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쪽>
"밤에 침대에 누워 자다가 깨어났어요. 아니, 적어도 내가 깨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좀 지나고보니 내가 확실히 깨어있었는지 자신할 수 없게 되더군요. 나의 시야로 한줄기 밝은 빛이 들어왔어요. 빛이 그 거울 주변과 거울 속을 비출 때 할머니의 모습이 보였어요. 할머니가 거울을 통해 나를 보고 계셨어요. 자신이 이미 죽었다고 설명하셨지만 나는 울지 않았어요. 할머니가 너무나 행복해보였거든요. 더없이 평화롭고 차분한 순간이 있었어요. 나를 둘러싸고 있는 그 빛이 담요처럼 느껴졌어요. 나와 할머니에게 거울은 특별한 의미가 있어요. 내가 어렸을 때 할머니와 나는 거울을 들여다보면서 함께 시간을 보내곤 했거든요. 할머니는 나에게 거울을 통해 본 것들과 그 중요성에 대해 묻곤 했어요.
일어나자마자 나는 어머니에게 전화해서 꿈 이야기를 했어요. 어머니는 할머니가 편찮으시다면 연락이 왔을 거라며, 내가 걱정이 지나쳐 그런 꿈을 꿨을 것이라고 했죠. 그날 오후에 숙모가 전화로 할머니가 하루 전에 돌아가셨다고 알려주었어요. 숙모는 병이 곧 나아질 것으로 기대했고, 갑작스런 죽음에 너무 당황해서 연락이 늦었다고 설명하더군요."
티나 마이어는 런던의 가족과 떨어져 26년째 호주에서 살고 있었다.
1991년 어느 밤이었어요. 자다가 갑자기 깨어났어요. 졸린 눈을 억지로 뜨는 그런 상태가 아니었어요. 깊은 잠을 자다가 한순간에 화들짝 깨어난 것이었지요. 두 눈을 크게 뜨니 깜깜한 방 저쪽, 내 침대 끝에서 아주 빠른 걸음으로 나에게로 다가오는 얼굴이 하나 보이더군요. 런던에서 살던 오빠의 하얀 얼굴이었어요. 꿈이나 상상은 아니었어요. 나는 남편을 깨워 당시 일어난 일들을 말해주었어요. 이어서 나는 사랑하는 오빠의 사망소식을 들었죠. 감기가 기관지 폐렴으로 악화되었다고 해요. 나는 오빠가 세상을 떠날 때 나를 생각했고 그 순간 그의 영혼이 나와 함께 했다고 믿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1993년 12월 10일 새벽 2시에 세상을 떠났어요. 그녀는 유방암 치료를 받고 있었지요. 나는 어머니가 그렇게 심각한 상태라는 말을 듣지 못했어요. 어머니는 12월 7일에 병원에 입원했어요. 12월 8일에 도셋과 내가 병원을 찾았어요. 12월 9일 밤 나는 깊은 잠을 자다가 갑자기 눈을 뜨고 벌떡 일어나 앉으며 '엄마!'하며 불렀어요. 실제로 나는 병원으로 전화를 걸려고 했지만 시간이 새벽 2시였어요. 12월 10일 아침 7시 30분에 숙모가 어머니가 돌아가신 소식을 전해줬어요. 새벽 2시였답니다. 몹시 당혹스러웠던 그 순간은 절대로 잊지 못할 거예요.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눈물이 마구 흐르네요."
"아버지는 병원에 입원해 계셨지요. 그런데 새벽 3시쯤(돌아가신 시간), 아버지가 찾아와서 잠든 나를 깨우더군요. 아버지는 나의 침대 끄트머리에 서 있었어요. 그냥 미소를 지으며 나를 내려다보셨어요. 그것은 내가 그때까지 겪어본 일 중에 가장 경이롭고 아름다운 경험이었어요. 말은 한마디도 오가지 않았어요. 나는 더없이 만족하고 행복한 느낌을 받은 기억이 납니다. 나는 그 황홀한 상태에서 다시 잠에 빠져들었어요. 이튿날 나는 잠자리에서 일어나 평소처럼 집안일을 했어요. 그 전날 밤에 있었던 일은 까마득히 잊은 채로요. 그런데 전화벨이 울렸어요. 나는 어머니의 전화라는 걸 알았어요. 어머니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나는 아버지가 간밤에 돌아가셨다고 말했어요. 어머니는 그저 놀라워할 뿐이었지요."
