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쪽>
우연히 초기에 암이 발견되는 경우도 있다. 다행스러운 일일까? 설령 초기에 암세포를 떼어냈다 해도 그 후 일정기간마다 고통이 따르는 검사를 되풀이해야 하고, 무사히 5년이 지나가도 재발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살아야 한다. 조금이라도 몸에 이상이 생기면 '혹시?'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칠 테니 그 스트레스는 이만저만이 아니다. 거기에서 벗어나기란 결코 쉽지 않다.
그렇다면 평소에 암 검진이나 정밀검사를 가까이 하지 않는 경우는 어떨까? 다들 암에 걸리면 아프다고 하는데 어째서 좀 더 일찍 알아채지 못하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간혹 아무 증상 없이 잘 지내다가 '몸이 마르면서 안색도 나빠 주변사람들이 보다 못해 검사를 받게 했더니 이미 손쓸 시기를 놓친 암이었다'는 식의 이야기를 듣곤 한다. 거듭 말하지만 '왜 그 지경이 되도록 병원을 찾지 않았을까?' 대답은 간단하다. 아프지 않았기 때문이다. 얼핏 '때늦은 발견'이란 대단히 불행한 일 같지만 생각해 보라. 당사자는 그때까지는 아무 걱정없이 자유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암 치료법은 크게 수술, 방사선치료, 항암제치료로 나뉜다. 이 밖에도 면역치료, 암 백신요법, 온열요법 등이 있는데 그 어느 것도 암을 뿌리뽑지는 못한다. 당연한 얘기지만 암을 완전히 없애버릴 수 없다면 암 치료는 의미가 없다. 조금이라도 잔당이 존재하면 어느새 증식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수술과 방사선치료만이 암을 근절할 수 있는 치료법일 것이다. 하긴 항암제도 맹독이므로 암을 없애려 하면 못할 것도 없다. 다만 암이 사라지기 전에 목숨이 먼저 사라지기 때문에 실용적이지 않을 뿐이다.
그럼에도 의료현장에서는 항암제가 '잘 듣는다'거나 '효과 있다'라는 말이 자주 쓰인다. 도대체 그것은 어떤 의미일까? 일반적으로 항암제가 잘 듣는다는 것은 ①치유, ②연명 효과, ③증상 완화, ④암 축소라는 네 가지의 의미를 담고 있다. 그리고 항암제가 잘 듣는 것으로 인정받고 채택, 승인되는 데에는 특정한 기준이 있다.
먼저 X선 사진 등 자료 상으로 암의 크기(면적)가 절반 이하로 줄어든 기간이 4주 이상 지속되어야 하고, 항암제를 사용한 환자의 20% 이상이 그런 상태를 보여야 한다. 비록 나머지 80%의 환자가 반응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잘 듣는 약'으로 인가받을 수 있고, 의료계는 이것을 '효과가 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사정을 모르는 환자 측이 '효과가 있다'는 말을 '낫는다' 혹은 '암이 사라진다'로 받아들인다 해도 누구를 탓할 수 있을까.
게다가 항암제는 거의 독약이나 극약의 성격을 갖고 있어서 당연히 심한 부작용이 따른다. 암세포만 공격하는 게 아니라 정상세포와 조직까지 공격하기 때문이다. 몇 개월의 연명효과는 있을지 몰라도 부작용이 너무 심해 기진맥진 상태가 된다. 결국 항암제로 인해 괴로운 기간만 더 늘어날 뿐이라면 너무 비참하지 않은가? 연명할 수 있다해도 어떤 상태로 연명하느냐가 문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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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세의 노인이 피를 토하는 바람에 병원으로 실려갔다. 이미 치료시기를 놓친 위암으로 판명이 났다. 게다가 중증의 치매가 있어 가족들도 적극적인 치료를 원하지는 않았다. 입으로 음식을 조금 먹을 수 있게 되자 가족들의 희망에 따라 우리 노인요양원에 들어오게 되었다. 사실 노인요양원이 병원으로부터 말기암 환자를 인계받는 일은 거의 없다. 일반 노인복지시설에는 상근의사가 없고 야근 간호사도 없다. 우리 시설처럼 상근의사와 간호사가 24시간 365일 근무하는 시설은 소수다.
