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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5. 16. 16:15 책에서 발췌

 

 

 

<127쪽>  사례 : 마이클 갤런더

 

마이클 갤런더 박사처럼 복 받은 사람은 그리 흔치 않을 것이다. IBM의 동료 연구원들도 모두 그렇게 생각했다. 그는 머리 좋고 건장하며 멋진 데다가 신망까지 두터웠다. 예리한 분석력을 구사해 생각에 막힘이 없는 그는 전자 분야에서는 '전문가'로 인정받고 있었다. 그는 길거리에서 만나는 주정뱅이나 부랑자들을 위해 항상 주머니에 잔돈을 넣고 다녔으며, 또다른 주머니는 먹고 남은 빵조각이 든 비닐봉지로 불룩했는데 근처 골짜기에 둥지를 틀고 있는 비둘기들을 먹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가 원인을 알 수 없는 마음의 갈등으로 몹시 괴로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출세와 업적 이면에 마음을 쥐어뜯는 듯한 죄의식과 자기혐오가 얼마나 강렬한 것인지를 아는 사람은 오직 마이클 자신뿐이었다. 아침마다 거울 속의 자신을 마주 대할 때면 그의 마음은 혐오감으로 가득 차, 수염을 깎는 동안에도 불쾌감이 치밀어 올랐다. 무의식 중에 달려오는 차에 뛰어들려는 자살충동도 여러차례 있었다. 왜 이런 증상에 시달려 왔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또한 그는 아내 섀런과 사랑을 나눌 때마다 참기 어려운 공포에 사로잡혔다.

슬럼가를 끼고 있는 뉴욕의 남브롱크스에서 유태인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어머니에게 미움 받았고 아버지로부터도 거의 완전히 무시당하며 자랐다. 그들에게는 이 외아들이 화풀이의 대상이었다. 10대 후반이 되어서는 완전히 주눅이 들어 세상은 두려운 것이라는 믿음이 강하게 자리잡았고,낯선 사람들과의 접촉조차 꺼렸다. 자동차의 휘발유가 떨어져도 점원과 얘기하는 게 두려워 주유소에 들어가기를 망설일 정도였다.

마이클은 고등학교와 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다녔지만, 20대 초반에는 이미 공포와 불안, 내향성이라는 문제가 쌓여가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극복하려고 마음먹은 그는 지난 15년 동안 전통적 심리치료를 받아왔다. 일의 특성상 자주 옮겨다녀야 했기 때문에 세인트루이스, 클리블랜드, 뉴욕에서 꾸준히 진료를 받았다. 덕분에 불행한 성장과정에 따른 공포감과 불안감으로부터 서서히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어떤 의사도 그의 죄악감과 자기혐오감, 그리고 섀런에게 항상 느끼는 불안감을 없앨 수는 없었으며, 당연히 원인도 알 수 없었다. 섀런에게 구혼하기 전의 10대 때 사귀었던 여성과의 관계에서는 한 번도 이런 문제가 없었다. 오직 아내 섀런과의 관계에서만 자신의 행위로 그녀가 다치지 않을까 하는 어처구니없는 공포에 사로잡히는 것이었다.

마이클에게는 이 밖에도 몇가지 고민이 있었다. 산 채로 묻히는 데 대한 두려움으로 식은땀을 흘리며 숨을 몰아쉬곤 했고, 큰 소리에도 잘 깨지 않는 그가, 아주 작게 속삭이거나 살금살금 걷는 소리에는 이불을 걷어차며 벌떡 일어났으며, 화내는 것을 몹시 두려워했고, 어렸을 적부터 흰옷을 입은 여자가 살해되는 환상에 시달려 왔다. 아무 때나 팔 뒤쪽이 근질거리면서 튀어나오는 부스럼도 큰 문제였다. 

마이클은 어느 날 세인트루이스의 정신과 의사를 찾아 진료를 기다리면서 부스럼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는데 한순간 자기 자신의 이미지가 보였다. 그것은 마이클 갤런더가 아닌, 동일한 영혼을 지닌 자신의 분신 같았다. 이 또다른 자아가 누군가를 밀치고 있었는데 그 상대는 부스럼이 나는 팔 뒤쪽을 움켜쥐고 있었다. 그는 마음을 어지럽힌 이 이미지에 대해 의사에게  말하지 않았다. 미쳤다는 말을 들을 것 같아서였다.