"포츠머스에서 해군으로 복무하던 어느 월요일 밤에 브라이튼에 살던 어머니로부터 전화를 받았어요. 암투병 중이시던 아버지께서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겼으며, 그 주를 넘기지 못할 수도 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나의 계획은 이튿날 휴가를 내서 아버지에게로 달려가는 것이었어요. 그날 밤 나는 새벽 3시 30분쯤 갑자기 잠에서 깨어 침대에 벌떡 일어나 앉게 됐어요. 이어서 내 이름을 부르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어요. 아버지를 보지는 못했지만 목소리는 분명히 들었어요. 마치 아버지가 내 방 안에 계시는 것 같았으니까요.
그날 밤 잠은 제대로 못잤지만, 아침에 일어나서는 평소처럼 하루를 시작했지요. 그때 당번 장교가 아버지께서 새벽 3시 30분에 돌아가셨다는 내용의 전화를 받았다며 알려주더군요. 그러나 나는 이미 알고 있었지요. 아버지가 나에게 말해줬으니까요.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나를 불렀다는 이야기를 나중에 어머니로부터 들었어요. 나는 아버지를 너무 너무 사랑하고 있어요. 그날 이후로 나는 언제나 아버지의 존재감을 강렬하게 느낍니다."
말콤 맥콜럼은 누군가가 자기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그의 아버지는 3개월 전에 심장절개 수술을 받은 상태였지만, 죽음이 임박했다고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죽음을 맞던 날 밤에 아버지는 달링턴의 자기 집에 있었어요. 그때 나는 내 가족과 함께 이웃 마을의 내 집에 있었지요. 그날 밤 나는 내 이름을 부르는 아버지의 목소리에 잠에서 깼어요. 아버지가 내 이름을 부를 때 나는 그의 영혼으로 짐작되는 무엇인가가 밤하늘로 높이 올라가는 것을 봤어요. 이튿날 평소보다 일찍 전화벨이 울렸을 때, 나는 아내에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하는 어머니의 전화'라고 말해줄 수 있었어요."
앵기 베어드의 아기는 1979년 5월에 태어났지만 불행하게도 혈액질환을 앓아 출생하던 순간부터 병원에서 지내야 했다. 그 아이는 48시간 동안 힘들게 버텼고, 의사들도 최악의 상태는 벗어났다고 낙관했다.
"나의 침대는 간호사 대기실과 정반대 쪽에 있었어요. 3일째가 되던 날 새벽 3시에 나는 느닷없이 몸을 벌벌 떨고 눈물을 흘리면서 잠에서 깨어나, 간호사를 불러 바로 위층의 아기를 보러 가도 되는지 물었어요. 나는 결코 억지를 부리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때는 당장 그곳으로 올라가야한다는 예감이 너무나 강했어요. 간호사는 너무 이른 시간이라면서 당직실에 문의하겠다고 하더군요. 당직실의 전화는 통화중이었어요. 5분 정도 지나서 간호사실의 전화가 울리더군요. 당직실의 전화가 통화중이었던 건 당직실 직원이 아기가 죽었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전하려고 수화기를 들었기 때문이었죠. 정확히 새벽 3시에! 내가 그 새벽 3시에 느꼈던 기분은 너무나 강렬했어요. 나는 단지 뭔가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것은 인연을 맺은 시간이 제아무리 짧아도 어머니와의 끈은 매우 깊이 매여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예이지요."
우리가 들은 거의 모든 경험에서, 그런 접촉을 주도하는 것으로 보이는 쪽은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인 것이 매우 명백하다. 하지만 태어난 지 겨우 이틀 밖에 되지 않은 아기가 어른들이나 할 법한 그런 경험을 주도한다고 할 수 있을까. 갓 태어난 아기와 어머니 사이를 연결하는 그 끈은, 어머니와 떨어져 있어도 둘 사이를 단단하게 연결하고 있는 것일까?
앤젤리나 클레멘츠의 꿈 이야기는 텔레파시보다는 투시력의 범주에 더 가까운 것처럼 보인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그녀의 딸이 자동차 사고로 죽던 날 아침 6시 11분에 아직 침실에 누워있던 앤젤리나의 눈에 온실 같은 것이 하늘로 떠오르는 것이 보였다. 그렇게 점점 더 올라가자 온실 같은 것은 유리관으로 변해갔다. 당시에 그것은 그녀를 몹시 괴롭혔으나, 그 이유를 설명할 수는 없었다.
"'그것 참 이상하네'했던 기억이 나요. 내가 방금 잠에서 깨어났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어요. 그렇다고 꿈 꾸고 있는 것 같지도 않았지요. 정신이 멀쩡하다는 느낌도 들고, 이제 막 어딘가에서 돌아왔다는 느낌도 들었어요.'
