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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 human doing but human being - P'ta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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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10. 14. 17:32 영화

 

 

 

20년쯤 전 어느 심심한 날에 혼자 이 영화를 봤다. 전혀 이해를 못하면서도 참고 끝까지 봤건만 다 망해버리는 엔딩에 황당했던 기억이 난다.ㅋ 이 영화는 불친절하다. 표면적으로는 '불면증에 시달리던 한 남자가 자신이 지어낸 분신을 통해 삶을 역변시킨 이야기'지만 그 이면에 훨씬 다채로운 이야기를 담고 있다. 코멘터리 영상에 따르면 '불교철학을 기반으로 한 블랙코미디'쯤 되는 것 같다.

 

편의상 '잭'이라고 부르지만, 사실 주인공은 이름이 없다(원작소설의 설정). 자기소개를 해야 할 때는 코넬리우스, 레니, 루퍼트, 트래비스... 로 대충 지어내고, 말라가 이름을 묻는 장면은 있지만 대답하는 장면은 없다. '잭'이라는 별명은, 주인공이 '사람 몸의 장기들이 1인칭으로 대화하는 시리즈물'을 읽다가 빌려온 것이다. 장기들은 말한다. '난 잭의 숨뇌야. 내가 없으면 잭은 심박, 혈압, 호흡 조절을 못하지', '난 잭의 대장이야...' 그 때부터 그는 자신을 잭의 어떤 '측면'이라고 말하기 시작한다. 이것은 '하나의 의식'이 여러 개의 페르소나로 나타난다는 비교秘敎적 개념을 상기시킨다.

 

만일 각각의 장기臟器들이 개별의식으로 살아가는 개체라면 그들에게 인간은 무엇일까. 그들은 인간몸이라는 작은 세상小宇宙 속에 살면서 '일평생 본 적도 없고, 앞으로도 못 볼' 잭의 존재를 안다. 그들은 잭이라는 전체의 일부이고, 그들의 생사는 잭에게 달려있다. 잭은 그들의 신이다. 이 영화는 그 신적 존재인 인간에 관한 것이다. 영화 속 '잭'은 인류의 대명사인 동시에, 더 큰 '전체'의 일부로서 자신을 표현하는 존재다.

주인공은 무감각, 무기력해 보이는 회사원이다. 가족도 애인도 친한 친구도 반려동물도, 심지어 식물도 없이 혼자 산다. '유명브랜드 쇼핑'만이 유일한 낙인 그는 불면증으로 살살 미쳐가고 있다. 이런 말이 생각난다. '넌 남에게 관심없쟎아. 그런 주제에 외로움을 타지'. 그의 앞에 [난치병환자 모임]이라는 구원의 동아줄이 내려온다. 겨울나무가 봄비를 맞듯이, 감정적 교류를 통해 잭은 살아난다. 하지만 아픈 이들을 이용하여 되찾은 숙면은 '말라'라는 여자의 등장과 함께 끝나버린다. 말라는 또다른 구원이 될 수 있었지만 잭은 그 동아줄을 잡지 않았(못했)고, 결국 '타일러'라는 호랑이와 마주하게 된다.

 

타일러는 잭의 잠재의식이다. 그래서 전면에 등장하기 이전부터 잭의 주변 도처에 있었다. 그는 잭을 구성하는 여러 측면 중 극단적 '남성성'의 화신이다. 그는 잭에게 힘과 용기를 북돋워주는 한편 '파이트 클럽'을 만들어 잭의 세계를 폭력과 테러로 물들인다.

 

타일러에게 홀딱 반한 잭은 그에게 이끌려 점차 물질적 집착, 직업적 스트레스, 무기력과 불면증으로부터 자유를 찾는다. 그 즈음에서 멈추면 좋았으련만 시작은 쉬워도 끝내기는 어려운 법, 누구나 그러하듯이 '창조물에 대해 전권을 가진 신적 존재'인 자신의 힘을 모르는 그는 타일러에게 질질 끌려다닌다. 세계를 파괴해가는 타일러와 스페이스 몽키space monkey들을 막겠다고 동분서주하는 잭의 모습은 [마법사의 제자]를 연상시킨다.ㅋ 

 

 

잭이 지하주차장에서 타일러에게 머리채를 잡혀 끌려갈 때, CCTV속 잭은 자기 머리채를 잡고 혼자 뒷걸음질 치고 있다. 술집 마당에서 둘이 주먹다짐을 할 때도 잭은 주관적으로는 타일러와 싸우지만 객관적으로는 혼자 자해놀이를 한다. 불교의 가르침에  따르면, 이 세상은 '몸의 감각이 지어내는 그림자'일 뿐이지만, 그 그림자를 진짜라고 믿는無明 우리 중생들은 자신이 지어낸 허상과 싸우며 고통받는다. 즉 자기가 자기를 팬다. 

