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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 human doing but human being - P'ta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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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5. 26. 17:34 영화

 

 

내가 처음 [바가바드기타]에 대해 귀동냥을 했던 때도, 영화 [엣지 오브 투모로우]를 봤던 때도 2014년이어서 그랬는지, 이 둘은 언제나 함께 떠오른다. 간디의 말대로 그 시의 배경이 되는 전쟁이 실제가 아닌 '인간 내면에서 벌어지는 선악의 전쟁'이라면, 그 전쟁터는 우리의 '두뇌'이고, 병사들은 우리의 '생각'이다.

 

이 영화의 외계생물은 뇌세포를 연상시킨다. 풀뿌리처럼 생긴 것이 번쩍거리며 빛을 낸다. 쭉쭉 늘어나는 촉수를 가졌고 쉼없이 꿈틀거린다. 그들은 외관상으로는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개체들로 보인다. 하지만 알 수 없는 어떤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일사불란하게 공동체의 목적에 봉사하다가 보스 격의 '오메가'가 죽으면 동시에 모두 죽는다. 인간의 뇌세포 역시 하나하나 따로 존재하면서, 인간의 의도에 호응하여 상호작용하다가 인간이 죽을 때 다같이 죽는다. 

 

 

"뇌세포는 다른 세포와는 달리 하나하나가 독립된 박테리아이고, 뇌는 까다롭게 유지되는 세포 배양기incubator이다. 대뇌피질에는 약 140억개의 신경세포가 있는데 끊임없이 전기펄스를 만들며, 생존을 위해 시냅스 접점을 찾아 몸부림친다."   - 박문호     

 

 

주인공 빌 케이지Cage는 아르주나를 똑닮았다. 그는 군인의 직분으로 전쟁에 나섰지만 전투는 하기 싫다. 그러나 맞서 싸워야만 한다. 그의 앞에는 선택의 자유가 놓여 있지만 그건 '어떻게 싸울 것인가'에 대한 것일 뿐, 싸움 자체에서 벗어날 길은 없다. 태어난 이상 어떻게든 살아야 하고, 그 안에서의 '선택'에 따라 경험과 학습을 피할 수 없는 인간처럼.

 

파렐상사는 이렇게 말한다.

11:49  "하지만 자네한테도 아직 희망은 있어. 전장에서 용맹히 싸워서 죄를 씻는 거지. 전장은 진짜 영웅이 만들어지는 불의 도가니니까."

 

리타는 크리슈나를 닮았다. 크리슈나의 정체가 '몸을 입고 8번째로 환생한 비슈누神'인 것처럼, 리타도 '전쟁터라는 불의 도가니에서 살아돌아온' 선배전사로서 케이지를 인도한다. 리타가 케이지를 태운 트레일러차량ㅋ을 운전하고 수송선을 운전하는 모습은, 전차를 모는 크리슈나의 SF버전같다.^^   

 

크리슈나가 결코 죽을 수 없는 신이듯이, 리타와 케이지도 수백수천 번 죽지만 결코 죽지 않는다. 다만 점점 더 '강한 전사'로 진화해 간다. 삶이 리셋될 때마다 만나고 또 만나는 동료들 역시 죽지만 죽지 않는다. 아무도 죽지 않는다. 경기장에서 아웃된 선수, 드라마 안에서 죽은 배우, 꿈 속의 절벽에서 추락한 나... 처럼 아무도 죽지 않는다.


이것은 태어나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도다.  
과거에 있었던 것도 아니요. 미래에 있게 될 것도 아니니라.  
태어나지 않고 영원하고 영속하며 오랜 것.  
육신이 죽게 될 때도 이것은 죽지 않는도다.    - [바가바드기타] 2장20 

모든 존재의 몸 안에서  
몸을 입은 이것은 그 어떤 상처도 입지 않나니, 
오, 바라타여,  
그러한 즉 그대는 그 누구를 위해서도 슬퍼해서는 안 되느니라.   - [바가바드기타] 2장30

 

마지막 결전에서의 케이지과 알파는 '내면의 두 자아'의 대치를 보여준다. 오메가를 죽이려는 의지와, 오메가를 지키려는 의지. 태극문양의 두 색깔처럼, 빛과 어둠처럼, 선과 악처럼 케이지는 자신의 거울상을 본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피조물들은 좋아하는 것과 좋아하지 않는 것에서 나오는 서로 반대되는 짝들의 속임수에 미혹되어 있느니라"   - [바가바드기타] 7장27

 

마지막 장면에서 리타를 보면서 활짝 웃는 케이지(cage에서 벗어난). 눈에는 살짝 눈물이 고여있다. 관객은 말그대로 '만감이 교차하는' 케이지의 심경을 안다. [본 아이덴티티]의 마지막 장면도 같다. 길고도 고된 여정 끝에 낙원에 도착한 사람. 