마이클이 토론토로 옮겨 왔을 때는 38세였고 정신과 진료는 아주 지긋지긋해져 있었다. 그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방법을 찾고 있었다. 점성술과 신비주의, 그리고 동양 고대의 지혜를 탐구하기 시작했을 무렵 그는 토론토 심령연구협회 모임에 나갔다가 마침 조엘 휘튼 박사의 강의를 듣게 되었다. 용기를 얻은 그는 휘튼 박사를 찾아가 15년 동안의 치료에도 불구하고 낫지 않는 부스럼 문제를 털어 놓으며 퇴행최면으로 원인을 규명할 수 있을지 물었다. 이번에는 미쳤다는 이야기를 듣지 않으리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그는 한 때 종교개혁 시대 독일 쾰른의 교회를 돌아다니며 일하던 스웨덴 출신의 떠돌이 목수 구스타프였다. 터키인의 습격을 걱정하던 16세기 프랑스의 목화 장수 앙리의 삶에서는 중년남자 특유의 협심증 증세가 나타났다. 그는 독특한 악센트로 고대 프랑스어를 몇 마디 하기도 했다. 트랜스상태에 점차 익숙해짐에 따라 마이클은 이들 인격이 분명히 자기 자신임을 인정하게 되었다. 

 

언덕 위에 성이 하나 있었는데, 그 거대한 돌담은 감히 접근하기 어려운 데가 있었다. 어두컴컴한 방에서 초조하게 서성거리고 있는 한 남자, 당당한 체구에 거칠어 보이면서도 슬픈 얼굴의 남자가 바로 그 음산함의 원인이었다. 베젤공 힐데브란트라 불리는 이 독일 기사는 베스트팔렌 동남쪽에 있는 라인강 유역의 작은 영지를 다스리는 고독한 통치자였다. 지금까지의 그의 삶은 좀처럼 구제할 수 없을 정도로 잔인했다. 그의 충동적인 성격은 조금도 용서라는 걸 몰랐기 때문에, 이제는 죄책감과 자기혐오와 두려움에 지쳐 버렸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환상에 매달려 "나는 하느님의 사자다! 나는 하느님의 사자다!” 하고 소리쳤다.

힐데브란트는 31세가 되던 1189년에 독일을 떠나, 제3차 십자군 부대의 지휘자로 팔레스티나의 아크레 부근 사막에 주둔하고 있었다. 검은 십자가 문장이 달린 흰 옷을 입은 그 자랑스런 튜튼인은 목숨을 애걸하는 아랍 여인들에게 불벼락을 내리고 있었다. 그들의 애원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힐데브란트는꿈쩍도 하지 않은 채 포로들을 경멸의 눈초리로 내려다보았다. 주위의 사막에는 싸움에서 처참하게 죽은 아군 기사들의 갑옷이 널려 있었다. 이 용감하고 충성스런 사람들은 그에겐 형제와도 같은 존재로, 그들을 잃고 나니 큰 소리로 통곡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힐데브란트는 이런 마음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야만성을 빌렸다. 그는 부하들에게 명령하여 그 여인들을 버려진 갑옷 사이에 가두고 뜨거운 태양 아래의 모래에 묻었다. 그들은 비명을 질렀지만 목숨을 구할 수는 없었다.

마이클은 평상의식을 되찾자 몸을 떨면서 땀을 흘렸다. 그러나 격변의 결과는 몇 시간 안에 나타났다. 그는 어렸을 적 이후 처음으로 산 채로 묻히는 공포에서 벗어났다. 그로부터 몇 달 동안 마이클은 넌더리나게 이어지는 힐데브란트의 죄악을 차례로 보게 되었다. 한번은 그의 의식이 실제로 기사의 몸에 들어간 듯 말에 올라타서, 아기를 안은 채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여인을 내려다보는 경험을 했다. 나중에 그는 "벌레 보듯이 그 여자를 노려봤습니다. 동정심도, 연민도 없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창을 던져 아이와 여인을 찌르면서 그는 트랜스에서 깨어났고, 그의 뺨으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는 책임을 느끼면서도 자기가 지금 본 광경을 받아들이고 싶지도, 믿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나 마이클 갤런더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진찰실을 나와 정처없이 걷다가 근처 공원으로 가 비둘기 모이를 주기 위해 멈춰 섰다. 그는 비둘기들을 보면서, 어떻게 이 유순한 천성의 자신과 같은 존재가 불쌍한 여인을 죽일 수 있었는지 의문스러웠다. 그러면서 그는 아돌프 히틀러도 개를 사랑했음을 떠올렸다.

