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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 human doing but human being - P'ta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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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4. 20. 23:54 책에서 발췌

 

 

 

<47쪽>

우리와 인터뷰한 의료인들은 '임종시臨終視' 현상을 비록 임상학적으로 정의하고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그 경험이 지극히 개인적이며 때때로 영적인 경험이라는 점에 모두 동의했다. 그들 중 몇 명은 임종시 현상이 죽음이 임박했음을 알리는 척도일 수 있으며, 환자를 이해하기 위해 그 '죽음의 언어'를 배울 필요가 있다고 느끼고 있었다. 그들은 환자가 죽은 친지들의 방문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면 마지막 순간이 가까워지고 있음을 알았다.

 

"죽은 이들이 방문하기만 하면, 저는 환자들이 이 물리적 세상에 대한 끈을 내려놓고 평화롭게 떠날 것이 확실하다는 걸 알아요."

"물리적인 세상을 버리는 한편, 그 다음에 일어날 일들에 대비하는 겁니다."

"임종에 즈음하여 환자에게 영적 변화가 일어난다고 저는 생각해요. 그들은 이렇게 말해요. '따스함을 느꼈어. 뭔가가 내 주변으로 왔고, 나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편안했어. 그걸 묘사하기는 쉽지 않지만, 그냥 다 괜챦으리라는 걸 알아.'"  

"거기에는 따스함과 평화가 있어요. 나도 그 느낌과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바버라 케인이 세세하게 들려주는 매혹적인 이야기는, 죽음을 앞둔 사람이 동시에 거주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두 개의 세계를 매우 선명하게 그리고 있다. 바버라는 90세이던 자신의 어머니가 2005년 크리스마스 무렵에 폐렴으로 죽어가면서 병원에서 보낸 마지막 날들을 묘사했다. 바버라의 어머니는 손자와 손녀를 비롯한 가족 모두에게 매우 차분하고 분명한 목소리로 말을 했으며, 정신에도 빈틈이 없었다. 그녀는 자기 손자에게 미래설계에 대해 말하면서 자기가 손자를 얼마나 자랑스럽게 여기는지, 그리고 손자가 훌륭한 배필을 만나기를 얼마나 간절히 바라는지 털어놓았다. 

 

"손자와 함께 했던 그 한시간 동안 어머니는 간간이 '사람들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는 걸 안다'는 말을 했어요. 그 사람들이 병실 밖 정원에 있다고 하셨대요. 그들이 덤불 뒤에 있었기 때문에 어머니는 그 사람들을 묘사할 수는 없었어요. 어머니는 손자에게, 그 사람들이 '자신이 쓰러질 경우'에 돕기 위해 그곳에 와 있다고, 자신이 병실에서 남편도 봤다고, 자기는 아무렇지도 않다고 말했다더군요. 그러자 제 아들이 할머니의 몸에 부착된 의료기계를 확인했는데 전혀 이상이 없었답니다.

 

손녀인 제 딸이 도착했을 때도, 어머니가 '그 사람들'을 다시 언급했을 때에도 그녀의 심장과 산소 수치는 변동을 보이지 않았어요. 그러다가 '그 사람들'이 병실 창문 안으로 들어섰다고 말씀하시면서 어머니는 차분한 표정으로, 지금은 손녀가 그들을 보지 못하겠지만 언젠가 때가 되면 이해할 거라고 설명하셨다고 해요. 어머니는 '그 사람들'에게 차분히 손을 흔들어 보이며 손녀에게 그들을 소개했어요. 마치 그 사람들이 제 딸에게 말을 걸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 뒤에 어머니는 크리스마스와 다른 일상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더군요.

 

한시간 뒤에는 제가 병원을 찾아 딸과 합류했습니다. 우리 둘은 나란히 앉아 어머니와 잡담을 했어요. 어머니는 나의 삶에 대해 말했어요. 많은 과거 상황들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계셨지요. 나의 미래에 대해서도 말했어요. 이야기 중간중간에, 이젠 침대 가장자리까지 다가와 있는 그 사람들에 대한 언급이 있었어요. 어머니는 내일이면 자신이 이곳에 없을 거라면서 '내가 쓰러지면 '그 사람들'이 나를 일으켜 여행을 안내할 것'이라고 설명했어요. 그 말에 우리는 약간 움찔했지만 어머니는 지극히 태연하더군요."

