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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3. 22. 21:32 일기

 

 

두밤 자고 나면 이사간다. 이사가서 짐정리하면서 버려질 물건들을 미리 솎아내면서 며칠을 보냈다. 오늘은 책꽂이를 정리했다. 책 몇 권과 영화포스터, 받은 편지, 엽서, 카드들을 버렸다. 그 중에 일기장이 한 권 있었다. 선X언니가 석달동안 써서, 90년 가을에 생일선물로 준 일기장. 자신의 생활과 나와 주고받은 대화, 통화, 마음... 그런 내용이 가득한, 연필로 쓴 일기.
 
조금 전 다 읽었다. '아주 연애를 했구나' 싶다. 남자친구가 없는, 감성적이고 어리숙한 두 여자가 연애하듯이 지내던 이야기들이 적혀있다. 많은 내용이 가물가물하지만 그 시절의 나를 기억할 수는 있다. 중학교 시절부터, 친구들로부터 받은 편지들을, 몇권의 연습장에 일일히 풀로 붙여놓았던 나, 나뭇잎만한 쪽지까지도 차곡차곡 정리해 두었던 나. 그 이유는 나만이 안다. 나만이 안다. '추워서' 그랬다. 애정결핍이어서, 인정욕구에 목이 말라서 그랬다.
 
불안과 자기비하에 휩싸인, 따뜻한 인간관계(남녀관계가 아니라)를 갈구하던 스무살의 '나'를 기억한다. 얼핏 돌아보면 유치하고, 깊이 생각하면 눈물이 나온다. 마치 천천히 산을 오르다가 어느 언덕에서 뒤돌아보면 아래 경치가 아득한 것과 같이, 타인을 보듯이 나를 되돌아본다. 나는 시시했다. 제1의 소원이라는 게, 월급이 밀리지 않는 곳에서 짤리지 않고 일하는 것이었던 나, 돈을 좀 모아야 사람대접을 받을 것이라고 믿어서 14K 반지 하나를 못사던 나, 따뜻한 방에서 겨울을 나는 것과 '나를 이해해 줄 한사람'을 찾는 것이 두번째 소원쯤 되던 나. 아침은 굶고 점심은 컵라면 저녁은 떡볶이....로 때우던 날들. 매일 점심에 500원짜리 '새우탕'을 제공하는 회사에 다닐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길에서 쓰러지기를 몇차례, 의사는 영양실조라고 말했지만 나를 동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조차도 스스로를 동정하지 않았다. 그럴 겨를이 없었다. 
 
그러면서도 남들에게 참 잘해줬다. 선X언니, 임X라, 이X정, 용산할머니, 나중엔 시어머니.... 지금 생각하면 간쓸개없는 사람처럼 잘해줬다. 내 앞가림도 벅찬 마당에 왜 그랬는지 참 답답하다. 그러다보면 어느덧 나에게 의지하는 그들을 보게 된다. 대부분 '정서적'으로 의지했다. 나는 '경제적'으로도 성심껏 했다. 그래서 물심 양면 모두 채무는 느끼지 않는다. 어리석었지만 '빚'은 없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이제, 그 시절의 나에게 말할 수 있다. 수고했다. 일면 헛된 수고였지만 적어도 나 자신의 '성장'이라는 기준에서 보면 가치있는 날들이었다. 오직 지금의 나만이, 그 시절의 나를 이해해 줄 수 있는 한사람이다.... 그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옆을 보니, 아, 깜짝이야~ 무진이가 곱게 자고 있다. 순간적으로 시공을 도약하는 느낌....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20여년간 모아온 편지, 엽서 등과 함께 그 일기장을 재활용 폐지수거함에 버렸다. 별로 아쉽지 않다. 나는 춥지 않다.
 
