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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6. 4. 01:18 책에서 발췌

 

헬렌 니어링 지음, 이석태 옮김, 1997, 보리

(Loving and Leaving the Good Life, 1992)

 

 

<10쪽>

간디는 제자에게 보낸 편지에 이렇게 썼다. 

"사물을 관찰하고 탐구하면 할수록 헤어짐에서 오는 슬픔이 아마도 가장 큰 망상이라고 나는 점점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망상이라는 사실을 깨달으면 자유롭게 됩니다. 우리가 친구들을 사랑하게 되는 것은, 그들 속에서 우리가 보는 실체 때문인데도 우리는 잠깐동안 그 실체를 덮고있던 껍데기가 사라지는 것을 한탄합니다.  실체의 죽음, 실체와 이별하는 일은 없습니다. 진실한 우정은 겉껍질이 사라진 뒤에도 그 실체를 만나고 지켜갑니다."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은 생각은 1세기에 티아나Tyana의 아폴로니우스Apolonius가 남긴 기록에서도 발견된다.

"겉으로 보이는 모양 말고는 어떤 것도 죽지 않는다. 본질에서 자연계로 건너가는 것은 탄생이요, 자연계에서 본질로 돌아가는 것은 죽음처럼 보일 뿐이다. 실제로 창조되거나 사멸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으며, 다만 눈에 보이거나 안보이게 될 뿐이다."

 

<16쪽>

사실 이 책의 제목 [Loving and Leaving the Good Life]의 첫 단어 'Loving' 다음에 쉼표를 찍어야 한다. 최선의 삶을 사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최선의 삶에 들어있는 그 특유의 변할 수 없는 요소는 바로 사랑loving이기 때문이다.

 

<17쪽>

스물네 살 때 아버지의 부탁으로 우연히 하게 된 전화통화가 두 번째 만남을 이루게 했다. 아버지가 회장으로 있던 지역모임에 스코트 니어링이 나와서 연설해 주도록 부탁하게 했던 것이다(아버지가 뒷날 이때 일을 얼마나 후회했던가). 전화통화에서 그 사람은 오래 전에 대화에 끼어들지 않고 구경만 하고 있었던 여자아이를 기억해 냈다. 유니테어리언(삼위일체설을 부정하고 신의 단일성을 주장하는 그리스도교의 한 분파) 교회모임에서 강연해 주기로 승락한 뒤, 스코트는 그동안 내가 어떤 일을 해왔는지 물어보았다. 나는 유럽에서 바이올린을 공부한 일과 인도여행, 호주에서 보낸 시간에 대해 말해 주었다. 우리는 얼마동안 전화로 얘기했다. 나는 그 사람의 목소리가 좋았다. 따뜻하고 힘이 있었으며 친근한 느낌을 주었다. 그 주말에 그 사람이 다시 전화를 걸어 뉴욕 북부로 가는 심부름 길에 같이 드라이브를 하자고 요청해 온 걸 보면 그쪽에서도 뭔가 끌리는 것이 있었음에 틀림없다.

 

