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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5. 25. 17:55 책에서 발췌

 

 

 

<175쪽>  사례 : 게리 패닝튼 

 

게리 페닝튼은 결혼생활에 아주 만족하고 있었다. 주변에 부부관계에 금이 갔다느니 헤어졌다느니 하는 얘기들이 많아서, 스스로도 자신의 행운을 놀라워하고 있었다. 아내 엘리자베스와는 10대 시절부터 함께 교회에 다니던 사이였다. 대학에서 각각 심리학과 영문학을 공부한 후 그들은 결혼했고, 서로 의지가 되고 항상 원기를 북돋아 주는 관계를 이루었다. 그는 박사학위를 따고 법조계에 들어가 법원 심리학자로서 흉악범죄 용의자의 정신감정을 맡고 있었다. 게리는 아내와 아이들을 위해 살았다. 결혼 16년이 지났어도 엘리자베스에 대한 게리의 정열은 여전했다. 세월이 지날수록 아내의 아름다움과 매력은 더해갈 뿐이었다. 게리는 고향과 집의 정서적인 푸근함에 푹 빠져 가정에 대한 책임에서 도피할 생각은 꿈에도 없었다.

 

그런데 1982년 크리스마스 칵테일 파티에서 캐럴라인 맥비티와 부딪힐 뻔 하면서 두 사람의 눈길이 마주치는 순간, 그의 가슴은 어린아이처럼 두근거렸다. 게리는 마음을 뒤흔들어 놓은 그 검은 머리의 여자와 얘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손님을 하나하나 훑어나가다가 드디어 여자를 찾아냈다. 게리는 사람들의 팔과 술잔과 음식그릇들을 지나 여자 옆에 이르렀다. 그는 자신만만한 성격이었지만 자신을 소개할 때는 좀 어색했다. 그러나 대화를 시작하자 긴장감은 친근함으로 바뀌었다. 게리는 나중에 "마치 집에라도 간 것처럼 편안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들은 주위 사람들을 신경쓰지 않고 밤새도록 이야기에 열중했고, 나중에 다시 만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게리와 캐럴라인은 급속도로 가까워져 틈만 있으면 만났다. 그러나 게리는 자신이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점점 줄어드는 이유를 아내에게 숨기고 싶지 않았다. 그는 아내가 캐럴라인과의 관계를 이해하고 용납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 일을 처음부터 엘리자베스에게 털어놓았다. 엘리자베스는 큰 상처를 받았고, 이해할 수도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비참하고 화가 났지만 게리가 3개월 가까이 집을 비워도 견뎠고, 부부의 사이가 벌어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다. 그녀에게는 '게리가 언젠가는 자신을 떠날 것'이라는 설명하기 어려운 두려움이 항상 있었다.

 

1983년 3월 어느 저녁, 엘리자베스의 절망은 마침내 폭발하고 말았다. 게리가 자정 무렵 집에 돌아와 보니 아내가 침대에 널브러져 있었다. 처음에는 그저 잠이 든 줄 알았다. 그러나 욕실에서 빈 수면제 병을 보고는 상황을 알아차리고, 침실로 뛰어들어가 아내를 깨우려 했다. 처음에는 살짝 눈이 뜨이고 한숨이 새어나왔다. 게리는 불안과 자책으로 머리가 무거웠다. 구급차를 불러야 하나? 물론 불러야 했다. 하지만 게리는 직업상 시내의 구급차 기사들을 다 알고 있었다. 엘리자베스는 병원의 젊은 수련의들의 질문에 곤란해질 것이고, 비극으로 끝난 그의 스캔들은 법의학계에서 쑥덕공론의 대상이 될 것이었다.

 

게리는 엘리자베스가 혼수상태에 빠지지 않도록 가끔씩 아내의 몸을 흔들고 팔을 문지르면서 새벽녘까지 주로 아내가 말을 계속하도록 하는 데 열중했다. 엘리자베스의 의식은 서서히 돌아왔다. 그때는 이미 게리가 '다른 여자 캐럴라인'에 대한 생각을 정리한 지 오래였다. 불륜관계는 완전히 끝났다.