이틀 후면 인생 제5막에 들어선다. 송탄으로 간다. 아는 사람도 없고, 낯익은 길도 없는 곳.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 간다. 새로 맺게될 미지의 인간관계에 기대를 품는다. 왠지 앞으로는 '나에게 잘해주는' 이들을 만날 것만 같다. 이 근거없는 낙관~

 

 

 

 

 

<2010/12/01에 쓰고 2018/03/22에 옮겨 옴>

posted by mooncle
2018. 3. 22. 21:28 낙서장

낭만이란 무엇일까. 사춘기소녀의 꿈이다. 적어도 지금의 나에겐 그렇다. 외로운 마음이 갈구하는 '약'같은 거라고 생각한다. 하이틴로맨스를 읽는 소녀나, 바람나서 가정을 버리는 여자나 근본적으로는 같은 것 같다. 그들은 꿈을 쫓는 소녀들이다. 낭만의 수요자는 아마도 소수의 남자와 다수의 여자일 것이다.

나는 태생적인 낭만추종자였다. 시집을 사 모으고, 순정만화를 읽고, 사랑스런 만화장면을 스크랩하고, 따라그려보기도 하고, 유치환.이영도의 서신집을 밑줄을 그으며 읽고, 이외수의 '감성사전' 따위를 읽고 메모하고, 거의 모든 러브스토리에 빠져들고, 연애소설로 밤을 지새고.... 그 신기루를 쫓으며 사춘기와 20대초반을 보냈던 것 같다. 
 
지금의 나는 낭만이 무엇인지도 가물가물하고, 그다지 아쉽지도 않은 사람이 되어버렸다. 짝을 찾아 헤매이는 시절에서 멀어졌으니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희미하게 남아있던 낭만에의 동경은 최근 완전히 사라졌다. 태생적 낭만추종자에게 결혼 10주년이 준 선물같기도 하다.^^
 
이른바 로맨틱가이로 분류되는 이들에게 확~깼기 때문이다. 대체로 애정표현에 능숙하거나, 보란듯이 다정함을 과시하는 남자들은 거짓말에도 능숙하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내 하희라에 대한 지극한 사랑과 남다른 애정표현(이벤트)으로 유명한 최수종. 알고보니 학력위조범!이었다. 어쩌다가 뽀록이 나자, 자기 입으로 외대 졸업했다고 말한 적은 없다나. 웬걸, 자기 이름으로 출판한 몇 권의 책에 상세하고도 리얼하게 캠퍼스생활을 묘사해 뒀고, 외대 후배(!)들을 상대로 초청강연도 했었다고 한다.
 
최근에 알게 된 두 유명인의 과거. 전국민이 다 알도록 '옥경이' 사랑을 부르짖는 애처가인 태진아. 간통범으로 경찰에 붙들렸던 과거가 있었다. 어머니뻘되는 부잣집 마나님에게 고액의 용돈을 받아가며 호텔밀회행각을 벌였었단다. 또 한 사람은 이외수. 지극한 아내 사랑을 저서와 방송을 통해 알려온 '사랑' 전문가. 20여년 전에 마약범으로 경찰서에 다녀오셨는데 당시 신문기사에 따르면 '다량의 대마초를 소지하고, 문학지망 소녀들과 여관을 전전'했다고 한다. 죄의 경중은 잘 모르겠으나 '정직'과는 거리가 있어보인다.
 
'무릎팍도사'에 출연하여 '혜정이'에 대한 애정을 자랑하고 '저는 어릴 때부터 아빠가 되고 싶었어요.' 라며 전국 처자들의 마음을 흔들었던 타블로 이선웅의 사기행각은 거의 영화 수준이다. 그 타블로를 위하는 척, '타진요(타블로에게 진실을 요구합니다)' 회원들을 '똥덩이'라고 매도한 가수 알렉스는, 그 직후에 자신의 프로필에서 '에버딘대학 신학과 졸업'을 완전히 빼버렸다. 이 남자 역시, mbc '우리결혼했어요'를 통해서 뭇여성들의 '로망'이 되었다. 김동률의 '아이처럼'을 신애에게 불러줄 때는 나도 혹했었다.
 
