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모시 프리크 & 피터 갠디 지음 / 유승종 옮김 / 어문학사)
제1부 필요없는 것(The Bathwater)
<29쪽>
십자군전쟁 당시 기독교도들이 유대인과 무슬림에게 가한 말할 수 없는 고통은 잊지 말도록 하자. 예루살렘이 십자군에 의해 함락되었을 때, 무슬림의 알-아크사Al-Aqsa 모스크에서만 7만명 이상이 학살당했다. 그들은 또한 유대교회에서 수천명의 유대인을 산 채로 불태워 죽였다. 기독교인인 연대기 저자는 '우리의 군대는 요리단지에 어른들을 삶아 죽였으며, 어린아이들을 쇠꼬챙이에 꿰어서 구워 죽였다'고 기록하였다.
콜럼버스가 그의 항해를 시작했을 때, 그는 돛에다 십자군의 붉은 십자가를 꿰매 달았다. 콜럼버스가 신세계를 발견하기는 했지만 이것은 의도하지 않았던 것으로, 행운이 따른 결과였다. 그는 실제로 무슬림제국의 배후를 공격할 수 있는 새로운 뱃길을 찾기 위해 항해하고 있었다. 아메리카를 발견했을 때 그는 예루살렘을 탈환할 수 있을 정도의 충분한 금을 발견했다고 썼다.
유대인들은 성직자나 교황의 전적인 축복을 받은 광기어린 폭도들에 의해 일상적으로 산 채로 불태워졌다. 19세기에도 여전히 바티칸이 강요하고 있던 정책, 즉 유대인들에게 노란 배지를 달고, 게토ghetto(중세 이후에 유럽 각 지역에서 유대인을 강제격리하기 위해 설정한 유대인 거주지역)에 살도록 강요한 것은 13세기에 가톨릭교회가 처음으로 한 일이다.
<31쪽>
유대인을 절멸시키려던 나치 친위대원들도 그들의 벨트 버클에 '신이 우리와 함께하고 있다'라는 말을 새겨넣었다는 것을 잊지말자.
<33쪽>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은 충분히 이슬람적인 국가는 하나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단순 절도에 대해 신체 절단의 벌을, 간통에 대해서는 공개적인 참수형을 내리며, 국가를 타락시킨 자에 대한 벌로 십자가형으로 신체의 부분을 절단하라는 샤리아sharia의 법을 시행하는 사우디아라비아조차도 이슬람국가로서의 본분을 다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45쪽>
로마 교회는 이교도의 도서관을 불태웠고, 자신들에게 도전하는 대담한 '이교도들'의 모든 작품들을 파괴했다. 성서가 모순투성이라는 것을 어느 누구도 발견하지 못하도록 사용했던 언어인 라틴어가 그 용도가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몇세기동안 로마교회는 라틴어를 사용했다. 성서의 교회해석이 의심받지 않도록, 성서를 성직자가 아닌 다른 사람이 읽는 것을 불법화하였다. 성서를 소지한 평신도는 처형당했다.
고문과 처형을 겁내지 않았던 용감한 개인들의 영웅적인 투쟁에 의해 성서가 대중적인 언어로 번역된 것은 종교개혁 이후의 일이다. 종교개혁의 근간은 남녀 모두가 그들의 언어로 성서를 읽을 수 있는 권리이다. 바로 그러한 결과를 교회가 두려워했던 것이다. 사람들이 그들 스스로 성서를 연구하게 되면서, 성서가 오류가 없는 신의 말이라는 주장은 점차 의심을 받게 되었다. 3세기에 걸쳐 철저한 연구가 진행되면서, 이제 성서는 실제로 다양한 출전에서 나온 것이고, 모순적이며, 괴상한 고대 문학작품이라는 것이 분명해졌다.
<50쪽>
유대인들이 타나크Tanakh라 부르고, 기독교인들은 구약이라고 부르는 성스러운 경전은 아담으로부터 알렉산더 대왕에 이르는 시기의 유대인들의 이야기다. 유대국가는 수천년 전의 역사까지 잘 기록한 대단한 고대국가라는 것이다. 이 주장은 유대의 달력으로 확인할 수 있다. 지금의 해를 유럽에서는 2004년이라고 쓰지만, 예루살렘에서는 터무니없이 5764년이라고 쓴다. 이 자료를 보면 유대 역사의 시점이 이집트 피라미드보다 1300년이나 앞선 것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주장은 그 증거를 찾기 전까지는 매우 인상적이다.
