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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 human doing but human being - P'ta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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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4. 28. 00:19 책에서 발췌

 

 

 

<95쪽>

살다보면 어느 한순간 이상한 예감에 휩싸일 때가 더러 있다. ... 어떤 이가 곁에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데 실제로는 보이지 않는다. 잠에서 반쯤 깨어난 상태로 환영을 보는 경우, 자신이 사랑하는 누군가가 아프거나 죽어가고 있다는 느낌에 거의 압도당한다. 아니면 까닭모를 슬픔의 폭발이나 형언할 수 없을 정도의 불편한 느낌을 경험할 수도 있다. 

 

"정말 불행하게도 나의 동생은 20년 전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어요. 그날 나는 오후 5시까지 사무실에서 일을 할 생각이었지요. 그런데 오후 4시 20분이 되자 왠지 불편해지기 시작하더군요. 저도 모르게 성호를 그었어요. 그래서 이런저런 이유로 5시까지 일을 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가방을 챙겨 집으로 향했습니다. 내 동생이 음주운전 차량과 충돌하여 즉사했다는 소식을 들은 건 다음날 새벽 2시 30분이었어요. 동생이 죽은 시간은 전날 오후 4시 20분이었더군요."

윈 베인브리지가 사촌 여동생이 죽던 날을 묘사한 글이다. 윈은 암으로 고통 받던 그 사촌과 매우 친했다.
"2002년 1월 1일 낮 12시 45분이었어요. 컴퓨터로 작업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기분이 나빠지더군요. 뭐가 잘못되었는지는 알 길이 없었죠. 통증이나 울렁거림은 없었고, 내 몸에서 모든 것이 쑥 빠져나간다는 무서운 느낌 뿐이었어요. 이 느낌이 20분가량 이어졌어요. 그날 오후 조카가 전화로 자기 어머니가 죽었다고 알려주더군요. 의사는 그녀가 몇 개월 더 살 수 있을 거라고 예상했기에 짐작하지 못했던 소식이었지요. 나는 조카에게 어머니가 언제 죽었는지 물었고, 12시 55분이었다는 대답을 들었어요. 참으로 이상한 우연의 일치지요."

재닛 라이트의 이야기도 죽는 사람과 남는 사람 사이의 밀접한 감정적 연결을 강조한다.
"남편은 2005년에 세상을 떠났어요. 그가 죽기 전날 밤, 아들과 딸은 나와 함께 그의 침대를 지켰어요. 아버지와 매우 가깝게 지냈던 딸은 사진사여서 이튿날 결혼식에서 사진을 찍어주기로 예약이 되어 있었어요. 딸아이는 마음이 내키지는 않았지만 이튿날 아침에 병실을 떠났어요. 남편이 세상을 떠난 것은 그날 오후 1시 30분쯤이었습니다. 그 전날 밤부터 의식을 찾지 못한 채 그대로 떠나간 것이지요. 그래도 딸에게 즉시 전화를 걸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의 결혼식을 방해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2시쯤 딸에게 전화가 왔어요. 그제서야 나는 아버지가 1시 30분쯤에 돌아가셨다고 알려줬어요. 전화선을 타고 딸이 숨을 고르는 게 느껴졌어요. 당연히 그 소식을 알려주지 않은 데 대해 화가 났다고 생각했지요. 그러나 그게 아니었어요. 딸이 병원으로 와서 좀 엉뚱한 이야기를 들려주더군요. 사진 찍는 작업에 제아무리 신경을 쓰려고 해도 좀체로 정신집중이 되지 않더랍니다. 그래서 자신이 일정대로 일을 처리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시계를 보았답니다. 그때가 1시30분이었다더군요. 그러면서 왠지 모르게 눈물이 쏟아지더랍니다. 다른 사람의 결혼식 도중에 말이죠. 그 시간이 너무나 정확했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우리는 언제나 남편이 세상을 떠나던 순간에 딸을 방문했다고 믿고 있습니다."

