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물의 후유증
의사와 간호사, 그리고 심지어 당신의 남편도 뚫어져라 모니터를 노려보면서 무엇인가 잘못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에서, 당신은 당신이 전적으로 사랑받고, 지지받는다는 느낌, 당신 주위의 사람들에게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갖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의사가 진통제를 줄 때 당신은 병원에 대해 고마움을 느낄까? 의사도 병원의료진 그 누구도 당신이 느끼는 통증의 대부분이 병원의 조치에 기인한다는 것을 말해줄 가능성은 별로 없다. 병원사람들은 정서적인 스트레스가 카테콜라민 호르몬 분비를 유도하고, 이 호르몬이 혈액, 특히 자궁속의 혈액의 흐름을 억제함으로써 자궁내의 산소공급의 박탈되고, 견딜 수 없는 통증이 생겨난다는 사실을 말해주지 않을 것이다.
만약 당신이 약에 대하여 꺼림칙한 느낌을 표명하면, 의료진은 아마도 당신이 외계에서 온 사람이 아닌가 하고 의아스럽게 여길 것이다. "당신은 아직 뭘 몰라요" 하고 그들은 경고할 것이다. 그들은 진통제 없이 시련을 견디려고 하는 당신의 어리석음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그들은 예전부터 산파들이 알고 있는 분만시의 통증완화 방법에 대해서는 알 리가 없는 것이다. 예를 들어, 몸을 움직이고 자세를 바꾼다든지, 껴안고 마사지를 해준다든지, 냉온찜질이라든지, 목욕과 샤워, 지압, 마음속에 시각적 이미지를 그려본다든지, 자기최면이나 음악... 등의 방법 말이다.
당신은 곧바로 '무통분만 마취제'나, 자궁경부와 척추를 포함한 여러 군데를 통해서 주사를 맞게 된다. 물론 이러한 약물은 통증을 해소시켜 준다. 그러나 그 약물들은 또한 당신이 깨어있고,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거나 당신에게 가해지는 것에 대해 항의할 수 있는 능력을 박탈한다. 당신이 섭취하고 있는 약물이 태반을 가로질러 아기에게까지 미칠 것이라는 얘기를 들을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아기의 두뇌는 계속 자라고 있는데, 이러한 약물이 두뇌발달에 피해를 끼칠 수 있다는 얘기도 듣지 못할 것이다. 독성물질의 중화를 위해 필요한 간肝은 아기에게 있어서는 아직 대사작용을 할 만큼 충분히 성숙되어 있지 않으며, 독성물질의 제거를 위한 콩팥은 아기에게 있어서는 아직 제대로 기능할 만한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것이다.
'국립보건원'과 플로리다대학의 연구자들이 53,000건의 출산에 대해 조사를 했을 때, 그들은 7살이나 된 아이들이 여전히 출생시에 사용된 산과용 약물로 인해 눈에 띄는 피해에 시달리고 있음을 발견하였다. 그들의 발견에 의하면, 분만시에 산모가 약물을 복용하고 낳았던 아이들이 읽기와 쓰기에서 상대적으로 낮은 능력을 나타내고, 그밖의 다른 뇌신경장애를 가리키는 표시를 드러내었다. 한 연구자는 미국 상원의 한 위원회에서 이렇게 증언하였다. "본인이나 두뇌가 손상된 아이들을 상대로 조사해본 많은 다른 연구자들의 마음에 의문의 여지가 없는 것은, 두뇌기능이 손상된 학습장애 아동들의 대부분은 출산시에 불편이나 통증을 해소하려거나 또는 분만을 유도·촉진하기 위해 산모에게 처방된 약물의 결과라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여성들은 산과용 약물이 태아의 두뇌로 가는 산소의 공급을 감소시키고 두뇌손상을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회음 절개
나는 내가 현대적인 병원출산에 대해 좀더 긍정적으로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현실은 그다지 고무적이지 않다. 의사들은 빈번히 산모의 동의를 구하지도 않고 회음절개episiotomy 수술을 시행한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그러한 절차가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회음절개는 제왕절개를 하지 않을 경우 대부분의 미국병원에서 시행되고 있다. 그 비율은 초산일 경우 특히 높다. 많은 병원에서 그 비율은 100%에 이른다. 그러나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에서는 회음절개율은 겨우 6%에 지나지 않는다.