마이클이 여러 차례의 저항에 부딪힌 끝에 12세의 힐데브란트를 만난 것은 최면 치료가 시작된 지 1년이 채 되지 않았을 때였다. 이번에는 그의 관심이 이 으스스한 중세 드라마의 다른 등장인물에게로 쏠렸다. 힐데브란트의 부모는 그에게 있어서 낯익은 정도가 아니었다. 그들은 바로 현재의 부모였다. 12세기 베스트팔렌에서도 여전히 그는 사랑없는 결합에서 태어나 고통스런 어린시절을 보냈다. 소외감은 때때로 심한 적의로 변했다.

 

아버지는 힐데브란트에게 칼 쓰는 법을 가르치고 있었다. 이제까지 원한이 넘치도록 쌓인 아이는 기회를 잡고 아버지의 눈을 찔렀다. 심한 상처를 입은 왕은 몇주 후에 죽었다. 사람들은 그가 우연한 사고로 죽었다고 생각했지만, 힐데브란트만은 진상을 알고 있었다. 힐데브란트의 어머니는 교활하고 농간에 능한 사람으로, 여러 파벌의 음모들 사이를 잘도 헤집고 다니며 자신의 이익을 지켰다. 13세가 되자 힐데브란트는 성주의 업무로부터 떠나 있을 시간이 별로 없었다. 그가 점차 성장하자 그에게서 성적 매력을 감지한 어머니는, 성 안에서 여럿을 건드려 보았지만 만족할 수 없어 장난스레 아들에게 접근했다. 이같은 유혹을 못마땅하게 여긴 아들은 어머니를 돌계단 끝으로 밀어붙였다. 격투 끝에 어머니는 계단에서 곤두박질치면서 떨어져 목이 부러져 버렸다. 어머니는 떨어지면서 아들의 팔을 붙잡으려다가 놓쳤고, 그의 팔 안쪽에 심한 상처를 남겼다.

일단 이 사건이 기억에 떠오르자 마이클의 골치아픈 부스럼은 두번 다시 재발하지 않았다. 그의 가슴 속 얼음 덩어리가 천천히 녹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었지만, 아직 체험해야 할 일들이 많이 남아 있었다. 힐데브란트의 비참한 사랑의 전말을 끌어내는 데는 다시 9개월의 진료가 필요했다. 

 

힐데브란트는 왕국을 이어받기 직전에 라헬이라는 여자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 라헬의 아버지는 유태인이었고 왕실의 의사이며 글을 알았다(힐데브란트 일가에는 글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 무렵 왕자는 오랫동안 그의 부모를 뒤에서 조종해 온 수도사의 절대적인 영향력 아래 있었고, 수도사는 왕위를 이어받은 힐데브란트를 마음대로 움직이는 데는 약간의 어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힐데브란트와 라헬은 그들의 관계를 비밀리에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했으나, 수도사의 첩자들은 두 사람이 열렬히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라헬이 아이를 가졌다는 것까지 알아냈다. 이에 수도사는 라헬이 힐데브란트에게 결혼을 요구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러한 결합은 '신을 모독하는 행위'라며 힐데브란트의 마음에 불신의 씨앗을 심었다. 라헬이 결혼을 통해 왕위를 빼앗으려 한다고 말한 것이다. 또한 수도사는 이 장래의 왕에게 "유태인과 결혼하면 안됩니다. 그들은 하늘의 저주를 받은 민족입니다. 왕자께서는 지위에 합당한 정치적 결혼을 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힐데브란트는 이상주의적인 젊은이였으나, 지금으로서는 그 이상을 행동으로 옮길 수 없음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의지를 세상에 드러내고 싶었으나, 자기가 마치 상황이라는 바람 앞에 흔들리는 갈대와 같다고 느꼈다. 그리고 라헬이 아이를 가졌음을 밝히자, 자신의 인생 행로가 여전히 어떤 사건들에 의해 휘둘려지고 있음을 또 다시 깨달았다. 그는 수도사가 말했던 계략을 떠올리고 분통을 터뜨렸다. 분노와 좌절에 휩싸인 힐데브란트는 라헬의 배를 후려치고 그 큰 손으로 목을 졸랐다. 그는 재빠른 동작으로 여자를 성루 버팀대 쪽으로 던져 성벽 아래의 물에 처박았다. 그 후 충격에 휩싸인 힐데브란트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시궁창 물에 반쯤 잠긴 연인의 시체를 내려다 보았다. 숨막힘과 메스꺼움을 느끼며 성루에서 돌아온 그는 사건 전체를 마음 속에서 지워 버리려 애썼다. 그는 피가 나도록 주먹을 움켜쥐며 이를 참아냈다.