린다 데니의 시할아버지가 죽던 날의 이야기이다. 린다 부부와 3년을 함께 살았던 그는 식도암을 앓고 있었다.
"어느날 밤 뮤지션인 남편은 일을 나갔고 시동생이 그를 찾아왔어요. 나는 할아버지에게 차 한잔 드시겠냐고 물었어요. 그랬더니 '좋지. 한잔 주렴.'이라고 대답하셨죠. 나는 주방으로 가서 주전자를 불에 올리고 물이 끓기를 기다리는데, 전화벨이 울렸어요. 남편이 '할아버지 괜찮으셔?'라고 묻더군요. 그래서 나는 괜찮다고 대답했어요. 남편이 하는 말이, 기타를 연주하는데 갑자기 할아버지가 그곳에 나타나셨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더랍니다. 그래서 곧장 무대에서 내려와 전화를 걸었대요. 나는 남편을 안심시키고 전화기를 내려놓았어요. 내가 찻잔을 들고 방으로 들어서려는 순간, 시동생이 방을 나오면서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어요.'라고 하더군요. 할아버지는 그때 막 눈을 감은 것입니다."

죽어가는 사람이 가까운 지인에게 직접 방문하는 형태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찾아와서 말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 사람이 그곳에 왔다는 강렬한 느낌으로 끝난다. 죽음을 맞이한 사람은 자신이 죽어가고 있으며, 작별인사를 전하러 왔고, 언제나 자신은 괜찮다는 메시지를 암시한다. 이런 케이스들은 언제나 남은 사람들을 위로하고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다음은 앨릭스 커밍의 아버지가 아들을 마지막으로 방문한 이야기이다.

"2시15분이었어요. 일을 하면서도 나는 아버지가 나와 함께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아버지께서는 자신이 죽었으며, 그 사실을 나에게 알려 주려고 방금 왔다고 하더군요. 나도 아버지를 알아보면서 계속 일을 했어요.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셈이지요. 마음의 동요 같은 것은 전혀 없었어요. 오히려 저를 안심시키는 효과가 있더군요. 그리고 30분 뒤에 전화벨이 울렸어요."

"1979년에 74세이던 어머니는 어느 목요일에  응급실로 실려 갔어요. 이튿날 그녀는 기운을 회복했고, 토요일쯤이면 집으로 퇴원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생기를 되찾았어요. 나는 일요일에 어머니를 방문했어요. 그녀는 회복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월요일 이른 아침에 나는 잠에서 반쯤 깬 상태에서 어머니를 생생한 컬러로 본 것 같았어요. 캄캄한 곳에서 평상복 차림으로 각광spotlight 아래 서 있는 어머니를요. 두 손을 꼭 쥔 채 급하고 강한 말투로 '진, 걱정하지 마, 나는 괜찮아.'라고 하더군요. 어머니는 이 말을 몇 번 되풀이하시고 희미하게 사라졌어요. 나는 침대 옆의 시계를 보았어요. 새벽 3시 20분이었어요. 이튿날 나는 간호사한테서 어머니가 새벽 3시20분에 돌아가셨다는이야기를 들었어요. 너무나 이상한 경험이었기에 나는 꿈을 꾸고 있거나 아니면 내 정신이 약간 나갔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 이야기를 아무한테도 하지 않았어요. "

제인 허버트의 어머니는 그녀가 12세 때 세상을 떠났다. 다음 이야기는 그녀의 아버지가 들려준 이야기이다.
"어머니는 2년 동안 시름시름 앓으셨어요. 돌아가신 후에야 부검을 통해서 뇌종양이라는 걸 알게 되었지요. 그녀의 건강이 악화되고 있었던 것은 분명했지만, 죽음이 그렇게 급히 닥칠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죠. 그녀는 세인트 토마스 병원을 자주 드나들었고, 돌아가실 당시에도 그 병원에 입원해 있었지요. 그 병원의 의사였던 내 아버지는 별로 종교적이지도 않았고 환상 같은 것을 믿을 분도 아니에요. 그가 침대에 누워 책을 읽던 어느 날 밤, 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었던가 아니면 현존現存이 느껴졌다고 해요. 그래서 아버지는 아내가 떠나간다는 것을 이해했어요. 그래서 책을 내려놓으며 '여보, 괜찮을거야.'라고 대답하셨대요. 그리고 10분 뒤 어머니의 사망소식을 전하는 병원의 전화를 받으셨답니다."