이집트를 여행하는 사람들은 눈앞에 펼쳐진 인상적인 기념비와 거대한 건축물을 보게 될 것이다. 문서들, 조각품들, 그리고 공예품들은 실제로 수천 년을 지속해 온 정교한 문화가 존재했었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소위 '문명의 요람'이라 불리는 메소포타미아 지역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그렇게까지 오랜 역사를 가진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발견되는 것은 무엇인가? 소수의 떠돌아다니는 유목민과 목자들의 전형적인 시시한 유물과 질그릇 조각 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
<74쪽>
외국의 지배가 몇 세기 지나자, 유대인들은 독립의 기회가 왔다는 것을 간파했다. 기원전 161년에 로마와 동맹을 맺은 유대지도자 매카비우스는 유대의 그리스 지배자에 대항해서 폭동을 일으켰다. 기원전 67년, 폼페이우스 지도 하의 로마인들이 팔레스타인 지역을 지배했을 때, 로마와의 이 동맹은 결국 유대가 로마의 지배를 받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 사이에 유대 민족주의의 거대한 분출이 있었다.
유대지도자 매카비우스와 그의 아들은 다음 세기까지 유대를 지배한 하스몬가를 수립했다. 기원전 164년에는 예루살렘에 사원을 재헌정하고, 이어서 완전히 새로운 시대를 선언하고, 새로운 달력을 만들었으며, 유대의 영토를 확장하기 위한 군사계획을 수립하기 시작했다. 이 기간동안 우리가 타나크(구약, Old Testamant)로 알고있는 문헌들의 수집이 기록되었는데, 팔레스타인 전 지역을 지배하려는 하스몬가의 욕심을 신화적으로 정당화하기 위해 이 문헌들은 편집되고, 그리고 광범위하게 수정되었다. ...중략...
하스몬가 사람들은 그들의 이웃을 침략했을 때, 비유대인들에게 '참된 유대인'이 되도록 할례를 받고 개종할 것을 강요했다. 갈릴리(팔레스타인의 북단, 지금의 이스라엘 북부) 전체는 기원전 100년에 무력으로 개종됐다. 동일한 시기에 그들은 전 주민을 학살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강제로 유대인으로 만들면서 트렌스요르단(요르단의 옛이름), 이두메, 그리고 사마리아에서 군사행동을 벌였다.
하스몬가의 잔학행위는 전설적이었다. 특히 종교가 관련됐을 때 더욱 그러하였다. 예를 들어, 알렉산더 얀네우스는 종교적으로 개방적인 바리새파 800여 명을 학살했으며, 그들이 학살될 때 그들 앞에서 먼저 그들의 아내들과 자식들을 학살했다. 심지어 그는 첩들에 기대어 그 장면을 즐겼다고 한다. 타나크에 등장하는 상당한 양의 불쾌감을 주는 잔학행위는 이와같은 환경이 조성되었을 때 완전히 그 진가를 발휘한다. 예를 들면, 귀환하는 이스라엘의 호전적 군대가 미디안족(이스마엘 자손이라고도 함. 아카바만 동쪽에 살았던 유목민)의 성인 남성들만을 살육했을 때, 모세가 격노했다는 것을 타나크가 전해준다. 모세는 돌아오는 그들에게 이렇게 명령했다고 한다.
'지금 당장 모든 소년들을 죽여라. 그리고 남자 옆에 잠들어있는 모든 여자들을 죽여라. 그러나 너희 자신들을 위하여, 남자와 잠자리를 결코 같이 하지않은 소녀들만 살려두라.'
이 사람이 진정 신으로부터 살인하지 말라는 명령을 들은 그 모세일 수 있는가? 그렇지 않으면 그는 사실 모세의 탈을 쓴 알렉산더 얀네우스가 아닐까?