나는 그때까지 마약성 진통제를 사용하는 말기암 환자를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몰랐다. 그래서 우리는 그 환자를 받아들였다. 소생할 가망이 있지도 않았다. 그런데 새해가 밝자 놀랍게도 콜타르처럼 검기만 했던 환자의 변 색깔이 조금 옅어지기 시작했다. 한달 반쯤 지나자 변이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왔다. 곧이어 환자는 스스로 왕성하게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빈혈까지 개선되어 거의 정상치가 되어 있었다. 그 뒤로는 외출을 하는 등 여느 사람과 다름없는 생활이 8개월쯤 지속되었다. 통증은 전혀 없었다.
처음 얼마 동안은 식욕이 왕성하다가 시간이 지나자 점점 입에 달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만 손대기 시작했다. 당연히 영양 균형이 무너져 팔다리가 부어올랐다. 하지만 마지막에는 노쇠사 과정을 밟아가면서 부종은 사라졌다. 병원에서 퇴원할 때만 해도 남은 수명이 기껏해야 두세 달이라고 했지만, 결과적으로 그는 사망 직전까지 평범하게 생활하며 무려 1년 가까이 생존할 수 있었다. 의료처치는 거의 없었다. 수명을 연장했다는 사실보다, 그 환자가 고통없이 편안하게 자연사할 수 있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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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세인 에비 씨는 식욕이 떨어지고 몸이 야위기 시작하는데다 위장 상태가 좋지 않다는 이유로 입원하였다. 검사결과, 진행성 위암으로 남은 수명은 3개월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게다가 암성 복막염도 일어나고 암에 대한 적극적인 치료의사마저 없어서 2주 만에 퇴원하여 노인요양원으로 돌아왔다.
통증은 전혀 없었다해도 암성 복막염으로 복수가 차올라 배가 심하게 부풀어 있는 상태였다. '너무 힘들어하면 아무래도 복수를 빼내야 하나...' 생각하고 있는데 환자가 의식을 잃으며 수면에 가까운 상태에 들어가 물 한방울조차 넘기지 못하게 되었다. 모처럼 편안히 잠들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링거주사나 인공호흡기로 방해하는 일은 하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에비 씨는 8일째 되는 날 더없이 평온한 모습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불룩하던 배가 푹 꺼져들면서 복수가 완전히 사라졌다.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수분이 필요하다. 따라서 살아있는 동안에는 '더 이상 필요없게 되는 순간까지' 몸에 있는 물을 전부 다 사용하는 것이다. 나는 우리 몸의 신비로움에 새삼 경탄했다.
■103세의 후쿠이 씨는 조금 힘들다는 느낌과 함께 온몸에 황달이 와서 입원했는데 알고 보니 췌장암이었다. 담즙이 십이지장으로 가는 출구 부근을 막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담즙이 흐를 수 있도록 그 막힌 통로에 그물망 모양의 금속 튜브(스탠트Stent)를 넣는 시술을 받고 퇴원하여 요양원으로 돌아왔다. 병원 측에서는 어차피 암이 증식하면 이 그물망 모양의 튜브가 막히게 될 거라고 말했다.
하지만 후쿠이 씨는 그 후 7개월 뒤에 세상을 뜨기까지 음식을 먹는 데 별다른 이상이 없었다. 다만 밥 위주로만 먹고 반찬은 그다지 먹지 않았다. 그로 인해 영양 불균형으로 임종 2~3개월 전에는 팔다리가 부어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가끔 열이 39도까지 오른 적은 있어도 황달이 오거나 병원을 찾은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그리하여 마지막에는 자연스럽게 죽음을 기다리며 붓기도 사라지고 아무런 통증도 없이 편안히 떠날 수 있었다. 병원에서 어떤 진단, 어떤 예측을 하든 몸은 스스로 '자연스러운 죽음'을 찾는다.
■모리노 씨는 5년 전에 암전문병원에서 폐암진단을 받았다. 그 때 담당의사가 '연세가 여든이면 수술을 권하지 않는데, 환자분은 79세니까 수술을 합시다'라고 했다고 한다. 그 말에 의문을 갖기 시작한 모리노 씨는 우리 모임의 소문을 듣고 두세번 참석하더니, 이후로는 의료와의 연을 완전히 끊기로 결심했다. 그 후 오랫동안 아무런 통증이나 호흡곤란 증세가 없다가, 급격히 기력을 잃고 한달 정도를 앓았다. 그 때까지 4년 3개월 동안은 좋아하는 탁구를 치며 건강하게, 그야말로 평범한 생활을 거뜬히 유지했으니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는 그대로 돌아가시면 '의문사'라는 명목으로 경찰이 개입하는 성가신 일이 벌어질 수 있으니, 급히 주치의를 찾으라고 조언했다. 간신히 의사를 수소문해 찾아간 병원에서 '암에 걸리면 당연히 투병을 해야죠. 처음부터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는다는 건 말도 안됩니다. 당장 입원부터 하세요.'라는 말을 들었다. ... 모리노 씨는 어느날 오전에 사망했다. 처음에는 치료거부에 거세게 반대하던 자녀들도 나중에는 이런 '평온한 죽음'을 보여주신 것에 고마워했다고 한다.