<108쪽>
앤 리델은 어느 날 밤에 누군가가 자기 손을 꼭 잡는 느낌에 잠을 깼다. 이튿날 그녀는 그때가 할머니가 돌아가시던 시간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진 헨프리는 할머니가 돌아가시는 순간에 담요 속에 포근히 안기는 느낌을 받으며 잠을 깼다. 존 파르는 아버지가 돌아가시던 시간에 전화 때문에 잠에서 깨어났다. 그러나 전화벨 소리가 아닌 음악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고 한다. 그의 아버지는 음악가였다. 조너선 라이세라크는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던 날 누군가가 자기 소매를 잡아당기는 느낌을 받았다. 


제니스 애쉬톤의 이야기이다.
"아침 출근길에 남편은 8시 15분경 평소와 같은 장소에 나를 내려줬어요. 거기서 직장까지 15분쯤 걸어가면 되는데 그날은 자동차 문이 닫히는 순간, 나의 가슴을 무엇인가가 죄고 있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그래서 나는 남편에게 차를 세우라고 손짓했지만 허사였어요. 그래서 나는 어떤 건물 벽을 붙잡고 버텨보려고 애썼지요.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아버지처럼 심장에 이상이 생기면 안 되는데….' 그러자 통증이 사라지더군요. 그래서 나는 다시 걸어서 출근을 했어요. 업무를 시작한 지 10분도 안되었을 때, 아버지가 근무하던 사무실에서 전화가 왔어요. 아버지가 출근 직후 심장발작을 일으켜 병원으로 실려가는 중이라고요. 5분 후에 다시 전화가 왔어요. 아버지께서 숨을 거두었다는 통보였어요."

상선을 타던 레이몬드 헌트는 1966년 5월에 폐암으로 입원한 아버지를 위해 휴가를 내어 집에 머물고 있었다.
"아버지를 방문하고 돌아온 나는 집에서 평소처럼 맥주를 몇 병 마시고 깊이 잠들었어요. 그러다 가슴 통증과 호흡곤란으로 잠에서 깨어났어요. 침대 옆의 시계를 본 기억이 납니다. 새벽 4시 15분이었죠. 통증이 점점 심해졌고 나는 숨을 쉬려고 안간힘을 썼어요. 이제 통증이 참을수 없을 정도가 되더군요. 그러다 어느 순간 통증이 가라앉았고, 나는 대단한 평화와 사랑의 느낌을 받았어요. 통증이 싹 사라지고, 나는 형언할 수 없는 그 느낌을 경험했지요. 간절하게 그것이 끝나지 않기를 바랐어요. 어디를 가든 그 느낌이 함께 했으면 싶었어요. 나는 내 몸이나 이 세상으로 돌아오고 싶지 않았어요.

 

내가 잠에서 깨어난 것은 누군가가 문을 두드린 아침 7시쯤이었어요. 출근하던 이웃사람이었어요. 친절하게도 병원에서 걸려오는 전화 메시지를 받아서 전해주기로 약속한 사람이었어요. 그때 우리 집에는 전화가 없었거든요. 물론 나는 문을 열기도 전에 그가 무슨 말을 할 것인지 알았어요. 아버지가 지난 밤에 돌아가셨다는 소식이었거든요. 그 경험은 내 몸에는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았어요. 나는 이전처럼 건강합니다. 하지만 나의 내면에는 엄청난 영향을 미쳤지요. 나는 나 자신에게 일어난 변화를 부정할 수 없어요. 나는 꽃과 나무 등 가릴 것 없이 살아있는 모든 존재는 다 소중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우리 모두는 서로의 마음이나 육체에 해를 입히지 않고 서로를 도움으로써 좀더 나은 세상을 만들려고 노력해야 해요. 나의 이 경험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해요. 이제 나는 죽음에는 두려워할 구석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압니다. 나의 아버지는 행복했어요."


레이몬드의 경험은 임사체험과 매우 비슷하다. 마치 의식이 육체를 떠난 것처럼 격심한 고통이 갑자기 사라진 점, 그가 육체나 이 세상으로 돌아가기를 꺼렸던 점, 그 경험이 남긴 인상이 매우 강렬하고 오래 지속된다는 점, 그리고 죽음의 가능성 앞에서도 두려움이 전혀 없다는 점 등은 임사체험의 특징이다. 레이몬드 이야기는 자기 아버지의 경험을 공유했던 것처럼 들린다.