<78쪽>
17세기 아마(북아일랜드 남부의 주)의 대주교이며, 아일랜드 전국 수석 대주교인 제임스 어셔James Usher는 세계가 창조된 날을 기원전 4004년 10월 3일 일요일로 계산했다. 어셔의 단정은 1701년에 발행된 흠정역 성서에 포함되어, 성서적 진리로 간주되었다. 어셔는 더 나아가, 아담과 이브는 기원전 4004년 11월 10일 월요일에 낙원에서 쫓겨났으며, 노아의 방주는 기원전 1491년 5월 5일 아라랏산에 도착했는데......
<87쪽>
모세5경이 전하는 이야기에는 엘과 야훼라는 신들이 등장하지만, 엘은 어느 때에는 남성으로 또 어느때에는 여성으로 그리고 종종 복수로 언급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창세기의 유명한 서두는 복수의 신들에 대해 말한다. "최초에 신들이 지구를 창조했다." 고고학자들은 또한 야훼의 복수형을 찾아냈다. ...... 유대의 예언자들은 반복적으로 그들의 민족이 야훼가 아닌 다른 신들, 즉 바알, 아몬, 케모쉬, 그리고 탐무즈와 같은 신들을 숭배한다고 비난하였다. 고고학자들은 아테네, 헤라클레스, 그리고 그 외의 여러 신들이 이 지역에서 숭배되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예레미야는 유대에서 숭배되는 많은 신들이 그곳의 도시 수와 같으며, 예루살렘의 제단은 시장의 노점 수와 같다고 한탄하였다. 야훼가 왜 그렇게 질투많은 신인가는 이상한 것이 아니다. 그는 많은 경쟁자들에 대해 화가 나 있었다.
기원전 6세기에 헤라클레이투스는 제우스로 불리는 한 신에 대해 글을 썼지만, 그가 다른 이름들로 불려지는 것에 대해서 신경을 쓰지 않았다. 피타고라스, 파르메니데스, 크세노파네스, 그리고 다수의 사람들이 유사한 언급을 하였다. 플라톤의 많은 작품에서 나타나는 것은 그가 '일자一者'라고 부른 것에 대한 철저한 칭송과 옹호였다. 그는 일자를 신과 동등하게 여겼으며 '존재'로 정의하였다. 스토아학파나 견유학파의 철학자들 또한 대중적인 신들은 무수히 많으나 참된 신은 하나라고 주장하였다.
<90쪽>
요세푸스는 철저하게 플라톤적인 용어로, 모세가 '창조되지 않고 영원히 불변하며, 인간의 생각을 초월하는 아름다운 일자'인 신을 말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고귀한 정서와, 우리가 실제로 타나크에서 발견한 시기심 많고 편파적이며 무자비한 야훼가 서로 조화를 이루기는 불가능하다. 야훼를 플라톤화 시키고자하는 요세푸스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야훼는 실제로 오로지 자민족의 이익을 대변하는 영락없는 부족의 신이다. 플라톤이 성실하게 비인격적이고 보편적인 신을 정교하게 다듬어 낸 데 반해, 유대인들은 상당히 불쾌한 인격적인 문제들을 지닌 부족의 신을 신의 유일한 모습으로 격상시켰다.
