되고, 육체 밖에 있을 때 알고 있었던 참다운 지식을 까맣게 잊어버렸다는 사실을 최면체험을 통해 분명히 깨달았습니다. 난 이번 생애를 경험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 이유에 대해서는 별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죠. 당시 나는 어머니, 의사, 그밖에 분만실에 있었던 사람들이 인생에 대하여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무척 안타깝게 여기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최면중 내 마음속에 선명하게 떠오른 인상입니다."

 

다른 많은 피험자들도 위와 같은 감정을 내게 토로했다. 어떤 이들은 이렇게 주장했다.

"선생님이 우리에게 출생을 결정한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가라고 말씀하셨을 때 내 뺨 위로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지만 최면에서 깨어난 후의 느낌은 그다지 슬프지 않았어요. 그건 그냥 하나의 과정이었을 뿐이에요. 아무튼 육체 안의 삶은 정말 힘겨운 것입니다."

 

어떤 피험자들은 자신들이 침묵하며 사색에 잠겼던 이유가, 최면 덕분에 현재 맺고 있는 인간관계에 대해 많은 것을 새롭게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고백했다.

"나는 이번 최면여행을 통해 나와 어머니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전생의 업보를 분명하게 깨달았습니다. 예전에는 어머니가 나에게 품고 있는 거부감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이해할 수 있게 됐어요. 나는 전생에서 어머니에게 잘못한 일을 보상해 주고, 어머니가 좀더 이해심 많고 깨어있는 정신의 소유자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려고 현생에서 어머니의 아이로 태어난 것입니다."

 

또다른 피험자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제서야 내가 아버지를 그토록 두려워했던 이유를 알게 됐습니다. 현생에서 아버지는 내게 잘못한 일이 전혀 없었는데도, 난 아버지를 늘 두려워했지요. 아버지가 전생에서 내게 한 짓을 이번 생애에서도 저지를까봐 두려웠던 것입니다. 나는 이제 문제의 원인이 내 아버지에게 있다기보다는 나 자신의 지나친 두려움에 있다는 것을 압니다. 전생에서 비롯된 그 두려움을 극복했을 때 비로소 난 남을 신뢰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피험자들은 자신들의 체험을 터놓고 이야기하는 것을 몹시 주저했다. 

"나는 나 자신의 몸이 될 태아에게 자비심을 느꼈는데, 당시에는 그런 감정까지도 이상하게 여겨졌습니다. 나는 그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다가 어느 순간 불가사의한 느낌으로 가득차게 되었죠. 그 느낌에 대해서는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결코 불쾌한 느낌은 아니었어요. 그렇다고 두렵다거나 슬픈 것도 아니었습니다. 마치 어떤 깨달음에 휩싸인 것 같다고 할까요. 난 내가 그 체험을 결코 잊지 못하리라는 것을 압니다."

 

출생체험에 대한 질문에 응답한 피험자들 다수가 위와 비슷한 정서를 보여주었다. 그들에게는 모든 역행최면 중에서도 출생체험이 가장 많은 깨우침을 주었던 것이다. 이들 중에는 훗날 내게 다시 연락을 해서 그 출생 체험이 자신들의 삶을 완전히 변화시켰다고 고백한 사람도 있었다. 그들은 그 체험을 통해 인생의 목적을 깨달았고, 그 결과 삶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으며, 순간순간마다 타인에 대한 자비심과 온정을 느끼며 살 수 있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인생의 목적에 대해 확실하게 감을 잡을 수 있었고, 덕분에 새로운 삶의 길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주장한 사람도 있었다. 

 

"나는 과거의 내 자아상이 무척 근시안적이고 제한된 것임을 알게 됐습니다. 이제 나는 내 표면의식의 자아뿐만 아니라 잠재의식의 자아까지도 의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일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이전처럼 심각하게 대하지 않게 됐어요. 지금 나는 매일 매일을 새로운 시각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살다보면 자연히 마주치게 되는 궂은 일이나 좋은 일들을 이전과는 달리 좀더 느긋한 태도로 대하게 된 것입니다."

 

물론 피험자들한테서 이러한 체험담을 듣는 것은 나로서도 대단히 만족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그들이 최면실험 후 겪은 의식확장의 체험은 나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그들 자신의 자연스런 깨우침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내 최면워크숍에 몰려오는 까닭은 그들이 새로운 체험을 할 준비가 된 삶의 시점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  나는 자신들의 인생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알려주는 피험자들의 설명을 들으면서 단단하게 오므리고 있던 장미 꽃봉오리가 서서히 피어나는 모습을 다시 한번 떠올렸다. 때가 되지 않으면 결코 피어날 수 없다. 장미의 그 황홀한 향기도 꽃잎들이 일정한 크기로 자라나기까지는 꽃봉오리 안에 갇혀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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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구하기 어려워진 이 책의 내용을 갈무리하면서, 한편으로는 드라마 [리전Legion]을 달리고 있었다. 시즌2의 4화는 혼이 '인간세계'에 진입하는 과정 즉, 출생으로 시작한다. 이 책에 묘사된 수많은 출생체험의 정수精髓가 솜씨있게 시각화되어 있다. 

 

 

 

 

 

캄캄한 밤에 눈보라가 친다(인간세계는 어둡고 혹독한 곳이다). 이글루 안에서 한사람이 불을 쬐고 있다(자궁 속은 조금 덜 춥다). 여기는 그나마 약간의 빛과 온기가 있지만 어쨌든 비워줘야 한다(이 얼음집에 있기 전에는 아마 천국 비슷한 곳에 있었을 것이다). 이 사람은 어른이지만 '아기'로 태어나야 한다. 조금은 슬픈 표정으로 물끄러미 통로를 바라보다가 결심한 듯 밖으로 향한다. 드디어 아기의 몸을 입고 세상과 마주칠 때, 화면이 확장되면서 순간적으로 회색에서 컬러로 변한다(아기가 태어날 때 세상도 태어난다). 눈부심과 추위 때문인지 아기사람은 울음을 터트린다. 몇번째인지 모를 긴 여행이 시작된다. 

 

"모든 사람은 많은 사람으로 태어나서 한 사람으로 죽는다."   - 마르틴 하이데거

Every man is born as many men and dies as a single one.   - Martin Heidegger

 

이 드라마가 이 문장을 소개해 줬다.^^ 꿈 꾸는 자가 꿈속의 모든 공간과 인물을 지어내듯이, 인간도 태어나면서 그 모든 것을 지어내 운용하다가 혼자 죽음으로써 그 세상도 함께 끝낸다는 뜻일까.

 

 

posted by moon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