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mooncle
Not human doing but human being - P'taah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Notice

Tag

2020. 12. 10. 01:34 책에서 발췌

 

 

 

<160쪽 / 플라톤의 철학사상>

철학자 플라톤은 서양의 모든 시대를 통해 가장 위대한 사상가 중 한사람으로, 22가지 대화편과 약간의 서한을 남겼는데 그 대부분이 스승 소크라테스를 중심으로 서술되어 있다. 플라톤은 진리와 지혜를 얻는 방식으로 이성, 논리 그리고 논쟁을 특히 강조했지만 어느 정도까지만 그랬다. 왜냐하면 궁극적인 진리는 거의 직관과 통찰이라는 신비적 체험을 통해야 함을 암시했기 때문이다. 감각할 수 있는 물리적 세계와는 차원이 다른 실제세계가 있어서, 현세의 물리적 세계는 오직 더 높은 세계와의 연관 아래서만 제대로 이해될 수 있다고 했다.

 

따라서 그는 물리적이지 않은 인간의 측면, 즉 영혼에 관심이 있었고 '육신'이란 영혼을 임시로 담고있는 그릇으로 이해했다. 그러므로 그는 물질형태의 육신이 죽은 이후의 영혼의 운명에 초점을 맞추었고, 그의 대화편 특히 [파이돈], [고르기아스], [국가]에서 이와 관련된 주제를 취급하고 있다. 이들 플라톤의 저작에는 '죽음 현상'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예를 들어, 그는 '죽음'을 물질이 아닌 부분 즉 영혼이 육신이라는 물질로부터 분리되는 과정이라고 규정한다. 또 인간에게 있어 물질이 아닌 부분은 물질적인 부분보다 여러 제약으로부터 한결 자유롭다는 것이다. 따라서 시간개념도 감각적, 물질적 세계를 벗어나지는 못한다고 강조하면서 본질세계는 영원하다고 했다. 놀랍게도 플라톤은 시간에 대해 '영원개념이 반영된, 변화하고 비실재적인 개념'이라고 정의를 내렸다.

 

플라톤은 육신에서 벗어난 영혼이 다른 영혼과 만나고 안내자 역할을 맡은 영혼의 인도를 받아 이승으로부터 다른 세계로 옮겨가는 과정을 여러 번 언급하고 있다. 죽은 사람의 영혼은 배를 타고 강 건너 저편으로 가게 된다. [파이돈]에서는 극적인 구성, 다양한 논쟁과 여러 용어를 사용하여 육신은 영혼의 감옥이고 따라서 죽음은 그 감옥으로부터의 탈출, 해방임을 제시한다.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입을 통해 죽음은 '잠이나 망각'이라는 전통적 견해를 말하는 한편으로, 궁극적으로는 이를 반박하고 전혀 다른 견해를 피력한다.

 

그에 따르면 영혼은 좀더 고차원적이고 더 신성한 존재영역으로부터 육신 속으로 들어온다는 것이다. 그에게 있어 생명의 탄생이란 잠이나 망각에 해당된다. 왜냐하면 영혼이 육체 속으로 들어가 태어나게 되면 육체 밖에 있을 때 알았던 진리를 잊게 되거나 희미해지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죽음이란 비유적으로 말하면 '깨어남'이자 '다시 기억해내는 것'이다. 죽음에 의해 육신으로부터 분리된 영혼은 이전보다 훨씬 명석하게 생각하고 추론할 수 있고, 사물을 좀더 그 본성에 가깝게 이해할 수 있다고 플라톤은 강조한다. 그의 [국가] 제10권에 이와 유사한 내용이 제시되는데, 플라톤은 그리스 병사 에르Er의 사례를 끌어온다.

