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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 human doing but human being - P'ta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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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4. 16. 03:21 책에서 발췌

 

 

 

<70쪽>

그 곳은 사용되지 않는 교실처럼 보였다. 책상과 의자 같은 거무스름한 형상들이 벽에 쌓여 있었고, 쓰레기통은 뒤집혀 있었다. 그런데 맞은편 벽에, 애초에 그곳에 없었던 것 같은, 마치 누군가가 방해가 되지 않도록 그곳으로 치워놓은 것 같은 무언가가 기대 세워져 있었다.

 

그것은 천장까지 닿는 커다란 거울이었는데, 테두리가 화려한 황금장식으로 꾸며져 있고, 두 개의 뾰족한 다리가 달려 있었다. 맨 위에는 '에리스드 스트라 에루 오이트 우베 카푸루 오이트 온 워시'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77쪽>

"그래서.. 다시 왔구나, 해리?"
해리는 몸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그는 뒤를 돌아다보았다. 벽 옆에 있는 책상 위에 알버스 덤블도어가 앉아 있었다. 해리는 거울에 너무나 가고 싶었던 나머지 그를 알아채지도 못하고 지나쳤던 게 틀림없었다.
"전 - 전 선생님을 보지 못했어요."
"투명해지면 눈도 나빠지는 게 신기하지."

덤블도어가 말했다.

 

해리는 그가 미소짓고 있는 것을 보자 마음이 놓였다.

덤블도어가 책상에서 내려와 해리와 함께 마룻바닥에 앉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너도, 앞서 다녀갔던 수백 명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소망의 거울에서 기쁨을 발견한 게로구나."

"전 그 거울의 이름이 그건지 몰랐어요."
"하지만 그것이 무엇을 하는지는 지금쯤 깨달았을 것 같은데?"

"그건 그러니까 - 그건 저의 가족을 보여줘요."
"그리고 학생 회장이 된 네 친구 론의 모습도 보여주었지."
"어떻게 아셨어요?"

"난 굳이 망토를 입지 않아도 보이지 않게 할 수 있단다."

 

덤블도어가 부드럽게 말했다.

"자, 소망의 거울이 우리 모두에게 무얼 보여준다고 생각하니?"
해리는 고개를 저었다.
"그럼 내가 설명해주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소망의 거울을 보통 거울처럼 사용할 수 있단다. 즉, 그것을 들여다보면 정확히 자신의 현재 모습을 보니까 말이다. 도움이 됐니?"

해리는 생각했다. 그리고 천천히 말했다.
"그건 우리가 원하는 걸 보여줘요… 우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구나." 

덤블도어가 조용히 말했다.

"그것은 우리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소망 바로 그것을 보여준단다. 넌 네 가족을 전혀 알지 못했으므로 네 주위에 그들이 서 있는 걸 보았고, 론 위즐리는 항상 형제들에게 가려져 있었으므로 그들 모두보다 더 잘되어 혼자 우뚝 서 있는 모습을 본 거지. 그러나, 이 거울은 우리에게 지식이나 진실은 보여주지 않는단다. 사람들은 그 거울이 보여주는 게 진짜인지 혹은 심지어 가능한지조차도 알지 못한 채, 자신들이 본 것에 넋을 잃거나, 미쳐서, 그 거울 앞에서 헛되이 시간을 보냈지. 그 거울은 내일 새로운 집으로 옮겨질 예정이란다, 해리. 그러니 그것을 다시는 찾지 말라고 부탁하고 싶구나, 그리고 만일 그 거울을 다시 보게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알 게다. 꿈에 집착해서 현실을 잃어버리는 것은 좋지 않은 일이라는 걸 기억하기 바란다. 자 이제, 저 훌륭한 망토를 다시 입고 침실로 돌아가는 게 어떻겠니?"
해리는 일어섰다.  ......

 

 

─────────────────────────────────────────────────

 

영화에서의 이 장면이 좋아서 뒤늦게 책을 찾아보았다. 덤블도어가 거울앞에 붙들린 해리에게 다가가 다정하게, 그러나 단호하게 떼어놓는 이 장면은 상황, 분위기, 내용 모두 너무 좋다. 아이는 세상경험을 한참 더 하고 나서야 스승의 조언을 이해할 것이고 그때에 스승은 세상에 없을 것이고 지혜는 다른 아이, 또다른 아이를 통해 전달될 것이다. 

 

"다시 왔구나. 해리. 너도 예전의 다른사람들처럼 이 '에리스드 거울'에서 큰 기쁨을 발견했구나. 너도 지금쯤이면 이 거울이 뭘 하는지 깨달았겠지. 힌트를 주마. 지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이 거울 안에서 오직 자기자신을 볼거다. 틀림없이 있는그대로의 모습 말이야."

 

"그러니까 이 거울은 우리가 '원하는 것'을 보여줘요. 원하는 게 뭐든지..."

"그래 맞아. 아니기도 하고. 이건 더하지도 빼지도 않은 우리를 보여준단다. 우리 마음속 가장 깊고 절실한 소망 말이다. 해리, 넌 가족을 모르고 살았으니 너의 곁에 서있는 그들을 본 거란다. 하지만 기억하렴. 이 거울은 우리에게 지식과 진리 그 어느 것도 주지 않아. 사람들은 이 거울 앞에서 쇠약해졌고 심지어 미치기도 했지. 이 거울은 내일 새로운 집으로 옮겨질 거야. 그러니 다시는 이 거울을 찾지 말라고 당부해야겠다. 꿈 속에 머물러 사느라 삶을 잊어버리지 않도록."

책에는 '소망의 거울'이라고 쓰여있고, 영화에서는 '에리스드 거울'이라고 부른다. 거울의 아치형 장식에는 알 수 없는 알파벳이 새겨져 있다. 그것을 거꾸로 배열하면 "나는 너의 얼굴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네 마음이 바라는 걸 보여준다." desire를 거꾸로 적으면 erised가 된다. 우리말로 소망이라고 하면 뭔가 사소하게 들리고, 욕망이라고 하면 너무 부정적으로 들린다. 희망이 적당하려나? 나는 '바램'이라는 말을 좋아하는데 비표준어라고 해서 서운하다. 사전에는 wish보다 강하고 ambition에 가까우며, 어원은 라틴어 자신의 '별sidus에서 떨어진de' 이의 바람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재미있다. 모든 지구인의 근원적 desire는 떠나왔던 곳, 아마도 지구는 아닌 곳으로 돌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방탄소년단의 2018년 MMA, Fake Love무대 도입부에도 거울이 등장한다. 거울의 표면이 물처럼 찰랑거리면서 글자들이 나타난다. 거꾸로 배열하면 "I show not only your true side. but also your fake side."가 된다. "나는 너의 진실된 부분만이 아닌 거짓된 부분도 보여준다". 세상은 단지 거울이고 거울은 있는 그대로의 '나의 내면'을 반사한다.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삶에서 '나를 사랑하지 않는 세상'과 씨름한다. 이 노래는 깨져버진 연애에 대한 탄식이자, 사본을 쫓는 원본의 좌절, 그리고 아무리 애를 써도 결국엔 깨지도록 예정된 '거울 속 사랑'에 대한 비유일 수 있다. '이뤄지지 않는 꿈 속에서 피울 수 없는 꽃을 키웠어.' 키울 수는 있어도 피울 수는 없는 꽃이라니! 아름답고 안타까운 노랫말이다.

 

 

 

posted by moon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