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쪽>
인류의 고통을 사탄의 책임으로 돌리려는 시도는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다. 왜냐하면 사탄 또한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 존재라서, 그의 능력은 하나님이 암묵적으로 허용한 범위 안에서만 발휘되기 때문이다. '아담의 원죄'라는 설명으로써 인류의 고통을 인류 자신의 책임으로 돌리려는 시도도 같은 처지이다. 하나님께서 정성껏 빚은 창조물이 괘씸하게도 그 첫 번째 시험조차 통과하지 못했다고? 앞뒤가 맞지 않는다. 당연히 하나님도 이 문제에 관여되어 있다고 봐야 합당하다.
<75쪽>
스티븐슨은 추적 조사를 통해서 (전생을 기억하는) 이 아이들의 향후 인간관계, 학업, 직업적 능력, 행복도가 다른 사람들과 별 차이가 없음을 발견했다. 대체로 보아, 자발적인 전생 기억은 당사자에게 짐도 아니고 자산도 아닌 듯하다. 하지만 드물게는 현생의 삶을 복잡하게 만드는 수도 있다. 아동심리요법가들은 '성인이었던 기억'이 아동기를 침범했을 때 나타날 수 있는 발달장애와 병리를 연구하기 시작했고, 임상심리학자인 헬렌 웜바크는 [전생체험Reliving Past Lives]이란 저서에서 두 가지 사례를 짧게 소개한 바 있다.
극도로 내향적이었던 린다Linda 라는 다섯 살짜리 아이였다. 린다는 모든 인간관계를 거부하고 거의 회복하기 어려운 지경의 자폐증을 나타냈다. 흥미롭게도 린다는 한 번도 배운 적 없는 높은 수준의 계산과 읽기 능력을 보였다. 그런데 린다는 놀이치료 중에 웜바크 박사에게 반복적으로 젖병을 물림으로써 자신이 현재 자신의 상태 무력하고 수동적인 어린아이의 모습 - 를 얼마나 싫어하고 있는지를 드러냈다. 린다는 웜바크와 역할을 바꾸어서 마치 웜바크를 무력한 아이처럼 대했다. '어린아이'라는 자신의 현재 모습에 대한 좌절감과 분노를 웜바크에게 전달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 일이 있고 나서 린다의 치료는 빠른 효과를 보였다. 마침내 린다는 또래 친구들과 함께 평범한 유치원에 다니게 되었다. 대신 린다는 읽기와 계산 능력을 잃었고, 다른 아이들처럼 자기 이름을 쓰는 법을 새로 배워야 했다. 그리고 가족이 곧 이사를 가는 바람에 웜바크와 연락이 끊어졌다. 웜바크는 린다가 뭔가 알 수 없는 이유로 아기의 몸을 가진 현생을 거부하고 전생의 정체성에 집착했던 것으로 추정했다. 린다는 치료를 통해 새로운 삶을 받아들인 후로 전생에 대한 집착이 멈춤과 동시에 전생의 능력도 상실했고, 다른 아이들과 똑같은 백지상태가 되었다.
웜바크는 제멋대로 구는 과잉행동을 보이던 피터Peter라는 아이도 만났다. 피터는 웜바크에게 야단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고 나서야 경찰관이었던 전생에 대해 털어놓았다. 피터는 흡연이나 야구처럼 전생에 좋아했던 일들을 즐길 수 없는 현실에 화가 난다고 말했다. 당황한 부모가 피터로 하여금 전생 이야기를 떠들지 못하도록 억압해왔음이 분명했다. 하지만 피터의 상태는 린다와 달리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석 달이 지나도록 호전의 기미가 없자 부모는 치료를 중단해버렸다.
심리학 분야에서 이런 사례들이 보고되기 시작한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러니 윤회를 뒷받침하는 증거들이 계속 쏟아져나올지는 좀더 지켜봐야 한다. 다만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이미 다양한 분야에서 윤회의 증거가 충분히 발견된 만큼, 심리적 장애증세를 보이는 아이들 중 일부가 전생과 현생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다고 해도 그리 놀랄 일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자발적으로 떠오른 전생의 기억이 아이들에게 문젯거리가 되지 않게 하려면 무엇보다도 그것을 억누르거나 비웃지 말아야 한다. 어떤 문제든 공론화될수록 더 쉽게 풀리는 법이다.