 

게리가 그들의 관계를 청산하겠다고 서둘러 결정을 내리자 캐럴라인은 충격을 받았다. 그녀는 이에 대한 응답으로, 곧 50대의 돈 많은 남자 제임스 휴즈와 살림을 차리고 3개월쯤 살았다. 그리고는 남자가 자신에게 모든 것을 바칠 수 없음에 당황하여 정말로 자살을 기도했다. 휴즈가 집에 돌아왔을 때 캐럴라인은 샤워기 걸이에 줄을 연결해 목을 맨 뒤였다. 휴즈는 줄을 끊고 여자를 끌어내린 뒤 서둘러 토론토 병원으로 옮겼고, 그녀는 그 병원에서 거의 두 달 동안 입원해 있었다. 그 일은 휴즈가 정열을 바쳐 사랑하지 않은 것이 원인으로 보였지만, 가까운 친구들 그리고 휴즈까지도 '게리를 향한 캐럴라인의 깊은 정열'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했다.

 

캐럴라인은 매주 뉴욕으로 가서 정신분석가로부터 치료를 받았고, 그 비용을 휴즈가 1년 이상 지불했다. 뉴욕까지 갔던 이유는, 토론토의 의사들은 상당수가 게리와 개인적인 친분이 있어서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게리 페닝튼의 생활은 다시 이전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상처입은 그의 결혼생활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치유되어 갔다. 엘리자베스는 용서하고 잊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 했고, 게리의 사과를 받아들였다. 그는 지금까지의 공적을 내세워 불륜행위를 비교적 사소한 잘못 정도로 치부해 버렸다. 더구나 그는 자주 인용되는 이 한 구절로써 완전히 승리를 거두었다.

 

"불륜의 심리는 기존 윤리에 의해 왜곡되어 왔다.

일부일처 사회에서는 한 사람을 좋아하면 다른 사람을 동시에 진지하게 사랑할 수 없다고 여긴다.

그러나 그것이 거짓임은 누구나 안다."   - 버트런드 러셀 [결혼과 윤리]

 

게리는 아주 간단히 자신을 용서할 수 있었다. 그러나 잊는 것만은 쉽지 않았다. 그는 캐럴라인을 잃고 엘리자베스의 자살 기도에 대한 책임을 져야 했을 뿐만 아니라, 잘못된 자신의 행동 그 배후에 있는 이유를 알아내야 한다고 느꼈다. 성격에 무슨 결함이 있는 것은 아닐까? 억압되어 있거나 참지 못하고 로맨스에 빠져들 정도로 엘리자베스와의 관계에 어떤 문제가 있었던 것일까? 또 다른 가능성도 생각할 수 있었다. 그와 캐럴라인이 서로에게 느꼈던 친근감에는 현재를 훨씬 뛰어넘는 뭔가가 있는 건 아닐까? 게리는 윤회전생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는 휘튼 박사가 퇴행최면에 흥미를 가지고 있다고 전해 준 친구의 얘기를 떠올렸다. 게리는 상담능력을 인정받고 있는 전문가였으므로 당연히 정신과 의사로부터 조언을 받고 싶지는 않았다. 그는 한동안 망설이다가 사건이 마무리되고 8개월 이상 지났을 무렵에 휘튼을 찾았다. 그는 조심스럽게 자신이 왜 그렇게 격정적으로 불륜에 빠져들었는지 알고 싶다고 했다. 휘튼은 게리의 사생활과 결혼생활에 대해 충분히 듣고 난 뒤 이 사건이 일반적인 심리적 원인과는 거리가 멀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는 게리를 트랜스상태로 안내한 후, 그가 캐럴라인과 함께 했던 삶을 찾아내도록 지시했다. 이번 삶에서 나타난 둘 사이의 친밀함을 설명해 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에서였다. 게리의 첫 반응은 갑작스럽고 극적인 것이었다.

 

그는 트랜스에 들자마자 엔진 소음과 지독한 석유 냄새에 몸이 굳어 버렸다. 그는 피터 하그리브스라는 이름의 공군 장교로, 이탈리아 살레르노 부근의 활주로에서 이륙준비가 끝난 비행기 옆에 서 있었다. 이탈리아는 제2차 세계대전으로 파괴되어 있었고, 영국 공군의 주둔은 연합군의 이탈리아 군사작전 성공에 필수적이었다. 그 해가 1944년이었다. 하그리브스는 영국 공군의 정보장교로, 비행훈련을 받기는 했지만 정식 조종사는 아니었다. 독일이 대대적인 반격을 준비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항공사진을 보고 불안해진 그는 저공비행으로 문제의 지역을 뒤져 정보를 더 얻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비무장 무스탕 P-51 비행기를 타겠다고 고집을 피웠으나, 동료 장교들은 무모하고 어리석은 생각이라며 말렸다. 공중 정찰 요원에게 맡기라는 것이었다.

