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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4. 19. 00:24 책에서 발췌

피터 펜윅·엘리자베스 펜윅 지음, 정명진 옮김, 부글북스, 2008

 

 

 

<26쪽>

환영幻影에 대한 연구를 최초로 실시한 사람들은 19세기 말 심령연구자들인 에드먼드 거니Edmund Gurney와 프레데릭 윌리엄 헨리 마이어스Frederic William Henry Myers, 프랭크 포드모어Frank Podmore였다. 1886년에 처음 출판된 이들의 책 [살아있는 사람들의 환영들Phantasms of the Living]은 비상한 경험들을 모아놓은 아주 재미있는 책이다. 나는 그 중에서도 앨피리드 피치 장군에 관한 이야기를 특히 좋아한다. 

 

인도에 머물던 피치는 어느 날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나다가 옛 친구를 보았는데, 그 순간 '급한 일이 있어서 기별도 없이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피치는 친구를 따뜻하게 맞이하며 베란다로 안내한 뒤에 차 한잔을 부탁했다. 피치가 친구가 있는 베란다로 갔을 때, 그 옛 친구는 사라지고 없었다. 그 집에서 그 친구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2주 뒤, 피치는 자신이 그 친구를 본 바로 그 시점에 그 친구가 600마일 떨어진 곳에서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1920년대에 들어서 환영에 대한 과학적 연구를 처음 체계적으로 시도한 인물은 더블린에 있던 '로열 칼리지 오브 사이언스'의 물리학 교수였던 윌리엄 배릿William Barrett 경이었다. 그가 그 주제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산부인과 의사이던 자기 아내의 경험이었다. 배릿 부인은 도리스라는 여인의 출산을 돕기 위해 수술실로 들어갔다. 아이는 건강하게 태어났으나 도리스는 출혈로 죽어가고 있었다. 배릿 부인은 도리스가 누워 죽어가면서 어떤 식으로 환영을 보기 시작했는지를 묘사했다.

별안간 그녀가 수술실의 한쪽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상냥한 미소가 그녀의 몸 전체에서 피어 올랐다. 그녀가 "오, 정말 사랑스럽네."라고 말했다. 무엇을 보고 있는지 묻자 그녀는 "사랑스런 빛, 경이로운 존재들."이라고 대답했다. 조금 뒤 그녀는 이렇게 외쳤다. "아니, 아버지잖아! 아, 내가 온다고 너무 반가워하시네. 너무나 기뻐하셔. 이제 남편만 오면 모든 게 완벽한데." 도리스는 아버지에게 "제가 가고 있어요."라고 말한 뒤에 배럿 부인을 향해 "아버지가 정말 가까이 계셔요."라고 덧붙였다. 그러고 나서 도리스는 다소 당혹스런 표정을 지으며 "아버지가 비다와 같이 있어요. 비다가 아버지하고 같이 있어요."라고 말했다.


윌리엄이 그 이야기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도록 만든 것은 그녀의 마지막 말이었다. 비다는 도리스의 동생이었다. 두 사람은 아주 친하게 지냈다. 실제로는 비다가 3주 전에 세상을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도리스의 예민한 몸 상태 때문에 가족들이 그 사실을 그녀에게 알려주지 않고 있던 터였다. 그럼에도 동생이 이미 죽은 아버지와 동행한 모습을 보았다는 사실은 윌리엄에게 그것을 무의미한 것으로 지나쳐서는 안 된다는 예감을 주었다.

사실 그 사건이 너무나 강한 인상을 남겼기 때문에 그는 이와 비슷한 경험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1926년에 출간된 그의 책 [죽음의 자리에 나타나는 환영들Deathbed Visions]은 이런 경험들이 단지 뇌가 죽어가는 데 따르는 현상이 아니고, 죽어가는 사람들의 정신이 멀쩡할 때에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는 또한 죽어가는 사람의 임종을 지켜본 의료진이나 친지들이 죽어가는 환자의 환영을 함께 본 케이스도 여러 건 보고했다.