 

그날 오후 5시쯤 '그 사람들'은 바버라 어머니의 침대 위에, 손녀 바로 곁에 걸터앉아 있었다. 이제 바버라의 어머니는 그 사람들과 가족들을 상대로 3자간 대화를 했다. 그러다 그녀는 손녀에게 크리스마스 이브이니 병실을 나가 마음껏 놀라고 말했다. 손녀는 병실을 나갔지만, 사실은 주차장에서 바버라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제가 다시 도착한 것은 45분쯤 뒤였어요. 딸과 함께 병실로 들어갔어요. 침대 주변에 커튼이 드리워져 있었어요. 우리는 모니터를 보았죠. 혈압이 대단히 높더군요. 심장발작이었죠. 우리는 곧장 간호사실로 갔어요. 간호사들도 의사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우리는 다시 병실로 갔고, 간호사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깨워보려고 하더군요. 그러자 어머니가 두 눈을 떴어요. 하지만 진짜로 보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어요. 그런 상태에서 어머니는 "멋진 인생이었어."라고 말한 뒤 눈을 감으시더군요. 전화로 남편과 아들을 불렀어요. 어머니가 크리스마스 이브 9시 55분에 평화롭게 세상을 떠나는 모습을 우리는 침대 옆에서 지켜보았습니다.

 

어머니의 평온한 모습과 죽음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그녀의 자각에 우리 모두 큰 위안을 얻었어요. 그 모든 일에도 어머니가 평화로운 모습을 지킬 수 있다는 사실은 정말 다행이었지요. 죽어가는 사람이 환각을 일으키는 데는 의학적인 이유가 있다고 우리 모두 생각하고 있어요. 뇌 손상이나 약물 혹은 혈액 중 특정 성분의 부족 등이 원인이 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어머니의 경우에는 지극히 정상적으로 대화를 하는 중에 그런 환영이 나타났다는 사실은 너무 이상하지 않아요? 그리고 어머니가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는 죽음을 그렇게 선명하게 알고 있었다는 점도 정말 이상해요. 어머니는 숨이 끊어지던 시점에는 이미 그곳에 있지 않았을지도 몰라요."

 

이 이야기에서는 죽음이 가까이 다가올수록 '그 사람들'도 점점 더 가까워진다는 점이 참으로 흥미롭다. 처음에는 정원 덤불에 있다가, 마지막에는 그녀의 침대에 걸터앉지 않던가. 그리고 그녀가 가족과 완벽히 이성적인 대화를 나누고 있던 그 '진짜 세계'는 그녀가 그 사람들과 소통하던 '다른 세계'와 완벽하게 어우러지지 않는가. 그녀는 서로 나란히 존재하는 두 세계를 완벽하게 구분할 수 있었고, 자기만이 그 사람들을 볼 수 있지만 다른 이들도 때가 되면 그걸 이해하게 되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방문객들로부터 상당히 믿을만한 정보를 받았던 것이 분명하다. 그녀가 내일 아침이면 마침내 이곳을 떠나 그들과 함께 여행길에 오를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63쪽>
우리의 연구에서  종교적 인물이 환영으로 나타나는 경우는 겨우 2%에 지나지 않았고, 가까운 친지가 환영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70%였다. 낯선 사람이 나타나는 경우는 무척 드물었으며, 설령 나타난다 해도 거기 있는 다른 동행자에 의해 '그 사람이 오래 전에 죽어서 얼굴을 못 알아보는 것'이라는 소개가 따랐다. 우리의 연구에서는 살아있는 사람이 환영으로 나타났다는 케이스가 하나도 없었다.

