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브루스 H. 립튼, 2013.
<45쪽>
생각해 보자. 사자의 냄새를 맡고 머뭇거리는 가젤이 있을까? 사자에게 느긋하게 다가가서 "너는 내 친구니?" 하고 물어볼 가젤이 있을까? 당연히 없다. 가젤은 사자의 냄새를 맡자마자 저녁거리가 되지 않기 위해 시속 약80km를 넘는 경이적인 속력으로 달아날 것이다.
그런데 사자와 같은 '인간 천적(그야말로 이유 없이 적대적이며 악한 의도를 내뿜는 사람)'이 두 집 건너로 이사 왔을 때 나는 가젤처럼 하지 않았다. 대신 나는 그의 체취와 험악해 보이는 인상에서 느껴지는 왠지 모를 거부감을 무시했고, 그에 대한 본능적인 혐오감을 떨쳐내야 한다며 자신을 설득하려고 애썼다.
나는 어쩌다가 그 이웃남자와 말을 섞게 될 때면 최선을 다해 정중히 대하려고 했고, 그러면서 속으로는 자신에 대한 혐오감과 싸웠다. 그를 대할 때마다 느끼는 불편함을 뉴에이지에서 흔히 말하는 전생의 업보 정도로 여기며 합리화도 해봤다. 그렇게 불편한 이웃과 지낸 지 약 1년 뒤, 나는 의과대학에 출강하게 되어 바베이도스에서 그래나다로 이사하게 되었다.
나는 그동안의 인내가 두 가지 면에서 보상받았다고 생각했다. 첫 번째 보상은(이게 가장 중요하고 좋은 점이었는데), 생각만 해도 소름끼치는 그 이웃을 이제 더는 볼 일이 없다는 점이었다. 두 번째 보상은, 이삿날 그 이웃남자가 도와준다며 나타나서 내가 애지중지하는 최고급 카메라 장비를 포함해서 모든 짐을(미국으로 급히 돌아갈 때 쓰려고 따로 챙긴 수트케이스 하나만 빼고) 이삿집 트럭에 실어주는 것을 본 일이다. 그 광경을 보고 '이런, 어쨌든 그렇게 나쁜 친구는 아니었군.'이라고 행각했지만, 어서 그 곳을 떠나고 싶은 마음은 여전했다.
문제가 생겼음을 알아차린 건 카리브해로 날아와 여러 날 동안 이삿짐센터 사람들을 닦달하고 난 다음이었다. 그제서야 나는 비로소 내 중요한 이삿짐 몇개가 어디론가 증발해버렸다는 것을 알았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그 꺼림찍했던 이웃남자는 내가 바베이도스를 떠난 다음 날 이삿짐센터 사무실로 찾아가 운송을 취소하고, 이사 비용을 환불받고는, 내 짐을 모두 훔쳐 바베이도스에서 자취를 감췄다!
<99쪽>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은 쾌락의 경험을 반복하도록 부추기는 결정적 화학물질이다. 그래서 도파민 수치가 높아지면 기분이 들떠 집에서 혼자 담요나 뒤집어쓰고 있기가 힘들어진다. 쾌락을 찾아 밖으로 나간다는 뜻이다.
생식과 관련하여 도파민은 원시생명체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중요한 호르몬이다. 도파민의 역할은 현미경으로 겨우 보이는 회충같은 단순한 생명체나 인간이나 거의 유사하다. 이런 이유로 텍사스대학 연구팀은 도파민결핍회충을 파킨슨병(뇌의 도파민 생산세포가 손상됨으로써 발병) 치료에 유효한 약품을 판정하는데 사용하고 있다.
도파민은 뇌의 배쪽피개구역 깊숙한 곳에서 합성되어 전뇌측좌핵으로 분비된다. 측좌핵은 쾌락.보상회로를 담당하는 지역이며 중독이 나타나는 것도 이 보상회로의 작용 때문이다. 예를 들면 코카인, 헤로인 등의 마약, 섹스, 도박, 쇼핑, 고칼로리 음식물 등에 자극을 받을 때 도파민이 분비되는데, 이 때 뇌가 쾌감을 기억하기 때문에 도파민 자극을 얻기 위해 반복적인 행동을 하는 것이 바로 중독현상이다.
1950년대부터 수많은 동물실험을 통해 도파민이 중독에 어떻게 관여하는지 입증되어 왔다. 도파민이 합성되는 뇌부위에 전극을 심은 쥐는 쾌락·보상회로를 자극하기 위하여 시간당 7천번까지 쉼없이 스위치를 눌러댔다. 쥐는 음식이나 물보다 쾌락·보상회로의 자극을 선택한 것이다. 심지어 암컷쥐도 갓태어난 새끼를 방치하고 스위치를 눌렀는데 사람으로 치자면 중독된 엄마가 아기를 내버려두고 약을 찾는 것과 같은 현상이었다.
사람을 대상으로 행해진 몇몇 연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사람도 기회만 있으면 뇌의 도파민 생성부위를 반복해서 자극했고 그 결과 인간관계나 개인위생을 등한시하는 경우가 많았다. 즉, 뇌의 도파민 생성지역에서 발생하는 쾌락을 즐기려고 다른 것을 무시하는 현상은 쥐나 사람이 전혀 다를 바가 없었다. 그리고 중독현상을 관장하는 뇌의 위치도 쥐와 사람 모두 완전히 동일함이 입증되었다.