유대인이 우리에게 일신론을 남겨주었다는 생각을 일소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 바로 최근에 발생한 여신 야훼의 발견이다. 이스라엘 전역의 고고학적 유적지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발견되는 것은 작은 여성의 모습을 띈 상像으로 약 3,000여개가 발견되었다. 1960년대 후반에 헤브론 근처 키르벳 엘콤에서 기원전 8세기의 '야훼 그리고 그의 아쉬라'라고 쓰인 명문이 발견되었다. 1970년대에는 시나이의 컨틸렛 아주르드에서 또다른 명문이 발견되었다. 이 명문들은 이 작은 조상들이 '아쉬라'라고 불리는 야훼의 여성 배우자를 묘사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남신과 여신을 숭배했다는 것은 놀라운 것이다. 왜냐하면 타나크는 어떠한 여신도 언급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 아쉬라는 거의 40번 정도 언급되었다. - 비록 이들이 여신을 언급하는 것이라고는 결코 알아차릴 수 없었지만 - 한 현대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후에 성서작가들은 조직적으로 아쉬라를 완전히 고쳐 썼다. 그들은 텍스트에 나타난 그녀의 존재를 바꾸어 버렸다'
번역자들은 원래의 텍스트에서 '아쉬라Ashera'라고 언급된 것은 모두 인격적 여신이 아니라, 한 신성한 대상을 가리키는 이름인 양, 'the Ashera'라고 번역하였다. 그들은 '그녀'를 '이것'으로 바꿔버렸다. 이 문제는 킹 제임스 성경의 번역자들에 의해 악화되었다. 그들은 '아쉬라'라는 말이 무엇을 말하는지조차 몰랐으며, 이 말이 신성한 숲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몇몇의 학자들은 아쉬라 의례의 흔적을 '지혜Wisdom'의 여성적 모습에서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을 지적했으며, 이것은 타나크의 여러 곳에서 나타난다. 여신 'Wisdom'은 지혜를 의미하는 그리스 여신 'Sophia'의 유대적 버전이다. 그녀는 '철학자들' 혹은 '지혜를 사랑하는 자들'의 존경을 받는 여신이다. 그러나 타나크에 나타나는 '지혜'의 모습은 아쉬라, 아프로디테, 이쉬타르처럼 지중해 지역에서 숭배되는 위대한 여신의 강력한 모습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 타나크를 만든 사람들은 여신의 중요성을 삭제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이쉬타르와 그녀의 배우자 마르둑의 위대한 신화를 에스더와 모르드개라 불리는 유대인 커플의 단순한 이야기로 바꾸어 버렸다.
<102쪽>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종교적 문서는 고대 이집트에서 발견됐으며, 그 내용은 오시리스 이야기다. 오시리스는 인간이 된 신이며, 사람들에게 참다운 삶과 종교를 가르치며 이집트를 돌아다녔다. 그는 악의 힘에 의해 죽었으나, 기적적으로 부활하여 하늘로 올라가 사후세계의 심판관이 되었다.(중략)
약 2천년 후에, 지중해 지역의 각 문화들은 불멸을 약속하는 이 신화를 받아들였으며, 이 신화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그들은 세련된 이집트 영성과 자신들의 토착신화를 결합하여, 고대세계의 다양한 '신비종교'를 창조하였다. 각 지역의 미스테리 종교는 신인神人의 죽음과 부활이라는 신화를 자신들에게 맞게 각색해서 가르쳤으며, 이 신화는 각기 다른 지역에서 다른 이름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이 미스테리가 시작된 이집트에서는 신인은 오시리스였고, 그리스에서는 디오니소스로 불려졌고, 소아시아에서는 아티스로 알려졌다. 그리고 시리아에서는 아도니스, 페르시아에서는 미트라스, 알렉산드리아에서는 세라피스로 불려졌다.
신비종교는 고대세계에서는 대단히 인기가 있었다. 고대의 위대한 철학자나 정치가 대부분이 입문했으며, 다수의 로마황제들도 입문하였다. 신비주의에 입문한 사람들은, 신인신화는 의미심장한 우화라는 것을 배웠으며 이 우화의 모든 요소들은 영지를 경험하게 하는 심오한 영적 진리로 해독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113쪽>
바울은 기독교의 위대한 비밀은 '너 자신 안에 있는 그리스도'라는 신비한 계시라고 선언한다.(Colossians 1:25~28)
<115쪽>
1세기의 유대 영지주의자들은 이교도의 영성으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 예를 들어, 치유자The Therapeutae들은 모세와 여호수아의 신화에 대해 비유적인 해석에 근거하여, 그들 자신의 유대적 신비들을 실천했던 일종의 유대적 신비집단이었지만, 또한 그들은 위대한 이교 성인인 피타고라스의 추종자이기도 했다.
<116쪽>
'구세주the Messiah(히브리어masiah)'라는 말은 '기름 부어진 자'를 의미하며, 왕이나 정신적인 지도자를 의미한다. 그리스어로 번역하면 '크리스트'가 되고, '여호수아'는 '예수'가 된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그들의 구세주인 여호수아 혹은 그리스도 예수의 복귀를 기다리고 있었다.