환영들에 관한 연구를 처음으로 포괄적이고 객관적으로 실시한 사람들은 칼리스 오시스Karlis Osis와 얼렌더 해럴드슨ErlendurHaraldsson이었다. 1961년에 오시스는 내과의사와 간호사 각각 5천명을 대상으로 그들이 돌본 말기환자들에게서 관찰한 환각상태에 대해 설문조사를 여러 차례 실시했다. 그 중 하나는 1961년부터 64년까지 미국에서, 다른 하나는 1972년부터 73년까지 인도에서 실시되었다. 흥미로운 부분은 환영에 나타나는 여행 동반자의 모습에 문화적 차이가 분명하다는 점이다. 미국에서의 환영은 죽은 친지와 친구였으며 종교적인 인물의 에스코트는 훨씬 드물었던 반면, 인도인들의 경험에서는 죽음의 신이 보내는 사자死者인 얌두트yamdoot같은 종교적 환영이 많았다.

내가 임종시(臨終視:임종 전에 보는 환영)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폴린 드류가 나에게 보내준, 그녀의 어머니가 죽기 전날의 묘사다.
"갑자기 어머니가 창쪽으로 눈길을 주더니 창을 뚫어져라 응시하는 것 같았어요. 그러다 어머니는 갑자기 내 쪽으로 눈길을 돌리더니 "폴린, 죽는 것을 절대로 두려워하지 마. 아름다운 빛이 보였고 나는 그 빛 쪽으로 다가서고 있었어. 그 빛이 얼마나 아름다웠던지 이렇게 다시 돌아나오기 위해서는 나 자신과 싸워야 했어."라고 말했어요.

 

이튿날 나는 집으로 돌아가면서 어머니에게 "엄마. 잘 자고 내일 봐요."라고 인사했어요. 그러나 어머니는 나를 똑바로 바라보면서 "난 내일 따위는 걱정하지 않는단다. 너도 그래야 해. 나에게 약속해."라고 말했어요. 슬프게도 그녀는 이튿날 아침에 세상을 떠났어요. 하지만 저는 어머니가 그날 마음의 평화를 주는 뭔가를 보았으며, 이제 몇 시간 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생각해요."

나는 영국 사우스햄튼 대학의 연구원인 샘 파르니아Sam Parnia 박사와 함께 심장치료센터에서 일어나는 근사체험을 연구하고 있다. 심장박동이 정지되었다가 살아난 환자들이 보고하는 경험이 주를 이룬다. 다른연구원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심장박동 정지에서 회복한 사람 중 10% 가량이 심장박동이 멈춘 동안에 근사체험을 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실제로는 이 사람들이 당시에 임상적으로 죽은 상태였기 때문에 그 경험을 '근사체험NDE;near-death experience'이라고 부르기보다는 '실제죽음체험actual death experience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적절할 것 같다.

이 '실제죽음체험'도 근사체험과 똑같은 특징을 보인다. 즉, 빛 속으로 들어가고, 보통 영국 시골의 정원처럼 보이는 어떤 영역으로 옮겨가고, 자신을 맞이했다가 간혹 돌려보내기도 하는 죽은 친지들과의 만남이 이뤄지는 것이다. 그러나 막상 죽음을 앞둔 사람의 입장에서 가장 중요하고 뜻깊은 특징은 평화와 평온이며, 강한 연민과 사랑과 빛이다. 죽음을 앞둔 사람들은 죽은 친지들과 함께 가면 자신도 죽을 것이며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안다.

내가 스코틀랜드의 한 신문과 삶의 임종시에 대해 인터뷰한 기사에 대한 반응을 통해서 나는 그런 경험에 관한 자료를 엄청 많이 모을 수 있었다. 그 인터뷰 기사에 대한 대중의 반응은 죽음 직전에 환영을 보는 현상이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으며, 환영의 종류도 매우 다양하다는 점을 확인시켜 주었다. 다음의 경험은 특별히 설득력 있다고 여겨졌다.