 

크리스 앨콕의 아버지와 같은 경우에는 마지막 떠남을 늦추기 위해 천사와 협상을 벌이는 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그때 앨콕은 죽음을 맞이하고 있던 아버지를 만나러 스코틀랜드에서 글루체스터로 자동차를 몰고 있었다. 그러나 도중에 자동차가 고장이 나버렸고, 그의 여동생이 아버지에게 오빠가 늦어지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여동생이 병실 밖에서, 아버지가 병실 안의 누군가에게 심사가 뒤틀린 목소리로 말을 하는 소리를 들었대요. 그래서 자기 아이들이 병실에 들어가서 아버지를 귀찮게 했나 싶어 안으로 들어갔답니다. 침대에는 아버지밖에 없었대요. 그래서 동생이 아버지에게 누구와 말을 하고 있는지 물었는데, 아버지께서 '천사들에게 아직 떠날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말했지.'라고 대답했답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나를 볼 때까지는 살아 있기로 작정한 것이지요."

 

어떤 사람은 나이가 많은 자기 숙모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평생토록 죽음은 모든 것의 끝이라는 믿음을 굳게 지켰던 분이었다고 한다. 그들은 생전에 그런 믿음을 놓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이야기를 들려준 사람 자신은 죽음의 종말성에 대해 언제나 회의적인 시각을 갖고 있었기에 그런 논쟁은 늘 뜨겁게 진행되었다. 그러던 그녀가 죽음을 맞이하는 자리에서 조카와 단 둘이서 잠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지 물었다고 한다. 그녀는 조카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버트, 결국 너의 말이 옳았어."

 

33년 동안이나 환자를 간호해 온 까닭에 그런 환영과는 매우 친숙한 주디 휘트모어는, 자신이 간호했던 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사후세계라는 건 절대로 없다는 관점을 가진 친구를 간호하고 있었어요. 그녀는 마지막 2시간 동안 아주 평온하게 주기적으로 깨어나서, 분명하고 기쁜 목소리로 '나는 곧 알게 될 거야', '좋아. 이제 갈 준비가 됐어', '정말 아름다워'라는 말을 하더군요. 그녀는 이런 말을 툭툭 던진 뒤에는 곧바로 무의식 상태로 빠져들었어요. 그녀는 매우 만족하고 행복하고 평화로웠어요. 그것은 그녀의 파트너와 나에게 너무나 경이로운 경험이었습니다."

 

이반 마틴의 아내는 죽기 한 달 전쯤에 남편에게 자기 어머니를 보았다는 말을 자주 했다. 그런데 침대 발치에 나타나는 그녀의 어머니는 매우 말쑥하게 차려입은 젊은 여인의 모습이었다고 한다.

"당신, 꿈을 꾸고 있지 않은 게 분명해?"라고 내가 물었어요. 그랬더니 아내한테서 "나도 실제로 보는 것과 꿈 정도는 구별할 줄 알아."라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아내는 매우 행복해 보였고 말을 조금 더 하려는 듯 했어요. 나는 그 경험이 아내를 특별히 평온하게 만든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요. 저는 이 모든 일에 초월적인 어떤 힘을 부여하고 싶지는 않아요. 그런 일에는 내가 특히 냉소적이거든요. 나는 무신론자입니다. 사람의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것 그 이상의 무엇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머릿속에 있는 것이 우리 인간존재의 모든 것이잖아요. 사람이 죽으면 거기에는 더 이상 아무 것도 없게 되지요."

 

나의 환자 중에서 뇌종양으로 죽은 어느 환자의 아내는 자기 남편의 마지막 순간을 이렇게 설명했다.

"남편은 무의식에 빠져들고 있었어요. 내가 보기에도, 그 사람은 자기 앞의 어딘가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어요. 얼굴에는 누군가를 알아볼 때 짓는 미소가 서서히 퍼지더군요 마치 누군가를 맞이하는 것 같았어요. 그런 뒤에 남편은 편안하게 자세를 풀고는 세상을 떠났어요."

