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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2. 15. 04:41 책에서 발췌

 

 

 

<171쪽>

실제로 뇌손상을 입은 환자들 거의 대다수는 그 직전이나 직후에 일어난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하지만 임상적 사망상태에서 의식적인 정신과정을 겪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정상적인 경우라면 전혀 알 수 없는 것을 상세히 기억해내는 불가사의한 능력을 보여준다. 

많은 과학자들은 신경세포 수준에서의 전기적, 화학적 점화가 우리의 모든 인지과정을 생성한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그러나 사망 후 뇌기능이 정지된 환자들 중에는 자신이 의식을 잃은 채 병실이나 수술실 침대에 누워있을 때 일어난 일이 상세히 기억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더욱 믿기 어려운 점은, 그들이 자신의 의식과 '자아'가 천장 높이의 공중에 떠있었고 몸은 아래쪽에 누워있었다고 주장하는 사실이다.

그 놀랍도록 정확한 기억은 환자들이 자기 몸 밖에 있어야만 볼 수 있었던 내용에 관한 것이었다. 네덜란드의 심장 전문의이자 임사체험 전문가인 핌 반 로멜Pim van Lommel 박사는 유명한 의학 잡지인 [랜싯Lancet]에 게재한 글에서 자신이 근무한 병원에서 목격한, 심장정지 도중에 의식과 정신적, 인지적 기능이 유지된 어느 남자환자의 사례를 언급했다. 로멜 박사의 동료들은 소생술을 실시하면서 그 남자의 입에 호흡관도 삽입했다. 호흡관을 삽입하기 위해 입 부분을 벌리자 그의 윗니가 흔들렸다. 알고 보니 그것은 틀니였다. 간호사 한 사람이 틀니를 재빨리 빼냈다. 90분 동안 이어진 의료진의 끈질긴 노력 덕분에 남자의 심장이 다시 뛰었고, 몸 상태가 충분히 안정되었다.

1주일 뒤 그는 집중치료실에서 심장 병동으로 옮겨졌고, 치료 중에 틀니를 치웠던 간호사를 다시 만났다. 간호사는 약물을 투여하기 위해 병실에 들어섰고, 자기가 치료현장에 있었다는 사실을 드러낼 생각도 없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환자는 간호사를 알아봤다. 정말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간호사가 집중치료실에서 그를 치료할 때 전혀 의식이 없었다. 심장정지에 따른 혈류 부족으로 인한 혼수상태에 빠져있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는 간호사가 자신의 틀니를 빼는 모습을 봤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의식을 잃은 자기 몸 옆에 있던 심장정지 환자 치료용 카트, 간호사가 급히 틀니를 던져 넣었던 서랍, 자신이 소생치료를 받은 집중치료실 내의 작은 병실 등에 대해 설명했다.

그 소식을 전해들은 로멜 박사는 직접 조사에 나섰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상세한 그 남자의 기억에 입이 떡 벌어지고 말았다. 남자는 로멜 박사에게 "나는 천장 쪽으로 떠올랐고, 내가 아직 살아있다는 사실을 모두에게 알리고 싶었습니다. 내가 죽은 줄 알고 치료를 중지할까봐 걱정되었으니까요." 라고 말했다. 그 오래 전부터 로멜 박사는 그런 경험을 믿지 않았지만, 그렇게 자세한 증언에는 흔들리지 않을 수 없었다.


캐나다의 신경과학자인 마리오 뷰리가드Mario Beauregard 박사는 몬트리올대학교 연구병원 사크레쾨르 병원에서 2008년부터 2010년까지 초저체온 완전순환정지법DHCA을 실시한 환자들을 조사했다. 이 방식은 환자들의 체온을 섭씨 37도에서 뇌기능이 정지하는 온도인 섭씨 18도까지 떨어트림으로써 영구적인 손상을 유발하지 않은 채 혈액순환을 정지시키는 수술기법이다. 이때 환자의 몸은 너무 차갑기 때문에 세포의 대사활동이 아주 미미해진다. 따라서 산소가 부족하고 혈류나 혈액순환이 없어도 세포는 손상을 입지 않는다. 덕분에 의사들은 혈액순환이 없는 상태에서도 수술을 안전하게 진행할 수 있다.