망연자실 물러나 있던 힐데브란트가 다시 몸을 일으켰을 때, 그는 무기력할 정도로 조용하고 침착해져 있었다. 라헬은 존재한 적조차 없었던 듯했다. 이런 억압이 정신의 평정을 잃게 했고, 그것은 그를 인근지역에서 제3차 십자군운동을 조직할 정도의 열광적인 그리스도교 광신자로 만들었다. 그는 자기혐오를 굴절시켜 그리스도교의 성지 팔레스티나를 빼앗은 이슬람교도들에 대한 복수심을 키웠다. 그는 아무 것도 느낄 수 없었으므로 자비를 베풀 줄도 몰랐다


휘튼은 트랜스 상태에서 감정이 극도로 격해지는 장면을 다룬 경험이 있었지만, 마이클이 라헬 살해를 극적으로 재현하는 동안 얼굴을 찌푸리며 괴로워하자 혹시 심장 발작이 일어나지나 않을까 걱정하기도 했다. 마이클은 평상의식으로 돌아와 자신이 침상 위에 누워 있음을 깨달았고, 전생을 보기 위해 얼마나 더 견뎌낼 수 있을지 의문스러웠다. 과거의 사건들에 지친 그는 마침내, 지금의 삶에서 왜 자기가 자신을 벌하려는 충동을 갖게 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에게는 섀런과 라헬이라는 두 여성이, 피할 수 없는 카르마에 얽혀든 동일한 영혼임에 틀림없는 것 같았다. 이 관계는 나중에 섀런이 최면상태에서 라헬의 삶으로 돌아갔을 때 확인되었다. 섀런은 힐데브란트에게 살해되던 기억을 생생하게 체험했다.

"따뜻한 봄날 저녁이에요. 나는 성루로 연결되는 문이 달린 침실에 있다가 힐데브란트와 다투면서 침실과 성루 사이를 오가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헐렁한 겉옷을 걸치고 있었는데, 힐데브란트는 그 안에 긴 양말과 셔츠를 입었고 나는 겉옷만 입고 있었어요. 우리는 서로 때리며 소리를 지르고 있었습니다. 그의 고함소리는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었는데, 그 뜻을 파악하려 애써보니 어떤 말에는 영어가 덮씌워져 있었습니다. 힐데브란트는 내게 "이 유대 화냥년! 유대인의 씨는 내 뒤를 이을 수 없어!"라고 소리를 질렀어요.

 

우리는 마침내 성루로 나왔고, 그가 내 배를 힘껏 후려쳤습니다. 나는 몸을 웅크렸고 입가에 피가 흘렀습니다. 이번에는 그가 내 목을 움켜잡고 조르기 시작했어요. 그는 계속 목을 졸랐고 나는 축 늘어져버렸어요. 그가 나를 난간 끝으로 밀어붙이자 내 등에서 무언가가 뚝 부러진 것 같았어요. 그리고는 그가 슬쩍 밀쳤고 내 몸은 난간 너머로 떨어졌습니다. 얼굴을 위로 향하고 머리칼은 흩어져 물에 떠오른 채 거품과 쓰레기 더미에 파묻혔어요. 나중에 성 안뜰에서 여자들이 내 몸을 널판지 같은 곳에 올려 옮겼습니다. 나는 얼굴만 내놓았을 뿐 몸의 다른 부분, 심지어 머리칼까지도 흰 천으로 싸여 있었어요."