 

"나는 어머니의 눈이 활짝 열렸다는 걸 알았어요. 그 순간 어머니가 깨어났다는 생각에 황급히 침대 옆으로 갔어요. 어머니는 자기 앞의 한 점을 응시하고 있었어요. 대충 천장과 벽이 만나는 지점이었어요. 나는 어머니 위로 머리를 숙이며 어머니가 나와 눈을 맞추는지 확인했어요. 그래도 어머니는 여전히 나의 뒤 어딘가를 뚫어져라 보고 있었어요. 그래서 제가 "지금 어머니를 보고 있는 사람이 누구예요?"라고 물었어요. 대답을 기대했던 건 아니었고 문득 어머니가 자신을 만나러 온 누군가를 바라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 남동생은 폐기종으로 죽어가고 있었어요. 동생은 숨을 쉬는 것이 무척 힘겨워 보였어요. 그러다 숨쉬는 소리가 멈추는 것 같더니 갑자기 호흡이 정상으로 보였습니다. 동생은 45도 정도 위를 보면서 환하게 웃더군요. 마치 어떤 물건이나 사람을 바라보듯이 말입니다. 그러다 동생이 내 쪽으로 몸을 돌리더니 나의 팔에 안겨 갑자기 숨을 거두었어요. 오늘까지도 나는 그때 동생이 자신이 본 것을 나에게 말하려고 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어요. 그가 죽기 전 몇 초는 아마 영원히 나와 함께 할 겁니다. 너무나 강렬한 순간이었어요."

 

"그녀의 눈이 활짝 열리고 계속해서 똑같은 지점을 응시하고 있었어요. 한 12분 정도 그렇게 지속되었을 겁니다. 나는 담당 간호사를 불렀어요. 그 간호사가 다른 가족에게도 연락을 해야겠다고 하더군요. 아내와 내가 어머니를 내려다보고 있는데, 어머니의 호흡이 점점 가늘어지더군요. 그녀는 두 눈을 감았고 몇 초 뒤에 숨을 거두었어요."

 

간호사 힐러리 프루드가 들려준 이야기다.

"나는 동료 간호사와 함께 어떤 환자를 돌보고 있었어요. 새벽 4시쯤 되었던 것 같아요. 그 남자환자가 우리 두사람에게 자기 침대 옆에 서 달라고 부탁하더군요. 자신을 돌봐준 우리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기를 원했던 것이지요. 그런 뒤에 그 사람이 나의 어깨 너머로 창을 바라보면서 "잠시만 기다려. 조금 있으면 당신과 함께 갈 수 있어. 이 간호사들에게 나를 돌봐준 데 대해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은 것 뿐이야."라고 말하더군요. 그 환자는 몇 번 더 그 말을 되뇌이다가 세상을 떠났어요."

 

심각한 심장발작 후 2주 동안 혼수상태였던 사람의 이야기다. 그의 몸 절반이 마비되었고 볼 수도, 말할 수도 없었다. 그의 유일한 움직임은 머리와 눈, 왼쪽 팔과 왼쪽 다리 뿐이었다.

"그 사람이 죽기 4, 5일 전에 어떤 마지막 모임이 있었던 게 틀림없어요. 끝에는 그 사람이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의 손을 매우 그럴듯하게 잡고 악수를 하더군요. 적어도 세 사람은 되는 것 같았죠. 그는 마지막 사람의 손을 잡으려고 했어요. 그러다 보니 그의 손이 내쪽으로 아주 가까워졌어요. 그때 침대 옆에 앉아 있던 내가 허공으로 손을 내밀었지요. 그가 악수를 하려는 듯 나의 손을 움켜쥐더군요. 그러다 금방 내 손이 자기가 원하던 손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나봐요. 매우 강하게 나의 손을 뿌리쳤으니까요. 그러면서 그는 나를 째려보면서 '어디 감히!'라고 말하고는 자신이 원하는 사람의 손을 잡는 일로 돌아갔어요.

 

그가 가슴 뭉클한 작별인사를 한 것은 그 다음 날이었습니다. 그가 어렵게 나의 머리를 끌어당겨 자신의 머리와 어깨 사이에 붙이더군요. 그러면서 너무나 경이로운 포옹을 하면서 입을 맞추었어요. 육체적으로 거의 움직이지 못할 뿐 아니라 보지도 못하고 말도 못했던 남자였는데! 저는 너무나 감동한 나머지 말문이 다 막혔어요. 그리고 사흘 뒤 그 사람은 혼수상태로 빠져들었어요. 마지막 숨을 내쉴 때에는 머리를 창문 쪽으로 돌리더니 서서히 두 눈을 뜨더군요. 눈빛은 내가 그때까지 본 것 중에서 가장 예리하게 빛나는 푸른색이었어요. 그리고 몇초 뒤에 눈빛이 서서히 정상으로 돌아가더니 다시 두 눈을 서서히 감더군요."