<91쪽>
다음은 1985년에 발간된 스타니슬라브 그로프 박사의 [뇌를 넘어서Beyond the Brain]에 소개된 사례이다. 그로프의 환자 타냐는 34세의 교사이자 두 아이를 혼자 기르는 이혼녀였다. 타냐는 우울감, 불안, 극심한 피로 탓에 정신요법을 받고 있었다. 그런데 그저 신체적인 문제라고만 여겨졌던 그 증세들에 대한 예상치 못한 해결책이 세션 중에 발견되었다.
"타냐는 지난 12년간 만성 축농증으로 고생해왔다. 결혼 직후부터 시작된 콧속 문제는 그녀를 온갖 방법으로 괴롭혀왔다. 머리가 아프고, 뺨과 입가가 쓰리고, 열이 나고, 콧물이 쏟아지고, 재채기가 터지고, 숨이 막혔다. 그녀는 요란한 기침과 함께 잠을 깨기가 다반사였고, 어떨 때는 그 증세가 서너 시간씩 지속되기도 했다. 그녀는 알레르기 검사를 수차례 받았고, 전문의로부터 항히스타민제, 항생제, 멸균수 코세척 등의 처방을 받았다. 그 모든 치료가 실패로 돌아간 후에 의사는 수술을 권했고, 타냐는 그것을 거부했다.
어느 날 그녀는 자신의 탄생과정을 재체험하는 세션 도중에 머리가 짓눌리고 조여오고 숨이 막히는 느낌에 휩싸였다. 그녀는 그 느낌이 자신의 축농증 문제와 깊이 연결되어 있음을 알아차렸다. 어쨌든 그 느낌은 더욱 증폭되었고, 출생과정의 경험임이 분명한 여러 단계를 통과한 끝에 그녀는 전생으로 여겨지는 기억들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그 압박감, 짓눌림과 숨 막힘이 물속에 빠진 상황으로 변모되었다. 타냐는 자신의 몸이 널판에 묶여 있고, 마을사람들이 자신을 물속으로 서서히 밀어넣고 있다고 느꼈다. 울부짖고, 헉헉거리고, 콜록대고, 엄청난 양의 콧물을 쏟는 등의 격렬한 반응을 보인 후에야 비로소 타냐는 전생의 상황과 장소를 인식할 수 있었다.
그녀는 뉴잉글랜드 지역에 살던 어린 소녀였는데, 비범한 영적 경험을 많이 한 탓에 이웃들로부터 마녀로 낙인이 찍혔다. 어느 날 밤 마을사람들은 그녀를 근처 자작나무숲으로 끌고 가서 널판에 묶어 차가운 연못에 거꾸로 떨어뜨렸다. 그녀는 밝은 달빛에 비친 가해자들의 얼굴들 속에 현생의 아버지와 남편이 끼어 있음을 발견했다. 그 순간 그녀는 현생의 많은 요소들이 바로 이 장면의 충실한 재현임을 깨달았다. 아버지, 그리고 남편과의 유별난 관계를 비롯한 현생의 여러 측면들이, 아주 깊은 부분까지 홀연히 이해가 되었다."
그로프는 이것이 어디까지나 그녀만의 주관적 경험인 만큼 윤회의 증거로 여겨지거나 축농증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해석되어선 안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로프는 이렇게 덧붙였다. "그녀를 알던 모든 사람이 경악했다. 이 경험 후에, 그녀를 12년간 괴롭혀왔고 의사들도 심각한 난치병으로 인정했던 그녀의 축농증이 씻은 듯 나아버렸기 때문이다." 타냐의 사례는 전생퇴행 요법들이 밝혀낸 공통된 패턴, 어떤 문제가 한 생에서 다음 생으로 옮겨가는 현상을 잘 보여준다. 신체적 상처, 감정적 상처, 특정한 사람들, 특정한 장소 등이 마치 매듭처럼 엮인 채로 전생으로부터 현생으로 넘어온다. 따라서 가장 깊숙한 차원에서 치유가 이뤄질 때는 당사자의 몸뿐만 아니라 마음과 인간관계까지 함께 치유된다.
'환기' 전생 기억들은 대부분 검증하기가 어렵지만, 그렇다고 모든 사례가 검증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그로프 박사는 [나를 발견하는 모험The Adventure of Self-Discovery]에서 전생 기억의 세부내용들이 나중에, 그것도 매우 특별한 계기로 실제사건으로 확인된 사례를 소개한 바 있다. 이 사례는 전문을 소개할 가치가 충분하다.