미국의 여성들의 회음이 스칸디나비아 여성들의 그것과 다른가? 미국의 여성들의 회음도 마찬가지로 탄력성 있는 조직으로 되어있다. 산과의사들은 회음절개 수술이 파열을 예방해 준다고 믿도록 교육받았지만, 아무런 파열 없이 아기를 출산하는 여성들은 허다하다. 테네시주의 공동체농장에서는 수천 건의 가정분만 가운데 70% 이상이 아무런 회음부 파열을 보여주지 않았으며, 설령 파열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보통 최소한의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산파가 다 그러하듯이, 거기서도 산파들은 산모로 하여금 편안한 마음으로 분만에 임하게 하여 막 밖으로 나오는 아기의 머리 둘레로 질이 탄력있게 벌어지도록 함으로써 회음절개의 필요성과 파열을 크게 줄이는 방법에 숙달해 있다.
그러나, 산과의사들은 대체로 참을성의 대가들이 아니다. 실은, 전형적인 미국의 분만실의 분위기는 흔히 복마전에 가깝다. 그 방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소리를 지른다. "밀어내요! 힘껏! 자, 더 힘껏!" 이것은 아기를 낳는 여성으로 하여금 자신의 육체와 영혼의 내면적 부름에 편안하게 순응케 하는 것을 돕는 방법으로서는 매우 졸렬한 방법이다. 미국문화는 출산과 축구경기를 구별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회음절개 수술의 이득은 무엇인가? 실제로 아무런 이익이 없다. [랜싯]과 기타 주요 의학저널에 발표된 연구들은 그 수술에 아무런 괄목할 만한 의학적 혜택이 없을 뿐만 아니라 흔히 유해한 결과를 일으킨다는 것을 일관되게 발견하였다. 회음절개 수술을 할 때, 의사는 근육과 신경을 자른다. 이 수술이 시행되지 않았을 때는, 설령 회음부에 파열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그것은 가장 저항이 적고 쉽게 아물어지는 곳에서 일어나는 경향이 있다. 미국 산과학회지에 발표된 1990년에 행해진 한 연구에 의하면 회음절개 수술을 겪은 여성들은 심각한 열상裂傷의 고통을 겪을 확률이 50배나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다른 후유증도 있다. 간혹 회음부가 여러 해 동안 마비상태로 되어, 성적 쾌감을 항구적으로 상실할 수도 있다.
오늘날의 산과에서 행해지는 기술적 개입들은, 만약 여성들이 타고나기를 출산능력이 없고, 많은 의사들이 믿고 있듯이, 출산과정이 본래적으로 병리적인 것으로서, 끊임없는 의료적 처치를 받을 필요가 있는 것이라면, 의미있는 일일지 모른다. 그러나, 여성들은 아기를 낳도록 아름답게 고안되어 있고, 그들에게는 피토신, 전자 태아모니터, 제왕절개, 회음절개 수술보다도 훨씬 더 사랑과 보살핌, 지혜로운 길잡이가 필요하다. 출산의 의료화는 참으로 영광스럽고 훌륭한 것이 될 수 있는 것을 외설적인 것으로 전환시켜 버렸다. 이 둘 사이의 차이는 "인간의 성적 행동이 영적인 차원에 이른 순간의 아름다움과 포르노의 추악함, 그 둘 사이의 차이와 같은 것"이라고 의사 미셀 해리슨은 말한다.
출산에 대한 기술적 개입은 그것이 정말 필요할 때는 생명을 구할 수 있다. 극단적인 상황에서 의료 및 외과적 개입은 중요한 몫을 한다. 문제는, 대부분의 출산은 정상적인 것인데, 산과의사들이 정상분만을 하도록 교육받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출산을 위험스러운 과정으로 보는 건 산과의사들만은 아니다. 많은 여성들 또한 그렇게 믿고, 이러한 근거없는 믿음을 다른 여성들에게로 전파한다. 어떤 여성들은 진통에 대해 너무나 겁을 먹은 나머지 출산과정을 겪어낼 엄두를 내지 못하고 "아무것도 느끼고 싶지 않아요. 모든 게 끝난 뒤에 아기를 내게 건네주기만 해요"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들은 흔히 화학약품, 약물, 도구, 모니터, 기계 등이 없이는 아기를 낳을 수 없을 것이라고 믿는다. 자기자신과 아기를 능동적으로 또 성공적으로 낳을 수 있는 자기의 육체의 능력에 대한 자신감을 잃어버린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오늘날 점점 더 많은 여성들이 피동적이고 무력한 자세로부터 적극적인 자세로 변화하고, 그들의 분노를 변화를 위한 정열로 전환시키고 있다. 그들은 그들 자신이 출산과정을 또렷한 의식과 사랑과 용기를 가지고 통과할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들은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그들은 서로서로에게, 그리고 세상을 향하여, 그들의 몸이 수백만 년에 걸쳐 진화해 왔고, 아기를 낳을 정교한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점을 상기시키고 있다.