 

하그리브스는 동료들의 반대를 뿌리치고 조종석으로 올라가 비행기를 띄웠다. 그러나 목표지점에 다가갔을 때 그의 비행기는 독일 전투기에 격추 당했다. 탄환이 동체에 퍼부어졌고 그 중 하나가 그의 오른쪽 발을 꿰뚫었다. 그는 페달을 밟을 수 없었고 들판에 불시착하게 되었다. 포로가 된 그는 기차로 북송되어 나치 친위대 심문소로 끌려갔다. 그는 작은 독방에 갇힌 채 연합군의 작전을 털어놓도록 수없이 두들겨 맞았고, 그의 다친 발은 치료를 받지 못해 썩어들어갔다. 음식을 제공받지 못했고 잠을 자지 못했으며 다친 다리도 치료받지 못하는 등 최악의 학대 속에서도 쓸 만한 정보를 전혀 누설하지 않았다. 그의 영웅적인 행동은 고통스런 죽음으로 보상을 받았다. 나치 고문자들은 그가 죽기 전에 군사기밀을 빼내려는 마지막 노력으로 그의 손톱을 뽑아냈던 것이다.

 

게리는 몸을 부르르 떨면서 트랜스에서 깨어났다. 그는 트랜스 상태에서 하그리브스의 육체적 고통을 함께 하지는 않았지만, 그 불행한 장교의 절망과 고독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게리는 전쟁 중의 이탈리아 군사작전에 대해서 전혀 아는 바가 없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그 체험의 진실성을 의심했다. 그의 트랜스 체험 곳곳에서 몬테카시노Monte Cassino에 대한 얘기가 나왔기 때문이다. 그는 휘튼에게 "이게 맞는 얘기입니까? 전쟁 와중에 카지노가 왜 나오는 거죠?" 하고 물었다. 게리는 몬테카시노에 대해 아는 게 전혀 없었다. 일찍이 그곳에는 계곡 입구에 커다란 수도원이 버티고 서 있었는데, 가장 큰 전투가 여기에서 벌어졌다. 1944년 2월 연합군이 로마로 진격할 때 이 수도원은 600톤의 폭탄세례를 받고 폐허가 되어 버렸다.

 

게리는 그날 온갖 생각을 다하며 휘튼의 진찰실을 나섰다. 자신의 삶을 조사해 보니 이제까지 설명되지 않던 체험과 기질들이 앞뒤가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엘리자베스를 만나기 조금 전인 16세 때 그의 감각을 점령했던 잊을 수 없는 공포의 섬광이 이 트랜스체험으로 설명될 수 있었다. 그가 파티를 즐기고 있을 때 나타난 이 짧고 놀라운 환영은 그를 독방으로 인도했다. 그곳에서는 나치제복을 쫙 빼입은 장교 하나가 그의 손톱을 뽑고 있었다. 이런 환영이 나타난 것은 그가 막 운전면허 시험에 합격한 뒤였기 때문에, 차의 페달 조작이 무의식 속에서 피터 하그리브스가 비행기 페달을 밟으려고 발버둥치던 일을 떠올리도록 했고 그래서 고문장면이 나타난 게 아니었을까 하고 게리는 생각했다.

 

이 기억을 되살려낸 게리는 그의 과거로 더욱 깊숙이 들어가 자신이 캐나다에서 자랐음에도 불구하고 어렸을 적 영국 악센트로 얘기했음을 떠올렸다. 이 때문에 선생님도 그를 입양아라고 생각했다. 그 악센트는 곧 사라졌지만, 그 일은 지금까지도 수수께끼였다. 트랜스상태에서 본 이 환영들은, 게리가 평생 가지고 있던 다리 부상에 대한 공포증을 설명해 주고 있다. 그 때문에 그는 항상 스키 활강같은 위험한 스포츠에 뛰어들 수 없었다. 이유없이 비행기 타기를 무서워한 이유도 설명되었다. 그는 이 불안에 맞서기 위해 장난삼아 비행사 면허를 딸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자신이 소형 비행기를 조종할 수 있음을 본능적으로 알았던 것 같지만, 그것을 단념시킨 것은 '무모해지는 데 대한 공포(이제는 잘 이해할 수 있는)' 뿐이었다. 이 무모함은 게리의 성격에도 상당 부분 남아있어서 특히 운전할 때 몇 번이나 위험해지기도 했다.