성서의 번역자들은 항상 히브리 이름인 '여호수아'를 사용하여 구약의 영웅을 지칭하지만, 그리스 번역어인 '예수'는 신약의 영웅을 언급할 때 사용한다. 이러한 교묘한 속임수는 신약의 예수가 바로 구약의 여호수아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게 한다.
초기의 기독교인들은 하스몬가의 광신적인 유대 문자주의에 대항했던 유대 영지주의자들이었다. 하스몬가의 종교적으로 편협한 신앙은 세계에서 유대인들이 극단적으로 좋지않은 평판을 받게 만들었다. 바울이 사랑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지중해 전역을 여행중이던 때에는 이미 유대인들에 대한 미움이 점차 확대되고 있었다. 그리스와 로마작가들은 습관적으로 유대인들을 모든 인종 중에서 가장 반사회적인 인종으로 묘사하였다. 유대인들은 그리스와 로마의 인문정신을 경멸하고, 터무니없이 음식에 대한 규제와 미신을 가졌고, 그들자신을 인문정신으로부터 분리시켰다. 키케로는 유대교를 '야만적인 미신'이라고 평가했다. 당시에 만연된 반유대정책에 직면해서, 바울같은 유대영지주의자들은 예수의 신비적 종교가 유대와 이방인을 구분하는 벽들을 허물어뜨리기를 희망했다.
영지주의에서는 구약의 학살자 예수가 기독교의 온화한 예수로 변모하였다. 그 새로운 예수는 자유롭게 사고하는 인정많은 영지주의의 초인이며, 또한 유대의 메시아이고, 동시에 이교도의 신인神人이다. 그는 학살자 예수처럼 극단적인 야만성을 가지고 적들을 정복하며 이방인을 싫어하는 애국자가 아니다. 그는 비폭력을 옹호하는 평화주의자다. 그는 '출애급기'에서 발견된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타리오의 법칙에 호소하지도 않았다. 대신에 그는 우리의 적 조차도 사랑해야 한다는 소크라테스의 메시지를 선언하였다. 이러한 예수의 가르침은 국가의 구원이 아니라 개인의 구원을 가져다 주었다. 그의 신은 오직 유대인만을 사랑하는 편파적, 분파적인 신이 아니라, 유대인과 이방인을 똑같이 사랑하는 보편적인 신이며, 영지주의의 신이다.
복음서 이야기는 문자주의 유대교에 대한 비판이다. 이 이야기의 영웅은 영원히 종교적 권력에 대해 비판하고 그들을 독사라고 부르며, 구약의 신을 악마라고 선언한 유대교의 이단자다. 그는 끊임없이 유대의 종교적 법을 깨뜨리고 이와같은 일을 하도록 제자들을 격려했다. 학대받는 사람들 즉 매춘부, 세리, 나환자 그리고 소외된 사람들과 친하게 지냈다. 그는, '영지의 열쇠'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스스로 들어가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다른사람들이 들어가는 것도 허락하지 않는 '율법의 교사들'을 비난했다(Luke11:52). 이 이야기의 예수는 영지주의자처럼 말하고 행동한다.
<120쪽>
부유한 로마인들은 동방의 신비한 종교들을 취미로 접하며 그들의 여가시간을 보냈다. 부유한 귀족, 정치인 그리고 황제들까지도 죽었다가 부활하는 다양한 신인의식의 입문자가 되었다. 마크 안토니는 그의 수호신성으로 디오니소스를 선택했고, 클라우디우스는 아티스를 지지했으며, 베스파시안은 세라피스를 숭배하고, 도미티안은 오시리스를 공경했다. 로마인들이 가장 증오하는 적인 페르시아인들이 섬기는 신조차도 황제의 총애를 받았다. 코모도스 황제가 미트라스 미스테리아에 입문함으로써.
문자주의 기독교는 혼란스러운 영적 시장에서 지지자를 모으기 위해 경쟁을 벌였던 또 다른 소수 종파였다.
<150쪽>
'이슬람'은 '복종'을 의미하며...