'MYSELF', 'SELF'라는 글씨를 잭의 배경에 무심히 비춰주는 장면도 의미심장하다. 도교적 상징도 나오는데 잭의 애장품이던 태극문양 테이블과, 타일러가 잭의 머리카락들을 손바닥에 놓고 훅 부는 재미난^^ 장면이 있다. 머리털 분신술身外身法로 스페이스에 몽키들을 지어내던 손오공처럼.

 

"모든 걸 통제하려고 하지마, 그냥 놔 둬!Stop trying to control everything and just let go!"라는 타일러의 외침은 '무위자연無爲自然'을 가르치는 것 같다. '사람의 힘을 더하지 않은 그대로의 자연'이라는 의미 말고, '손대지 않아도 스스로 굴러간다(있는 그대로 손대지 않음).'는 뜻으로서 말이다. let it be. 신은 팔다리를 혹사시키며 아등바등하는 인간적 방식으로 일하지 않는다. 신은 '생각Logos'한다. 

타일러는 교통사고를 일으켜 잭으로 하여금 죽음체험 또는 근사체험NDE:near-death experience을 하게한다. 그러고는 죽다살아난 잭에게 큰소리로 이런 말장난을 한다. "우린 근생체험을 했어!" 인생이 진실로 '일장춘몽一場春夢'이라면 죽음이 우리를 깨워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꿈과 꿈 사이 막간(담뱃불 구멍cigarette burns)의 깨어남일지라도.

 

잭은 철들어 간다. 차량 엔진폭발로 사망한 일가족에 대한 '패륜적' 농담에도 무덤덤했던 그는, 자신이 몸소 교통사고의 고통을 겪고 나서야 뭔가를 느끼고 배운다. '내가 담당했던 사고당사자들도 이런 기분이었겠지'. 안락하게 살면서도 철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사람은 지가 아파봐야 남 아픈 사정을 이해하게 된다.

 

그 사고 후, 타일러는 잠든 잭의 곁에서 모호한 몇마디 말을 남기고 떠난다. 그 장면은 소설 [데미안]의 마지막 장면과 너무 닮았다. 부상당한 몸으로 매트리스 위에 눕혀져 있던 싱클레어의 곁에서 데미안은 몇가지 묘한 이야기를 전하고 사라진다. 싱클레어를 '꼬마'라고 부르던 데미안처럼, 타일러는 잭을 다정한! 어조로 '챔프'라고 부른다. 더 묘사할 필요도 없이 이 장면은 아무리 봐도 오마주같다. 데미안 왈, "너는 네 안에 귀를 기울여야 해. 그러면 내가 네 안에 있음을 알게 될거야. 알겠니?"

 

이 영화는 오프닝부터가 강렬한데, 인간 뇌 속 깊은 곳에서 뇌세포가 신경전달물질을 뿜는다! 후진하는 롤러코스터처럼 한참을 뒤로 달리다가 이마의 모공을 통해 밖으로 나오면, 권총을 입에 물고 있는 잭의 얼굴이 보인다. 이 한 뼘도 안되는, 그러나 꽤 박진감 넘치는 질주는 영화전체를 함축하고 있다. 인간의 뇌가 '삼라만상'을 지어내는 마법의 '영사실映寫室'이며, 인간은 자기가 지어낸 대상에게 포로로 붙잡힌 신세임을 보여주는 듯 하다.

 

잠시 후에 12개의 빌딩이 무너질 예정이고, 그 이벤트를 관람할 '로얄석'의 스크린(유리창)이 보인다. 유리창은 세가지 상을 담고있다. 게이머, 게임의 배경, 게이머의 부캐릭터. 이 셋은 안에서 볼 때만 따로따로 존재한다. 건물 밖, 경계 밖에서는 전혀 다르게 보인다. 한통속으로 녹아붙은 한 장의 그림같다. 세상이 폭파된다 해도 그 내부에서나 대단한 사건인 것이다.