<152쪽>
호스피스hospice는 '손님hospes'이란 뜻의 라틴어에서 나온 말이다. 중세시대 때 성지순례자들이 하룻밤 쉬어가던 곳이라는 의미에서 시작되어 오늘날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이하는 장소이자, 그것을 돕는 활동 전반을 가리키는 용어가 되었다. 일반적으로 호스피스는 육체적 고통을 비롯하여 정신적, 사회적, 영적 고통을 덜어주고 완화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설이지만 현재는 '통증 완화'를 중심으로 한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강렬한 육체적 통증은 인격을 무너뜨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인요양병원에서 일하면서 평균수명에 이른 70여명의 암환자를 지켜본 결과, 암에 대해 공격적인 치료를 전혀 안하는 경우 통증은 거의 없었다.
죽어가는 사람이 의사에게 의지하는 것도 바람직하지는 않다. 죽고 사는 것은 인생의 문제이지, 의사가 해결해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의사는 의학공부로 의사면허를 취득한 사람이다. 특별히 인생공부를 했거나 인생수업을 받은 게 아니라는 얘기다. 게다가 젊은 의사인 경우 이렇다 할 인생 경험도 없다. 인생을 거의 다 살아낸 '베테랑'이 자식뻘 되는 의사에게 '어떻게 죽어야 하나?'라는 어려운 문제를 들이댄다는 것은 그야말로 딱하기 그지없는 노릇이다. 의사는 의사대로 짐이 너무 무거워 죽어가는 환자에게서 발길이 멀어지는 것도 전혀 무리는 아니다.
<157쪽>
나 역시 노인요양원으로 옮겨올 당시만 해도 '말기암은 지독히 아픈 것'이라는, 이른바 의사계의 상식에 절어 있었다. 그래서 말기암 환자에게 통증이 시작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솔직히 겁이 났다. 게다가 의료적으로는 집단생활시설에 속하는 노인요양병원이다 보니 이래저래 너무 힘에 부치지 않을까 염려스러웠다.
하지만 고령자의 때를 놓친 암 관련 사례가 5건, 10건... 점점 늘어나는 동안 저절로 알게 된 사실이 있다. 처음 암을 발견할 당시에 통증이 없으면, 그 후 아무런 조치 없이 내버려 두어도 통증은 없다는 사실이다. 통증이 있다면 암은 더 빨리 발견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통증 때문에 병원을 찾는 경우는 드물고, 실제로는 피를 토하거나, 장출혈, 황달, 혈변, 체중감소나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차는 등의 이유 때문에 병원을 찾게 된다.
<163쪽>
생로병사 중 태어나는 것生은 나의 의지가 아니지만 늙고老 병들고病 죽는 것死은 오로지 내 몫이다. 건강할 때 자신의 마지막 순간을 상상해 보면서 마음자세를 가다듬으라. ...... 생사일여生死一如. 삶과 죽음은 본디 하나인데 현대인들은 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 죽음을 별개로 보는 경향이 있다. 그 결과 소중한 '지금 이 순간'을 너무 소홀히 흘려보낸다. 그렇게 '끝'을 모른 채 살다가 죽음이 다가오는 순간 패닉에 빠지고 만다. 그리하여 어떻게든 명命을 조금이라도 더 연장하기 위해 병원을 찾고 온갖 의료장치(심폐소생, 인공호흡기, 인공투석기, 인공영양, 수액주사...)에 매달린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늦은 뒤일 것이다.
"우리 모두에게 죽음이 찾아오리라는 사실은 누구나 안다.
잠 잘 준비, 겨울 날 준비는 하면서 죽을 준비를 하지 않는 까닭은 무엇인가." - 톨스토이
"지혜로운 사람에게는 삶 전체가 죽음에 대한 준비이다." - 키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