당시에 칼은 프라이멀Primal 요법을 통해 출생과정의 여러 측면들을 재체험하고 있었는데, 또 다른 시대의 외국에서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극적인 장면들이 단편적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강렬한 감정과 육체적 감각이 포함되었고, 그것들이 자신의 인생과 깊은 관계가 있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그러나 그들 중의 어떤 장면도 이번 생의 것은 아니었다. 터널과 지하창고, 병영, 두꺼운 벽, 성벽 같은 것들이 보였는데 이 모든 것이 바다가 보이는 바위 위의 요새를 구성하고 있었다. 그리고 여러가지 상황에 있는 병사들의 모습이 거기에 뒤섞였다. 병사들은 스페인 출신 같은데 장소는 스코틀랜드나 아일랜드 같아 보이는 것도 이상했다.
요법이 진행되면서 상황이 좀더 극적이고 복잡해졌으니, 격렬한 전투와 피비린내 나는 살육 장면들이 자주 나타났다. 병사들에게 둘러싸여 있었지만 칼 자신은 사제였는데, 어느 시점에서 성서와 십자가에 관련된 가슴 뭉클한 심상이 떠올랐다. 이때 그는 자신의 손에서 인장이 새겨진 반지를 보았고 거기에 나타난 글자들을 읽을 수 있었다. 전체적으로는 어떤 상황인지 알 수 없었으나 그림에 솜씨가 있었던 칼은 이런 장면들을 회화로 표현해 나갔다. 그리하여 일련의 스케치와 아주 강렬하고 인상적인 지두화(指頭畵:손 끝에 먹물을 묻혀서 그린 그림)들이 생겨났다. 이것은 요새의 경관과 살육 장면들, 그리고 칼 자신이 영국병사의 칼에 찔려 성벽 밖으로 떨어진 뒤 바닷가에서 죽어가는 모습이었다. 이 중에는 반지를 낀 그의 손을 그린 것도 있었는데 그 반지에는 사제 이름의 머리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이런 단편적인 장면들을 연결하여 이야기를 채워나가면서, 칼은 그것들과 현생의 삶 사이에서 점점 더 많은 유사점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는 자신이 현재 겪고 있는 감정적, 심리적 문제와 대인관계의 갈등이 이 기이한 전생의 기억과 어떤 식으로든 관련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갑자기 칼은 아일랜드에 가서 휴가를 보내고 싶어졌고, 이것이 의문 해결의 전환점이 되었다. 돌아온 뒤에 그는 자신이 찍은 사진들을 슬라이드로 관찰하다가 똑같은 경관을 11번이나 찍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일랜드 서쪽 바닷가의 그 경관에 특별히 관심이 끌렸던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칼은 지도를 보고 자신이 어느 지점에서 어떤 방향으로 사진을 찍었었는지를 계산해본 결과 그의 주의를 끈 장소가 '둔 안 오르'(황금 요새)라 불리는 옛날 요새의 유적임을 알게 되었다.
프라이멀 요법 중에 겪은 체험들과 이 장소가 관계가 있지 않을까 싶었던 칼은 '둔 안 오르’의 내력을 조사해보기로 결심했다. 놀랍게도 그는 월터 롤리(Walter Raleigh/1552-1618, 영국의 군인, 탐험가이자 작가) 시대에, 스페인군이 그 요새를 점령했다가 곧 영국군에게 포위당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월터 롤리는 스페인군에게 성문을 열고 영국에 항복한다면 요새 밖으로 탈출할 수 있도록 허용하겠다고 약속했다. 스페인군은 이 조건을 받아들여 항복했지만 영국군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요새 안으로 들어온 영국군은 스페인군을 무자비하게 죽여 성벽 밖의 바닷가나 바닷물 속으로 던져버렸다.
칼은 자신의 내부 깊은 곳에서 힘겹게 끄집어낸 장면들의 사연을 확인하고 크게 놀랐지만 여기서 만족하지 않았다. 계속해서 도서관의 장서들을 뒤적이던 그는 '둔 안 오르 전투'에 관한 특수 기록을 발견했다. 거기에는 스페인 병사들과 함께 온 사제가 있었는데 그도 병사들과 함께 죽임을 당했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그의 이름의 머리글자들은 칼이 자신의 심상 속에서 인장이 새겨진 반지를 보고 스케치했던 글자와 같았다.