마이클은 힐데브란트가 자기 성질을 이기지 못함으로써 불러들인 무서운 결과를 똑똑히 보고 나서, 화가 나면 어쩌지 못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점차 사라져 갔다. 작은 소리에도 놀라 깨어나는 버릇도 없어졌다. 마이클은 힐데브란트가 잠잘 때 뜰에서 들리는 큰 소리에는 눈을 뜨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는 항상 암살을 경계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주 비밀스런 소리에만 눈을 번쩍 뜨는 것이었다. 마이클은 과거생에서 힐데브란트였지만, 현재의 삶에서까지 힐데브란트의 행동과 성격을 유지할 필요는 없었다.

 

휘튼은 마이클의 과거 생애들에 드리워진 장막을 걷어내기 위해 계속 노력했다. 트랜스 상태의 마이클에게 "당신이 힐데브란트로 태어나기 직전으로 가십시오."라고 말했을 때 마이클은 오랫동안 말이 없었다. 가끔씩 안면근육과 눈꺼풀이 움직이는 것으로 보아, 그가 '또다른 세계'인 삶과 삶 사이의 신비스런 틈새를 살피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마침내 그가 입을 열어 꺼낸 이야기는, 선한 마음을 가진 사람도 함께 가는 지옥행에 관한 전설을 연상시키는 것이었다. 힐데브란트의 삶은 현실로 나타났던 그런 가증스런 삶이 아닌, 훨씬 적극적이고 교훈적인 체험으로 계획되었었다. 마이클은 아주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우주와 하나입니다. 나는 별들과 하나이며, 곧 태어나게 되어 매우 흥분해 있어요. 나는 …… 국경 없는 나라를 …… 만들려고 합니다. 나는 현명한 신하들을 둔 성군이 되고, 교역과 학문과 여행을 장려하겠습니다."

마이클은 스스로가 한 이 말을 듣자, 힐데브란트는 아돌프 히틀러 같은 인간은 아니었음을 깨닫고 다소 안심이 되었다. 그 기사는 순간적인 충동 때문에 고상한 열망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높은 이상을 가졌지만 애석하게도 그렇게 살 수 없었던 힐데브란트는, 원래가 나쁜 인간이 아니라 쫓기고 고통을 받아 변질되어 버렸던 것이다. 이제 마이클은 시간을 뛰어넘어 힐데브란트의 죽음 이후의 바르도로 넘어가도록 지시를 받았다. 휘튼 박사가 물었다. "무엇이 보입니까?" 잠시 조용하던 마이클은 곧 주체할 수 없는 울음을 터뜨렸다. 그는 창으로 어머니와 아이를 찔러 죽인 일 등의 예를 들며 힐데브란트가 저지른 악행을 웅얼웅얼 얘기했다. 그러는 동안 그는 더욱 비탄에 빠져 울음이 격해졌다. 그의 자책감은 도가 지나쳐 위로할 방법조차 없었다. "무엇이 보입니까?" 다시 한 번 물었다. 마이클은 천천히 그리고 고통스럽게 대답했다.


"캄캄해서 볼 수가 없어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았지만 아무 것도 하지 못했습니다. 좋은 일을 많이 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바르도에서 후회를 체험하는 것은 일종의 지옥체험과 같다. 대부분의 피험자들은 바르도의 초입에서, 직전의 삶에서 자신이 저지른 잘못과 그 추한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순간이 온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지옥은 영원한 저주는 아니다. 과거생을 평가할 때 조언자들은 영혼에게 연민 가득한 격려를 해줌으로써 가장 비난받을 행동조차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도와준다.

직전의 삶이 아무리 잘못되었다 하더라도 그것을 바로잡을 기회는 항상 있음을 대영혼大靈oversoul은 알고 있다. 그래서 마이클도 바르도의 가수면 상태에서 자신에게 신경증적 결함이 있음을 알고, 15세기 전반에 모스크바 대공국에 가까운 폴란드의 목사 마그누스로 환생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 새로운 삶은 강한 자제력을 갖출 수 있는 특별한 기회를 제공하도록 구상되었다. 마이클은 나중에 최면상태에서 마그누스의 삶을 검토해 봤는데, 그 목사는 교회의 규정을 지켜 자신의 공격적 천성을 제거하고 성욕을 억누르는 데 성공했다.