 

생물학적으로 볼 때 순환정지 상태는 죽은 사람에게 일어나는 일과 동일하다. 초저체온 완전순환정지법은 인공심폐기를 사용할 수 없는 대동맥 결손 환자를 치료하는 데 사용되었다. 뷰리가드 박사가 진행한 연구의 주된 목표는 환자에게 초저체온 완전순환정지법을 실시하는 동안 일어날 수 있는 의식적 정신작용의 발생빈도를 추정하는 것이었다. 조사대상에 포함된 33명의 환자들 중에서 3명이 의식적 정신활동이 있었다고 증언해 연구진과의 면담을 거쳤고, 그 가운데 1명은 유체이탈 체험을 했다고 증언했다.


유체이탈 체험을 겪었다고 주장한 사람은 출산 직후 상행 대동맥을 인조혈관으로 대체하는 수술이 필요했던 어느 여자 환자였다. 뷰리가드 박사에 의하면 그녀는 수술을 받을 때 수술진의 어느 누구도 보지 못했고 그 누구와도 대화를 나누지 않았으며, 수술대 윗부분 뒤에 설치된 의료기기를 볼 수도 없었다고 한다. 그녀는 마취된 상태였고, 눈은 접착테이프로 가려져 있었다. 그런데도 그녀는 수술 도중의 어느 시점에서 유체이탈 체험을 했다고 주장했다. 그녀는 자기 몸 밖으로 빠져나와 간호사가 수술도구를 의사에게 건네는 모습을 봤다고 했다. 또한 마취상태와 자기 머리 뒤에 설치된 초음파 심장검사기를 인지했다. 뷰리가드 박사가 검증한 결과 간호사와 초음파 심장검사기에 관한 그녀의 증언은 사실이었다. 아울러 그녀는 평화로움과 기쁨을 느끼고 환한 빛을 봤다고 했다. 비록 개별적이지만, 그녀의 사례는 순환정지(생물학적으로 죽은) 상태에서의 의식적 정신활동의 가능성을 명확히 보여준다.

 


<176쪽>

'어둠 속의 코끼리'는 인도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이는 유명한 우화이다. 인도 이외의 여러 나라에도 그것과 비슷한 우화가 전해 내려오는데 특히 13세기 페르시아의 시인 루미Rumi가 들려주는 이야기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옛날에 인도에서 코끼리를 본 적이 없는 몇 사람이 자기 마을에 코끼리가 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들은 생전 처음으로 그 거대한 동물을 구경하기 위해 들뜬 마음으로 코끼리가 있다는 장소로 달려갔지만, 밤이 너무 깊어 코끼리를 제대로 볼 수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어떻게든 코끼리를 구경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들은 손으로 만져 코끼리의 정체를 파악하기로 했다.

 

첫 번째 사람이 코끼리의 코를 만지더니 "홈통이구나." 라고 말했다. 두번째 사람은 귀를 만지고서 "큰 부채이군." 이라고 말했다. 그 다음 사람은 다리를 만졌고, "기둥이다." 라고 말했다. 마지막 사람은 등을 문지르더니 "자네들 모두 틀렸네. 이것은 옥좌야." 라고 말했다. 그들은 그때까지 코끼리를 한 번도 본 적 없었다. 그리고 코끼리의 전체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기껏 손으로 만져서 알아낸 제한적인 양의 정보를 바탕으로 결론을 이끌어냈다. 코끼리는 그들 각자가 알아낸 부분보다 훨씬 컸기 때문에 그들은 코끼리의 종합적인 실체를 알 수 없었다.