환기된 전생기억에 대한 논의에서 헬렌 웜바크 박사의 연구를 빼놓을 수 없다. 그녀의 연구는 개별적 사례 중심의 연구들과는 또 다른 관점을 제공하고 있다. 그녀는 [전생체험Reliving Past Lives]이라는 책에서, 수년에 걸쳐 무려 750여 명의 내담자에게 최면퇴행을 반복 시행하여 얻어진 두 가지 장기 연구결과를 보고했다. 그녀는 최면퇴행을 통해 한 개인이 여러 전생을 기억해내는 동안 드러나는 인과관계를 연구하는 대신, 과거의 역사적 사실들에 대한 세부정보를 풍부하게 수집하고자 했다.
그녀는 피험자들의 체험이 자신의 암시에 의해 특정 시대나 장소로 유도되는 일이 없도록 경계하면서, 열 명에서 열두 명 사이로 구성된 집단을 대상으로 전생퇴행 최면을 실시했다. 그리고 최면이 끝나면 곧바로 질문지를 주어 최면 상태에서 떠올린 전생의 자기 모습과 그 시대상에 대해 답하도록 했다.
당신은 남성이었습니까, 여성이었습니까? 당신은 어떤 일을 했습니까? 당신의 사회적 신분은 어땠습니까? 당신은 어느 나라에 살았고, 그 시기는 언제였습니까? 당신은 어떤 옷을 입고 있었습니까? 그 옷은 무슨 재질로 만들어졌습니까? 당신은 어떤 음식을 먹었습니까? 당신은 어떤 도구들을 사용했습니까? 당시에는 어떤 돈이 통용되었습니까? 당시에 정부는 어떤 역할을 했고, 또 사제들의 행태는 어떠했습니까? 당시 사람들의 살림살이와 신앙생활 등은 어떠했습니까?......
이렇게 수만 건의 정보를 수집한 후에, 그녀는 피험자들이 보고한 내용과 실제 역사가들이 추적해낸 내용이 얼마나 유사한지를 확인하기 위해 역사 서적들을 탐독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기억'이 정말로 역사적 사실과 꼭 들어맞을까? 틀림없이 그 시기에 그곳에서 살았다는 그들의 주관적 확신은 일리가 있는 것일까, 아니면 터무니없는 주장일 뿐일까?
다양한 시대와 장소에 대해 몇 번이고 반복해서 조사했지만, 헬렌의 피험자들이 보고한 기억은 정말로 역사가들의 추정과 정확히 일치했다. 그들은 당시의 옷차림, 화폐, 그릇, 식생활, 사회생활 등을 세부사항까지 맞췄을 뿐 아니라 통계적으로 봤을 때 당시의 상중하 신분 계급의 인구수 비례와도 맞아떨어졌다. 헬렌의 피험자들은 과거 시대를 정확히 묘사했을 뿐만 아니라, 역사가들이 밝혀낸 정보들을 더욱 흥미롭게 채색하기까지 했다.
헬렌이 비교분석한 수많은 역사적 패턴들 가운데서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바로 가장 단순한 정보, 즉 각 시대의 남녀 인구비율이었다. 놀랍게도, 어떤 시대를 대상으로 하든, 험자들이 기억해낸 전생의 성별계치는 오차 1퍼센트 이내의 50:50이었다. 다시 말해서 전생 기억속의 남녀 비율은 어떤 시대에서든 기이할 만큼 균등하게 나타났고, 그것은 피험자들의 실제 남녀 비율과는 무관했다. 특정 시대의 전생을 기억해낸 '피험자들의 남녀 비율'이 때론 70:30까지 기울어져도, '그 전생에서의 남녀 비율'은 거의 정확한 반반이었다. 오직 전쟁 중인 시대와 장소에 해당하는 전생들만이 예외였고, 이 또한 당시엔 남성보다 여성의 인구가 더 많았다는 역사가들의 주장과 일치했다.
헬렌의 연구는, 최면을 통한 전생퇴행은 나폴레옹이나 클레오파트라처럼 유명한 인물들의 삶을 떠올리게 하기 일쑤라는 세간의 믿음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사람들은 최면상태에서 떠올린 '전생'이란 대개 텔레비전이나 책으로 접해온 공주, 기사, 장군, 혁명가로서의 삶 또는 어떤 낭만적인 장면일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헬렌의 피험자들이 떠올린 전생의 대부분은 가난하고 팍팍한 삶, 지루하고 반복적인 일상이었다고 한다. 그녀의 피험자들 중에는 자신의 전생을 역사적 유명인사로 보고한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적어도 윤회를 믿는 데 대해 지성인들이 찜찜한 기분을 느낄 이유는 전혀 없다." - 이안 스티븐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