<151쪽>
'수피'라 불리는 신비주의적인 무슬림에 따르면 이슬람은 무하마드 주변에 형성되었던 작은 영지주의자들의 모임으로부터 시작되었으며, 그는 신성한 지혜와 소통하는 영감을 받은 예언자였다. 그러나 몇년 지나지 않아서, 그는 아라비아에서 신학적, 사회적, 군사적으로 가장 강력한 존재가 되었다. 무하마드는 폭도가 된 신비주의자였다. (중략)
기독교 역사가 어떻게 몇 세기 만에 평등주의적인 영지주의에서 전제주의적인 문자주의 종교로 타락할 수 있었는가를 입증하는 것이라면, 이슬람의 역사는 동일한 과정이 몇십년 만에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190쪽>
역사는, 내가 깨어나려고 하는 꿈이다. - 제임스 조이스 James Joyce, [Ulysses]
<193쪽>
다른 한 쪽에 훌륭한 책들이 많은데도 한 책에만 집착하는 것은 분명히 미친 짓이다. 우리가 생각할 때는 [우파니샤드], [도덕경] 그리고 [지혜의 보석Crest Jewel of Wisdom]은 성서보다 더 훌륭하다. 그리고 만일 이들이 너무 동양적이라면, 플라톤과 플로티누스 같은 고대 철학자들을 보라. 루미나 하피즈 같은 수피들의 숭고한 시詩를 확인해 보라. 중세 기독교 신비주의자인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초월적 지혜를 훑어보라. 그리고 만일 너무 오래되었거나 이국적이라면, 휘트먼Walt Whitman의 무아경의 시, 엘리엇T. S. Eliot의 [Four Quartets(4개의 4중주)]를 읽어보라. 왜냐하면 이 두 작가는 모세나 무하마드보다도 훨씬 신비적이다. 그러나 영감의 원천으로서 당신이 무엇을 선택하든지, 이것은 단지 책일 뿐이라는 것을 기억해라. 여기에는 지금 당신이 읽는 책도 포함되어 있다.
현대세계는 우리가 선택해야 할 너무 많은 영감의 원천들을 제공해서, 종종 '영적인 슈퍼마켓'으로 불려진다. 그러나 슈퍼마켓이라고 무엇이 잘못된 것인가? 우리가 어렸을 때는, 판매기일이 지나고 먼지 쌓인 물건만 있어서 제한된 선택 밖에 할 수 없었던 종교적인 구멍가게만 있었다. 지금은 우리가 선호하는 영성을 고르고 선택할 수 있다. 우리는 이것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고, 그리고 저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환상적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자만하지 마라. 그리고 이것을 축하하자. 이것은 교회가 진리를 독점했던 지난날로부터 벗어나 앞으로 전진하는 거대한 발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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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도서관에서 찾았다. 1,2부로 되어 있는데 1부는 The Bathwater, 2부는 The Baby다. '목욕물을 버리면서 아기까지 버린다'는 속담을 기억해내고 웃었다. 딱딱한 내용이지만 종종 피식피식 웃곤 한다. 좋은 대목엔 연필로 밑줄을 긋다가 그만두었다. 책이 온통 밑줄천지가 될 것 같아서.ㅋ 이런 책, 이런 글을 쓰는 사람이 천재가 아닐까 감탄하며 읽는다.
원래는 같은 저자들의 책, [예수는 신화다The Jesus Mysteries]를 읽고 있었다. 꽤 오래전부터 pdf파일을 갖고 있었지만 거들떠 보지도 않았는데, 흔한 기독교 비판서일 거라고 멋대로 오해하기도 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배울 준비가 되면 스승은 찾아온다'는 말처럼 내가 준비되어있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지난 10여년간 추가로 읽고 듣고 배워온 것들이 이 책을 이해하는 데에 분명한 도움이 되고있음을 떠올릴 때마다, 역시나 삶이란 '지나고 보면 모두 필연'임에 즐거워진다.
이들이 쓴 책이 여러 권이고, 국내번역서도 많은데 나는 몰랐다.ㅋ 내가 읽고 녹음까지 해놓은 [깨어나세요Lucid Living]도 썼는데 한글이름이 프릭(프리크가 아닌)이라고 되어있어서 내 검색에 안걸렸던 것도 바보같은 일이다. [예수와 잃어버린 여신Jesus and The Lost Goddess]도 번역본이 나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