그 동행길에서 우리는 다채로운 가을빛을 즐길 수 있었다. 스코트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나는 새로 사귄 젊은남자와의 멋진 데이트약속을 취소했다. 그 주말이 모든 일의 시작이었다. 우리가 같이 간 북부지방의 드라이브 길에서 나는 이 박식한 교수와 근사하고 지적인 대화를 준비하고 있었으나, 그는 이론을 펴는 대신 질문을 했다. 어떤 면에서 앞날이 창창한 젊은 사람에게 인생에 관한 질문을 던지고 자료를 제공해주는 사려깊은 아저씨 같은 분위기를 주었다. 친절하고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말투, 꾸밈없는 수수함이 좋았다. 그 사람은 도대체 무슨 체하는 것이 없었다. 심지어 '정령을 믿어요?'하고 묻기까지 했다. 나는 그 사람의 호기심 많은 눈을 마주하면서 이 사람은 대체 어떤사람일까 궁금해졌다. "네, 항상 믿어왔어요. 당신은요?" 하고 되물었다. 우리는 초자연 현상과 영매에 관한 이야기로 옮겨갔는데 그는 관심을 보이면서 더 알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그가 분명히 지적이고 생각이 깊으며, 유머가 있고 솔직한 것을 확인하고 그에 호응했다. 그 사람은 참으로 분별있고 확고하며, 균형잡힌 훌륭한 품성을 지니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을 나는 우리의 첫 여행에서 느꼈으며 그에게 끌렸다. 그날 저녁 우리는 시골길을 걸었다. 부드러운 9월의 달빛이 비치는 밤이었다. 나무가 우거지고 풀이 무성한 길을 지나 타는듯한 단풍이 줄지어있는 언덕길을 올라갔다. 우리가 멈춰서야 할 교차로에 이르렀을 때, 그는 오르막길과 내리막길 가운데 어느쪽을 택하겠냐고 물었다. 나는 오르막길을 택했다. 그리고는 갑자기 몸을 돌려 그 사람에게 키스했다. 나는 그 순간이 내 인생에서 진정한 갈림길이었음을 깨달았던 것이 틀림없다. 우리의 길이 높게 되어있든, 낮게 되어있든 거기서부터 우리는 함께 여행했다. ......

 

그 사람은 일상생활에서 진리를 추구하고 그에따라 살려고 노력하는 하나의 전형이었다. 첫눈에 나는 그의 훌륭한 자질을 알아차렸다. 또한 무거운 주제에 대해서는 지나치다 싶을만큼 진지하면서도, 유쾌한 웃음과 반짝이는 눈을 가진 순수한 인간미를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소문거리와 잡담을 혐오했으며, 속되거나 사소한 일을 멀리했다. 소로H. D. Thoreau와 마찬가지로 '무력하게 사회의 저속함으로 휩쓸려 들어가지 않으려' 했다. ......

 

이 책은 내가 알고있는 그 사람의 존재에 대한 헌사이다. 나는 원칙에 충실하고 타협하지 않는 지적인 변혁가의 면모와. 꾸밈없고 친절하며 현명한 남편으로서 스코트의 삶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 보이고 싶다. 아울러 스스로 준비해서 맞이한 그이의 평화로운 마지막을 나누고 싶다.

 

 

<83쪽>
내가 그 사람의 삶에 들어왔을 때, 그 사람은 마치 나병환자처럼 사회에서 고립되어 있었으며, 가족에게도 버림받은 상태였다. 특별한 보호 아래 걱정없이 태평스럽게 지내오면서 음악 말고는 이렇다 할 훈련을 받아본 일이 없었던 나는 스코트가 일찍이 이름을 떨친 현실생활과 정치세계에는 거의 아는 것이 없었다.

 

 

<86쪽>
스코트는 언제나 시간을 딱 맞추어서 일하는 계획성있는 사람이었는데, 이 일에는 이만한 시간, 저 일에는 저만한 시간을 정해놓고 있었다. 덤벙덤벙한 내 습성을 생각해볼 때, 어떻게 내가 그 영역으로 들어가서 그 사람이 하듯이 침대에서 단정하게 옷을 접어두는 대신, 그 사람이 놀랍고도 재미있는 눈길로 보고있는 가운데 아무렇게나 옷을 벗어던지면서도 별 말썽없이 적응해갔는지 신기하다. ...... 그 사람이 일찍이 내게 쓴 글 가운데 가장 뭉클한 구절 하나는 자기 자서전에 '이 일의 반을 한 헬렌에게'라는 헌사를 붙인 것이었다. 이 헌사가 내 존재에 의미를 갖게 했다. ......

