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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3. 31. 01:02 책에서 발췌

[Life Between Life: Scientific Explorations Into the Void Separating One Incarnation from the Next]

- Joel L. Whitton, Joe Fisher, 1986 │ 한국어판: 이재황 옮김, 2004, 기원전 출판사

 

 

 

<서문>

윤회전생은 내가 종교적인 가르침으로써 받아들여온 것 중 하나이다. 젊었을 때부터 하시디즘과 그 뿌리인 게로나학파 및 여러 밀교 집단, 그리스도교 신플라톤주의, 티벳 불교 그리고 20세기 신비주의 - 신지학, 프리메이슨주의, 유니티파, 장미십자단 등 - 와 접해온 덕분에 폭넓은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윤회전생의 증거들이 충분히 쌓인 지금, 이치상으로는 윤회를 인정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감정상으로는 적쟎이 머뭇거려질 것이다. 현재 윤회의 증거를 모은 책들이 많이 나와있고, 그 책들은 모두 배경적인 기초지식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납득이 될만한 얘기들이라고 생각한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일찍이 여러 생애를 살아왔고 아마 내세도 살 것이며, 따라서 현재의 삶은 끊기지 않고 길게 이어지는 고리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나의 결론에 이르게 되기를 바란다. 

 

의사가 신학적인 책을 쓴다고 해서 이상할 건 없다.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돕기 시작하여 죽음을 맞는 순간까지 상처를 치료하며 늘 함께하는 의사 외에 인생의 의미와 고뇌라는 문제를 논하는 데 적합한 존재가 대체 누구란 말인가. 오랜 세월에 걸쳐 수집해 온 내 자료들이 인간이 놓인 상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믿어 공개를 결심하게 되었다. 그리고 여러사람이 읽을 수 있도록 대중적인 방법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15쪽>

"자기자신의 의식이 사라져버려 탄식하는 일은 결코 없다. 그런 일은 영원히 없을 것이다."

- 에르빈 슈레딩거

 

<19쪽>

이 책에서는 최면상태에서 죽음 뒤편으로 깊숙히 들어가 여행했던 조엘 휘튼 박사의 피험자들의 증언을 근거로, 지금까지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육신을 지닌 인간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인간체험의 영역을 비춰보려 한다. 깊은 트랜스 상태에서 가져온 메시지에 따르면, 죽은 다음의 삶은 태어나기 전의 삶과 같고 우리는 누구나 대부분 육체를 지니지 않은 존재로서 또 하나의 다른 세계에서 수없이 살았다고 한다. 무의식 상태에서의 우리는 육신 없는 존재, 즉 저세상에 대하여 이 세상의 일만큼이나 잘 알고 있다. 그곳은, 우리가 태어나기 위해 뒤에 두고 온 곳이자 죽으면 다시 되돌아가게 될 곳이기도 하다. 삶의 바퀴가 굴러감에 따라 개인의 발전과정에서 태어남과 죽음이 번갈아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죽음은 하나의 삶과 그 다음 삶을 구분하는 의식상의 문턱에 불과하다. 삶과 삶 사이에도 또 다른 삶은 틀림없이 존재하는 것이다. 

 

휘튼 박사의 피험자들은 종교적인 배경도 달랐고 윤회전생에 대한 긍·부정적 편견도 매우 달랐지만, 우리가 이루어 가고 있는 진화의 과정에서 재탄생은 기본적인 일임을 한결같이 증언하고 있다. 사람이 죽으면 영혼은 육체를 떠나 시간도 공간도 없는 상태로 돌아간다고 그들은 말한다. 거기서 이제 막 끝난 이 세상에서의 삶이 평가되고, 자신들의 카르마의 필요에 따라 다음 삶이 계획된다. 예를 들어 어떤 최면 피험자는 이전 삶에서 자신의 행위로 말미암아 누나를 자살하게 만들었는데, 그 빚을 갚기 위해 다시 그녀의 동생으로 태어나는 길을 택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이번 삶 이전의 육체를 지닌 존재로 돌아가십시오. 자… 당신은 '누구'이고 '어디' 에 있습니까?"
그러면 침상에 누워 최면 상태에 든 사람은 또다른 시대, 또다른 장소에서의 일을 상세히 얘기하기 시작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이를 재연해 보이기까지 한다.