 

에르는 전쟁에 나가 많은 그리스 병사들과 함께 전사했다. 전쟁이 끝나고 그의 고향사람들이 전사자들을 찾아나섰을 때 그의 시신도 발견되었다. 그의 몸은 다른 시신들과 함께 화장되기 위해 장작더미 위에 눕혀졌다. 그러나 얼마 후 그는 다시 살아났고, 자신이 죽었을 때 겪었던 일들을 이야기했다.  우선 그의 영혼은 육신으로부터 벗어나 많은 다른 영혼들을 만났고 함께 이 세상으로부터 저 세상으로 통하는 '관문(통로)'로 보이는 곳으로 가게 되었다. 그들은 그 관문 앞에 멈춰서 신성한 존재에 의해 심판받았다. 신성한 존재는 영혼이 살아있는 동안 지상에서 했던 모든 일을 한 눈에 파악했다. 그러나 에르는 심판받지 않았다. 그 대신 신성한 존재는 그에게 다시 현상세계로 돌아가 이승이 어떠한지에 대해 지상의 사람들에게 전하라고 말했다. 그는 다른 많은 광경을 목격한 다음, 다시 지상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하지만 자신이 어떻게 해서 육신으로 되돌아온 것인지는 알지 못했다. 단지 깨어나보니 화장터의 장작더미 위에 눕혀져 있었다는 것이다.

 

플라톤은 사후세계에 대한 자신의 묘사는 '아마도 이러이러할 것'이라는 개연성에 불과하다고 우리에게 경고한다. 육신이 죽은 후에도 삶이 계속된다는 사실에는 결코 의심이 없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물질세계에 살고있는 까닭에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두가지 난관'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첫째, 우리 영혼은 육체 속에 갇혀있기에 시각, 청각, 촉각, 후각, 미각이라는 감각에 제한받고 속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우리 영혼은 사물에 대해 그릇된 인상과 견해, 혼란과 부정확성으로부터 해방될 때까지 '실재'를 볼 수 없다. 둘째, 인간의 언어는 궁극적 실체를 묘사하기에는 너무도 부실하다. 언어는 사물의 내적 본성을 드러내기보다는 감춘다는 것이다. 그래서 물질세계를 초월한 세계의 실재를 말하기 위해서는 비유, 신화 등의 다른 간접적인 방식을 취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165쪽 / 티베트 사자의 서>

이 놀라운 문헌은 역사시대 이전에 수세기에 걸쳐 여러 성인의 가르침을 편집한 책으로, 수백년 간 구전으로 전수되다가 8세기 무렵 책으로 엮어졌지만, 오늘날까지도 외부세계에 알려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은밀하게 전수되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 책의 저자들은 죽음을 하나의 기술로 간주한다. 죽음을 제대로 맞이할 만한 '지식'을 당사자가 갖추고 있는가, 없는가에 따라 죽음을 능숙하게 혹은 엉거주춤하게 맞이하게 된다고 본다. 그래서 티베트 사람들은 누군가가 임종할 때나, 장례식을 거행할 때 이 문헌을 낭송했다.

 

이 책은 두 가지 역할을 했다고 한다. 첫째, 이 책의 내용을 읽어줌으로써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새롭고 놀라운 현상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하도록 했다. 둘째, 남은 가족과 친지로 하여금 죽음을 긍정적으로 볼 수 있게 했다. 죽은 사람이 살아남은 가족에 대한 사랑과 감정적 배려로 인해 되돌아오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죽는 사람은, 육신으로 인한 온갖 근심걱정에서 벗어나 편안하게 다음세상으로 들어갈 수 있다. 이런 목적을 위해 이 책은 육신이 죽은 뒤 영혼이 거쳐갈 과정을 상세하게 제시하는데, 그 초기단계들은 신기하게도 내가 수집한 죽음체험자들의 증언과 일치한다.

 

우선 이 책에 따르면 죽어가는 사람의 마음 또는 영혼은 육신으로부터 떠난다. 얼마 후 그는 '혼수상태'에 들어가며 자신이 물리적 공간이 아닌 허공 속에 있음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 상태에서도 나름대로의 의식은 여전히 존재한다. 그는 뇌성벽력이나 소음을 듣게 되고 회색빛 안개가 주위를 감싸게 된다. 또한 그는 육신 밖으로 나와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놀란다. 가족과 친구가 자신의 시신을 앞에 두고 슬퍼하는 광경을 보고, 장례식을 준비하는 소리도 듣는다. 그들에게 자신을 보여주려 애써보지만 아무도 그를 알아보지 못한다.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그는 혼란스러워져서, 죽었는지 살았는지 스스로에게 질문한다. 마침내 죽었음을 알아차리게 되면 자신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곰곰 숙고하게 된다. 커다란 회한이 몰려오고 자신의 처지에 절망하기도 한다. 그는 친숙했던 장소에 한동안 머물러 있게 된다.