 

게리는 이어 정보수집이라는 자기 업무의 유사성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법원 심리학자라는 직업은 논리적으로 전생의 직업을 이어받은 것이었다. 게다가 그는 왜 자신에게 손톱을 물어뜯는 버릇이 있는지, 그리고 왜 고문에 대해 뒤틀어진 매혹을 느끼고 있는지 더욱 잘 알게 되었다. 게리는 자신이 바랐던 것보다 더 자신을 잘 알게 되었으나, 불륜행위의 이유에 대해서는 여전히 알아내지 못했다. 

 

피터 하그리브스는 영국 중상류의 카톨릭교도 집안에서 태어나 이탈리아인 유모의 손에서 자랐다. 연합군이 이탈리아 본토에 발판을 마련한 뒤 그가 그 지방 레지스탕스와의 연락임무를 맡았던 이유 중 하나는 그가 이탈리아어를 잘 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살레르노에서 주로 엘레나 봇치라는 젊은 여자를 통해 레지스탕스와 접촉했다. 엘레나는 그가 산속 기지의 빨치산partizan(러시아어)과 연락할 수 있게 도와줬다. 하그리브스와 엘레나는 처음부터 서로에게 강하게 끌렸고, 가장 어려운 상황 속에서 함께 일하며 사랑에 빠졌다. 엘레나의 아버지는 최근 전투에서 죽었고, 하그리브스는 가난한 봇치 집안을 돕는 데 발벗고 나섰다. 그는 전쟁이 끝나는 대로 엘레나와 결혼하겠다고 약속했다.

 

앞서 본 대로 하그리브스는 전쟁에서 살아남지 못했다. 그러나 나치로부터 잔혹하게 다루어진 데다 엘레나에 대한 사랑이 너무 컸던 탓에 죽은 뒤에도 몇 주 동안 이 세상에 남아 있었다. 게리는 바르도 상태에 처음 들어섰을 때, 하그리브스가 아직 지상에 묶여 있고 지나친 감정 소모, 특히 분노 때문에 지쳐 있음을 알게 되었다. 비행기가 격추된 것은 나치 요원이 빨치산에 침투해 그의 비행계획을 알아내어 독일군의 경계태세를 강화시켰기 때문임이 초의식에서 밝혀졌다. 육신을 떠난 하그리브스의 영혼은 분노에 불타 밀고의 상황을 거듭 곱씹었다.

 

엘레나는 하그리브스가 죽었다는 소식을 지하 연락망을 통해 알게 되었다. 하그리브스는 엘레나를 지켜보면서, 그녀가 극도로 실망한 나머지 심각한 우울상태에 빠졌음을 알았다. 그는 자살을 결심한 엘레나가 살레르노 부근의 한 절벽 꼭대기로 올라가는 모습을 조마조마해하며 지켜보고 있었다. 엘레나가 절벽 끝에 다다르자 하그리브스의 영혼은 자살을 막기 위해 육신을 되찾으려 무진 애를 썼다. "나에게 육신이 있다면 그녀의 자살을 막을 수 있을 텐데..."라며 그는 마음으로 거듭 부르짖었다. 완전히 낙담한 그는 엘레나가 절벽에서 뛰어내려 죽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연인의 자살을 막아보려는 하그리브스의 노력이 그저 헛된 것은 아니었다. 캐럴라인은 명상을 통해 몇 개의 전생을 기억해 냈는데, 그녀의 직전 삶의 마지막 기억은 게리의 트랜스 경험과 정확히 일치했다. 절벽에서 뛰어내리기 전에 보이지 않는 힘과 싸웠음을 기억하고 있었다.)

 

엘레나의 자살을 막는 데 실패한 하그리브스의 영혼은 나치 친위대 심문소의 수난장면으로 돌아왔다. 거기서도 그는 살아남은 죄수들에 대한 고문을 막으려 개입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말았다. 그는 배신당한 데 분노하면서도, 엘레나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데 대해 죄책감을 느꼈고, 엘레나의 죽음을 막을 수 없었던 자신의 무능에 괴로워했다. 그는 또 심문소에서 고생하는 사람들에 대한 박해를 멈추게 할 수 없었던 데서 엄청난 무력감을 느꼈다. 그는, 안내자인 듯한 나이 든 현자가 다가왔을 때에야 이 세상에 대한 집착을 포기하는 데 동의했다. 그는 정말 '마지못해' 하그리브스의 삶이라는 비극적인 환경을 떠났다.