무의식 상태의 마음에 대해 더욱 자세히 알게 된 휘튼 박사는 트랜스 상태의 환자들에게 '트라우마의 원인이 된 전생의 기억'을 떠올리도록 지시했다. 그 결과 환자들은 빠르고 극적인 회복을 보였는데, 휘튼 박사 자신도 그 원인을 명확하게 설명할 수는 없었다. 무섭고 불안스런 기억이, 자기 이해를 통하여 마음을 진정시키는 마술적 해방작용을 불러일으켜 심각한 정신적·육체적 장해가 씻은 듯이 사라져 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또 전생과 중간세(바르도)의 체험을 거듭하면서 서서히 질병과 정신적 문제들을 치료한 사람들도 있었으며, 가끔은 이곳저곳 의사를 찾아다니다가 병을 고치지 못하고 휘튼 박사를 찾아온 사람들도 있었다. 갖가지 환자들은 많은 의사들에게 치료를 받아 보았지만 이렇다하게 호전된 적이 없다고 말하곤 했다. 전생으로의 퇴행최면을 통해 전통적 요법으로는 고칠 수 없는 질병을 고치는 경우가 종종 일어나자, 휘튼 박사는 '실패처리 박사' 라는 별명을 얻었다.

퇴행최면에 의해 큰 병이 나은 사람들이 실제로 이전의 삶을 다시 체험했다는 객관적인 증거는 없다. 그러나 피험자들 스스로는 그 체험을 진실로 받아들이고 있고, 휘튼도 20년 가까이 전생요법을 통한 치료를 해온 결과 그것은 무의식이 마음속에 쌓아놓았던 전생의 지식을 내놓는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극적인 치료효과가 이를 입증하고 있다. 

"의학에는 다른 학문 분야에 비해 뚜렷한 강점이 하나 있다.

의학에서 진실을 판별하는 유일한 기준은, 치료법에는 반드시 효과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 존 랭든 데이비스 [인간-알려진 것과 알려지지 않은 것]


최면 피험자는 일단 다른 삶으로 인도되면 다른 인격과 다른 육체를 받아들이는데, 이 자아와 지금의 자신이 같은 존재임을 스스로 깨닫는다. 그 과정에서 성별과 인종이 바뀌는 것은 아주 흔히 있는 일이다. 전생의 인격에게 지시하여 그 일생의 어느 시점으로든 가게 할 수 있으며, 그 당시의 나이와 성별, 교육 정도, 언어, 성격, 시대적 배경 등에 따른 목소리로 당시의 체험을 자유롭게 말하기도 한다. 감정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 그 삶의 기억창고가 비게 되면, 피험자를 더 앞의 존재로 옮긴다. 그러면 트랜스 상태에 든 사람은 자신에게서 또다른 인물을 불러낸다. 그것은 완전히 다른 상황과 씨름하고 있는 독자적인 인격이다. 휘튼 박사는 피험자들이 평소의식으로 돌아오면 언제나 트랜스상태에서의 체험을 일기로 써줄 것을 부탁한다. 그들이 그 전생에서 어떤 감정상태에 있었는지를 보존하기 위해서다.


<22쪽>

19세기까지만 해도 의사들은 간이나 담낭의 분비액과 자궁의 위치가 인간의 기질을 결정하는 요인이라고 생각했다. 장 마르샹 샤르코, 피에르 자네 그리고 프로이트 같은 초창기 심리학 연구자들은 내장과 혈관이 아닌 무의식의 영역으로 눈을 돌려 마음의 연구를 향상시켰다.

 

"합리주의와 독단주의는 우리 시대의 질병이다.

그것들은 해답을 모두 알고 있는 것처럼 꾸미고 있지만 많은 것이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다.

그것들은 지금 우리의 시야가 좁은 탓에 불가능하다고 제외된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의 시간 및 공간 개념은 근사치의 타당성밖에 지니지 못하는 것이다."   

- 칼 융 [Memories, Dreams, Reflections]


초기 심리학자들이 19세기 의학의 치졸함을 간파한 것처럼 오늘날의 심리학적 사고도 더욱 새로운 증거에 비추어 비슷하게 수정될 수밖에 없었다. 최근들어 전생요법을 쓰는 뛰어난 의사들, 모리스 네서튼 박사와 에디스 피오레 박사, 그리고 영국의 조 키튼 같은 사람들이 이루어낸 육체적, 심리적 질병에 대한 놀라운 치료사례들은, 잠재의식이라는 것이 의식에 떠오르지 않는 더 큰 전체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28쪽>