죽음을 앞둔 사람의 고별방문 중 대다수는 꿈 속이나, 잠에서 깨어나는 비몽사몽간이나, 반쯤 깨어있고 반쯤 잠든 최면상태에서 일어난다. 최면상태에서는 사람이 실제로 꿈을 꾸고 있는지 아닌지를 정확히 모른다. 의식이 완전히 깨어 있는 일상생활 중에 고별방문이 일어나는 경우는 무척 드물다. 낮시간의 '방문객'은 그 곳에 있다는 느낌을 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음에 소개하는 두 이야기는 특이하다. 

글래디스 애스틴의 딸이 자기 어머니의 요청으로 우리들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의 편지를 보내왔다.
"이 이야기는 제2차 세계대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어머니는 '군 위문 봉사단'의 일원으로 밴드와 함께 가수로 활동하던 여동생 이렌을 방문하러 갔어요. 그날 점심시간에 두사람은 강변을 따라 산책을 하고 있었답니다. 그때 이렌이 영국해군 소속 조종사 유니폼을 입은 어떤 남자가 다리 위에서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발견했어요. 이렌이 나의 엄마에게 '아니, 다리 위의 저 사람 해롤드 같지 않아?'라고 물었어요. 해롤드 쇼는 이렌의 남자친구였어요. 두 사람은 그런 것 같다면서, 정말 해롤드인지 아니면 그와 닮은 사람이 해롤드의 유니폼과 똑같은 것을 입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다리 쪽으로 걸어갔는데, 그들이 다리에 닿았을 때 그는 사라지고 없었어요. 주변에는 그들 두 사람 외에는 아무도 없었답니다. 어디를 둘러봐도 사람은 보이지 않았으며, 딱히 숨을 만한 곳도 없었다고 해요. 저 아래에서 보였던 사람이 언제 어떤 식으로 사라졌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이 당혹스러운 일로 인해 두 사람은 종일 그 일을 떠올렸대요.

이튿날, 그들은 함께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습니다. 이렌이 자신의 어머니(나의 할머니) 생일날 불시에 방문해서 깜짝 놀래줄 생각이었지요. 할머니가 집에 돌아왔을 때, 이렌은 어머니를 놀려줄 생각으로 재빨리 등받이 의자 뒤에 숨었어요. 그러나 할머니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이렌이 의자 뒤에 숨어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저의 어머니에게 놀라운 소식을 전했다더군요. 해롤드가 영국 오크니 섬 위를 비행하다가 적군의 공격을 받아 추락해 죽었다고요. 해롤드의 전투기가 추락한 것은 그 전날 점심 무렵이었어요."

이 이야기의 흥미로운 대목은 자매 모두가 그 사람을 보았고, 두 사람 모두 그가 해롤드라고 확신했다는 부분이다. 또한 해롤드를 목격한 시간이 두 사람 다 의식이 깨어있던 한낮이었다. 제니 스타일스가 보내 온 다음 경험 역시 낮에 이뤄졌다. 어머니의 형상을 보았다는 제니의 남동생은 자기 어머니가 죽었다는 사실은커녕 아프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었다고 한다.

"어머니는 2006년 크리스마스를 앞둔 12월 17일 저녁에 돌아가셨어요. 어머니는 6주 전에 심각한 심장발작을 일으켰고, 회복의 가능성이 거의 없었어요. 나는 미국에 살던 남동생에게 어머니의 상태가 급속도로 나빠지고 있음을 알려줘야 했어요. 남동생이 내쉬빌에서 워싱턴 D.C로 옮겨갔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주소나 전화번호는 몰랐어요. 아무리 노력해도 허사였지요. 그런데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흘째 되던 날 밤에 뜻밖에도 남동생이 전화를 걸어왔더군요. 동생은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말을 듣고도 놀라지 않았어요. 동생은 그 전 일요일 오후에 어머니가 워싱턴 거리를 걸어 다니는 것을 보았다고 하더군요. 영국과 미국의 시차를 감안하면, 동생이 어머니를 보았다는 시간은 어머니가 숨을 거두던 그 때였어요. 동생은 어머니의 옷차림까지 묘사했어요. 크림 색깔의 정장이었다더군요. 그러나 나의 동생은 근 10년 동안 어머니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어머니가 그 옷을 샀다는 것을 알 리가 없었습니다."