그렇다면 도파민과 허니문 이펙트는 무슨 관계가 있는 걸까?
근래의 다양한 연구를 통해 열정적인 사랑에 빠질 때 뇌에서 보상회로가 작동된다는 것이 밝혀졌다. 2000년 런던대학의 안드레아 바텔, 세미르 제키는 열정적인 연애를 하고 있는 17명의 학생을 대상으로 사랑하는 사람의 사진을 보는 경우와 그냥 친구사진을 보는 경우로 나눠 뇌를 스캔하였다. 결과는 흥미로웠다. 사랑하는 사람의 사진을 볼 때는 쾌락.보상, 즉 도파민을 생성하는 뇌회로가 밝게 빛났지만, 친구사진의 경우 뇌는 반응없이 그저 어두운 상태에 있었던 것이다. 바텔과 제키는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사랑이라는 복잡하고 때로는 압도되는 그 감정이, 대뇌를 모두 지배할 것이라는 우리의 예상과 달리 뇌의 아주 국소적인 부분에서 일어나는 활동이라는 사실은 매우 놀랍다. 이 작은 대뇌피질 부위가 '천 척의 군함(트로이전쟁 비유^^)'을 띄우게 했다는 사실은 가히 환상적이다."
과학자들은 불타는 사랑에 빠진 것과, 코로 코카인을 흡인하는 것이 뇌회로를 동일하게 자극한다는 사실을 알아내고서 좀 충격을 받지 않았을까?
<131쪽>
아기들은 뭔가를 빠는 등의 본능적인 행동을 이미 배운 채로 태어난다. 그러나 이런 본능 말고도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배워야 할 것은 너무나도 많다. 그래서 본능은 유아와 어린아이의 뇌에 셀 수 없이 많은 신념과 행동을 잽싸게 다운로드하도록 만든다. 이 과정이 어떻게 가능한지는 EEG(뇌전도,electroencephalogram) 검사를 통해 알 수 있는데, 사람의 뇌파를 측적해보면 가장 낮은 주파수부터 가장 높은 주파수까지 5단계로 나눌 수 있다. 가장 낮은 대역의 주파수를 델타파라고 하고, 가장 높은 대역의 주파수를 감마파라고 한다. 그런데 어린아이의 뇌파는 가장 저주파 대역인 세타파와 델타파의 활동이 지배적이다.
우선 엄마 뱃속에서의 기간과 출생 후 만1세가 되기까지 사람의 뇌는 가장 느린 주파수의 뇌파활동을 보이는데, 초당 4~5Hz로 물결치는 델타파의 활동이 가장 두드러진다. 아이들이 잠을 많이 자는 이유가 델타파 때문인데, 성인에게서 델타파는 흔들어 깨워도 못일어날 정도의 깊은 잠에 빠진 경우에 나타난다.
만2세부터 6세까지 아이의 두뇌활동은 세타파(4~8Hz)가 지배한다. 세타파는 주로 상상을 할 때 나타나는데, 이 나이 때 아이들은 무궁무진한 상상력을 발휘하면서 뇌도 같이 발달시켜 간다. 혹시 자녀가 빗자루를 보고 말이라고 하는가? 그렇다면 아이에게 '이건 말이 아니고 빗자루야'라고 해도 소용없다. 세타파가 대뇌를 지배하는 동안 아이들은 자기만의 세상에서 신나는 시간을 보내는데 그 상태에서는 상상과 현실이 따로 구분되지 않는다. 아이들의 눈에 빗자루는 훌륭한 말이다.
세타파의 활동이 지배적일 때 뇌는 거의 최면상태와 유사하다. 이 상태에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잠재의식에 여러 프로그램이 장착될 수 있는데, 상담실 등에서는 같은 원리로 최면상태를 유도하여 잠재의식을 바꾸기도 한다. 이처럼 성인의 뇌는 잠에 빠지거나 최면상태가 될 때에만 비로소 의식의 활동이 멈추지만, 아이들의 뇌는 평상시에도 항상 잠재의식 상태라고 할 수 있다. 6세가 될 때까지는 EEG검사를 해봐도 아이들의 뇌에서 알파파나 베타파 같은 의식의 출현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185쪽>
1990년대 미국립보건원 산하 국립아동보건인간개발연구소의 소장이었던 제임스 프레스콧James W. Prescott은 평화로운 문화권의 부모들은 자녀들과 다양한 스킨십(아이를 온종일 안거나 등에 업고 다니는 등)을 매우 즐긴다는 보고를 했다. 이런 문화권에서는 사춘기의 성적 호기심을 억압하는 대신, 성인이 된 후 성공적 인간관계를 갖기 위한 자연스런 성장과정으로 받아들인다. 그는 또한 애정어린 스킨십이 결핍된 아이들(혹은 동물들)은 스트레스 호르몬의 통제가 부족해져서, 폭력 성향의 조짐을 보인다는 것도 발견하였다. 크레스콧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발달신경심리의 연구자로서 폭력과 쾌락 간의 독특한 연관성에 대해 많은 연구를 했다. 나는 특히 스킨십의 부족으로 인한 결핍감이 폭력의 주요 요인임을 확신한다."
<215쪽>
아인슈타인은 이런 말을 남겼다.
"세상을 사는 데에는 두 가지 태도가 있다. 하나는 기적이란 전혀 없는 것처럼 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모든 순간이 기적인 것처럼 사는 것이다."
<2015/09/01에 쓰고 2018/03/22에 옮겨 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