고대 티벳인들은 삶과 삶 사이의 이미지를 단 한마디로 표현했다. '바르도bardo'. 글자 그대로는 섬과 섬을 떼어놓는 공간인데, 육체의 편협성을 떠난 영혼에게는 대단히 중요한 사건들로 가득한 공간이다. 8세기에 쓰여진 [바르도 토돌bardo thodol: 티벳사자의 서]에는 인간이 죽음의 문턱을 넘어 다음 세상에 태어나기까지의 중간세의 의식수준이 그려져 있다. 여러 세대에 걸친 체외이탈 여행들을 모아 요약한 이 책은 죽어가는 사람과 죽은 사람의 머리맡에서 아직도 낭송되고 있다. 육신을 떠난 영혼이 바르도의 '위험지대'를 무사히 건너, 다시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기를 기원하는 것이다. 이 책에 따르면 중간세 바르도는 49일간 계속되며, '밝고 투명한 빛'에 쌓여 넘치는 기쁨으로 시작하여 '모든 선행과 악행이 생생하게 비쳐지는' 카르마의 거울을 들여다보며 조사하는 저승의 왕을 만나는 데까지 이어진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아멘티'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그 곳은 죽은이의 영혼이 새로운 육체에 들어가 다시 세상으로 내려오기까지 행복하게 지내는 곳이다. ....... 고대 헤브라이인들은, 다음 삶을 위한 가르침을 받으며 '파르디쉬'라는 곳에 머문다고 생각했다. 헤브라이 밀교(카발라)의 근본 경전인 [조하르]에는 "죄수의 몸은 슬픔에 젖어 참행복이 없는 곳으로 떠난다'는 구절이 나온다. 고대인들은 현대인들이 이제 겨우 알기 시작한 일들을 이미 알고 있었다. 삶과 삶 사이의 중간세야말로 우리의 본고향이며, 그곳에서 우리는 육체에 깃들기 위한 힘겨운 여행에 나선다는 것이다. 맨리 P. 홀은 [죽음에서 재생으로]에서, 육체에 깃들어 태어날 때의 체험을 잠수복 입은 잠수부에 비유하고 있다. 기분좋은 빛과 편안한 기분, 상쾌한 공기를 뒤로하고 갑판 위의 동아줄 하나에 의지해 바다 밑으로 내려가는 것이다. 

 

"...... 무거운 잠수복은 육체이고 바다는 삶이다. 사람은 태어날 때 잠수복을 몸에 걸치지만 그 영혼은 항상 위쪽의 빛과 동아줄로 연결되어 있다. 인간은 지혜라는 숨겨진 보물을 찾기 위해 슬픔과 유한생명의 바다 깊은 곳으로 내려간다. 왜냐하면 경험과 이해는 매우 값비싼 진주여서, 그것을 얻기 위해서는 어떤 어려운 일이라도 견뎌내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보물이 발견되거나 일이 끝날 시간이 되면 그는 다시 배로 끌어올려져, 무거운 장비를 벗고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자유를 만끽한다. 현명한 사람들은 우리가 삶이라고 부르는 이 사건이 바다 밑으로 한 차례 여행하는 것에 지나지 않음을 안다. 우리는 이전에도 여러 차례 바다 밑으로 내려간 적이 있으며, 보물을 발견할 때까지 앞으로도 몇번을 더 내려가야 할지 모른다."

 

카발라에서는 밤의 천사 라엘라가 떠도는 영혼의 코를 꼬집고 윗입술을 가볍게 눌러 기억을 없앤다고 믿고 있다. 그래서 우리 인중에는 천사의 손가락 자국이 남아있다는 것이다. 이밖에도 성전과 전설의 기록에는 중간세에 대한 공통된 모습들이 여러가지 나타나 있다. 시간을 뛰어넘는 느낌이라든가, 눈부신 빛이 갑자기 다가온다든가, 방금 지나온 삶을 파노라마처럼 다시 보고, 보통 세사람인 현인 앞에 나아가 심판을 받는다는 따위의 이야기들이다.

 

인지학의 체계를 세운 루돌프 슈타이너는 '죽음과 재탄생 사이의 삶은...... 이 세상 생활의 연속'이라고 주장한다. 그에게 있어서 죽음이란 단지 부활하여 원기를 되찾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의식을 유지하고 그것을 깨어있게 하기 위해 우리는 끊임없이 육체라는 껍데기를 깨뜨려 왔다.'고 썼다. 윤회연구의 세계적 권위자인 이안 스티븐슨 박사는, 중간세 문제가 '전세계적으로 대단한 관심을 끌고 있는 주제'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그가 말하는 '막간의 기억'이 가장 많이 나타난 나라는 태국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은 후에 자기의 신체를 보고 장례식까지도 봤다고 보고하고 있다. 또 저세상에서 '흰옷입은 사람'으로부터 영접을 받았으며, 다시 태어나기 전에 '망각의 열매'를 받았다는 사람도 있다. 이 열매를 먹으면 이전 삶에 대한 기억이 사라지며, 일부 피험자는 이 유혹에 빠지지 않았기 때문에 전생에 대한 기억을 여전히 기억을 가지고 있다고도 했다. 