이후에 그녀는 자신이 이런 경험을 하고 있던 그 시간에 딸이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녀가 사진으로 확인한 딸의 자동차는 유리 지붕이 있고, 그 지붕 위에 흰색 로고가 쓰인 신형 미니쿠퍼였다. 그녀는 자신이 사고의 순간에 어떤 형태로든 그 현장에 있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만약 내가 사고현장에서 충돌하여 회전하는 자동차의 지붕을 내려다보고 있었다면, 온실을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 같았어요. 유리와 흰색 선들이 그렇게 해석될 것 같더라는 말이지요. ... 이 경험 이전의 나는 죽음과 사후세계에 대한 믿음이 희미했었지요. 이제는 딸이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나와 접촉하려고 했다는 사실, 그리고 나도 딸이 평화롭게 이 세상을 벗어나 다음 삶이 펼쳐지는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려고 딸 옆에 있었다고 믿고 있어요. 내가 죽음을 두려워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내 아이들이 다 자라서 나의 보살핌 없이도 스스로 살아갈 수 있기 전에는 죽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었지요. 그러나 이제는 언제 죽어도 걱정이 없어요. 내가 이 땅을 떠날 시간이 언제가 되더라도 우리 딸 사라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굳게 믿기 때문입니다."
마가렛 캐서린의 경험이다.
"15년 전에, 나는 새벽 2시에 누가 내 등을 힘껏 떠미는 것 같은 느낌에 놀라 잠에서 깨어났어요. 그 힘이 갑작스럽게 나를 깨웠지만 나는 두렵지 않았고, 돌아가신 시어머니가 나의 침대 옆에 서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누구인지 정확히 알았어요. 나는 다시 잠들었고 너무나 생생한 꿈을 꾸었어요. 22세인 아들이 말을 걸었어요. 자신은 죽은 몸이지만 모든 게 괜찮기 때문에 내가 걱정하거나 분노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더군요. 잠에서 깨어났을 때 내 기분은 엉망이었지요. 아이와 접촉하려고 무진 애를 썼어요. 그날 늦은 시간에 나는 그 아이가 전날 밤에 물에 빠졌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나는 아들이 나와 접촉했다고 확신했어요. 시어머니는 그 아이를 무척 아꼈습니다. 아들의 방문은 나에게 큰 위안이 되었어요. 나는 매우 세속적인 사람이지만 그 경험이 실제라는 걸 압니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거나 비슷한 경험을 가진 이들에게 그 이야기를 들려주곤 합니다."
주디 개스켈은 동생의 집에서 지내던 어머니가 죽던 날 밤에 일어난 일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나의 어머니는 한밤중에 특히 친밀했던 손녀 앨리스의 침대 발치에 나타났어요. 그녀는 앨리스에게 자신은 이제 죽은 몸이라면서 아침에 네 엄마가 충격받는 걸 원치 않으니, 지금 아빠에게 사망소식을 알려주라고 부탁했어요. 앨리스는 놀라서 얼어붙었지만 그럭저럭 아빠를 깨웠죠. 그는 장모님이 돌아가셨지만 아직 체온이 남아있음을 확인하고, 마을 의사에게 전화를 걸었어요. 의사가 와서 어머니는 방금 세상을 떠났으며 사망시간을 새벽 2시로 추정하더군요. 괘종시계는 새벽 2시에 멈춰 있었어요."
<138쪽>
"우리가 병실을 나설 때, 나는 시아버지에게 '또 뵈요.'라고 인사했어요. 그러자 그는 머리를 흔들며 단호하게 아니라고 대답하더군요. 그리고 이틀 뒤 새벽 1시 30분쯤에 나는 땀에 흠뻑 젖어 잠에서 깼어요. 시아버지가 우리 침대 옆에 서 있었어요. 그가 나에게 아들과 작별인사를 하고 싶다며 존을 깨우라고 하더군요. 그러나 나는 너무 무서워서 그렇게할 수 없다고 대답했어요. 고맙게도 그는 나의 거절을 받아들이며 '걱정 말라'는 뜻을 전하는 것 같았어요. 그러더니 점점 사라져가더군요. 잠시후에 내 뒤척임에 깨어난 존이 무슨 일인지 물었어요. 내 이야기를 들은 그는 '괜찮아.'라며 마치 꿈 이야기처럼 받아들이고는 다시 자더군요. 그러나 나는 결단코 꿈을 꾸지 않았어요. 이튿날 아침 8시쯤에 존의 어머니가 전화로 시아버지가 밤에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해주셨죠. 새벽 1시 30분에 돌아가셨다고요."