악몽과 괴로움이 치유되어 가던 중 어느 시점부터 최면치료는 지지부진해졌다. 휘튼은 '빅터'라는 이름으로 살았던 삶을 추적하려 했지만 트랜스상태의 마이클은 어떤 질문에도 회피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렇게 몇달을 허비한 후, 마이클은 매사추세츠주 케이프앤에 있는 직장동료 메이지 뉴먼의 집에서 휴가를 보내기로 하고 아내와 함께 보스턴으로 떠났다. 해변의 집에 여장을 풀고 차를 빌려 세일럼이라는 오래된 도시까지 짧은 드라이브에 나섰다. 그들은 얼마 동안 17세기의 마녀재판으로 악명높은 그 항구 마을을 산책하다가 어느 작은 자료 도서관에 들어갔는데, 거기서 마이클은 한가롭게 그 지역 마녀의 역사에 관한 낡아빠진 책을 빼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가슴이 거세게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고, 그것은 이상하게도 곧 육체적 반응으로 바뀌었다. 그는 나중에 기억을 되살려 "마치 뭔가가 나를 흔드는 것 같았지요. 나는 땀을 흘리며 떨고 서 있었습니다. 가슴 속에서 내가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마이클은 자신이 그 책이나 내용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한 채, 자기혐오감이 치밀어오름을 느꼈다. 그것은 분명 중대한 일이었다. 세일럼을 떠난 마이클은 다음 최면치료를 위해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거기서 그는 다시 범죄, 섹스, 종교와 맞닥뜨릴 것이었다.

빅터 브래크넬은 뉴 잉글랜드 농가에 살고 있었다. 그는 쾌락이 하늘나라로 들어가기를 열망하는 사람들의 영적인 진보를 가로막는다고 믿는 충실한 청교도 도덕가였다. 마침 빅터의 결혼 날짜가 다가왔고, 그는 육체적 쾌락을 어떻게 억눌러야 할지를 고민했다. 자물쇠를 만드는 일을 하고 있던 그는 쇠로 한쪽 끝에 구멍이 뚫린 관 모양의 기구를 만들었다. 그것이 아내와의 쾌락을 극소화하면서 아이를 가질 수 있게 만들어 줄 거라고 믿었다. 첫날 밤 이것을 사용하고 나자 신부의 음부는 상처 투성이가 되었고, 당황한 빅터는 피를 멎게 하려 애썼지만 소용이 없었다. 결국 아내는 몇 시간 만에 죽고 말았다.

트랜스에서 깨어나면서 마이클은 발작적으로 몸을 떨었다. 그는 아내를 죽음으로 몰아간 불쾌한 사랑의 행위와 싸우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빅터와 힐데브란트를 비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둘 다 자신의 경솔함과 잘못으로 인해 사랑하는 사람을 죽였다. 계속된 치료과정에서 마이클은 빅터가 지독히도 뒤틀린 자신의 성적 신경증을 드러내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아내를 숲에 묻은 빅터는 여자의 행방을 묻는 사람에게는 첫날 밤에 도망쳤다고만 대답했다. 그리고는 그 불운한 사건을 기억에서 지워 버리려 애썼다. 나중에 빅터는 강한 죄의식에 따른 성도착증으로 1692년에는 세일럼까지 흘러가게 되었고, 거기서 마녀로 선고받고 교수형을 당하는 여인들을 보며 대리만족을 느꼈다. 열렬한 구경꾼으로만 만족할 수 없었던 그는 거짓 증언으로 어떤 불쌍한 할머니가 사형선고를 받게 했다.

이번 삶에서는 거짓말이라고는 모르고 산 마이클은 지난번 세일럼을 찾았을 때의 일을 떠올리며 두려움을 느꼈다. 그는 영원이라는 베틀에 걸려 있는 몇백 년에 달하는 과거 삶의 실을 조사하면서 카르마가 영원히 계속되고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 그것은 약간의 흐트러짐은 있지만 거의 한 줄로 연결되어 있는 듯이 보였다. 이로 말미암아 이번 삶의 고뇌에 대해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자신이 환생을 거듭하면서 카르마의 짐을 더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하고 있음을 보았다. 그는 특히 더 가혹한 체험을 하던 도중에 숨을 헐떡이며 내뱉었다. "아, 하느님은 지옥같은 학교를 경영하고 있구나." 

