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mooncle
Not human doing but human being - P'taah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Notice

Tag

2021. 9. 15. 03:24 책에서 발췌

 

 

 

<238쪽>

우주적 게임의 역동성과 본질에 대한 통찰이 꼭 지고한 창조 원리의 차원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메릴랜드 정신의학 연구소의 전문가 대상 훈련과정에 참가했던 게일 목사는 환각 세션 중에 네 명의 초인적인 조물주가 경쟁적으로 창조게임을 벌이면서 우주를 탄생시키는 장면을 목격했다. 그녀의 체험은 하나의 창조 원리가 아니라 여러 조물주가 등장했다는 점에서 매우 예외적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영적 존재의 윤회나 '자신을 알지 못하게 하는 금기' 에 관련된 많은 문제들을 대단히 명쾌하게 설명해 준다. 아래는 세션 가운데서 그에 해당하는 내용만을 발췌한 것이다.



나는 우리가 알고 있는 시공간을 초월한 듯한 차원에 있었다. 지금에 와서 다시 생각해보면, 현대 물리학자들이 말하는 4차원 이상의 초공간hyperspace이라는 개념과도 비슷한 것 같다. 하지만 어떤 표현으로도 이 체험의 신성하고 심오한 감정, 놀랄 만큼 신령스러운 느낌을 전달하지는 못할 것이다. 나는 나 자신이 엄청나게 큰 초인적 존재, 아마도 모든 한계를 초월했거나 그 한계들이 생겨나기 전에 존재했던 무엇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어떤 형체도 없이 절대 공간 속을 떠다니며 지고한 지성을 갖춘 순수한 의식으로 존재했다. 거기에는 광원光源도 전혀 없었지만, 그렇다고 완전한 어둠 속에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이 공간을 또다른 세 존재와 공유했다. 그들도 나처럼 완전히 추상적이고 형체가 없었지만, 나는 그들이 나와 별개의 존재임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고 복잡한 정신감응법(텔레파시)를 통해서 그들과 대화할 수 있었다. 우리는 찬란하고 지적인 온갖 게임으로 서로를 즐겁게 해주었고, 놀라운 아이디어의 불꽃들이 이리저리 날아다녔다. 이 게임들의 복잡함, 난해함, 상상력의 수준은 인간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훨씬 뛰어넘는다. 우리의 존재 형태에서는 어떤 것에도 실질적 의미가 없었기 때문에, 그 게임들은 모두 순수한 오락, 예술을 위한 예술I' art pour l' art' 일 뿐이었다.

나는 이 체험을 기억할 때마다 우리와 비슷하거나 더 나은 지성과 뇌를 갖고 바다 속을 돌아다니는 고래들을 떠올리게 된다. 고래들이 바다 속에서 수백 마일 너머까지 전달되는 놀라운 목소리를 통해 서로를 즐겁게 해주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사용한다는 한 연구자의 견해를 읽은 적이 있다. 고래들은 서로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예술적인 창작품을 주고받는 걸까? 고래들도 철학적인 토론을 하고 복잡한 게임을 즐길까? 또는 방이나 동굴 안에 홀로 앉아 깊은 명상에 든 인도나 티베트의 요기처럼, 고래들도 우주의 모든 역사와 그 외의 차원에 연결되는 체험을 하는 걸까?



체험의 배경과 전반적인 분위기를 묘사하고 순수한 영적 존재인 무형의 존재를 설명한 다음에, 그녀는 '자신을 알지 못하게 하는 금기' 라는 우리의 논의와 밀접히 관련된 내용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 존재들 중 하나가 흥미로운 아이디어를 꺼냈다. 그 존재는 온갖 크기와 형태를 지닌 무수한 피조물로 가득 찬 창조 게임을 해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 피조물들은 밀도가 높고 단단하며, 다양한 모양과 짜임새와 강도를 지닌 물체들로 채워진 세계 속에 존재하게 될 것이다. 그것들은 생겨나고, 진화하고, 서로 복잡하게 작용하는 모험을 마친 후에는 존재를 마감할 것이다. 남성과 여성이라는 두 가지 형태로 존재하면서 서로를 보완하며 번식에 참여하는 피조물 집단도 여럿 생겨날 것이다.

이 세계는 뚜렷한 시공간 좌표 속에 한정될 것이다. 시간은 과거에서 현재를 거쳐 미래로 가는 강제적인 흐름으로 작용하고, 뒤쪽 사건들은 앞선 사건들에 의해 발생한 듯 보일 것이다. 서로 다른 시대들이 생겨나 광대한 역사를 채워갈 것이다. 피조물은 수많은 경로들 중 하나를 통해서 이곳에서 저곳으로 공간을 이동할 수 있다. 다른 게임들처럼, 다양하고 엄격한 제한과 규칙과 법칙들이 이 세계의 모든 사건을 지배할 것이다. 그 속으로 들어가 다양한 역할을 맡아보는 일은 우리에게 매우 독특한 최고의 즐거움을 선사할 것이다.

 


영적인 세 존재는 흥미를 보였지만 그 계획에 강한 의구심을 표현했다. 듣기에는 흥미로웠지만 실제로 가능할지 미심쩍어 보였기 때문이다. 머리와 몸통, 사지가 있는 이상하고 단단한 모양의 몸뚱이 속에 갇혀, 산소라 불리는 기체를 호흡하고 다른 죽은 피조물을 먹음으로써 아슬아슬하게 생존하는 모습을, 무엇이든 가능한 세계 속에 있는 무한한 영적 존재가 어떻게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감각기관 따위에 제한된 인식능력과 지적능력을 그들이 어떻게 수긍할 수 있겠는가? 진지하게 고려하기에는 너무나 공상적인 아이디어로 보였다. 이어지는 내용에서, 게일은 조물주적 존재가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했는지 설명한다.

