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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1. 11. 16:35 책에서 발췌

 

 

 

<33쪽 / 정혜신>

얼마 전 미국의 버클리 캘리포니아 대학의 심리학과 교수 네 명이 '보수주의'에 관해서 흥미로운 연구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이것 때문에 공화당에서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고 합니다. 보수주의를 표방하는 공화당에서 거액의 연구비를 지원해서 보수주의의 실체를 밝혀달라고 했는데, 긴 연구 끝에 예상치도 않은 부정적 결과가 나온 까닭이지요. 저는 개인적으로 이 연구가 보수주의에 대해서 아주 새롭고 흥미로운 시각을 제시했다고 생각합니다. 연구자들의 결론은 보수주의라는 것이 심리학적으로 일종의 노이로제 같은 질병이라는 거예요. 히틀러나 무솔리니나 레이건 대통령 그리고 지금은 부시 대통령 같은 보수주의자들은 동일한 증세를 보인다고 하는데, 그 증세란 모호함을 견디지 못하고, 평등에 대해 독선주의적인 혐오감과 공격성 그리고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며, '권위주의적인 성격'을 보인다는 거예요. 예를 들면 부시 대통령이 뉘앙스가 모호한 얘기를 들으면 굉장히 짜증내고 화를 내며 단순한 결론을 좋아하는 게 보수주의라는 노이로제의 증상이며, 병이라고까지 할 만하다고 결론을 내린거죠.  

 

※권위주의적 성격Authoritarian personality: '한 집단의 구성원 대부분이 가지고 있는 인격구조로서, 공통된 경험과 생활양식의 결과로서 형성된 것'이라고 정의된다. 특히, 경직된 사고에 의해 강자나 권위를 무비판으로 받아들여 소수집단을 미워하는 사회적 성격을 가리킨다. 1930년대의 독일에서의 파시즘 대두를 받아들인 보통사람들이나 하층 중산층에 관해서 사회심리학적인 분석을 행한 에리히 프롬이나 미국의 사회학자들에 의해서 인간의 사회적 성격(인격)의 하나로 주장되었다. 프롬은 이를 '권위있는 사람에게의 절대적 복종과 자기보다 약한 사람에 대한 공격적 성향의 공생'으로 봤다. 자신의 의견이나 관심이 사회에서도 상식이라고  오해하는 경향, 외국인이나 소수민족을 공격하는 경향이 있다. 

 

 

<197쪽 / 김두식>

제가 1986년에 K대학교 법과대학에 입학해서 하루는 화장실에 들어가서 앉았는데, 누군가 벽에다가 왼쪽에는 K대 법대를 쓰고 오른쪽에는 S대 법대를 쓴 다음에 부등호의 입을 K대 법대 쪽으로 커다랗게 벌린 낙서를 해 놓았더라구요.(청중 웃음) 그 대학에 입학하고 며칠 안 되었을 때인데, 그걸 보고 진짜 내가 이 학교에 잘못 왔구나 하는 어떤 게 머리를 쾅 하고 치는 걸 느꼈어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열등감을 그 낙서에서 봤기 때문입니다. 최소한 당시 학력고사 점수 면에서 볼 때 부등호 입이 K대 쪽으로 벌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낙서한 사람도 알고 저도 알고 하늘이 알고 땅이 아는 건데, 제 생각에는 그 친구가 아무도 없는 데서라도 'K대가 S대보다 낫다” 라고 절규하고 싶었던 거예요.(청중 웃음) 저도 그걸 본 뒤부터 대학생활을 하기가 그리 쉽지 않았습니다.