 

테레사 위첼로가 죽어가던 자기 어머니를 지켜본 경험도 비슷했다.

"어머니가 암으로 앓아누웠을 때 나는 여동생과 함께 집에서 간호했어요.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기 이틀 전의 일입니다. 어머니가 침대 아래쪽의 벽으로 눈길을 주더니 우리에게 매우 분명한 목소리로 말했어요. '얘들아, 아빠한테 손을 흔들어 줘. 아빠가 우리에게 작별인사로 손을 흔들고 있잖아.'라고요. 우리 아버지는 6주 전에 돌아가셨어요. 여동생과 나는 그 전에 이런 이야기를 들었던 터라 눈에 보이지도 않는 아버지 쪽으로 손을 흔들면서 '잘 가요, 아빠.'라고 인사까지 했지요. 그런 뒤에 어머니는 서서히 무의식 상태로 빠져들었다가 죽을 때까지 우리에게 한마디도 하지 못했어요."

 

"우리 모두는 아버지의 침대 옆에 둘러서서 그의 손을 잡거나 팔을 주무르면서 가족의 사랑을 표현하고 있었어요. 그때 나는 침대 끄트머리에 서 있었어요. 문이 있는 쪽이었어요. 아버지께서 손짓으로 나를 부르더군요. 그래서 아버지 곁으로 갔어요. 그런데 아버지께서 제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씀을 하시더군요. 아버지는 침대 발치에 있는 문을 계속 응시하시면서 다시 한번 누군가를 불러들이려는 듯 문 쪽으로 손짓을 했어요. 그때는 아버지께서 완전히 평온한 상태였습니다. 호흡이 점점 더 얕고 느려지더니 끝내는 세상을 떠나시더군요. 그때도 여전히 아버지의 시선은 문을 가리키고 있었어요. 지금도 우리들은 아버지가 모두에게 작별인사를 하기 위해 기다렸으며, 그의 어머니와 아버지, 형제들이 아버지를 위해 그곳에 나타났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레이철 스캐롯의 아버지는 암에 걸렸고, 마지막 몇 주 동안에는 병세가 너무나 악화되어 도저히 집에서 돌볼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 그래서 그는 말기환자들을 위한 요양원으로 옮겨졌다.

"내가 아버지의 방으로 들어갔더니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있는 여자가 누구냐고 묻더군요. 나는 아버지에게 내 옆에는 아무도 없다고 대답했어요. 처음에는 아버지가 약을 많이 드신 탓에 허깨비를 보았다고 생각했어요. 그날 오후에 동생과 나란히 앉아있는데 아버지가 일으켜 앉혀달라는 겁니다. 아버지는 며칠 동안 말을 많이 하지 않았지만 그때는 돌아가는 상황을 정확히 알고 있는 것 같았어요. 불편하시냐고 물었는데 아니라고 하시면서, 그 여자가 자기 주위를 걷게 할 필요가 있다고 하시더군요. 아버지는 기대 앉은 채로 그 '여자'가 괜찮은지 보려는 듯 계속 머리를 돌리려고 했어요. 내가 아버지에게 그 여자는 세상을 편안하게 떠났으며 모든 것이 잘 처리되었다고 말씀드렸죠. 아버지는 이튿날 아침에 돌아가셨어요.

 

동생과 나는 몇 시간 동안 그 일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어요. 그러다 내가 동생에게 혹시 그 여자가 우리 어머니가 아닐까 하고 물어봤어요. 매우 현실적이었던 동생이 자기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대답하더군요. 우리 어머니는 알츠하이머병으로 6년 전에 돌아가셨고, 그때까지 아버지가 7년 동안 어머니를 간호하셨죠. 저도 그렇게 믿고 싶어요. 두 분이 건강을 되찾아 다시 함께 살고 있다고 말입니다."

 

 

 

posted by moon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