 

캘리포니아의 에디스 피오레 박사는 1978년에, 그의 환자 일부가 삶과 삶 사이의 중간지대로 들어가 '순수한 에너지와 빛'을 보았으며, 또 어떤 사람들은 '아름다운 호수와 멋진 경치, 그리고 휘황찬란한 도시'를 보았다고 전했다. 또한 '계획자'나 '상담자'들에게 다음번 생을 선택하는 데 도움을 받았다는 경우도 있다. 어떤 사람은 어머니 머리 위에 '떠 있는' 영혼에 안내되기도 했다. 샌프란시스코의 임상심리학자 헬렌 웜바크 박사는 많은 최면연구사례를 종합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중간세 상태의 '빛과 사랑' 속에 그대로 남아있고 싶어하면서도 다시 태어나는 길을 선택했다고 밝혔다. 웜바크 박사의 피험자들은 삶과 삶 사이의 중간장소에는 남녀의 구분이 없고, 많은 경우 '상담자들'이나 '평의회', '권위자 그룹'과 상담한 뒤 마지못해 태어나는 데 동의했다고 한다. 

 

 

<36쪽>

"잘못을 저지르는 것도, 실패하는 것도 진보를 위한 수업이다."   - 윌리엄 엘러리 체닝

 

휘튼은 오랜 시간동안 최면추적을 계속하면서 수천년에 걸친 전생의 개인기록을 정리했다. 그는 피험자들이 카르마의 필요에 따라 거듭 환생하면서, 매번 특정영혼과 다른 관계로 상호작용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각 삶에서의 시련, 성공, 실패가 현재의 인격형성에 어떻게 기여했는가도 이해하게 되었다. 개인의 윤회역사에서 각각의 삶이 언뜻 보기에는 전혀 공통점이 없는 것 같아 보여도, 그것은 틀림없이 인과관계에 따라 전개된 것이라는 사실도 밝혀졌다. 결국 어떤 삶에서의 행동과 태도가 현재 또는 앞으로 다가올 많은 삶에서의 환경과 도전목표를 결정하는 것이다. 수천 시간의 최면과정을 끝낸 휘튼은 옛 경전의 기록들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 대다수의 경전에 "깨달음이란 육신에서 육신으로 아주 지루한 정화과정을 계속한 뒤에라야 얻을 수 있는 보물'이라고 쓰여 있다. 

 

휘튼 박사의 10년 이상에 걸친 '바르도 연구'의 발단이 된 것은 우연한 작은 발견이었다. ...... 그의 연구에 50명이 넘는 지원자가 몰렸고 그는 엄정한 심사를 거쳐 '폴라 컨시다인'이라는 사람을 선택했다. 42세의 폴라는 깊은 최면이 가능했고 생활방식과  성격, 취미, 행동, 희망 등에서 북미 주부의 전형이었다. 1973년 10월초부터 폴라는 매주 화요일 저녁마다 '토론토 심리연구학회TSPR' 본부가 있는 19세기 저택, 정원이 내다보이는 '노란 방'에서 휘튼을 만났다. 그로부터 1년여 사이에 폴라는 통산 100시간 이상의 깊은 트랜스 상태에 들어 자신의 긴 환생역사를 차근차근 얘기해 나갔다. 그녀는 대부분의 삶을 여성으로 살았다.

 

- 마사 페인: 1822년 미국 메릴랜드주 농장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에 농가 계단에서 떨어져 죽음.

- 마가렛 캠벨: 캐나다 퀘벡시 근교에 거주. 1707년에 17세였고 나중에 사냥꾼과 결혼.

- 아우구스타 세실리아: 수녀. 1241년에 34세. 삶의 대부분을 스페인 국경 부근 포르투갈의 고아원에서 일함.

- 텔마: 징기스칸 시대 몽골 족장의 여동생. 징기스칸을 '테무진'이라고 부름. 꽃다운 16세 때 싸움에 나가 죽음.

