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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 human doing but human being - P'ta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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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3. 22. 19:25 영화

 

드디어 [화양연화]를 봤다. 영화가 종반부에서 느닷없이 끝나버려서 당황했다. 뭔가 이야기가 남아있을 것 같은 지점에서 갑자기 붉은색 엔딩 화면! '이렇게 그냥 끝이구나'하고 깨닫는 순간, 가슴이 먹먹해왔다. 

1962년 홍콩의 아파트(집구조가 특이하다. 한 출입구 안에 다가구가 함께 사는 구조)에 두 부부가 동시에 이사온다. 각기 바쁜 배우자를 두고 있는 첸과 차우는 그렇게 만난다. 첸은 무역회사의 비서로 일하고, 차우는 신문사에서 일한다. 출입문과 골목길과 집주인의 거실에서 그들은 끝없이 마주친다. 낯선 사람과 공유하기엔 너무 좁은 공간에서 서로 끝없이 비껴지나가야 하는 생활은 외로운 남녀에게는 어색한 공기를 만들어 낸다. 서로를 의식하면서도 짐짓 무심함을 가장하는 그 불편함. 아는 사람은 안다.

곧 그들의 배우자끼리 바람이 난다. 그 충격을 공유하며 첸과 차우는 친구가 된다. 둘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믿었던 남편, 믿었던 아내에게 배신 당하고 상처받았다는 사실 외에, 둘 다 보수적이고(좋은 쪽으로) 말이 없는 성격이 닮았다. 그들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어떤가. 출장을 빙자하여 애인과 여행을 떠나는 그들의 배우자들, 지긋한 나이임에도 내연녀를 두고 있는 첸의 상사, 유부녀와의 사랑을 꿈꾸고 거리낌없이 홍등가에서 여자를 사는 차우의 직장동료, 밤낮 없이 마작과 술로 세월을 보내면서 첸에게 도덕 훈계를 하는 집주인여자.... 아마 그 사람들은 '사회적 규율을 중시하되, 자신은 지키지 않는' 평범한(!) 사람들을 대변하는지도 모른다. 

이 점잖은 남녀는 함께 식사를 하고, 고민을 나누고, 관심사를 공유하며 정들어간다. 그러나 사랑이 깊어지면 똑같은 불륜이 되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과 다르다'고 다짐하며 거리감을 유지한다. 그러면서도 그 어떤 연애보다 농도 짙은 교감을 나눈다. 어쩔 수 없이 한 방에서 밤을 지새게 되었을 때, 나는 영화에서 보통 그러듯이 열정적인 키스 정도는 나눌 거라고 짐작했지만 그들은 그러지 않았다. 밀폐된 공간에 단 둘이 있어도 그들은 끝없이 밖을 의식한다. 좀더 솔직해 질 수 있었던 많은 기회를 스스로 다 포기한다. '저러다 선을 넘고 말겠지'하며 상투적인 진행을 예상하던 나는 뒤통수를 맞았다. 그들은 끝까지 플라토닉한 태도로 일관하는 것처럼 보인다. 누구를 위한 절제인가.

결국 남자는 떠난다. "우리도 그들과 다르지 않다. 처음엔 다르다고 생각했지만 이제 똑같다는 걸 안다. 당신이 남편과 함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미칠듯이 괴로운 지경이니 더는 이 관계를 유지할 수 없다. 당신을 위해서라도 내가 떠나는 게 좋다." 여자는 눈물을 보이면서도 잡지는 않는다.

더 사랑하는 사람이 약자라고 했던가. 여자가 한 걸음만 더 허락했어도 달려가 끌어안았을 차우는 첸이 자신과 함께 했던 긴(!) 밤에 신었던 슬리퍼를 간직한다. 그를 잊을 수 없어 싱가폴까지 찾아간 첸은 그 마지막 기회를 또다시 포기한다. 그리고 슬리퍼를 수거(!)해 간다. 깨끗하게 포기하기 위해서였을까, 아니면 깨끗하게 잊혀지고 싶어서였을까. 여자과 함께하기를 갈망했던 남자는 앙코르와트의 어느 돌기둥에 비밀스런 사랑의 기억을 묻고 돌아선다. 