 

게리와 캐럴라인의 인연은 피터 하그리브스와 엘레나 봇치의 사랑으로도 설명할 수 있지만, 그들의 관계는 더욱 깊은 것이었다.

 

휘튼의 도움으로 게리는 러시아인으로 태어났던 삶을 찾아냈다. 거기서 그는 여동생과 근친애의 관계였다. 그는 풍채가 당당한 세바스티안 움노프라는 사람이었고 캐럴라인은 그의 여동생 리셍카였다. 세바스티안은 18세기 중반 황후 엘리자베트 페트로브나의 밀사로 루이 15세의 궁정에 파견되어 있었다. 프랑스와 러시아의 관계가 불안정했기 때문에, 그의 외교상의 주임무는 비밀첩보원 같은 것이었다. 그는 주로 대적對敵 첩보활동과 러시아로의 무기수출 주선을 담당했다. 

 

세바스티안은 외교상의 업무 때문에 오랜 기간 리셍카와 떨어져 있지 않으면 안 되었다. 여동생은 오빠를 너무나 사랑했기 때문에, 그가 파리나 베르사이유에서 딴 여자와 사귀는 것은 아닐까 하고 끊임없이 걱정했다. 리셍카의 이런 질투는 전혀 근거없는 것이었지만, 오빠에 관한 아주 언짢은 소문을 들은 그녀는 충동적으로 평소 존경하며 알고 지내던 사람과 결혼해 버렸다. 그러나 리셍카는 몇 주 후 자신이 가장 소중히 여겼던 관계를 이어갈 수 있는 모든 희망을 스스로 끊어 버린 데 실망하여 목을 매 자살하고 말았다. 프랑스에서 이 소식을 들은 세바스티안은 억장이 무너지는 듯했다. 그는 다시는 러시아로 돌아오지 않고 그곳에서 살다가 외롭고 불행한 죽음을 맞이했다.

 

엘리자베스가 수면제를 먹던 날 밤 게리와 캐럴라은 러시아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하지만 게리는 이런 우연을 점점 믿지 않게 되었다. 월터 페이터의 말을 빌자면 "취향이란 이전에 알았던 문화에 대한 기억"인 것이다. 윤회전생 체험에 비추어 보면 모든 것이 새로운 의미를 지니는 듯 하다. 최면을 통해 게리의 직업적 능력과 캐럴라인의 자살성향이 드러났는데, 그것은 이안 스티븐슨 같은 윤회전생 연구자들이 밝혔듯이 '삶에서 삶으로' 파급효과가 미친 것이었다. 게리와 캐럴라인이 왜 또 다른 관계로 맺어져야 했는지가 분명해졌다.

 

게리와 엘리자베스의 인연은, 19세기 옥스포드대학의 수학강사였던 제러미 에브릿의 삶에서 드러났다.

 

제러미는 몇 년 동안 이중생활을 해왔다. 주말에 강의와 학생지도가 끝나면 그는 아내와 어린 두 아들이 기다리고 있는 옥스포드 근교의 시골집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주중에는 대학 구내에서 생활했다. 그는 근처에 딸 둘을 낳은 첩을 두고 있었다. 제러미는 두 딸의 보호자 역할을 했으며, 그들을 잘 보살피고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거듭 약속했다. 그러나 이것은 지켜질 수 없는 약속이었다. 제러미는 30대 후반에 폐렴에 걸려, 그에게 의존하고 있던 두 가족을 남기고 갑자기 죽고 말았던 것이다. 아내 쪽은 이런저런 재산, 그리고 약간의 개인적인 유산을 받아 생계에는 염려가 없었다. 그러나 첩과 그 딸들은 그렇게 운이 좋은 편이 못 되었다. 아직 젊었던 탓에 장래에 대한 대비가 부족했던 제러미는 그들이 먹고 살 만한 준비를 해놓지 못했다. 그가 죽자 첩은 눈 앞에 닥친 지독한 고생과 가난을 생각하며 제러미를 저주했다.