 

폴라의 전생들을 더듬어 가면 고대 이집트 노예의 딸로 살았던 때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그녀의 최면여행이 갑자기 방향을 바꾸기 시작한 것은 바로 그 무렵이었다. 1974년 4월의 어느 화요일 저녁,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폴라는 깊은 트랜스 상태에 들어 마사 페인의 농장생활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휘튼은 전날 이야기했던 마가렛 캠벨의 삶에서 좀더 상세히 알고싶은 것이 있다는 것이 생각났다. 그래서 열심히 이야기 중이던 폴라를 일단 중단시키고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마사가 되기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세요."

 

마사의 어린애 같은 목소리가 캐나다의 중년여성의 목소리로 바뀔 것을 기대하면서 휘튼은 몇 분간 기다렸다. 그러나 귀에 익은 프랑스 사투리는 좀처럼 들리지 않고 가끔 입에서 한숨이 새어나올 뿐이었다. 쉴새 없이 변하는 폴라의 표정은 무슨 일인가가 일어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듯 했고, 입술은 희미하게 움직일 뿐이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휘튼은 감을 잡을 수 없어서 당황하며 자신이 어디서 실수를 했는지 고민하고 있을 때, 폴라가 갑자기 눈을 깜빡이기 시작했다. 적당한 말이 떠오르지 않는지 말을 할듯말듯 하다가 드디어 꿈이라도 꾸고 있는 것처럼 억양없는 어조로 천천히 힘들여 말하기 시작했다.

 

"나는...... 하늘... 위에 있어요. ...... 농장의 집과 헛간이 보여요. ...... 지금은 이른 아침이고... 태양은 ...... 막 떠오르기 시작해, ...... 추수가 끝나 ...... 불에 탄 들판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드리우고 있어요." 휘튼은 귀를 의심했다. '하늘 위'에 있다니!  ......  휘튼은 폴라에게 "당신이 마사가 되기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세요."라고 말했는데, 제대로 하자면 "당신이 마사가 되기 전의 인물로 돌아가세요."라고 지시했어야 했다. 이 둘은 분명히 다른 의미인 것이다.

 

난처해진 그는 "당신은 하늘 위에서 무엇을 하고 있지요?"하고 물었다. "나는 ...... 태어... 나기를...... 기다리고...... 있어요. 어머니가 일하는 모습을 보고 ... 있어요."  "어머니는 어디에 있지요?"  "어머니는 우물가에 ...... 있어요. 양동이를 채우는데 ...... 아주 힘들어 ...... 힘들어해요."  "왜 힘들어하지요?"  "내 몸이 ...... 무겁게 짓누르고 있기 때문에요. ...... 어머니께 조심하라고 ...... 조심하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어머니를 위해서도, 나를 위해서도 ......"  "당신의 이름은 뭐죠?"  "나에겐 ...... 아직 ...... 이름이 ... 없어요."

 

완전히 당황한 휘튼은 평소처럼 후최면 암시를 걸어 지금 말한 것을 모두 잊게하고, 피험자를 20세기의 현실로 돌아오게 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가라앉지 않았다. 때마침 말을 부정확하게 사용함으로써 우연하게도 삶과 삶 사이의 틈, 인간체험의 영역에 없었던 곳에 발을 들여놓게 된 것이다. 

 

 

"너는 피와 살의 몸을 지니지 않았다.

그러므로 어떤 소리, 빛깔, 광선도 너를 괴롭힐 수 없고, 너는 죽을 수도 없다.

... 이것이 바르도 상태임을 알라."   - [티베트 사자의 서Tibetan Book of the Dead]

 

"육신은 죽더라도 자아는 ...... 결코 죽지 않는다.

삼라만상의 가슴속 깊은 곳에는 영혼이자 자아인 아트만이 숨어있다.

그것은 극히 작은 원소보다도 작고, 극대의 우주보다도 크다."   - [카타 우파니샤드]

 

"모든 영혼은 ...... 달과 지구 사이를 육체에서 육체로 떠돌도록 정해져 있다."   - 플루타르코스

 

"죽어서 새로 태어나기까지의 생활은 태어나서 죽기까지의 이 세상 생활만큼 풍요하고 다채롭다." 

 - 루돌프 슈타이너

 

우리 모두의 마음 깊숙한 곳은 빛이 충만하고 진리가 가득한 곳......

'안다는 것'은 길을 넓히는 것

그럼으로써 마음속에 갇힌 빛이 풀려나오고

그것이 없을지라도 빛은 밖에서 들어오지는 않는다.

   - 로버트 브라우닝 '파라켈수스'中

 

 

posted by moon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