스코트는 미리 준비되고 정장을 한 음악회는 지나치게 형식에 매이며 자연스럽지 못하다고 여겼다. 내가 이끌고 가긴 했지만, 마지못해 따라간 것 뿐이었다. 메트로폴리탄에서 있은 '펠리아스와 멜리산데'의 훌륭한 공연에서 주위 청중들에게 볼 면목이 없게 코를 골면서 자고 있는 것을 보고 나는 그 사람을 밖으로 끌고나와, 두 번 다시 오페라 구경은 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나는 초기에 내 친구들에게서, "아니 어떻게 당신처럼 예술을 좋아하고 음악적 배경과 신비주의 취향을 가진 사람이, 그런 학자풍의 공산주의자이자 음악과 예술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 게 없는 금욕주의자와 일생을 같이하게 되었지요? 그 사람은 당신을 바꿔놓고 지배하면서 모든 쾌활함을 앗아갈 것입니다. 당신은 우리가 그렇게 높게 평가하는 당신의 개성을 잃어버리고, 자신의 재능을 망치게 될 겁니다"하는 말을 자주 듣곤 했다. 나는 늘 어떤 예술도 삶과 비교할 수 없으며, 스코트의 예술은 그 삶에 있다고 대답했다. 나는 스코트가 일찍이 내가 만난 사람 가운데 가장 훌륭한 사람이며 그 이상 좋은 동반자를 선택할 수는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내 온갖 물음에 해답을 줄 수 있는 현명한 연장자와 사는 것은 끊임없는 즐거움이었다. 그것은 학교수업과 휴일이 하나로 합쳐진 것이었다. 나는 여러가지 내 개인의 성질과 습관을 참을성 있게 받아주고 이해하는 선생을 가졌다. 익명으로 쓰여진 [엘리자베스와 독일식 정원]에는 이런 말이 있다. "누구든지 남편은 가질 수 있으나 현인을 갖기는 어려운데, 그 둘의 결합은 유익한 만큼 드물다." 

 


스코트는 깔끔하고 소박한 생활, 훌륭한 농장 운영, 차곡차곡 쌓은 땔감과 퇴비더미, 반짝반짝 빛나는 연장들, 꼼꼼하게 정리된 노트, 정성들여 읽기 쉽게 쓴 원고에서 예술가였다. 나는 스코트가 생활 자체를 예술작업으로 하고 있다고 느꼈다. 대중들은 스코트의 강인하고 박식한 면과 원칙을 지키는 고집스러움만 알았다. 나에게 그는 자기 성품에서 미처 예측하기 어려운 가볍고 민감한 면을 보여주었다.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은 이렇게 썼다.
"내가 혼자 사는 데에 흠뻑 빠져있을 때조차 무언가 이상하게 부족한 것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나는 별이 빛나고 움직임이 없는 침묵 속에서 누군가 동반자가 있어 내 손이 닿을 수 있는 곳 가까이 누워 있었으면 했다. 왜냐하면 함께 지내는 것이 혼자 사는 것보다 훨씬 평온함을 가져다주며 고독을 완성시키는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남자가 자연 속에서 사랑하는 여자(혹은 여자가 사랑하는 남자)와 사는 것은 모든 생활방식 가운데 가장 완전하고 자유로운 삶이다."

 

 

<98쪽>

1929년 봄 스코트는 내가 유럽으로 돌아가 한동안 잘 사는 유럽친구들과 지내면서 자기와 사는 생활(형편이 조악한 생활)과 그 사람들과 사는 생활(상류층 생활) 중에 어느 쪽을 바라는지 생각해 보라고 권했다. 나는 짐을 꾸려 내가 그렇게 좋아하던 네덜란드행 배를 탔다. 나는 환영과 축하인사를 받았고, 청혼을 받았다. 파리, 런던, 암스테르담에서 부자들의 걱정없는 생활로 미끌어져 들어가는 것은 쉬웠다. 스코트의 영향이 없었더라면 나는 쉬운 길을 택해 귀족과 결혼하거나 집 둘레에 호가 파져있는 교외저택의 가정(이쪽이 귀족과 결혼하는 것보다 더 마음을 끌었다)을 택했을 것이다. 