당시에는 K대 법대도 이른바 명문사립이라, K대 법대 학생들이 옆에 커다랗게 '법대8611……'라고 쓴 법서를, 가방도 비어 있는데 일부러 손에 들고 다녔어요. 그런데 책을 사거나 자료를 구하러 신림동에만 가면 손에 들고 있던 법서를 슬그머니 가방에 집어넣곤 했습니다. 그리고 동아리 활동을 하면 주변에서 제일 재수 없어 하는 학생들이 법대 애들이었어요. 왜냐하면 법대 애들은 동아리에 들어왔다 하면 늘어놓는 푸념이 한결같이, 자기는 이 학교 올 사람이 아니었다는 거예요. 자기는 학력고사 때 배가 아파서, 설사가 나서, 몸이 안 좋아서 이 학교 온 거고, 니들은 원래 못 올 학교를 하나님의 은혜로 온 거라는 듯한 태도로 다른 학생들을 대하니까 싫어할 수 밖에요. (청중 웃음)

제가 볼 때는 이런 것이 일종의 사이클이에요. 사인 코사인 곡선을 그려서 곡선의 윗부분을 우월감이라고 하고 아랫부분을 열등감이라고 한다면, 우월감이 강한 사람일수록 열등감도 커요. 이 진폭이 매우 큽니다. 심리적으로 굉장히 불안정하죠. 이런 진폭이 적은 사람이 되는 게, 우리 사회에서 자유를 얻는 중요한 열쇠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그걸 어떻게 극복했느냐 하면, 물론 기본적으로는 신앙의 힘으로 극복했지요.(청중 웃음)

사법연수원에 들어가서 사람들을 보니 완전히 정신병원 비슷한 분위기라서 견디질 못하겠더라고요. 그래서 사람들을 관찰하기 시작했어요. 그랬더니 다 마찬가지더라고요. K대 나온 애들은 겉으로 모교에 대해 자부심을 얘기하지만 S대 출신들을 보면 열등감을 느끼고, S대 출신들은 자기들 안에서도 4학년 때 시험 붙은 천재들에 대해서 심한 열등감을 느낍니다. 나아가 그 4학년 때 붙은 사람들은 판사가 된 사람들에 대한 열등감, 판사가 된 사람들은 서울로 판사 발령받은 사람에 대한 열등감, 서울에 발령받은 사람은 서울 본원에 발령받은 사람에 대한 열등감, 서울 본원에 발령받은 사람들은 1등으로 발령받은 사람에 대해 '재는 대법관까지 가겠지만 나는 지방법원 부장밖에 못 갈 것'이라는 열등감이 아주 강합니다. 결국 열등감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한명 밖에 없는 거예요. 그렇다고 그 1등은 이런 열등감에서 진짜로 자유로울까요? 막상 1등 하는 사람은 얼굴이 못생겨서 열등감이 너무너무 심할 때가 많더라고요.(청중 폭소) 우리 때 사법시험에서 289명인가 뽑혀서 정말 서로 다 잘 알고 지냈는데, 이런 열등감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없었어요. 더 나은 대학, 더 나아보이는 지위로 간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정말 어렵게 자기를 극복해가야 하는 것입니다.

제 생각에 누구나 자기 인생의 정점에 도달하는 때가 있어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그게 너무 빨리 와요. 자식이 열아홉 살에 어디 법대를 가면 친척들을 전부 불러서 우리 집안에 판사 났다고 하면서 만세를 부르는 거예요. 그런데 많은 경우에 열아홉 살에 인생의 정점에 이른 사람은 그 다음부터는 이렇게 죽 내려가는 것 같아요. 지위는 좀 올라가더라도 말이죠. 이른바 명문대학에 간 제 고등학교 동기들 중에는 지금도 저를 만나면, “야, 두식이 네가 그때 학력고사 때 수학에서 몇 개를 틀리고 영어에서 몇 개를 틀려서 그냥 그렇게 되긴 했지만, 그래도 뭐 넌 괜찮은 놈이었어” 라고 떠드는 친구가 있어요. 그런데 저는 그때 그런 일들은 정말 까맣게 잊어버렸거든요.(청중 웃음) 인생에서 좀 불행한 순간이었을 뿐 다 지워졌는데, 그 친구는 그때가 자기 인생에서 제일 잘된 시점이었어요. 그 다음에는 계속 죽 내려갔기 때문에 그때 일들을 잊을 수가 없는 거죠.