 

 

<212~225쪽>
1510년, 미켈란젤로Michclangelo가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에 벽화를 그리고 있을 때 르네상스 시대의 또 다른 이탈리아 화가인 라파엘로 Raphael는 교황 율리우스 2세의 의뢰로 바티칸의 교황궁 벽면에 여러 학문분야를 묘사한 4점의 프레스코화를 그리고 있었다.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인 [아테네 학당The School of Athens]에는 기원전의 여러 시기를 풍미했던 그리스의 주요 철학자들이 각자의 활동연대와 무관하게 한꺼번에 등장한다. 그림의 한가운데에서는 플라톤과 그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진지한 대화를 나누고 있다. 라파엘로가 그림에 무슨 의도를 담았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어쨌든 종교적 도상으로 가득한 교황궁 벽면에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철학의 중심으로 묘사한 그림을 그린 점은 매우 인상적이다. 왜냐면 알다시피 정신, 프시케, 영혼, 우리의 존재적 본질 등을 둘러씨고 몇 세기 동안 이어진 대다수의 논쟁이 결국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제시한 두 가지 서로 다른 견해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그림의 중앙에서 왼쪽의 긴 회색 턱수염이 있는 사람이 플라톤이다. 그는 인간과 물리적 세계와의 관계를 논한 자신의 저서 [티마이오스Timaeus]를 들고 있다. 플라톤과 함께 걸어가고 있는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신적인 요소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삶을 논한 책인 [니코마코스 윤리학Nicomachean Ethics] 가운데 한 권을 쥐고 있다. 두 사람의 손을 보면 플라톤은 하늘을 가리키고 있는 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땅을 가리키고 있는 것 같다. 서로 다른 방향의 손짓은 각자의 철학적 핵심을 대변한다고 볼 수 있다. 즉 플라톤은 이원론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감각세계에 초점을 맞췄다. 두 사람은 아마 인간의 정신Psyche, '영혼' 그리고 심지어 사후생 같은 주제를 자주 토론했을 수 있다.


플라톤은 우리가 살고 있는 물질세계와, (비물질적인)프시케와 관련된 존재의 세계가 나란히 짝을 이루고 있다고 생각했다. 정의상으로 볼 때 그 영역은 완전하고 영원하다. 그러므로 '질료'의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그것과 짝을 이루는 “완전한 청사진이나 원형이 실재의 또다른 영역에 존재한다. 즉 진정한 완전성은 다른 영역에만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인간은 병에 걸리고 동물은 다리를 잃을 수 있다. 플라톤은 이것을 형상이론이라고 불렀다. ...... 플라톤은 '프시케'의 영원성을 믿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영혼과 육체의 관계를 시각과 눈의 관계에 비유했다. 만일 눈이 완벽하게 작동하면 우리는 그것의 부산물인 시각 현상을 경험한다. 하지만 시각은 눈과 동일한 것이 아니다. 시각은 눈의 영혼이다. 덧붙여 그는 인간의 영혼(인간의 생각, 감정, 심리적 구조, 그리고 인간을 인간답게 존재하도록 하는 모든 것)이 단지 인간의 물리적 질료가 완전한 경지에 이른 데 따른 부산물일 뿐이라고 말했다. 육체가 작동하는 한 인간은 영혼을 갖는다. 그러나 육체가 작동을 멈출 때 인간은 영혼을 잃는다. 확실히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는 우리가 죽을 때 일어나는 일에 관한 문제에 적용될 때 뚜렷한 대조를 보인다. 플라톤의 견해는,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것이다. 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우리가 죽으면 그것이 끝이라고 생각했다. 다만 영혼의 일부분인 지성이 우리가 죽은 뒤에도 육체에서 분리되어 계속 남아있을 수 있다고도 생각했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지금 과학자들은 프시케, 즉 영혼의 본질이라는 개념을 탐구하고 있다. 오늘날 과학계에서 그것은 곧 '의식의 문제' 를 가리킨다. 쉽게 말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우리의 생각, 감정, 느낌 따위처럼 기본적으로 우리를 우리답도록 하는 모든 요소는 과연 어떻게 생겨나는가? 몇 십 년 전만 해도 과학계에서는 이런 주제를 고려조차 하지 않았다. 현재 과학자들은 크게 2가지 부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넓게 말해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를 지지하는 사람들이고, 다른 하나는 대체로 플라톤의 견해를 지지하는 사람들이다. 이와 관련한 근본적인 질문은 다음과 같다. 

 

"뇌가 정신, 프시케, 영혼을 만들어내는가? 아니면 정신, 프시케, 영혼은 뇌와 분리된 채 뇌와 상호작용하는가?"

 

 

 

posted by moon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