또다른 가능성, 또다른 길
사람들이 자신의 육체를 이해하고, 육체와 친근할 수 있도록 돕는 의료시스템이 우리에게 있다면 어떻게 될까?
모든 여성들이 다 자연분만을 선호하지는 않을 것이다. 모든 여성들이 다 진통과정을 우주적 생명력으로 이루어지는 춤, 개인적 및 영성적 의미를 갖는 여정旅程이라고 보지는 않을 것이다. 일부 여성들은 여전히 병원이 제공하는 테크놀로지를 원할 것이다. 그러나 모든 여성들은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고, 그 선택은 그들 자신의 가치관을 표현하고, 그들의 삶을 긍정하는 것일 것이다. 그들은 출산의 주체가 될 것이다. 그리고, 대다수 여성들은 그들의 삶에 있어서 가장 의미깊은 경험의 하나를 놓치고 싶어하지 않을 것이다. 갈수록 많은 여성들은 산과의 침대에서 물러나와 자기자신의 육체의 힘을 재천명할 것이다. 수술은 훨씬 적어질 것이며, 축제 분위기는 더 커질 것이다.
아일랜드의 더블린의 국립산과병원에서는 간호사들은 산모와의 접촉, 즉 눈과 손을 접촉하도록 교육받고 있고, 간호원과 산모가 같은 지평에서 눈길이 만날 수 있는 자세를 취하도록 교육받고 있다. 이 병원에서는 기술적 개입은 최소한의 것이 되어, 제왕절개율은 6%를 넘지 않고, 진통시간은 대개 미국의 경우보다 절반 정도 걸린다. 진통중의 여성은 항시 끊임없는 사랑의 지지를 받고, 산모로 하여금 스스로 출산을 감당할 능력이 있고, 안전은 염려할 필요가 없으며, 중요한 것은 인간다운 위엄과 경험이며, 자신의 육체가 보이는 반응은 자연스럽고 정상적인 것이라는 것을 느끼도록 돕기 위한 모든 노력이 다 이루어진다.
만약 병원이 출산이 질병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병원은 열심히 산파들을 찾을 것이며, 병원 이외 출산소나 가정에서의 분만을 선택한 여성들을 지원할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의 정책은 1991년에 [미국의사협회지]에 발표된 연구를 반영하게 될 것이다. 그 연구는 진통중의 여성 옆에 끊임없이 사랑으로 보살피는 사람이 있을 때에는 그 결과로서 제왕절개가 68%나 더 적고, 진통제에 대한 필요가 85%나 더 감소된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산과의사의 몫은 남아있을 것이다. 아마도 그 때 산과의사들은 프랑스 피티비에Pithiviers의 중앙병원 산과를 오랫동안 책임져왔던 미셀 오당과 같은 사람이 되도록 교육받게 될 것이다. 다양한 사회계층과 경제적 배경을 가진 수많은 여성들이 – 출산 위험이 높은 많은 여성들을 포함하여 - 이 곳에서 아기를 낳았다. 이곳에서는 진통이 결코 인위적으로 유도되지 않고, 분만촉진을 위하여 피토신이 사용되지도 않으며, 어떠한 약물, 마취제도 사용되지 않는다. 그 결과는 대부분의 병원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회음절개율은 6% 미만이고, 제왕절개율은 7% 미만이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한가? 기쁨을 누리고,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여성의 능력을 제고하기 위한 가능한 모든 일이 다 이루어진다. 산모는 안전하고 조용한 장소에서 보살핌을 받으면서 자기의 내부로 마음을 돌려, 진통과 분만시에 그녀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할지를 자신의 느낌이 말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다. 미셀 오당은 말한다. "우리가 하려고 하는 것은 직관적인 두뇌, 즉 우리의 육체에 깊이 관련된 두뇌인 정서적 두뇌의 복구입니다." 그는 진통중의 여성이 의식의 심층, 본능적 감정의 수준에 다다르게 됨으로써 보다 안전하고, 부드럽고, 빠르고, 고통이 적은 진통과 분만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발견했다. 평균적으로 초산의 산모가 미국에서의 초산 산모보다도 진통시간이 절반밖에 걸리지 않는다. 짧은 진통은 산모로 하여금 보살핌을 받고 안전하다는 느낌을 갖도록 도와줌으로써 얻게 되는 한 부산물이다. 산모가 아기를 낳는 데 얼마나 오래 기다릴 용의가 있느냐고 하는 물음에 대하여 미셀 오당은 '아기를 낳을 때까지'라고 대답했다.