게리는 그의 현재 아내인 엘리자베스와, 자신의 죽음으로 버려졌던 여성이 동일인물임을 트랜스에서 확인했다. 엘리자베스는 역할을 바꾼 것인데, 그것은 집단환생 현상의 한 특징이다. 게리는 작업을 계속해 자신과 엘리자베스가 여러 전생에서 비밀스런 연인이었음을 알아냈다. 사실 그들이 '공개적인' 관계를 갖게 된 것은 이번 삶이 처음인 것 같았다.

 

고대 이집트에서의 삶도 드러났다. 거기서 엘리자베스는 파라오 아멘호텝 3세의 왕비로서 뛰어난 미모를 자랑하는 여인이었고, 게리는 왕궁 수비대장이었다. 그들은 비밀스런 만남을 계속했지만, 게리가 다툼 끝에 살해되면서 그녀는 연인을 잃었다. 엘리자베스가 항상 남편이 떠날 것을 두려워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게리 자신이 갖고 있던 두려움의 이유도 밝혀졌다. 그는 자신이 왜 그토록 가족의 경제적 안정에 집착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늘 아내와 아이들에게 충분한 뒷바라지를 못해줄 경우를 걱정했다. 그는 이제야 왜 '자신이 죽는 경우'만을 대비해 생명보험을 계속 들려고 했던가를 알 수 있었다.

게리는 1944년 하그리브스가 죽은 다음부터, 2년 뒤 자신이 태어날 때까지의 바르도로 돌아갔다. 그곳에서 그는 이전 삶에서 이어져 온 감정적 추진력을 바탕으로, 두 여성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성격을 개선하기로 정했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그는 '그림자' 몸을 가지고 있다고 느꼈지만 손가락은 없는 것 같았다. 그가 나치에게 당한 일의 반영이었다. 그는 세명의 조언자가 예수 그리스도가 이상화된 모습이라고 생각했는데 하그리브스가 가톨릭교도였기 때문일 것이다. 조언자들과 피터 하그리브스의 생애를 재검토하면서 자신의 몸에 손가락이 다시 생겨나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는 이것이 하그리브스의 무모함이 용서받았음을, 더 정확히는 스스로를 용서했음을 상징한다고 믿었다. 조언자들은 여러 삶에서 드러난 그의 무모한 성격에 대해 주의를 주고, 이것을 조절할 수 있을 때까지 군 관계 일은 하지 말라고 경고했다.(실제로 게리는 1970년대 초반 미국 육군의 정보장교로 베트남전쟁에 참전하려 했다. 그러나 끈질긴 내면의 소리로 인해 단념했었다.) 또한 그가 자신의 지적 능력에 대한 자부심도 자제하고 좀더 겸손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약해져서는 안되지만 온유해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번 삶에서 게리는 아직도 자신의 천성인 무모함과, 가끔 거만함으로 나타나는 자신의 능력에 대한 자부심, 그리고 개인적으로든 직무상으로든 배신을 당하지 않을까 하는 초조함과 싸우고 있었다. 이 마지막 문제는 조언자들이 제기한 것은 아니지만, 배신에 대한 그의 영혼의 분노를 이번 삶에까지 가져온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그는 가까운 사람일지라도, 심지어 친형 그레이엄까지도 믿지 못했다. 게리와 캐럴라인의 관계가 시작된 직후, 엘리자베스는 그레이엄을 믿어 결혼생활의 안정을 되찾을 수 있도록 도움을 청했다. 그래서 그레이엄은 아우를 밖으로 불러내 저녁을 먹자고 했고, 게리는 그의 가장 개인적인 느낌을 호의적으로 들어줄 사람에게 하소연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레이엄은 게리의 행동을 꾸짖었고 게리는 큰 상처를 입었다.

 

4개월간의 최면치료를 통해 게리는 자기 이해 뿐만 아니라 인간행동의 배후에 있는 더 큰 동기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그는 여러 전생과 바르도를 여행하기 전에는 남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 자신에게도 남에게도 좀더 관대한 태도를 보이게 되었다. 또한 엘리자베스의 필사적인 저항 때문이 아니라, 캐럴라인과는 바르도에서의 계획이 없었기 때문에 이번 삶에서 함께할 미래는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우리는 마치 역할을 끝낸 배우들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반면 엘리자베스와의 관계는 잠시 다른 목소리에 방해받기는 했지만 막이 내릴 때까지 계속될 것으로 기대되는 이중창에 비유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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