"1950년 무렵에 먼 친지 한 분이 인버니스의 병원에 입원했어요. 그날은 일요일이었고, 제 아버지는 존을 방문하러 나가셨다가 존이 그날 아침 시간에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그 병원의 관계자가 아버지께 존의 가까운 친지들에게 부고를 좀 전해줄 수 있는지 물었어요. 존의 여동생인 케이트와 그녀의 남편은 이스터 로스의 외진 곳에서 전화도 없이 살면서 양을 치고 있었답니다. 그래서 아버지와 나는 20마일 가량을 차로 달려가서 다시 농장까지 산을 올라갔어요. 거기서 케이트를 만났는데 대뜸 "여기까지 오신 이유를 알아요. 오빠가 세상을 떠나면서 '케이트, 케이트'라고 부르는 소리를 들었어요."라고 말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녀는 오빠의 죽음에 대해 훤히 알고 있었어요. 시간까지 병원에서 기록한 그대로 맞췄어요. 정말 신기한 경험이었지요. 세월이 흘렀지만 그 경험은 결코 잊을 수 없었고 앞으로도 잊지 못할 겁니다. 그 당시 저는 열일곱이었습니다."

간혹 이런 경험이 더 깊어지는 경우, 죽어가는 사람은 그 방문자와 함께 '중간 세계intermediate reality'까지 함께 여행할 수도 있다. 이때 죽어가는 사람은 그곳을 현실세계보다 더 현실적이라고 깨닫는다. 그 중간 세계는 빛과 사랑, 연민이 깊이 스며든 세계이다. 이 영역에서 친지들과 이방인들이 두루 보일 수 있는데 거의 모두가 포근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을 돕고, 의식의 지속성을 약속하기 위해 그곳에 와 있는 존재들이다.

한 어머니는 유방암으로 죽어가던 32세 딸의 인생 마지막 2, 3일 동안의 일을 나에게 이렇게 묘사했다.
"딸은 자기 머리 위로 시커먼 지붕과 밝은 빛을 의식했어요. 딸은 대기실 같은 곳으로 옮겨갔어요. 거기엔 존재들, 특히 딸의 할아버지가 딸을 도와주고 모든 것이 괜찮을 거라고 위로하기 위해 와 있었어요. 딸은 이 영역에 들어갔다가 나온 뒤로는 그것이 꿈이 아니었다고 굳게 믿었어요."

 

<36쪽>

죽음의 시점에 무엇인가가 육신을 떠나간다는 느낌은 많이 논의되지는 않지만, 죽음을 앞둔 사람을 돌보는 사람들과 친지들에게는 중요한 대목이고 직접 그 부분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에만 보고하는 현상이다. 그에 대한 설명은 매우 다양하다. 이 경험의 핵심은 그 현장에 있던 누군가가 죽는 사람의 육신에서 빠져 나간다고 본 것의 형태 혹은 모양이다. 드물게 죽는 사람의 발을 통해 무엇인가가 빠져나간다는 보고도 있지만 대체로는 입이나 가슴 또는 머리로 빠져나가는 것으로 보고된다.

 

육신을 빠져나간 그것이 천장으로 사라지기 전에 육신 위를 떠도는 경우도 간혹 있다. 방 안에 있던 모든 사람이 다 그 환영을 보는 것은 아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나타나며 약간의 방해에도 금방 사라져 버린다. 누군가가 그 방으로 들어오거나 말을 해도 그 환영은 쉽게 사라지고 만다. 그런 경험을 했던 이들은, 특히 그 환영이 사랑과 빛과 연결되어 있을 때 대단한 위안을 느낀다. 그 느낌은 죽음 후에도 며칠동안 이어질 수 있으며, 더 중요한 것은 그 후로도 몇 년 동안 위안거리로 남는다는 점이다.