마지막으로 생각나는 로맨틱가이는.... 예전에 같은 사무실에서 일했던 언니의 남자친구. 매일같이 손수 만든 도시락을 갖다주었고, 기념일에는 직접 쓴 시로 액자를 만들어 선물했던 남자, 비가 오면 우산을 들고 회사 앞으로 마중을 나와서, 장거리연애 중이던 나를 서글프게 했던 그 분은.... 사업자금이 필요하다고 애인의 적금을 몇차례나 가져가서 결코 갚는 일이 없었다. 약속을 하고 지키지 않는 것이 생활이었고, 결혼한 후에는 아내의 모든 수입을 탕진했다.

낭만은 무슨...



<2010/09/29에 쓰고 2018/03/22에 옮겨 옴>

posted by mooncle
2018. 3. 22. 20:14 퍼온 글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 둔다. 

G세대로 '빛나거나' 88만원 세대로 '빚내거나', 

그 양극화의 틈새에서 불안한 줄타기를 하는 20대. 

그저 무언가 잘못된 것 같지만 어쩔 수 없다는 불안과 

좌절감에 앞만 보고 달려야 하는 20대. 

그 20대의 한 가운데에서 

다른 길은 이것밖에 없다는 마지막 남은 믿음으로. 

 

이제 나의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이것은 나의 이야기이지만 나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나는 25년 동안 경주마처럼 길고 긴 트랙을 질주해왔다. 

우수한 경주마로, 함께 트랙을 질주하는 

무수한 친구들을 제치고 넘어뜨린 것을 기뻐하면서. 

나를 앞질러 달려가는 친구들 때문에 불안해하면서. 

그렇게 소위 '명문대 입학'이라는 첫 관문을 통과했다. 

그런데 이상하다. 더 거세게 나를 채찍질해봐도 

다리 힘이 빠지고 심장이 뛰지 않는다. 

 

지금 나는 멈춰 서서 이 경주 트랙을 바라보고 있다. 

저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취업'이라는 두 번째 관문을 통과시켜 줄 자격증 꾸러미가 보인다. 

너의 자격증 앞에 나의 자격증이 우월하고 

또 다른 너의 자격증 앞에 나의 자격증이 무력하고, 

그리하여 새로운 자격증을 향한 경쟁 질주가 다시 시작될 것이다. 

이제서야 나는 알아차렸다. 

내가 달리고 있는 곳이 끝이 없는 트랙임을. 

앞서 간다 해도 영원히 초원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트랙임을. 

 

이제 나의 적들의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이 또한 나의 적이지만 나만의 적은 아닐 것이다. 

이름만 남은 '자격증 장사 브로커'가 된 대학, 

그것이 이 시대 대학의 진실임을 마주하고 있다. 

대학은 글로벌 자본과 대기업에 가장 효율적으로 

'부품'을 공급하는 하청업체가 되어 내 이마에 바코드를 새긴다. 

 

국가는 다시 대학의 하청업체가 되어, 

의무교육이라는 이름으로 12년간 규격화된 인간제품을 만들어 올려 보낸다. 

기업은 더 비싼 가격표를 가진 자만이 피라미드 위쪽에 접근할 수 있도록 

온갖 새로운 자격증을 요구한다. 

이 변화 빠른 시대에 10년을 채 써먹을 수 없어 

낡아 버려지는 우리들은 또 대학원에, 유학에, 전문과정에 돌입한다. 

고비용 저수익의 악순환은 영영 끝나지 않는다. 

'세계를 무대로 너의 능력만큼 자유하리라'는 

세계화, 민주화, 개인화의 넘치는 자유의 시대는 곧 자격증의 시대가 되어버렸다. 

졸업장도 없는 인생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자격증도 없는 인생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학습된 두려움과 불안은 다시 우리를 그 앞에 무릎 꿇린다. 

 

생각할 틈도, 돌아볼 틈도 주지 않겠다는 듯이 또 다른 거짓 희망이 날아든다. 

교육이 문제다, 대학이 문제다라고 말하는 생각 있는 이들조차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성공해서 세상을 바꾸는 '룰러'가 되어라”,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해. 나는 너를 응원한다”, 

“너희의 권리를 주장해. 짱돌이라도 들고 나서!” 