죽음을 앞둔 사람의 고별방문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때는 꿈을 꾸거나 갑작스럽게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이다. 우리가 확보한 100여 건의 사례 중에서 66%가 꿈속이나 갑자기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에 일어났다. 1987년 10월에 테리 우즈는 영국해군 소속 군인으로서 잠수함을 타고 8주 예정의 정찰활동에 참가하고 있었다.

"잠수하고 이틀 뒤에 나는 할아버지가 죽는 꿈을 매우 생생하게 꾸었어요. 할아버지가 사시던 곳에서 우리 가족 모두가 기다리고 있었다는 점에서 매우 이상한 꿈이었어요. 내가 마지막으로 그곳에 도착했어요. 할아버지는 나를 보자 모두가 한자리에 모였다는 것을 확인하시고는, 조카의 자전거를 집어타고는 '이제 됐어. 나는 간다.'라고 말한 뒤 페달을 밟으며 길로 사라지더군요. 나는 이튿날 아침에 일어나서 친한 친구에게 '간밤에 할아버지가 죽는 정말 이상한 꿈을 꾸었어.'라고 말했어요. 그러자 친구는 그건 꿈일 뿐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위로하더군요.

정찰활동에 나선 잠수함 승무원들에게는 나쁜 소식은 절대로 전하지 않죠. 가족 전보로 승무원들에게 전할 수 있는 소식도 1주일에 40단어로 제한되어 있습니다. 내 아내는 '할아버지 별세'라는 메시지를 보냈지만, 해군은 3주 동안 나에게 온 가족전보를 몽땅 보류했지요. 나는 뭔가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다 함장이 나에게 가족전보를 보여주지 않은 이유를 알려주기로 결정했어요. 할아버지가 돌아가셨기 때문이었지요. 1987년 10월18일 새벽 3시쯤이었다더군요. 나는 할아버지가 아프시다는 사실조차도 몰랐어요.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던 그 시간에 나는 200피트 아래 대서양 물 속에서 잠을 자고 있었어요. 매우 생생하고 이상한 꿈을 꾸며 말이죠."

필립 힐리도 어머니의 죽음을 예고받았다. 그와 매우 친밀했던 어머니는 치매를 앓고 있었다. 그는 아버지, 여동생과 함께 최대한 그녀를 직접 보살폈지만 결국 요양원에 맡기기로 했다.
"나는 7월 26일 아침에 예고라고 받아들일만한 꿈을 꾸었어요. 천연색이었어요. 그때까지 그런 꿈을 꾼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어머니가 전화를 걸어 '필립, 잘 지내니?'라고 물었어요. 그래서 '어머니, 건강 괜찮으세요?'라고 되물었지요. 그러자 어머니는 '그래, 나는 괜찮다만 이제 가야겠어.'라고 말하더군요. 나는 잠에서 깨어나 그게 현실이었음을 알았어요. 어머니는 이튿날 아침에 세상을 떠났어요."

 

로라 스케일스는 자기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던 날 밤에 일어난 일들을 이렇게 묘사했다.
"생생한 꿈을 꾸었어요. 반바지와 양털 재킷에 운동화 차림을 한 어머니가 식당으로 걸어오더군요. 어머니는 완벽하게 건강해 보였고, 한결 젊어 보였어요. 그녀는 버들가지로 만든 낡은 의자에 앉더군요. 나는 주방에 있다가 어머니를 보자마자 그쪽으로 달려가며 '여기서 뭐하세요? 훨씬 좋아보이세요.'라고 외쳤어요. 그러고나서 우리 집 복도였던 곳으로 눈길을 돌렸는데, 병원이 보이고 간호사 한사람이 다가오더군요. 그래서 나는 간호사를 향해 '어머니가 많이 나아졌네요.'라고 했어요. 그때 어머니가 나를 보며 '나, 이제 떠날 준비가 됐어.'하시더군요. 그 즉시 나는 어머니가 이 세상을 떠나려는 의미라는 걸 알아차렸어요. 나는 어머니를 바라보며 '하지만 우리 아직 인사를 안 했잖아.'하며 어머니와 입맞춤을 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그녀가 거기 없는 것처럼 나의 얼굴이 어머니의 얼굴을 그냥 통과하지 뭡니까. 우리 둘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조용히 말했어요. '하느님, 딱 한번만요.' 그제서야 나는 어머니와 제대로 키스를 할 수 있었고, 어머니가 그 꿈에서 사라지더군요.

