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화양연화]를 봤다. 영화가 종반부에서 느닷없이 끝나버려서 당황했다. 뭔가 이야기가 남아있을 것 같은 지점에서 갑자기 붉은색 엔딩 화면! '이렇게 그냥 끝이구나'하고 깨닫는 순간, 가슴이 먹먹해왔다.
1962년 홍콩의 아파트(집구조가 특이하다. 한 출입구 안에 다가구가 함께 사는 구조)에 두 부부가 동시에 이사온다. 각기 바쁜 배우자를 두고 있는 첸과 차우는 그렇게 만난다. 첸은 무역회사의 비서로 일하고, 차우는 신문사에서 일한다. 출입문과 골목길과 집주인의 거실에서 그들은 끝없이 마주친다. 낯선 사람과 공유하기엔 너무 좁은 공간에서 서로 끝없이 비껴지나가야 하는 생활은 외로운 남녀에게는 어색한 공기를 만들어 낸다. 서로를 의식하면서도 짐짓 무심함을 가장하는 그 불편함. 아는 사람은 안다.
곧 그들의 배우자끼리 바람이 난다. 그 충격을 공유하며 첸과 차우는 친구가 된다. 둘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믿었던 남편, 믿었던 아내에게 배신 당하고 상처받았다는 사실 외에, 둘 다 보수적이고(좋은 쪽으로) 말이 없는 성격이 닮았다. 그들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어떤가. 출장을 빙자하여 애인과 여행을 떠나는 그들의 배우자들, 지긋한 나이임에도 내연녀를 두고 있는 첸의 상사, 유부녀와의 사랑을 꿈꾸고 거리낌없이 홍등가에서 여자를 사는 차우의 직장동료, 밤낮 없이 마작과 술로 세월을 보내면서 첸에게 도덕 훈계를 하는 집주인여자.... 아마 그 사람들은 '사회적 규율을 중시하되, 자신은 지키지 않는' 평범한(!) 사람들을 대변하는지도 모른다.
이 점잖은 남녀는 함께 식사를 하고, 고민을 나누고, 관심사를 공유하며 정들어간다. 그러나 사랑이 깊어지면 똑같은 불륜이 되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과 다르다'고 다짐하며 거리감을 유지한다. 그러면서도 그 어떤 연애보다 농도 짙은 교감을 나눈다. 어쩔 수 없이 한 방에서 밤을 지새게 되었을 때, 나는 영화에서 보통 그러듯이 열정적인 키스 정도는 나눌 거라고 짐작했지만 그들은 그러지 않았다. 밀폐된 공간에 단 둘이 있어도 그들은 끝없이 밖을 의식한다. 좀더 솔직해 질 수 있었던 많은 기회를 스스로 다 포기한다. '저러다 선을 넘고 말겠지'하며 상투적인 진행을 예상하던 나는 뒤통수를 맞았다. 그들은 끝까지 플라토닉한 태도로 일관하는 것처럼 보인다. 누구를 위한 절제인가.
결국 남자는 떠난다. "우리도 그들과 다르지 않다. 처음엔 다르다고 생각했지만 이제 똑같다는 걸 안다. 당신이 남편과 함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미칠듯이 괴로운 지경이니 더는 이 관계를 유지할 수 없다. 당신을 위해서라도 내가 떠나는 게 좋다." 여자는 눈물을 보이면서도 잡지는 않는다.
더 사랑하는 사람이 약자라고 했던가. 여자가 한 걸음만 더 허락했어도 달려가 끌어안았을 차우는 첸이 자신과 함께 했던 긴(!) 밤에 신었던 슬리퍼를 간직한다. 그를 잊을 수 없어 싱가폴까지 찾아간 첸은 그 마지막 기회를 또다시 포기한다. 그리고 슬리퍼를 수거(!)해 간다. 깨끗하게 포기하기 위해서였을까, 아니면 깨끗하게 잊혀지고 싶어서였을까. 여자과 함께하기를 갈망했던 남자는 앙코르와트의 어느 돌기둥에 비밀스런 사랑의 기억을 묻고 돌아선다.
영화는 인적없는 앙코르와트 유적을 섬세하게 훑고 지나가며 끝난다. 아무런 대사도 없이 지나칠 정도로 오래(3분30초) 보여주기 때문에 자세히 보지 않을 수 없고, 사색하지 않을 수 없다. 정말 아름답게 촬영했다. 돌기둥들은 그리스신전처럼 우아하고, 통로와 창을 통해 들어온 빛이 스며든 내부도 비현실적으로 아름답다. 언젠가 나도 가서 직접 보고 싶다. 참으로 아름답게 지어졌으나 수백년의 세월 앞에 무너지고 빛바래, 찬란했던 과거를 짐작하기 어려운 그 석조건물처럼 두사람만이 기억하는 찬란했던 시절(花樣年華:화양연화)은 세월 속으로 사라져 간다.
우리 모두가 그렇게 살아간다. 우리의 뇌 속 가득한 빛나는 기억들 역시 세월 앞에 산화해 버리지 않나. 말하지 않고 기록하지 않는 기억은 애초에 없었던 것이나 다름없는지도 모른다. 나름 길게 느껴지지만,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바람처럼 사라져 버릴 한 사람의 생애가 '사회적 규율'에 갇혀 억압되는 것을 보고 있자니 숨이 막혀왔다. 여주인공이 처음부터 끝까지 입고 나왔던 치파오는 확실히 상징적이다. 턱 밑에까지 빳빳하게 올라온 옷깃이 값비싼 족쇄같았다. 마치 그들이 끝까지 놓지 못하는 '체면치레'처럼.
나이가 들어갈수록 도덕이니 윤리니 전통이니 하는 것들이 우스워진다. 첸과 차우는 영화였기 때문에 아름다웠는지 모른다. 유치환과 이영도의 오랜 사랑을 아름답다고 여겼던 시절이 있었지만 사실 전혀 아름답지 않다. 모두 다 불행한 사람들이다. 그런 것을 고려하여 영화의 시대배경이 60년대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아무리 아름답게 그려냈어도 아름다운 스토리는 아닌 것 같다. 사회적 규율? 사생활을 재단하는 윤리는 다 쓸 데 없다. 그냥 한사람 한사람이 독립된 공화국이면 좋겠다. 영화에 몰입되었던 만큼 상념이 깊어진다.
<2009/07/10에 쓰고 2018/3/22에 옮겨 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