마이클의 잠재의식 밑바닥을 더 훑어가는 동안 추한 모습이 계속 드러났다. 그는 1809년 나폴레옹 점령군 장교의 첩이 되어 잔인한 짓을 저질렀던, 제노바 근처의 작은 마을에 살던 농부의 딸 안젤라 피오레였다. 또 죄의식과 성적 신경증이 지나쳐 술과 마약에 빠진 끝에 40대 초반에 전차에 치여 죽은, 후기 빅토리아시대 영국의 학자풍 신사 로버트 매크레디였다. 마이클은 로버트가 섬망(급성 외인성 의식 장애) 상태에 빠진 것을 보자 자신의 삶에서 자주 나타나는 무의식적인 자살충동이 바로 그 여운임을 곧 알아차렸다. 그는 자신의 표현대로 가끔 '얼이 빠지는' 경향이 있어, 길거리에서 자동차의 경적이 울리거나 놀란 행인이 팔을 잡아당겨서야 깨어나는 일이 여러 번 있었다.

마이클은 근본적이고 긍정적인 변화를 겪고 있었다. 그는 자신에 대해서나 남에 대해서나 좀더 직관적이고 단호하고 여유로워졌다. 휘튼은 3년 이상 마이클의 윤회사를 탐구한 끝에, 운 좋게도 8세기 동안 억제되어 온 감정을 해방시키는 촉매가 될 삶에 접근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는 마이클이 맨처음 진료를 받던 날 1915년에 잠깐 다가갔다가 곧 뒷걸음질 쳤음을 기억해내고, 그를 그 직전의 바르도로 이끌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피험자를 초의식으로 유도하고, 바르도에 들어간 사람이면 누구나 보이는 놀라움과 어리둥절함이 그의 얼굴에 나타나기를 끈기있게 기다렸다. "어떤 사람으로 태어날 생각입니까?",   "여자입니다.”,   "그러면 다음 삶의 목표는 무엇입니까?"  또 한 차례 긴 침묵이 이어졌다. "영혼의 학습과정에서의 다음 단계를 준비하는 것. 그리고 카르마의 빚을 갚는 것입니다."

마이클의 영혼은 바르도에서, 아무리 고달프더라도 여러 차례의 삶에서 수많은 악행의 원인이 되었던 갈등을 풀어 보라는 조언을 들었고, 성적 외상을 치유하고 편협한 종교적 태도에서 벗어나는 것을 과제로 삼았다. 계획대로 된다면 다음 삶은 대전환이 될 수 있는 삶, 누적된 빚을 청산하는 삶이 될 것이었다.

트랜스에 드는 데 이골이 난 마이클 갤런더에게도 다음 몇 차례의 진료는 매우 어려운 것이 될 터였다. 바르도에서 다시 용기를 얻은 그는 1910년 켄터키주 시골의, 하느님을 두려워하고 살았지만 가난에 찌든 가정에서 태어난 줄리아 머치슨의 삶으로 돌아가 상처입은 사건에 매달리기 시작했다(때때로 머뭇거렸고, 적극적이었던 적은 결코 없었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과 맞닥뜨린 마이클은 몇 번씩이나 몸을 구부리고 진찰실 마룻바닥을 뒹굴었다. 그는 어린아이로부터 젊은 여인에 이르는 갖가지 목소리로 비명을 지르고, 흐느껴 울고, 대들고, 한숨을 쉬면서 짧지만 목적이 분명한 줄리아의 삶을 엮어 갔다.

일찍 어머니를 여읜 줄리아는 아버지의 손에 자랐다. 그런데 아버지는 주정뱅이에다 습관적으로 딸을 때리고 괴롭혔다. 5세 때 그에게 짐승 같은 강간을 당한 줄리아는 그 사건(1915년!)을 의식 밑으로 처박고 심한 고통 속에서 자랐다. 그러나 고집세고 용기있는 아이였던 줄리아는 자기가 살던 남침례파 마을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기로 마음먹었다. 재빨리 기회를 잡아 집을 떠난 그녀는 루이빌로 향했다. 거기서 캘리포니아로 가서 무성영화 스타가 되는 것을 꿈꾸며 웨이트리스로 일하다가 결국에는 매춘부가 되었다. 그는 유아 때 당한 강간으로 인해 섹스의 기쁨을 알지 못했으며, 그를 매춘에 나서도록 한 것은 끔찍한 사건의 기억을 되찾으려는 무의식의적인 의도였다. 그러나 필요한 경험을 할 수 없게 되자, 아버지에 대한 미움을 억누르며 그를 유혹할 계획을 세웠다. 강간을 되풀이함으로써 필요한 무언가를 얻을 수 있으리라는 역시 무의식적인 기대에서였다. 그녀는 생각에 잠겨 남부 사투리로 "아마 난 느낄 수 있을 거야."라고 말했다.