 

그 무렵 스코트한테서 이런 전보가 왔다. "내 책 [전쟁War]에 관한 일을 시작할 수 있는 돈을 얻었습니다. 여기와서 도와주시겠습니까?" 나는 그 제안은 물론이고 그처럼 진지한 과제를 거부할 수 없었다. 나는 구혼자들과 상류층 생활을 버렸다. 긴머리를 자르고 좋은 옷과 보석, 값비싼 소지품들을 여자친구들에게 나누어주고 떠날 준비를 했다. 당시 네덜란드에 있던 부모님에게 내 바이올린을 맡겼다. 부모님은 유리한 조건의 결혼에 큰 기대를 걸고 있었으므로, 내 결정에 불만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것이 내 인생에 또 하나의 전환점이 되리라는 것을 충분히 깨닫고 있었기 때문에 바로 다음 배편에 몸을 실었다. ......

 

앨버트 허바드E. Hubbard는 이렇게 썼다.

"건강, 책, 일 그리고 여기에 사랑이 더해진다면 운명이 주는 모든 괴로운 고통과 아픔도 견딜만해진다."

"이 세상에서 정말 가치있는 것을 얻게 해주고, 사람의 상상력으로는 더 보태거나 더 낫게 할 수 없는 세가지 습관이 있다. 그것은 일하는 습관, 건강을 관리하는 습관, 공부하는 습관이다. 당신이 만약 남자이고 이러한 습관을 가진 데다 같은 습관을 가진 여자의 사랑을 가지고 있다면, 당신은 지금 여기에서 천국에 있는 것이며, 여자 쪽에서도 그것은 마찬가지다."(142쪽)

 

 

<103쪽>
스코트를 알게된 내 행운을 축하하며, 어떤 여성이 이런 편지를 썼다.
"평화운동을 하면서 나는 때때로 자잘하고 하챦은 자기욕심을 채우지 못해 안달하는 사람들 말고, 전체를 보면서 늘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는 뛰어난 이타성을 가진 사람들을 만납니다. 그러나 이타성의 면에서 그 누구도 스코트와 견줄 만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당신과 그 사람의 관계를 생각할 때, 당신은 일찍이 내가 만난 가장 풍족한 여성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그 말에 동의하면서 나는 스스로에게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누가 나더러 유쾌한 친구같은 사람이자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라고 한다면, 바로 스코트와 같은 사람을 그릴 것이다. 현명하고 경험이 풍부하며, 친절하고 조용한(말 수가 적은) 그러나 질문을 받으면 충분히 자기의견을 말하는 사람, 모든 면에서 능통하지만 과시하지 않고 꾸밈이 없으며, 풍채가 훌륭하면서도 허황되지 않은, 진지하지만 유머가 풍부한, 깊은 감수성을 가지고 있되 절제되어 있는 그런 사람을 원한다. 반대로 그이에게 어울리는 여성을 그린다면 어떤 사람일까? 나와 비슷한 어떤사람, 그러나 더 진지하고 명석하며 재능과 인내심이 있고 영적이며, 모든 면에서 더 빼어나고 아름다운 여성. 나는 그런 여성이 그이 반려자가 되기를 빈다."

 

 

<121쪽>

우리는 돈을 쓰기보다는 되도록 절약하며 사는 것을 목표로 했지만, 트럭의 기름값, 지방세, 몇가지 먹을거리를 사는 데 현금이 조금은 필요했다. 그래서 농장에 딸린 숲에서 얻은 땔나무와 통나무를 내다 팔려고 생각했으나 이웃들도 모두 자기들이 쓸 나무를 충분히 갖고 있었다. 이듬해에 한 때 내게 청혼했던 네덜란드 남자가 죽으면서 유산을 조금 남겼는데, 그 돈으로 우리는 훌륭한 단풍나무들이 들어서있는 이웃농장을 샀다.

 

스코트는 단풍나무 숲을 정돈하여 제일 좋은 것들만 남겨놓았다. 그리고 아연도금이 된 도관을 바둑판처럼 7마일쯤 숲에 까는 방법을 생각해내어 수액을 제당소까지 운반하게 했다. 나는 단풍나무 수액을 뽑아 모으는 일을 도왔는데, 수액은 제당소에서 오랜 시간 끓여 시럽으로 만들었다. 연간 수천 리터의 이 시럽이 우리 생활에 큰 보탬이 되었다.