 

"영혼은 파괴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영혼이 육체를 입는 것은 새가 새장 속에 들어가는 것과 같다."   

- 플루타르코스Plutarch

 


더그 라이만은 영화장인이다. 충분히 또는 지나치게ㅋ 재미있고 정교한 영화를 만들면서, 그 이면에 또 하나의 레이어를 매끈하게 깔아 놓는다. 그는 [본 아이덴티티]를 감독했고, [본 슈프리머시]와 [본 얼티메이텀]의 제작에 관여했는데, 그 세 편의 시리즈는 [본 레거시]나 [제이슨 본]에는 없는 연속성, 일관성이 있다. 그는 첩보물의 형식을 빌려 인간 삶의 험난한 여정을 함축한다. 1편에서는 기억을 잃고 깨어나 '나는 누구인가'를 찾아 헤매고, 2편에서는 과거의 자신이 저지른 일과 문제들을 바로잡고, 3편에서는 그 모든 것의 '처음'을 추적하여 찾아간다. 그 곳에서 그는 이런 말을 듣는다. 
01:38:53    "책임을 회피할 생각 마. 널 만든 건 너 자신이야. 사실을 인정해. 넌 이 곳에서 선택을 했어.

                     제이슨 본이 되기로. ...... 넌 네 발로 왔어. 자원했다고. ...... 이제 기억나나?" 

개고생 끝의 결론은 언제나 같다. 모든 것은 스스로 선택했으며, 따라서 책임은 오직 자신에게 있다.

 

 

처음 [미스터&미세스 스미스]를 봤을 때의 내 감상은 '이런 허황된 스토리에 이런 물량과 재능을 쏟아붓다니...'였다. 10여년이 흐른 뒤 다시 보고서야, 총기업자들에게서 제작비를 왕창 뜯어서 [스미스부부의 권태 극복기]를 찍은 감독의 능력에 탄복했다. 총기PPL을 위해 소위 제3세계인들의 삶을 장난처럼 파괴하는 영화 대신, 부부싸움 판타지를 만드는 기발함~. 서로 죽이려 들던 부부는 '공동의 적'이 나타나자 찰떡같이 합심한다.ㅋ

 

[엣지 오브 투모로우]의 속편(Live Die Repeat and Repeat) 제작 소식이 있다. 처음으로 자기 영화의 속편을 감독할지도 모른다. 나오면 좋겠지만 언제 나올지, 나오기는 할런지 알 수 없다. 나온다 나온다 하면서 세월을 보내고 있는 [아바타] 속편처럼. 

 

 

 

"뇌의 주된 기능main function은 움직임 즉, 운동을 만드는 것이다. 멍게는 유충(올챙이같은 모습)일 때는 이동이 필요하므로 신경시스템을 가지고 있으나, 성체가 되기위해 바위에 부착되면(움직임이 필요없게 되면) 48시간만에 브레인을 소화시켜 버린다. 식물은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신경시스템이 없다. 동물은 감각에서 운동이 나오지만, 인간은 언어를 쓰기 시작한 이후 대규모의 기억 즉 생각에서 운동이 출현하게 되었다. 운동과 사고작용은 동전의 양면처럼 동일하다. 실제로 근육을 움직일 때와, 대뇌가 연상작용을 할 때 똑같은 신경전달물질(아세틸콜린)이 사용된다. 즉 동일한 화학적 매커니즘을 보여준다. 사고思考는 진화적으로 '내면화된 움직임'이다."   - 박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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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개별적인 '나'로 존재한다고 확신하는 한편으로, 70억 인구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갖는다. 나는 누군가의 뇌세포같은 존재일 수 있다. 나는 어떤 오메가에게 봉사하는 알파이거나, 알파의 촉수인지도 모른다. 거대한 나무 끝자락에 머무르면서 나무 전체를 의식하지 못하는 미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매일의 삶을 이어가며 온갖 '생각'을 하고, 꿈 속에서조차 '나'라는 정신줄은 잡고있다. 나는 동화 속의 구두장이이고, '나'의 의도를 감지하는 요정들이 나를 위해 구두를 만드는 것도 같다. 나는 빗자루 따위와 싸우는 데에 정신이 팔려있는 '마법사의 제자' 미키마우스 같기도 하다.^^

 

posted by moon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