잠에서 깨어난 사람이 임종자의 아들이 아닌 며느리인 이유에 대해 곰곰 생각해 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일 것이다. 우리는 조사를 하면서 사람마다 감수성이 다르다는 점을 발견했다. 초심리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양-염소 효과sheep-goat effect'를 알고 있다. 어떤 사람(양)을 대상으로 하면 연구가 제대로 진행되는 반면, 다른 사람(염소)을 대상으로 할 때는 연구가 절대로 진전을 보이지 않는다. 앞의 예에서는 한 침대에 양과 염소가 함께 자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데릭 화이트헤드의 다음 이야기에서는 고별방문을 받았지만,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겁을 먹고 경직되었다. 친구의 꿈 해석이 없었다면 그나마도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18세 때, 상선을 타고 태평양을 가로질러 호주로 향하고 있을 때의 일입니다. 어느 날 밤 나는 남성 잡지 '메이페어'인가 '플레이보이'인가를 읽으며 누워 있었지요. 어쩌다 내가 눈길을 위로 향하니 거기서 할아버지가 나를 내려다보며 서 계시더군요. 나는 침상에서 튀어오르며 비명을 질렀어요. 그래도 할아버지는 거기 그대로 서 계시더라고요. 나는 덜덜 떨면서 밖으로 나갔어요. 돌아왔을 때에는 할아버지가 보이지 않더군요.
그날 밤에는 꿈도 사나웠어요. 이상하게도 내가 드라이독dry dock乾船渠에 있는 배에 오르려는데 승무원들이 가로막는 거에요. 현실에서는 있을 리 없는 이야기이죠. 그들은 그 배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고 말하더군요.
나는 새벽 4시 30분쯤 잠에서 깨어나 밖으로 나갔고, 밖에서 일하고 있던 동료에게 일어난 일들을 털어놓았어요. 스코틀랜드 출신인 그 친구는, 선원 가족들에게는 건조한 땅에 올라선 배는 가족의 죽음을 예고하는 것으로 통한다고 하더군요. 나는 부모님에게 보낼 편지에 이 모든 이야기를 적었어요. 그리고 3주 후 우리는 호주에 도착해서 어머니의 편지를 받았어요.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날짜와 시간이 내가 그 경험을 하던 그 즈음이었더군요. ... 나는 이런 것들이 환상인지, 꿈인지, 기대인지, 망상인지, 도무지 모르겠어요. 그리고 싫어요. 내 현실감각을 혼란스럽게 하니까요."
카이스 스크리브너의 장인은 오랫동안 위암으로 고생하고 있었다. 카이스와 그의 아내는 그의 유일한 손자인 자신들의 아기를 요양원으로 자주 데려갔다. 아기를 볼 때마다 장인어른의 정신이 나아지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의 죽음이 임박한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어요. 그러나 혼자서는 움직일 수 없었고, 몸이 형편없이 말라 뼈대만 남았지요. 그 당시 아기는 우리 부부의 침대 옆에 놓인 아기침대에서 잤어요. 우리 모두 잠들어있던 밤에 갑자기 내가 잠에서 깨어났어요. 꿈을 꾸는 상태가 아니었어요. 눈을 크게 떴으니까요. 그런데 아기의 침대 위로 몸을 숙이고 있는 형상이 보였어요. 장인어른이셨죠. 앙상한 모습이 아닌 건강하던 때의 모습이었어요. 그가 내 쪽으로 몸을 돌리더니 '좋아, 그저 아기한테 작별인사를 하고 싶었을 뿐이야.'라고 하더군요. 당시 그의 나이가 50대였는데, 그보다 훨씬 젊고 눈이 부실 정도로 건강하고 행복해 보였어요.
나는 시계를 보며 시간을 기억했어요. 그리고는 그 방문이 전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다시 침대에 누웠어요. 실제로 내 마음은 매우 평온한 상태였어요. 나는 다시 잠들었어요. 아침에 일어나서 나는 아내에게 장인의 방문과 그 일이 일어난 시간을 일러주었어요. 뒤에 장모님이 전화를 걸어왔어요. 장인어른이 자기 손자에게 작별인사를 하던 바로 그 시간에 돌아가셨다더군요. 그때는 나도 장모님도 전화가 없었어요. 그래서 장인어른이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더 빨리 알 방법이 없었지요."
죽어가는 사람이 환영을 보는 모습을 목격하거나, 죽어가는 사람의 고별방문을 받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당시에 일어난 일의 현실감에 대해 의문을 품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보통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고, 일어나지 않는다고 믿기 쉽다. 그것이 우리의 현실관을 뒤흔들고 우리를 불편하게 만들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