 

우리는 농장에서 바로 또는 통신주문을 받아 시럽을 팔았다. 그 가운데 얼마는 우리가 가공을 하기도 했다. 부엌 난로에서 시럽을 끓여 절인다음 냄비에 넣어 금괴모양으로 만들거나, 고무주형에 넣어 별, 나무, 데이지꽃, 토끼 모양을 만든 다음 '그림꾸러미'처럼 상자에 담아 가게나 노점에서 여남은 개씩 팔았다. ... 하지만 우리가 필요 이상으로 많은 주문을 받았을 때는, 일을 멈추고 여행을 떠나거나 새로운 책을 쓰기 시작했다. ... 우리는 공동작업으로, [사탕단풍책The Maple Sugar Book]을 펴냈는데 40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주제에 관한 고전으로 남아있다. 

 

 

<132쪽>
스코트는 생활의 질을 높이기보다 삶의 질을 높이고자 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당신이 갖고있는 소유물이 아니라 당신자신이 누구인가 하는 것이다. 나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 어떤 행위를 하느냐가 인생의 본질을 이루는 요소라고 생각한다. 단지 생활하고 소유하는 것은 장애물이 될 수 있고 짐일 수도 있다."

스코트가 강연을 하는 연회나 저녁식사 자리에서 그 사람은 흔히 공들여 만든 음식을 거절하고 호주머니에서 사과나 오렌지를 꺼내서 먹었다. 한 번은 화려하게 꾸민 출판사에 간 일이 있는데, 스코트는 엘리베이터 안내인에게 이끌려 뒷문께로 갔다. "어떻게 된 건가?" 동료들이 깜짝놀라 물었다. 스코트는 "나를 배관공으로 안 것 같네." 하며 싱긋 웃었다.

또 한 번은 스코트가 강연하는 어떤 모임에서 내가 청중 속에 앉아 있는데, 내 앞에 있는 여자들이 "저 사람 농부처럼 입고 있네. 작년에 입은 옷 그대로야." 하고 수군거렸다. 나는 그들 어깨를 두드리며 말해주고 싶었다. "저이는 농부고, 저 옷이 유일한 옷이라오." 그이는 단정하게 옷을 입었으며, 언제나 신경을 써서 깔끔했지만, 모양을 내거나 유행 따라 옷을 입지는 않았다. 스코트는 어떠한 경우에도 자신이 상류층으로 보이는 것을 원치 않았다. 소지품이 단촐했고 또한 돈에도 관심이 없었다.

 


<137쪽> 
우리는 저녁을 소란스럽게 만드는 텔레비전이나 라디오 없이 훌륭한 고전들을 들고 불가에 앉았다. 한 사람이 소리내어 읽으면 다른 사람은 강낭콩이나 완두콩을 까거나, 스프나 사과소스를 만들거나, 뜨개질 또는 바느질을 했다(스코트도 나와 마찬가지로 이런 갖가지 집안일들을 했다). 우리는 톨스토이, 위고, 에머슨, 소로, 셰익스피어, 여러 시인들의 모든 작품들을 읽고 또 읽었다. ...... 내가 고른 것들은 과학에 관계된 공상이야기를 포함하여, 많은 것들이 환상적이고 비밀스럽게 전해내려오는 것들이었는데, 스코트가 고른 것들은 사회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는 이야기들이었다. 우리 둘은 이 모두를 다 좋아했다.

보통 일요일에 우리는 소화기관을 쉬게 했는데, 가볍게 먹어온 아침식사와 점심을 생략하고 하루종일 단식을 했다. 산책이나 수영 또는 돌벽을 약간 손보는 일 말고는 이렇다 할 활동계획없이 어슬렁어슬렁 하루를 보냈다. 이 단식은 저녁무렵 불가에서 팝콘, 당근주스나 사과즙을 먹으며 끝냈는데, 그리고는 밤늦게까지 내가 모은 400여장의 고전음악 레코드판에서 고른 음악을 들었다. 우리는 일종의 음식에 대한 방학기간으로 적어도 일 년에 한 번은 열흘동안 단식을 했다. 우리는 그 기간에 물만 마시고 지냈으며 일도 줄였다. 우리는 이 금욕기간을 손꼽아 기다렸으며 그것이 육체와 정신에 이롭다고 믿었고, 책을 읽고 글을 쓸 수 있는 여분의 시간을 얻었다.