<272쪽 / 정희진>
우리 사회에서 흔히 반복되는 사건인데, 아까 말씀드린 성폭력 가해자가 자기는 성폭력 안했다고 하는 것 또는 정치인들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회창씨 예를 들어서 좀 안됐지만, 그 양반이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한 가장 큰 이유가 아들 병역문제였잖아요. 그 집안은 군대 간 사람이 별로 없어요.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병역문제가 대선에서 치명적인 패인이 됐다면, 두 번째로 대통령 선거에 나올 때는 집안 문제를 좀 잘 관리하는 게 상식이잖아요. 그런데 두 번째는 원정출산이 터졌지요. 그들 입장에서는 정말 기억이 잘 안 나거든요. 왜냐면 그들에게는 원정출산이나 병역기피가 너무나 당연한 것이기 때문에,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죠. 그런데 우리는 증거를 갖다 대면서 "너 했잖아. 기억해 봐. 거짓말 하지 마" 라고 말하지요. 이미 소통이 안 됩니다.

결국 모든 것은 경계나 차이를 만날 때만 그 의미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병역기피라든가 원정출산이라든가 성폭력은, 그들 입장에서는 그동안 문제된 적 없이 자연스럽게 누려온 권리예요. 당연하기 때문에, 조심할 리가 없고 문제제기를 받아도 뭘 잘못했는지 모르죠. 정말 기억이 안 나는 거에요. 여태까지 여성에 대한 폭력이나 차별은 많은 경우에 남성들의 일상적인 문화라든가 규범, 심지어 민족문화의 전통이자 권리였습니다. 남성의 성역할이었죠. 그렇게 안 하면 또 뭐라고 하잖아요. "넌 남자가 돼서 그것도 못하냐?"라고.(청중 웃음) 의무, 역할, 권리, 문화, 일상이었는데 갑자기 이게 범죄가 됐잖아요. 어떤 이상한 여자들에 의해서.(청중 웃음)


그것이 전부였을 때, 나 중심일 때는 모르는 거죠. 마치 이 강의실에 앉아 있는 우리 모두가 한국인이라면, 굳이 한국인이라는 걸 강조할 필요가 없죠. 그러다가 그 사이에 이주 노동자가 있거나 다른 이질적인 존재가 있을 때, 그때서야 한국인이라는 범주가 생기기 시작하고 한국인 정체성이 나타나기 시작하죠. 남성문화 속에서 성폭력은 기억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을 설득할 때는, 당신이 기억할 수 없게 하는 사회구조와 권력관계에 대해 설명해야지, 참과 거짓의 대립구도를 들이대면서 여자들의 경험은 참이고 남자들은 거짓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별로 설득력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참과 거짓은 권력관계에 의해서 정해지는 유동적이고 경합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제작한 포스터 중에, '인권은 배려입니다' 라는 글귀가 적힌 것이 있어요.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권은 배려가 아니라 경합하는 가치예요. 각축하고 투쟁하는 가치입니다. 누가 누구를 배려합니까? 흑인이 백인을 배려해야 돼요? 배려라는 말에는 이미 주체와 대상, 주체와 타자라는 구분이 있습니다. 남성이 여성을 배려한다 또는 '보호'한다는 것도 이상한 말이잖아요. 가정폭력을 보세요. 보호라는 것이 가능하지도 않고, 굉장히 문제적인 말이에요. 예를 들어 우리는 한미동맹이라고 하지만, 미국은 한국을 보호한다고 하죠. 한미 상호방위조약이면 한국군도 미국에 주둔해야 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잖아요?   - 중략 -

 

보통 '대중'이나 '현실'을 균질적인 상태로 생각하는데 실제는 그렇지 않죠. 사람들은 현실, 정상, 표준, 평균 등을 동일한 의미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 사람들이 저한테 제일 많이 하는 말이 '말은 옳은데 비현실적'이라는 거에요. 그러면 저는 "왜 현실이 하나라고 생각하지? 그 현실을 누가 규정하는데? 현실은 경합하는 거야. 자본가의 현실이 있고, 민중의 현실이 있어. 지금 당신은 지배 이데올로기를 현실이라고 착각하고 있어" 라고 얘기하죠.(청중 웃음) 