나는 갑자기 잠에서 깨어나 침실의 시계를 보았어요. 그때가 새벽 2시 15분이었어요. 나는 새벽5시에 일어나 소식을 초조하게 기다렸어요. 전화벨이 7시에 울리더군요. 병원에서 걸려온 전화였으며, 어머니가 새벽 2시 50분에 돌아가셨다는 소식이었어요. 내가 꿈을 꾸고 나서 정확히 30분 뒤의 일이었지요. 그 꿈을 더욱 특이하게 만드는 것은 어머니가 9개월가량 나의 집을 방문할 수 없었다는 사실이지요. 어머니는 걸을 수가 없었기 때문에 그런 여행은 애초에 불가능했지요. 그 당시 나는 집의 식당 구조를 크게 바꿔 놓았는데 어머니는 그것을 한 번도 보지 못했어요. 꿈속에서 본 식당의 구조는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본 모습이었어요. 이를테면, 내가 어머니의 눈으로 식당을 보는 것 같았지요. ... 그 꿈은 나의 인생에서 특별한 순간으로 영원히 남을 것입니다."

 

<123쪽>

대학에서 강의를 하면서 은퇴를 앞두고 있는 리처드 버프튼은 1970년대 초만 해도 페르시아만에서 잠수부로 일하고 있었다.
"나는 바레인에서 배를 타고 사우디아라비아의 라스타누라로 가고 있었어요. 이제 막 그 배의 조종을 다른 잠수부에 넘긴 뒤였지요. 영국 우편 근로자들이 파업 중이라 우리는 한동안 편지를 한 통도 못받았어요. 나는 배 앞쪽에 누운채로 반쯤 잠이 든 상태였는데, '환'영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뭔가가 눈앞을 지나가더군요. 가느다란 리본 같다고나 할까요. 거기에 글자가 쓰여 있었어요. 마음속으로 읽었는데 짤막했어요. '할아버지 별세'. 나는 화들짝 깨어나 서너 계단을 한걸음에 뛰어올라 선실로 들어갔어요.  친구에게 급히 집으로 전화를 좀 해야겠다고 말했지요. 바레인 전화국을 통해 영국에 있던 어머니와 전화가 연결되었어요. 어머니가 전화를 받더니 슬픈 소식이 있다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내가 말을 가로막으며 전화를 건 이유가 바로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을 알았기 때문이라고 말했지요."


진 치스먼의 남편은 양극성 장애를 앓다가 1989년 2월에 자살로 삶을 마감했다. 그 당시 부부는 별거 중이었지만 좋은 친구로서 매우 가깝게 지내고 있었다. 두 사람은 그 전날에도 만나 함께 시간을 보냈으며, 그때만 해도 그는 삶에 매우 적극적인 것처럼 보였다.
"내가 매우 생생한 꿈을 꾸다가 울면서 잠에서 깬 것은 새벽 3시였어요. 꿈속에서 빈센트가 내 침대 끝에 앉아서, 이제 더 이상 울지 말라고 나를 달래더군요. 이제 다 끝났고 마침내 평화를 얻게 되었다면서 말입니다. 나는 다시 잠자리에 들었어요. 아침에 일어나서는 평소처럼, 필요한 일들을 조금 했어요. 8시쯤에 고객 2명에게서 전화가 왔어요. 아마 그들은 내가 '남편이 방금 죽었기 때문에 휴가를 내야 한다'고 말했을 때 아마 변덕을 부리는 줄로 알았을 겁니다. 나는 우리의 애완견 멀린과 함께 그의 아파트로 가서 경찰을 불렀어요. 검시관의 보고에는 빈센트가 새벽 3시쯤 죽은 것으로 되어 있었지요."

방문객들이 전하는 메시지가 한결같이 자신은 괜찮다는 뜻을 담고 있기 때문에 고별방문을 받는 사람들은 보통 대단한 위안과 안도를 느낀다. 

 

posted by moon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