겨울에 농장일이 줄어들면 스코트는 국내 여러 곳에서 오는 강연요청을 받아들여 떠나곤 했으므로, 나는 편안하게 집에 혼자 남아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음악을 들었다. 스코트는 늘 마지못해 우리의 시골집을 떠났지만, 자신이 도움될 일이 있다고 느낄 때는 언제나 강연요청을 받아들였다. 

 

 

<153쪽> 
바깥일은 스코트의 놀이였다. 그 사람이 판 연못은 원래 늪이었다. 그는 수영장이자 파이프로 농장에 물을 보낼 수 있는 샘으로, 또 불이 났을 때에 필요한 안전판으로 연못을 구상했다. 불도저를 부르는 대신에 그는 자신이 직접 파기로 결심하고 외바퀴 손수레와 삽, 손도끼로 일을 시작했다. 농장 흙과 퇴비더미를 기름지게 하기 위해 늪의 흙 14,000짐을 날랐는데, 그 일을 혼자서 10분의 9쯤 하고, 나는 한 일이 거의 없는데도 그이는 그 연못을 '우리'가 일해서 만든 '우리 연못'이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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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만난 지 20년이 되었다. 을지로3가 지하철 개폐기 옆에 있던 간이서점에서 샀다. 어떻게 그 조그만 곳에 이 책이 있었는지, 무슨 생각으로 책을 샀는지 지금에 와서는 신기하지만 어쨌든 운이 좋았다. 이 특별한 책 아니, 특별한 커플에 대해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어 안달이 나서, 고속버스 안에서 잠 많은 남편을 붙들고 한 시간도 넘게 혼자 떠들던 기억이 난다. 물론 별 반응은 없었다.ㅋ 그 후에 그들이 쓴 책을 하나하나 읽어 나갔는데 솔직히 이 책 만한 게 없었다. 

 

헬렌 니어링에게는 팔구십의 나이에도 소녀같은 무엇인가가 있다. 번역을 한 이석태 변호사(현재는 헌법재판소 재판관)도 [녹색평론]에 실린 1995년의 인터뷰를 읽고 헬렌에게 반한 것 같다.^^ 그 인터뷰가 너무 궁금해서 녹색평론사에 전화해서 과월호를 주문하고는 기뻐했던 기억도 난다. 내가 헬렌을 너무 좋아해서인지 한 번은 꿈에 나왔는데... 난롯가에서 둘이 마주앉아 한참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그 분위기가 참 정답고 아늑했는데, 깨고나서 도무지 한마디의 대화조차 기억해 낼 수가 없었다.

 

이젠 누더기처럼 낡아버린 책을 오랜만에 펼쳐보면서 이 책이 내 삶에 미친 잔잔한 영향을 본다. 나는 자급자족하는 전원생활에 별 흥미가 없는데 왜 그토록 이 책에 빠져들었던가. 진실로 흔치않은 성향을 가진 두 사람, 세상에 대한 그들의 깊고 따뜻한 시선, 그리고 거의 모든 면에서 '통념'에 순응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으로 살았다는 사실, 그러면서도 재미있고 만족스러웠다는 이야기. 실화지만 동화같기도 하다. 헬렌 노드가, 세상의 낙오자처럼 내몰린 스코트 니어링을 선택하고 지원하고 돌보는! 과정은 '평강공주와 온달'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스코트의 훌륭함을 알아보고 새로운 삶으로 뛰어든 헬렌이 너무 좋다.^^ 온달도 동네바보였을 리가 없다.

 

 

"세상엔 오직 한 가지 성공만 있다. 자신의 인생을 자신의 방식으로 사는 것."

- 크리스토퍼 몰리Christopher Morley

posted by moon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