좋은 사례가 있어요. 10여 년 전 추석에 저희 집 마루에서 네 명이 같이 TV를 봤어요. 화면에 뭐가 나왔냐면, 전라도 함평에서 발생한 총기난사사건이 보도되는 거예요. 명절 때 총기난사하는 사람 있잖아요. 저는 이 사건을 가정폭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가정폭력 공부하는 사람이니까. 어머니나 딸이 총을 난사하는 경우는 별로 없잖아요.(청중 웃음) 그래서 이 사건의 본질은 가정폭력이라고 말했어요. 그런데 평화학을 공부하는 제 동생이 이건 군사주의라는 거예요. 왜냐하면 총기가 집집마다 있게 되면, 사람들이 총을 쓰는 걸 쉽게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래요. 제 동생은 군수자본의 음모라고 흥분하는 거예요.(청중 웃음) 한편 제 여동생의 남편은, 이게 전라도 차별이라는 거예요. 만일 경상도에서 이 사건이 터졌다면 보도가 안 됐을 거래요.(청중 웃음) 방송국 높은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다 경상도 사람이라면서... 또 저는 몰랐는데, TV드라마에서 경상도사람은 지식인이나 무슨 사장님으로 나오는데, 전라도 사투리 쓰는 사람은 양아치나 구두닦이로 나온다고 하면서 흥분하는 거예요. 결국 우리 셋이 이 사건의 본질이 뭐냐를 놓고 엄청 싸웠어요.(청중 웃음) 같은 방송을 보고도, 세 사람이 이렇게 다르게 받아 들이잖아요. 대중이란 이처럼 모두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지고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절대 균질하지 않아요.

그런데 세 사람 주장 모두 나름대로는 말이 되는 얘기들이잖아요? 이 중에서 누구의 주장을 모순이니, 본질이니 운운하겠습니까? 그런데 나머지 한 명의 주장이 뭐였나면, 이 사람은 입장이 없어요. "왜 TV 보는데 시끄럽게 떠드느냐"고 난리인 거예요.(청중 폭소) 이 사람은 흔히 말해서 우리 사회에서 꿀릴 게 없어요. 타자성이 없는 거죠. 자기 나름대로 주류ㅋ인 거죠. 이 사람은 "아무 문제 없구먼!” 하는 거예요. "아무 문제가 없는데, 지금 이걸 문제라고 생각하는 니들이 문제야. 현실 불만세력!"이라고 말하는 거예요.(청중 웃음) 그래서 제가 그 사람 보고 그랬죠.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네가 바로 모든 문제의 근원이야."(청중 웃음) 현실과 갈등하지 않거나, 투쟁하지 않거나, 문제를 느끼지 않는 사람들은 지배 이데올로기와 자기를 일치시키기 때문에 의견이 없을 수밖에 없고, 감정적이지 않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감정적'이라는 말과 '정치의식이 있다'는 말을 같은 뜻으로 씁니다. 현실에서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무슨 감정을 느끼겠어요? 저는 쿨한 사람하고는 말을 안 섞어요.(청중 웃음)

제가 생각하는 사회운동은 모든 사람들이 말을 만드는 데 참가하자는 거예요. 사람들이 흔히 여성학이 어렵다고 하잖아요. 사실 어려워요. 현학적이어서가 아니라 기존의 사고방식하고 달라서 어렵습니다. 무슨 말이냐면, 저는 강의할 때 "가정폭력으로 가정이 깨져서 문제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기보다는, 웬만한 폭력으로도 가정이 안 깨지는 게 더 문제 아닌가요?(청중 웃음) 여성주의자의 말은 익숙하지 않은 말하기 방식이자, 사고방식이기 때문에 금방 이해되지는 않더라도 과정을 통해 통념을 바꿔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배세력의 생각이 상식이나 통념, 문화, 전통의 이름으로 합리화되고 있쟎아요? 그래서 문제를 제기하면 사회는 그들을 '반사회적'이라고 비난합니다.   - 중략 -