영화는 인적없는 앙코르와트 유적을 섬세하게 훑고 지나가며 끝난다. 아무런 대사도 없이 지나칠 정도로 오래(3분30초) 보여주기 때문에 자세히 보지 않을 수 없고, 사색하지 않을 수 없다. 정말 아름답게 촬영했다. 돌기둥들은 그리스신전처럼 우아하고, 통로와 창을 통해 들어온 빛이 스며든 내부도 비현실적으로 아름답다. 언젠가 나도 가서 직접 보고 싶다. 참으로 아름답게 지어졌으나 수백년의 세월 앞에 무너지고 빛바래, 찬란했던 과거를 짐작하기 어려운 그 석조건물처럼 두사람만이 기억하는 찬란했던 시절(花樣年華:화양연화)은 세월 속으로 사라져 간다. 

우리 모두가 그렇게 살아간다. 우리의 뇌 속 가득한 빛나는 기억들 역시 세월 앞에 산화해 버리지 않나. 말하지 않고 기록하지 않는 기억은 애초에 없었던 것이나 다름없는지도 모른다. 나름 길게 느껴지지만,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바람처럼 사라져 버릴 한 사람의 생애가 '사회적 규율'에 갇혀 억압되는 것을 보고 있자니 숨이 막혀왔다. 여주인공이 처음부터 끝까지 입고 나왔던 치파오는 확실히 상징적이다. 턱 밑에까지 빳빳하게 올라온 옷깃이 값비싼 족쇄같았다. 마치 그들이 끝까지 놓지 못하는 '체면치레'처럼.


나이가 들어갈수록 도덕이니 윤리니 전통이니 하는 것들이 우스워진다. 첸과 차우는 영화였기 때문에 아름다웠는지 모른다. 유치환과 이영도의 오랜 사랑을 아름답다고 여겼던 시절이 있었지만 사실 전혀 아름답지 않다. 모두 다 불행한 사람들이다. 그런 것을 고려하여 영화의 시대배경이 60년대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아무리 아름답게 그려냈어도 아름다운 스토리는 아닌 것 같다. 사회적 규율? 사생활을 재단하는 윤리는 다 쓸 데 없다. 그냥 한사람 한사람이 독립된 공화국이면 좋겠다. 영화에 몰입되었던 만큼 상념이 깊어진다. 

 

 

<2009/07/10에 쓰고 2018/3/22에 옮겨 옴>

posted by mooncle
2018. 3. 22. 18:21 낙서장

 



나는 詩를 정말 좋아한다. 학창시절에 시에 빠져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유행가의 노랫말도 시처럼 느껴지던 때, 좋은 시를 발견하면 예쁜(!) 글씨체로 연습장에 적고, 편지지에 적곤 했었다. 스무살이 넘어서도 서점에 가면 몇 줄의 싯귀라도 건져볼 요량으로 시집코너를 헤매곤 했다. 외우고 다니던 시도 많았다. 스물한살 때였나, 밤에 도종환의 '인차리' 연작시를 읽다가 울었던 적도 있다. 


이십대 후반쯤이 되었을 때, 온갖 '개폼'잡는 인텔리들의 '뜬구름'잡는 이야기에 서서히 염증이 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실제로 두어명의 시인을 직접 보게 되었는데 적어도 내 시각으로는 평균 이상의 속물이었다. 지금은 시인이란 웃긴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아니, 예술가를 자처하는 사람의 90%가 웃긴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에게 개인적인 유감은 없으나 속지 않기 위해서 경계한다. 재작년엔가. 매스컴을 시끄럽게 했던 학력위조자들의 대부분이 이른바 '예술계' 인물들이었다. 동화 '벌거벗은 임금님'에서 쇼를 벌였던 이들도 의상디자이너였지.

더이상 시집은 사지 않는다. 지금도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이 삼경인 제....."하는 시조가 참 아름답다고 생각하고, 때때로 유행가 작사가들의 감성에 감탄하지만 이제 시집은 필요하지 않다.