20대의 줄리아는 자극적인 흰색 속치마를 입고 아버지가 루이빌로 예배보러 오기만을 기다렸다. 일요일 낮에 줄리아가 살고있는 집 2층으로 통하는 옥외계단을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술에 취한 아버지임에 틀림없었다. "들어오세요!"라고 말하자, 문을 열고 들어선 아버지는 의도적인 유혹의 냄새를 맡고 그것이 한낱 조롱거리에 불과함을 깨달았다. 아버지는 화를 내기 시작했지만, 줄리아는 입을 삐죽 내밀고 깔깔댈 뿐이었다. 아버지가 그만두지 못하겠느냐며 소리쳤지만 들은 체하지 않았다. 성욕이 달아나 버린 아버지는 칼을 빼들고 달려들어 딸을 찔러 죽였다.

마이클은 이 삶을 통해 고통스런 기억을 되찾았고, 그럼으로써 드디어 하얀 옷을 입은 여인의 피살에 관한 환상을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줄리아가 되는 것은 결코 유쾌하지 않은 일이었지만, 치료가 끝나감에 따라 마이클은 몇 세기에 걸친 억압이 몸에서 빠져나가고 전에 없던 행복감이 감도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섀런과의 관계는 이제 더 이상 공포에 가득찬 것은 아니었으며, 죄의식과 자기혐오, 자살충동도 사라졌다. 아침마다 절망감 없이 거울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으며,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고 거리의 부랑자들을 도울 때에도 동정심에서만이 아니라 기쁜 마음으로 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주변 사람들도 마이클의 변화를 느꼈다. 그는 쾌락에 대한 청교도적 억압에서 벗어나, 아내와 춤을 추거나 할 때면 좀더 편안해질 수 있었다. 자신이 마이클의 윤회사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알게 된 섀런은 남편의 변신을 믿을 수가 없었다. 소득은 또 있었다. 마이클은 800여 년에 걸친 인과로 짜여진 자신의 옷감을 보면서, 자신의 현실인식이 완전히 뜯어 고쳐졌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는 바르도에 갔던 기억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나는 말로는 설명할 엄두조차 낼 수 없는 창조의 수준을 극히 일부만 볼 수 있었어요. 나는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는 대단히 깊은 뜻이 있다고 느꼈습니다. 우리의 고난은 그저 우연한 것이 아니예요. 그것은 우리가 상상조차 할 수 없이 복잡하고 숭고한 영구 계획의 일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마이클의 마지막 바르도 방문은, 줄리아의 삶을 마치고 마이클의 삶을 계획하던 지점이었다. 그곳에서 그는 힐데브란트였을 때의 부모 밑에서 태어나서 라헬과의 관계를 새롭게 하면 삶의 목표가 가장 잘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라는 조언을 받았다. 자신의 문제를 이해하고 풀기까지 끈기있게 노력해야 한다는 얘기도 들었다. 마이클은 현재의 삶에서 이루어 놓은 것과 바르도에서의 기억을 비교해 보고, 나중의 삶들에서 성취할 계획들이 이번 삶으로 앞당겨졌음을 깨달았다. 보통은 여러 번의 삶을 거치면서 노력해야 할 일을, 그는 이번 삶에서 이루어낸 것이다. 잘 해내겠다는 마이클의 의지(성공적인 치료에도 꼭 필요한)는, 비록 실패했지만 단호했던 줄리아의 자가치료 노력에서 비롯되었다. 


"사람들은 대체로 어떤 시기에 지녔던 태도를 유지하는 과정에 의해 카르마의 빚을 갚는다.

만약 이러한 태도가 과거세의 임종시에 있었다면, 그것은 새로운 인격을 다시 구체화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 맨리 P. 홀 [죽음에서 재생으로]


마이클 갤런더의 사례는, 하나의 삶에서 이루지 못한 일이 다음 삶에서 완성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의지를 갖고 잘못과 갈등을 찾아내고 인정하고 그것을 초월함으로써 스스로를 해방시켜 온 마이클은, 이제야말로 자신이 힐데브란트로 태어나기 이전에 바르도에서 표명했던 이상을 추구할 수 있을 것이다.

 

 

posted by moon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