미셀 오당은 진통시에 따뜻한 물을 사용하는 개척자적인 업적으로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우리는 적당히 어두운 분위기에서 따뜻한 물 속에 들어가 있는 것이 높은 수준의 긴장이완 상태에 도달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을 빈번히 관찰하였습니다"라고 그는 말한다. 어떤 여성들은 샤워를 하고, 다른 여성들은 물에 잠긴다. 때로는 물 속에서 너무도 편안해진 나머지 거기서 분만을 하기도 한다. 그는 [랜싯]에 발표한 글에서, 100건 이상의 수중분만에서 단 하나의 복잡한 문제나 감염문제가 일어난 적이 없다고 보고했다. 미셀 오당의 병원을 찾아가본 방문객들은 흔히 그들이 거기서 목격한 기쁨과 우정의 분위기에 깊은 인상을 받는다. 이 곳에서 아기를 낳은 적이 있는 많은 여성들은 그 경험이 자신들의 삶에서 가장 의미있고 아름다운 경험의 하나였다고 말하고 있다.
주체적 출산의 회복
한 여성이 한 사람의 온전한, 충족된 인간이 되기 위해서, 또는 세계에 대한 그녀의 사랑과 보살핌을 표현하기 위해서, 반드시 아기를 낳을 필요는 없다. 그러나 만약 한 여성이 아기를 낳는다면, 그녀는 그녀에게 정서적으로 또 영적으로 의미깊은 경험이 될 수 있는 방법으로 아기를 낳을 기회를 당연히 가질 자격이 있다. 아마도 언젠가는 여성들이 존경받고, 여성들에게 전면적 사랑과 지지의 분위기 속에서 아기를 낳는 기회가 주어지는 세상이 올 것이다. 아마도 언젠가는 아기를 낳는 모든 여성이 자기에게 시중드는 사람들 - 산파든, 가족이든, 또는 미셀 오당 같은 훌륭한 의사든 - 로부터 보살핌과 위안을 받는 날이 올 것이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나는 조르바가 통절한 마음으로 배운 것을 언젠가 우리의 의학계가 이해할 날이 올 것이라고 믿고 싶다.
나는 내가 어떤 나무껍질 속에서 고치 한 마리를 발견한 어느 날 아침을 잊지 못한다. 그 때 그 고치에는 막 나비가 구멍을 내면서 밖으로 나오려 하고 있었다. 나는 잠시 기다렸다. 그러나 나비가 밖으로 나오는데 너무 오래 걸렸고, 나는 참을성이 없었다. 나는 몸을 구부려, 고치의 껍질을 부드럽게 만들어주기 위해 거기에 따뜻한 입김을 불어주었다. 나는 될 수 있는대로 빨리 그걸 따뜻하게 덥혀주었고, 그러자 내 눈앞에서 기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생명보다 더 빠른 기적이었다. 고치의 껍질이 열리고, 나비가 천천히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아마도 그 때 내가 보았던 끔찍한 모습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나비의 날개는 뒤로 접혀져 있었고 구겨져 있었던 것이다. 가엾은 나비는 부들부들 떠는 몸으로 온 힘을 다해 날개를 펴려고 애썼다. 나는 다시 몸을 구부려 내 입김으로 도와주려고 했지만, 헛일이었다. 나비가 스스로의 힘으로 껍질을 열고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고, 날개가 펴지는 것은 햇볕 속에서 서서히 이루어지는 과정이어야 했다. 그러나 이미 너무 늦어버렸다. 내 입김은 나비를 때이르게 밖으로, 구겨진 채 나오게 강요하였던 것이다. 나비는 필사적인 몸부림을 친 뒤, 몇 초 후, 내 손바닥 안에서 죽어버렸다.
그 조그만 몸은 일찍이 내 양심을 짓누르는 가장 무거운 짐이 되어있다는 것을 나는 믿는다. 왜냐하면 오늘날 자연의 위대한 법칙을 침해하는 것이야말로 용서할 수 없는 죄악임을 나는 깨닫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결코 서둘러서는 안된다. 우리는 참을성 없게 행동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영원한 리듬에 마음을 놓고 순종하지 않으면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