"별안간 남편의 가슴에서 너무도 휘황한 빛이 빛나는 것이었어요. 그 빛이 위로 오를 때, 거기에는 매우 아름다운 선율과 노래 소리가 흘러나왔어요. 나의 가슴도 무한한 기쁨으로 차오르는 것 같았고, 내 심장은 이 빛과 음악과 함께 하기 위해 위로 올라가는 느낌이었어요. 그때 갑자기 어떤 손이 내
어깨를 건드리더군요. 간호사가 "참 안됐지만, 남편분이 이제 막 떠나셨어요."라고 말했어요. 그러자 빛도 보이지 않고 음악도 들리지 않더군요. 나는 홀로 뒤에 남겨졌다는 생각에 깊은 상실감을 느꼈어요."


죽어가는 사람과 정서적으로 밀접하게 연결된 누군가가, 심지어 죽어가는 사람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고 그 사람이 아프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을 때에도 그 사람의 죽음을 자각한다는 보고가 많다. 이런 경험들은 짧은 시간만 지속되며, 죽어가는 그 사람이 '방문'하는 형식을 취할 수도 있다. 아니면 별안간 그 사람이 죽었다는 확신이 들 수도 있다. 이때는 그 사람이 작별인사를 하기 위해 나타났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그런 느낌을 받는 사람은 대체로 죽음을 앞둔 사람이 평소 잘 알던 자신을 방문할 수 있는 허락을 받았다는 식으로 받아들인다.

죽음을 앞둔 사람이 나타날 때에는, 비록 그 사람이 삶을 살다가 어떤 외상을 입었다 하더라도 다시 예전의 온전한 모습으로 돌아가 있다. 말을 하는 경우는 좀처럼 없으며, 단지 자신이 죽어가고 있으며 모든 것이 괜찮다는 암시만을 준다.

"나는 침대에 누워 뒤척이고 있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깊은 시간이 아닌데도 아버지께서 침대 옆에 나타났어요. 아버지께서는 오랫동안 병을 앓고 계셨는데, 그때는 환자의 모습이 아니더군요. 삶의 전성기 때 모습으로 돌아가 계셨어요. 아버지는 아무 말씀을 하지 않으셨어요. 나는 긴 뒤척임 끝에 마침내 잠이 들었어요. 아침에 일어나서야 알았어요. 아버지께서 그 전날 밤 늦은시간에 돌아가셨고, 다음 생으로 들어가시는 길에 저를 방문할 허락을 받았다는 것을 말입니다."


죽음의 시간과 연결된 다른 '우연의 일치'는 대형 괘종시계에 관한 옛날 노래 '할아버지의 낡은 시계'에서처럼 시계가 멈추는 것이다. 동물의 행동에 이상한 점이 나타난다는 보고도 있고, 죽어가는 이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동물이나 새가 보이는 경우도 있다.

 

 

2007년 2월, 우리는 임종시가 얼마나 흔하게 일어나는지를 파악하는 한편, 이 책을 위한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사례들을 기사로 싣기로 결정한 저널리스트 대니 펜맨과 이 주제에 대해 토론했다. 그 직후에 채널4의 '리처드 앤드 주디'라는 쇼 프로그램에 초대를 받아 임종시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프로그램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방송이 나가고 2, 3주 만에 수백 통의 편지와 e메일이 쏟아졌다. 이런 일들을 몸소 겪은 사람들, 그런 경험을 한 지인의 모습을 지켜본 사람들, 가족 누군가로부터 그런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이 보내온 것이었다.

그 중에는 다른 사람들에게 그 경험을 한 번도 털어놓지 않은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도 자신과 비슷한 경험을 한다는 사실에 큰 위안을 받았다. 친구와 가족들에게 이야기를 털어놓자 미묘한 이야기들이 더 나왔다. 4천 마일이나 떨어져 살던 아버지가 죽던 순간에 갑작스레 대재난이 일어난 느낌을 받았다는 우리 딸의 친구 이야기에서부터, 어떤 친구의 숙모가 죽을 때 그녀의 무릎에 즐겨 앉던 고양이가 도저히 설명 불가능한 행동을 보이더라는 이야기까지.