 

그는 자신이 물리적 형태가 아닌 '투명한' 몸을 지니고 있음을 의식하게 된다. 투명해진 그는 따라서 바위, 담장 심지어 산까지도 아무런 어려움 없이 통과할 수 있다. 이동은 순식간에 일어나고 어디든 그가 원하는 곳에 한순간에 이르게 된다. 그의 생각과 지각능력은 생시보다 제한을 덜 받게되고, 그의 마음은 매우 명석해지고 감각은 훨씬 날카로워 신에 가까워진다. 만일 그가 육신으로 있을 때 청각이나 시각 또는 다른 신체장애가 있었다 해도, 그의 '빛나는 몸'은 온전하고 정상적이며 훨씬 강력해졌음을 깨닫는다. 그는 투명한 몸을 지닌 다른 존재를 만나기도 하고 맑고 순수한 빛을 만나기도 한다. 죽어가는 사람이 이 빛과 만날 때에는 오직 다른사람에 대한 사랑과 관용의 감정을 지니라고 이 책은 충고한다. 

 

이 티베트 문헌은 죽은 자가 체험하게 되는 완전한 평화와 만족감을 서술하면서, 그의 전 생애를 통해 행동했던 옳고 그른 모든 일이 '거울'의 형태로 그 앞에 제시되어 그를 생생하게 심판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 상황에서 오해는 있을 수 없고, 어떤 거짓말도 결코 통하지 않는다. 이 책은 내가 수집하지 못한 더 깊은 여러 단계까지를 포함하고 있지만, 이 오래된 자료의 내용과 20세기 미국인들이 나에게 전한 체험담 사이에는 놀라운 유사성이 발견된다.

 

 

<191쪽>

사고로 인해 죽은 적이 있는 한 남자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죽어서 거기에 있을 때, 내가 해서는 안되는 두가지가, 하나는 자살이고 다른 하나는 살인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만일 내가 자살한다면 이는 신이 준 선물을 다시 신의 얼굴에 내던지는 것이고...... 살인은 그 사람을 통해 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방해하는 것이다.

 

 

 

───────────────────────────────────────────────

 

비슈누신이 잠든 동안 꾸는 꿈이 우주라고 한다.^^ 그 우주 속에 살던 '한 사람'이 죽으면 즉 삶에서 깨어나면, 그는 좀더 명료한 의식체가 되어 방금 전 완성한 자신의 '영화'를 재생, 평가한다고 한다. 여러 사례가 알려주는 바에 따르면, 상벌도 천국도 지옥도 없다. 가혹한 심판자는 오직 자신 뿐이다. 아마도 우리가 꽤 혹독한 세상을 만들었고 그 속에서 너무 오래, 너무 깊이 빠져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위로받고 쉬면서 재충전한 후, 다시 각본을 쓰고 일정을 계획하여 '인간으로 살아보기' 게임을 지속!한다.

 

 

 

"우리는 영적 체험을 하는 인간이 아니라, 인간 체험을 하고있는 영적 존재이다."

- 피에르 테야르 드 샤르뎅(1881~1955)

 

"사람이 죽으면 그 영혼은 다시 이 땅으로 돌아오나니, 새로운 몸으로 변장한 그를 또 다른 어머니가 세상에 내놓는다. 더 튼튼한 사지와 더 총명한 두뇌를 갖고 그 오래된 영혼은 다시 길을 나선다."

- 존 메이스필드(1878~1967)

 

"우리는 우리의 육체에 속박받고 있다."   - 플라톤(BC 427~347)

 

 

posted by moon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