 

 

뒤이어 격한 논의가 일어났다. 이 계획의 주창자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주장하면서 우리의 모든 반론에 응했다. 그/그녀는 충분히 흥미롭고 치밀한 시나리오, 특정한 상황들과 강력한 체험들의 일관된 연결성, 빠져 나갈 모든 구멍을 꼼꼼히 감추는 것이 이 계획에 필요한 전부라고 설득했다. 그러면 참여자는 복잡한 환영의 그물에 붙잡히고 속아서 이 게임을 현실로 믿게 될 것이다. 우리는 그 모든 가능성에 점점 더 매혹됐고, 마침내 이 비범한 계획의 가능성을 확신하게 되었다. 우리는 의식의 신나는 모험을 보장하는 그 계획에 흥분해서 이 육화肉化 게임에 동참하기로 결정했다.

 

이 체험은 카르마에 대한 내 궁금증을 전부 해결해 주었다. 나는 내 본질이 영적 존재이며, 이 우주극에 참여하게 된 것은 오직 내 자유로운 결정 때문이라고 확신했다. 육화를 선택했다는 것은, 우리가 이 게임을 하기로 마음먹은 동안 계속 작용할 수많은 제한과 규칙과 법칙을 자발적으로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삶에서 일어난 어떤 일로 누군가를 비난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우리가 높은 차원에서 우주적 게임에 참여할지 말지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은, 그 안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의 의미를 새롭게 규정하는 철학적 틀을 제공한다.



우리가 분리된 개체 생명이라는 물질계의 환영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것은 창조의 완벽함 때문만이 아니다. 신성한 근원과 재결합하는 길에는 고난과 위험과 시련이 가득하다. 신성한 게임은 완전히 폐쇄된 구조가 아니므로, 그 속의 주인공들은 자신의 우주적 본질을 비롯한 창조의 참된 본성을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자기기만의 함정에서 벗어나 근원과의 재합일로 향하는 샛길들은 대부분 교묘히 감춰져 있고, 심각한 어려움들로 가로막혀 있다. 이것은 우주가 안정과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 절대로 필요한 일이다. 영적인 행로의 이런 함정과 굴곡들은 '자신을 알지 못하게 하는 금기' 의 중요한 부분이다.

 

 

태어남은 한갓 잠이요, 망각.

우리와 함께 탄생하는 영혼,

우리 생애의 별은 머나먼 곳에서 점지되어 왔나니,
완전히 망각하지도,

완전히 발가벗기지도 않고

영광의 구름 따라

본향의 신께로부터 우리 왔나니.
갓난아이 적 우리는

천국에 안겨 있으나

자라나는 아이에겐

감옥의 그림자 드리우기 시작하누나.           - 윌리엄 워즈워스William Wordsworth

 

 

 

 

─────────────────────────────────────────────────

 

이 책에서 '자신을 알지 못하게 하는 금기'에 대해서 읽을 때, 다른 책에서 읽었던 '과속방지턱'이라는 비유가 생각났다. 게임 초기에는 없던 것으로, 게임이 시시하게 끝나버리는 것(과속)을 방지하기 위해 즉, 더 복잡난해한 미로로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추가된 설정이라는 것이다. 

 

게이머들은 이 '기억상실 계약'을 충분히 이해하고 동의했지만, 이것은 너무나 치명적이어서 출발선에 서자마자 여기가 어딘지, '나'가 무엇인지, 뭘 하려고 했었는지 모르겠는 상태가 되어 쫓기듯 달려야 한다. 이 레이스는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에서처럼 관전자들에게는 최고의 드라마를, 참여한 도전자들에게는 '죽을 맛'을 선사한다. 그러나 그 험난한 고생길을 거치며 제 힘으로 만랩을 달성했을 때의 희열과 성취감, 그리고 자신에게 일어난 눈부신 변화의 값어치는 관전자의 감상 따위에 비할 바가 아닐 것이다.

 

극악의 난이도에 걸맞게 도전자들 역시 '마스터'라고 한다.^^ 바보가 되는 놀이를 해보고 싶은 마스터라니! 거지의 고된 삶을 경험하고서 왕궁으로 돌아가 훌륭한 왕이 된다는 [왕자와 거지]의 설정과도 닮았다. 왕자 에드워드는 자신의 진짜 신분을 '기억'하고 있어서 다행이었지만, 기억마저 지워진 채 거지아이로 전락했다면 그리 쉽게 복귀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은 곳곳에 '이스터 에그'를 감춰두었는데 그것들을 못알아봐도 별 상관은 없지만, 알아보면 영화가 좀더 재미있어진다. 인생에도 우리를 '성배'로 안내하는 단서들이 곳곳에 숨겨져 있다. 성배가 액체를 담는 물질적인 잔이 아니라면 말이다. 주인공 파시발(Parzival/Parzifal파르치팔:성배를 추적하는 기사) 성취의 보상으로 받은 황금빛 에그는 '철학자의 돌Philosopher's stone'을 생각나게 한다. 그게 광물 덩어리가 아닌 지혜를 뜻한다면 말이다. 마지막 관문을 통과하며 바보는 본연의 마스터로 다시! 태어난다. 즉 부활復活한다. '납'이 '금'으로 변하듯이.  

 

 

"인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두 날짜는 자신이 태어난 날과, 자신이 왜 태어났는지 알게 되는 날이다."

- 마크 트웨인

 

 

 

posted by moon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