우리가 받은 이야기들에서 중요한 세 가지가 거듭 확인되었다. 첫번째는 이 경험들이 당사자와 목격자 모두에게 너무나 편안하게 다가온다는 점이고, 두번째는 그 경험들이 꿈이나 바람, 상상 혹은 약물로 인한 환각이 아니라고 확신한다는 것이고, 세번째는 그런 편지를 보내온 사람들이 자신에게 강렬한 영향을 미친 그 경험에 대해 처음으로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음에 큰 위안을 느꼈다는 점이다. 시나 하든의 다음 이야기는 전형적이다. 

 

1968년, 시나의 어머니는 폐렴과 늑막염으로 이중의 고통을 받고 있었다. 최악의 상태에서 사경을 헤매던 어느 날 밤에 어머니는 침대 발치에 누군가가 서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순간 평온한 느낌이 그녀의 전신에 퍼져 나갔다. 그녀는 그 사람이 최근에 죽은 자기 아버지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가 그녀를 향해 미소를 지어보이며 손을 내밀고 있었다. 아버지를 따라가길 원한 그녀는 그와 함께 가기 위해 자신의 몸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녀의 아버지가 머리를 흔들며 딸에게 아직 세상을 떠날 때가 아니며 가족들이 그녀를 더 필요로 한다는 뜻을 전했다. 그녀는 아버지와 함께 감으로써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너무나 간절했기 때문에 큰 혼란을 느꼈다. 그러나 그는 딸에게 때가 되면 다시 와서 데려가겠다고 말했다. 시나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10년 뒤인 1978년 1월에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수술을 받은 뒤라 많이 아팠지요. 어느 날 오후 내가 어머니를 찾았을 때, 그녀는 자신이 간 뒤에 내가 해야 할 일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어요. 가족을 돌보는 방법 등에 관한 이야기였지요. 나는 어머니에게 어디로 가는지 물었어요. 그러자 어머니는 자신이 죽을 것이라고 말하더군요. 그날 오후 어머니의 가족(그녀의 어머니와 남동생과 여동생이 8년 사이에 모두 세상을 떠남) 모두가 어머니를 방문했어요. 그들은 천국에서 어머니를 맞이할 준비를 끝내놓고 있었고, 그땐 어머니가 갈 시간이었던 것이지요. 어머니의 아버지는 다시 한번 '아주 빨리' 돌아와서 딸을 데려가겠다고 약속했어요. 어머니는 자기 가족들이 반원을 그리며 서 있고, 모두가 매우 행복해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가족들과의 만남에 매우 흥분했어요.

 

제 아버지는 의사들에게 그녀의 상태에 대해서만 물었어요. 의사들은 어머니가 '호전'되고 있고, 비록 회복이 느리기는 해도 위험상황에서는 벗어났다고 대답했지요. 그러던 어머니가 이튿날 아침 이른 시간에 갑자기 돌아가셨지 뭡니까! 그 이후로 30년간 저는 종종 그때를 떠올리곤 해요. 하지만 가족들 사이에도 그 일을 놓고 진정으로 이야기를 나눴던 적은 없어요. 그 당시에 어머니께서 하신 말씀을 가족들에게 들려주었던 기억이 납니다. 아버지께서는 나의 말을 믿고 내 생각에 위안을 얻는 것 같았지만 오빠와 언니들은 도무지 믿으려 들지 않았어요. 

 

그 다음 몇 년 동안에 친한 친구 몇 사람에게도 그 이야기를 들려주었지만, 그들이 그런 경험에 약간의 의미라도 부여하려 드는 나의 정신상태가 이상한 것 아니냐는 식으로 받아들인다는 걸 느꼈어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 어머니가 겪은 두 번의 그 '생생한 꿈'이 모두 안구에까지 약물의 효과가 미쳤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더군요. 나의 솔직한 심정을 말씀드리지요. 어머니의 가족들이 그녀를 찾아왔으며, 어머니는 평화롭게 그들의 손에 이끌려 갔다고 진정으로 믿을 때도 간혹 있어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환영들' 때문에 어머니가 삶을 포기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떨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그 꿈 때문에 자신이 죽을 거라고 믿었을 수도 있으니까요."


 

posted by moon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