그런데, 며칠 전에 인터넷을 돌아다니다가 아주 우연히 어떤 시를 읽었다. '번역된 시는 향기없는 꽃'이라는 말도 있지만, 조미료를 쓰지 않은 음식과도 같이 간결한 일상언어로 쓰여진 시는 번역을 해도 별 손실이 없는 것 같다. 시를 읽으며 가슴이 찡해지는 경험, 참 오랫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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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

- 베르톨트 브레히트


나도 알고 있다. 
행복한 사람만이 인기가 있다. 
그런 사람의 말소리를 사람들은 즐겨 듣는다. 
그런 사람의 얼굴은 아름답다.

마당의 뒤틀린 나무는
토양이 좋지 않음을 말해준다. 그러나
지나가는 사람들은 그 나무가 불구라고 욕한다.
하지만 그것은 옳다.

준트 해협의 푸른 보트와 즐거운 요트를
나는 보지 않는다. 
내가 보는 것은 어부들의 찢어진 그물 뿐이다.

왜 나는 
마흔 살의 소작인 여자가 허리를 구부리고 걷는 것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가?
소녀들의 가슴은 예전처럼 뜨거운데.

내 시에 각운을 쓴다면
그것은 내게 거의 오만처럼 보일 것이다.

내 안에선 꽃피는 사과나무에 대한 열광과
칠장이의 연설에 대한 경악이 서로 싸우고 있다.
그러나 나에게 펜을 잡게 하는 것은

두 번째 것 뿐이다.





<2009/05/04에 쓰고 2018/3/22에 옮겨 옴>

posted by mooncle
2008. 9. 18. 16:36 낙서장

 

오늘 아침, 여느 때처럼 까까할아버지는 주혁이를 태운 유모차와 함께 후문에서 기다리시고, 나는 가원이 머리를 빗겨주고서 함께 후문으로 갔다. 할아버지는 4층에서 내려다보며 소리치는 '상국이 아저씨'와 이야기하시고, 나는 주혁이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우리를 물끄러미 쳐다보시던 한 노신사(!)가 말을 걸어왔다. 

"나도 손자, 손녀를 이렇게 손을 잡고, 유치원, 학교에 데려다 줬었다구. 그 녀석들 중학교 다닐 때에도 비오면 비맞을까봐 우산들고 학교에도 많이 갔는데 크니까 하나도 소용이 없어.... 지금 그 애들이 대학생인데 나를 언제 봤더냐 하더라구. 서운해. 가끔 찾아오고 그러면 좋은데....."


괜히 내가 미안한 느낌이 들어서, "아마 그 애들도 어색해서 그러는 걸 거에요." 하면서 웃었다.
연세를 여쭈어보니 87세라고 하셨다. 누가 보더라도 체격과 얼굴빛이 좋아서 그렇게까지 많게 보이지는 않았다. 지팡이는 들고 계셨지만 허리도 곧으시고, 어조도 차분해서 전형적인 '노신사'라고 생각되었다.

내가 이야기를 경청하자, 다른 이야기도 꺼내신다.
"집사람이 15년이나 앓았어요. 자식들이 요양원 같은 데로 보내자고 하더라구. 그런데 나는 그런 거 싫어하거던. 그런 데는 가족없는 사람들이나 가는 거지. 그래서 내가 15년동안 돌봐주다가 먼저 보냈어...... 엊그제 여기 가슴을 부딪혀서 지금 며칠째 침을 맞으러 다니고 있는데...."
가원이가 어린이집으로 출발하려고 할 때, 그 분도 서둘러 갈 길을 가셨다. 뒷모습을 보면서, 할 수만 있다면 그 분의 말동무가 되고 싶어졌다.

가원이와 할아버지를 배웅하고서 유모차로 동네를 한바퀴 돌았다. 아기를 업고 얼러주는 할머니도 보이고, 나란히 걸으며 운동하는 노부부도 보였다. 나는 가끔 걱정없이 나날을 보내는 것처럼 보이는 할머니들이 부럽기도 했었다. 건강만 잘 관리한다면 '가외의 인생' 아닌가. 그렇지만 어느 곳에 있어도 고립감을 느낄 것 같다.

언젠가는 나도 늙고, 부부 중 한사람은 먼저 떠나게 되겠지. 70세가 되고, 80세가 되고, 90세가 되고..... 자녀들과 시간을 함께 보내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그들의 부모가 그랬듯이, 언제나 자신의 인생에 열중해 있을 것이다. 노년을 표현하는 가장 적절한 단어는 '외로움'인 것 같다.

posted by moon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