 

 

타일러에게 죽도록 맞고, 빌며 애원하던 잭은 위기의 순간에 모든 것이 제손에 달렸음을 깨닫는다. 타일러라는 피조물의 운명은 창조자인 잭의 손에 달려있다. [바닐라 스카이]의 맥케이브 박사도 같은 처지였는데 그는 자신이 일개 몽키라는 걸 이해하고는 받아들인다. 반면 이 사나운 타일러는 만들었으면 책임을 지라고, 자기를 믿으라고, 다시 등신처럼 살 거냐고, 닥치라고... 버럭버럭 화를 내다가 총에 맞는다. 총을 쏘기 직전 잭은 이렇게 말한다. "My eyes are open."

 

감독과 배우들이 함께 한 코멘터리 영상의 정보들을 취합하면 이렇다. 

타일러(안내자)의 폭주를 염려하면서도 방관하던 잭은, 말라를 처리하겠다는 말 한마디에 분연히 맞선다.ㅋ 자신에게 필요했던 건 '말라'였음을 그 모든 소란을 거치고서야 알게 된 것이다. 정리하면 '사랑'이 필요했던 한 남자의 욕구불만 때문에 세상이 날아갈 뻔 했다는 얘기다(이건 무려 태아시절에 죽을 뻔 했던 히틀러나 박정희를 생각나게 한다). 자신의 '힘'을 깨달은 잭은, 폭탄이 팡팡 터지는 가운데 말라의 손을 잡고 말한다. "난 진짜 괜챦아. 날 믿어. 다 좋아질거야."

 

 

<타일러 어록>

"유행이니 소파니 다 집어치워. 완벽을 찾지 마. 진화를 하자구."

"자기 개발은 자위행위에 불과해."

"일벌은 자유롭되 여왕벌은 노예다."

"말해! '내 집을 파괴한 놈은 내 구세주다'라고"

"말라의 타락엔 위선이 없어. 넌 타락한 척 하는 거고."

"아버지는 신의 모델이지. 아버지가 우릴 버리면 신은 어떨까? 신도 어쩌면 우릴 싫어할지 몰라. 신이 우릴 거부하고 미워하는데 화상이 대수야? 신은 필요 없어. 구원 좋아하네. 우린 버린 자식이야. ...... 다 잃어 봐야만 진정한 자유를 얻게 돼"

"우린 그 누구보다 강하고 똑똑하다. 헌데 그 능력이 말살되고 있어. 기름이나 넣어 주고 웨이터 생활이나 하면서 먹물들의 노예로 살고 있지. 우린 필요도 없는 고급차나 비싼 옷을 사겠다고 개처럼 일한다. 우린 목적을 상실한 역사의 고아다. 2차대전도 공황도 안 겪었지만 대신 정신적 공황에 고통받고 있지. TV를 통해 우리는 누구나 백만장자나 스타가 될 수 있다고 착각했다. 그게 환상임을 깨달았을 때 우린 분노할 수 밖에 없다."

"너는 너의 직업이 아니야. 너는 니 통장의 잔고가 아니야. 니가 타고 다니는 차가 아니고, 지갑의 내용물이 아니고, 니가 입은 옷이 아니야!"

"넌 변화를 원했지만 혼자선 할 수 없었어. 그래서 상상해 낸게 나야. 난 네게 없는 걸 다 갖췄어. 외모, 정력, 능력 게다가 자유로움까지! ...... 누구나 매일 상상 속에서 변화를 꿈꾸지만 너처럼 실천하진 못해. 넌 때론 날 지켜 보기도 하고 때론 너 자신이 되지."

 

 

그리고 이것을 추가해야겠다. 잭과 타일러가 술집에서 만나 의기투합하던 날, 갑자기 관객!을 바라보면서,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며 타일러라는 '캐릭터'를 설명하는 부분이 있다. '제4의 벽'을 넘어서라도 확실히 전하고 싶은 이야기였던 모양이다.^^

 