그리고 칼날처럼 덧붙여지는 한 줄, “그래도 대학은 나와야지”. 

그 결과가 무엇인지는 모두가 알고 있으면서도. 

 

큰 배움도 큰 물음도 없는 '대학大學'없는 대학에서, 

나는 누구인지, 왜 사는지, 무엇이 진리인지 물을 수 없었다. 

우정도 낭만도 사제간의 믿음도 찾을 수 없었다. 

가장 순수한 시절 불의에 대한 저항도 꿈꿀 수 없었다. 

아니, 이런 건 잊은 지 오래여도 좋다. 

그런데 이 모두를 포기하고 바쳐 돌아온 결과는 정말 무엇이었는가. 

우리들 20대는 끝없는 투자 대비 수익이 나오지 않는 

'적자세대'가 되어 부모 앞에 죄송하다. 

 

젊은 놈이 제 손으로 자기 밥을 벌지 못해 무력하다. 

스무 살이 되어서도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모르고 꿈을 찾는 게 꿈이어서 억울하다. 

이대로 언제까지 쫓아가야 하는지 불안하기만 우리 젊음이 서글프다. 

 

나는 대학과 기업과 국가, 그리고 대학에서 답을 찾으라는 그들의 큰 탓을 묻는다. 

깊은 분노로. 그러나 동시에 그들의 유지자가 되었던 내 작은 탓을 묻는다. 

깊은 슬픔으로. '공부만 잘하면' 모든 것을 용서받고, 

경쟁에서 이기는 능력만을 키우며 나를 값비싼 상품으로 가공해온 

내가 체제를 떠받치고 있었음을 고백할 수 밖에 없다. 

이 시대에 가장 위악한 것 중에 하나가 졸업장 인생인 나, 나 자신임을 고백할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더 많이 쌓기만 하다가 내 삶이 한번 다 꽃피지도 못하고 시들어 버리기 전에. 

쓸모 있는 상품으로 '간택'되지 않고 쓸모 없는 인간의 길을 '선택'하기 위해. 

이제 나에게는 이것들을 가질 자유보다는 이것들로부터의 자유가 더 필요하다. 

자유의 대가로 나는 길을 잃을 것이고 도전에 부딪힐 것이고 상처 받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이 삶이기에, 삶의 목적인 삶 그 자체를 지금 바로 살기 위해 

나는 탈주하고 저항하련다. 

생각한 대로 말하고, 말한 대로 행동하고, 행동한 대로 살아내겠다는 용기를 내련다. 

 

학비 마련을 위해 고된 노동을 하고 계신 부모님이 눈 앞을 가린다. 

'죄송합니다, 이 때를 잃어버리면 평생 나를 찾지 못하고 살 것만 같습니다.' 

많은 말들을 눈물로 삼키며 봄이 오는 하늘을 향해 깊고 크게 숨을 쉰다. 

 

이제 대학과 자본의 이 거대한 탑에서 내 몫의 돌멩이 하나가 빠진다. 

탑은 끄덕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작지만 균열은 시작되었다. 

동시에 대학을 버리고 진정한 大學生의 첫발을 내딛는 한 인간이 태어난다. 

이제 내가 거부한 것들과의 다음 싸움을 앞에 두고 나는 말한다. 

그래, “누가 더 강한지는 두고 볼 일이다”. 

 

 

2010년 3월 10일 김예슬

고려대학교 경영학과를 자퇴하며  (2010. 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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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학생의 소식을 접하고, 그 대자보를 읽었을 때..... 벌거벗은 임금님에게 '임금님은 벌거벗었다!'고 외치는 소년을 본 것 같았다. 넷상에서의 반응은 대체로 '용기는 가상하나 앞날은 어두울 것'이라는 비관론이었지만.... 나는 안다. 어렴풋하지만 안다. 머리가 깨어지도록 생각하고 생각한 연후에 내린 결정은 '후회'를 동반하지 않는다. 그 미래에 복이 있기를 존경을 담아 기원한다.

 

 

<2010/03/15에 쓰고 2018/3/22에 옮겨 옴>

posted by moon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