루스 이리가레이라는 프랑스의 철학자가 있는데, "도대체 '남성적'이라는 말이 무엇입니까?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습니다" 라는 질문을 받고, "당연히 모르겠죠. 세상에 그것밖에 없는데 어떻게 그 의미를 알겠어요?"라고 재치있게 답변했습니다. 모든 것이 남성 중심일 때, 우리는 그것을 파악할 수 없습니다. 다른 차이가 있을 때 그 말이 정의되기 시작합니다. 남성성은 여성성을 비하하지 않고는 정의될 수 없고, 서구는 '비서구'를 식민화할 때만 성립하는 범주입니다. 따라서 성폭력하지 않았다는 사람에게 했다고 설득하거나 강요하기보다는, 성별 권력관계에서 네 행동이 왜 성폭력이라는 의미를 갖는지 혹은 갖지 않는지를 소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청중 박수)   - 중략 -

뭐, 남성들도 가부장제 부분에서만 '강자'이지, 그들도 나이나 계급, 지역에서는 많은 차별을 받습니다. 왜 남성들은 자기 내부의 타자성을 바라보지 못할까요? 남성들이 왜 계급투쟁에 실패합니까? '군 가산제'가 대표적인 거잖아요. 지금 우리 사회에 세가지 계급이 있습니다. 군대를 안 가는 사람, 가는 사람, 못 가는 사람, 그러면 가는 사람은 자기를 군대에 보낸 '안 가는' 사람하고 투쟁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런데 '못 가는' 여성과 장애인한테 군 가산제 하자고 얘기합니다.

저는 성차별이 있는 한, 모든 사회운동은 불완전하고 실패한다고 봅니다. 경상도 노동자가 왜 보수정당에 투표하나요? 어떤 부분에서는 전라도라는 타자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거죠. 미국의 노동운동이 왜 유럽보다 잘 안 됩니까? 흑인이라는 타자가 있기 때문에 백인노동자가 계급의식을 갖기 힘든 거죠. 자기보다 낮은 이들이 있기 때문에요. 계급이 낮은 남성들이, 여성이라는 타자가 있는 한은, 지배계급 남성하고 싸울 이유가 없습니다. 자신을 억압하는 세력에게 저항하기보다 자기보다 낮은 사람을 차별하는 것이 가부장제입니다. 약자에게 강하고 강자에게 약한 거죠. 완벽한 진골이나 완벽한 타자성을 가진 사람은 없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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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지난 몇년간 '백인 온건주의자'들에게 대단히 실망했다는 점을 밝힐 수 밖에 없습니다. 저는 다음과 같은 안타까운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흑인들의 자유를 향한 길에 가장 걸림돌이 되는 것은, 백인 의원이나 KKK 단원이 아니라, 정의보다는 질서를 중시하고, 정의가 실현된 적극적 평화보다는 그저 겉보기에 긴장이 표출되지 않는 소극적 평화를 선호하며, "난 당신들이 추구하는 목표는 찬성하지만 당신들의 직접 행동방식에는 찬성하지 않아"라며, 타인의 자유를 이루기 위한 일정표를 자신이 직접 짤 수 있다고 오만하게 믿으며, 시간에 대한 허구적인 신화를 신봉해서 흑인에게 '좀 더 괜찮은 때'가 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우리에게 끊임없이 충고하는 '백인 온건주의자'들이라는 결론입니다. 선한 의지를 가진 사람들의 얄팍한 이해는, 악한 의지를 지닌 사람들의 완전한 무지보다 더 절망적입니다. 어중간한 용납은 명백한 거부보다 더 우리를 당황스럽게 합니다."    - 마틴 루터 킹(1929~1968) 

 

 

 

읽지않는 책을 버리려고 뒤적거리다 보면 결국 못버리게 된다. 기필코 버리겠다고 표지를 절반쯤 찢어서 들고나간 적도 있었는데 결국 다시 책꽂이에 꽂았다. 꽂아놓고 읽지도 않을 거면서.ㅉㅉ 이 책도 10여년간 펴보지도 않았다. 오늘 들춰보다가 휴대폰중독이란 말이 나와서 웃었다. 폴더폰 시절에 폰중독이 있었다고?

 

 

posted by moon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