00:32:24    '타일러 더든'에 대해 조금 알려줄게. 타일러는 야행성이지. 그는 남들 자는 밤에 파트타임으로 영사기사 일을 했어. 영화가 큰 릴reel 하나에서 나오는 게 아니고 몇 개가 더 있어. 그래서 릴 하나가 끝나고 다음 릴이 시작될 때, 누군가가 정확한 순간에 프로젝트를 켜야 해. 잘 보면 스크린 오른편 모서리에 작은 점이 있어. 일명 '담뱃불 구멍'. 그게 '전환'의 신호야. 그는 프로젝터를 켜고, 영화는 계속되고, 관객은 전혀 몰라. 어째서 이딴 걸 (관객은) 원하는 거지? 흥미로운 기회를 갖게 되거든. 가족영화 상영 때 포르노 프레임 하나를 끼워넣지. 유명배우가 더빙한 만화영화에서, 넌 잡아낼 수 있을 거야. 그 영화에 타일러가 한 공헌이 순간적으로 반짝하는 것을. 그걸 봤다는 걸 누구도 인식하지 못하지만 보긴 본 거야. 그 물건 엄청 크네. 벌새조차도 현장에서 타일러를 잡을 수 없었어.

타일러는 호텔의 연회 웨이터로도 일했지. 그는 요식산업의 게릴라 테러분자였어. 보지 마, 오줌 안 나와. 디저트에 방귀 뀌고, 채소엔 재채기하고, 또 버섯 스프엔... 괜찮아, 말해. 상상들 하시라.

 

타일러가 명백하게 잭의 잠재의식이라는 사실을 감안하고 들어보면 꽤 심오하다. 잠재의식은 말하자면 야행성에 가깝고, 생애와 생애(영화와 영화)를 넘나들며 길고긴 '인간 여정'을 함께한다. 잭이 원하는 한 그는 쉬지않고 일하는 영사실 기사로서, 잭이 보고싶어하는 세상을 지어내고 잭이 경험할 수 있도록 판을 깐다.

데이비드 핀처 감독이 이 영화에서 '포르노'를 사용한 건 그냥 '낚시'ㅋ일 뿐, 실은 잠재의식이 '말을 거는 방식'을 표현한 것 같다. 어디선가 읽었던 글에 따르면, 잠재의식은 항상 자의식과 소통하며 일을^^ 한다. 사람에 따라 누구는 청각적으로, 누구는 시각적으로, 누구는 그냥 알게하는..등의 다양하고 미묘한 방식으로 인간삶이라는 영화제작에 공헌!한다. 1초에 50번이나 날개짓을 하는 벌새Hummingbird조차도 (24분의 1초의 속도로 출몰하는)타일러를 캐치할 수 없었다는 잭의 비유처럼, 우리는 잠재의식이 하는 일을 '의식적으로는' 눈치채지 못한다. 타일러의 신호를 '보고도 본 줄을 모르지만 보기는 본' 관객들처럼.

또한 타일러는 잭의 온갖 '인간적 욕구'에 성실히 부응하여 말썽꾸러기 아이처럼 사건사고를 펼쳐놓는다. 그러나 그는 무고하다. 풍차에 돌진하는 건 돈키호테지, 산초가 아니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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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사의 제자The Sorcerer's Apprentice'는 1940년에 발표된 영화 [판타지아Fantasia]에 포함된 짧지만 뜻깊은 이야기이다. 괴테의 시도 있고, 조셉 제이콥스의 동화로도 알려져 있지만, 그보다 훨씬 오래 되었다는 사실을 영화가 알려준다.

 

"약 2,000년 전의 아주 오래된 이야기로서 견습공 마법사에 관한 전설입니다. 그는 아주 우수한 젊은이로서 마법을 간절히 배우고 싶어했습니다. 사실 그다지 우수하지는 않았는데 왜냐하면 스승의 최고 마법 기술을 연습하는 단계로서 통제 방법은 아직 배우기 전이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 어느 날 스승에게서 물을 길어 가마를 채우라는 지시를 받고서 그는 빗자루에게 생명을 불어 넣어 그 일을 대신 하게끔 만들었지요. 처음엔 이 일이 순조로웠지만 불행히도 빗자루에게 물 긷는 걸 중단시킬 주문은 잊어버리는 바람에 자기가 끝내지도 못할 일을 시작했음을 알게 됩니다."

 

 

"당신이 무엇을 보든, 무엇을 듣든, 무엇을 감각하든지 당신의 마음을 통해서일 뿐입니다. 마음이야말로 바로 '모든 것이 있는 곳'입니다. 당신의 마음을 바꾼다면 밖에 있는 것들은 그것을 따라 바뀔 것입니다. Change your mind and everything out there changes."   - 레스터 레븐슨Lester Levenson 

 

 

posted by moon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