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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5. 17. 13:56 영화

 

 

 

꽤 유명한 영화배우인 로빈 라이트는 두 아이의 엄마다. 딸 새라와, 어셔증후군으로 시력과 청력을 잃어가는 아들 애런이 있다. 세 사람은 활주로가 지나가는 벌판에서 '격납고'를 개조한 집에 산다. 유독 비행기에 관심이 많은 애런은 라이트형제의 모형비행기나 그것을 닮은 빨간 '연'을 날리며 시간을 보낸다. 로빈의 삶은 애런에게 묶여있다.

 

로빈은 행복하지 않다. 조금씩 상태가 나빠지는 아들을 지켜보며 웃음을 잃어버린 걸까. 자신의 직업적 성공이나 안위는 체념한 사람같다. 25년간 함께 일해온 노회한 매니저 '알'은 로빈을 달래고 갈구고 때로는 겁주어 설득하는 데는 도가 텄다. 로빈은 '배우 로빈 라이트'를 스캔하여 영화사 소유의 캐릭터로 넘기는 계약에 서명하고, 마지막 연기(스캐닝)를 끝낸다. 본인의 의사보다는 영화사와 매니저의 설득에 밀려서 내린 결정이긴 했지만 어쨌든 '일'로부터 자유를 얻게 되었다.  

 

20년 후 로빈은 영화사가 주최하는 '회의The Congress'에 참석하기 위해 집을 나서는데, 장소는 '아브라하마'이고 환각제를 흡입!해야만 입장 가능한 가상세계다. 검문소 직원은 환각제 앰플을 건네며 이렇게 말한다. 

 

00:46:31   "명심하세요, 라이트 씨. 아브라하마는 제한된 애니메이션 구역입니다. 

          이 길을 다시 지나지 않고는 애니메이션 구역에서 나올 수 없어요."

 

로빈은 아브라하마(아브라함^^ '믿음'이 지배하는 세계라는 뜻인 듯)에 입장하고... 영화가 끝날 때까지 빠져나오지 못한다!

 

환각제의 약효가 나타나는 시점부터 영화는 애니메이션으로 돌변한다. 영화 '바닐라 스카이'가 현실과 환영의 경계를 모호하게 함으로써 관객의 혼란을 의도했다면, 이 영화는 환영을 애니메이션으로 처리하여 꽤 명쾌하게 구분해 주는 것 같지만... 그렇게 만만한 구성은 아니다.

 

환각제의 약효가 나타나는 시점, 즉 '애니메이션 구역'에서부터는 터무니없는 상황들이 펼쳐진다. 황량한 벌판이 오색찬란한 바다로 변하며 배가 떠다니고 고래가 헤엄치고 별이 날아다닌다. 그냥 밤에 꾸는 '꿈'과 차이가 없다. 이상한 대화, 이상한 룸서비스, 이상한 거울, 이상한 바퀴벌레, 이상한 영화사... 그 와중에 테러가 일어나 더 강력한 환각제에 노출되어 또다른 환각에 빠졌다가, 총살당해 죽었다가, 깨어나 냉동인간이 되었다가, 어셔증후군맛! 환각제를 마시고 날아다니다가, 환각제 약효를 지우는 약!을 먹고 리얼월드로 돌아오는가 했더니... '리얼월드를 닮은 환영'이다. 

 

 

이 영화는 어렵다. 처음에 로빈은 맑은 정신으로 가상세계 입장을 선택했지만 차차 정신줄을 놓친다. 회의에 참석한 후 '집'으로 돌아갈 예정이었으나 일이 꼬였고, 결국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도, 집으로 돌아가는 길도 다 잊어버리고 만다. 그러나 '애런'을 잊지는 못한다. 거의 '낙원'에 가까운 세상을 찾았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환각제'를 이용하여 애런을 찾아나선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가상세계에서 애런을 찾을 '좌표' 같은 건 없기에, 로빈은 자신이 애런을 출산하던 순간의 '애런'의 시점으로 들어간다. 그리하여 갓난아기 애런이 된 로빈은 엄마를 바라보고 엄마 품안에서 성장한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헤어짐의 날이 온다. 영화는 애런(로빈의 의식)이 애런(환영)과 대면하면서 끝난다. 

 

초현실적 애니메이션으로 표현된 환영의 세계에는 수많은 유명인들이 카메오로 등장한다(발견의 재미ㅋ). 톰 크루즈, 마릴린 먼로, 히틀러, 붓다, 예수, 공자, 호루스 신, 프리다 칼로, 무하마드 알리, 아프로디테 신, 제우스 신, 에우로페, 켄타우로스, 가네샤 신, 이시스 신, 엘비스 프레슬리, 클린트 이스트우드, 체 게바라, 로널드 레이건, 마이클 잭슨, 미네르바 신...... 이들을 내가 알아보는 까닭은, 로빈의 '꿈세상'이 내가 살고있는 이 '현실세계'와 기본설정을 공유하기 때문일 것이다. 로빈과 나는 자신이 멀쩡한 세상에 살아!있다는 믿음도 공유한다.^^

 

꿈은 일종의 영화이고 그 감독('꿈꾸는 자' 또는 '꿈을 지켜보는 자')은 각본도 쓰고 배역도 맡는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영화감독은 자신의 배역에 너무나 깊이 빠져들어서 점차 감독에게 주어진 강력한 지휘권을 잊어버린다. 덕분에 리얼리티는 올라가고 영화는 '네버엔딩 스토리'가 되고 등장인물은 불어난다. 그래봤자 리얼월드(고향, 본향, 떠나온 곳, 천국, 이데아... 무엇으로 부르든)의 어수선한 복제일 뿐이지만.

 

결국 꿈 속 어디로 가서 누구를 만나든, 어떤 모험을 하든지간에 결국 자신의 내면을 탐험할 뿐이라는 결론은 피할 수 없다. 모든 경험은 상상력이라는 거울에 비친 자기자신이다. 그 거울에는 주로 '두려움'이 나타난다. 로빈의 환영에는 반복적으로 튀어나오는 두 가지 두려움이 있으니, 하나는 미라마운트영화사의 제프 그린이고 또 하나는 애런이다. 제프 그린은 오만한 '갑'답게 위압적인 모습으로 몇 번 등장하다가 로빈의 총살형을 집행하고는 더는 나타나지 않는다. 반면 애런은 '빨간 연'이라는 상징으로 계속 나타난다. 영화 인셉션의 '기차(=아내)'처럼.

 

 

▲푸른하늘과 바람, 눈부신 햇빛, 엄마와 아들, 진짜비행기와 비행기를 닮은 연... 아름답고 애틋하고 절묘하다. 연은 바람 속에서 힘차게 날지만 연줄을 잡은 사람에게 묶여있다. 놓아줘야 한다. 하지만 로빈은 아들을 놓지 못한다. 줄이 끊어진 얼레를 가슴에 품고 환각계에서 연을 찾아 헤맨다.

 

'카르마(업業, 원인)'라는 개념이 있다. 나는 이것을 이해하려고 애쓰다가 나름의 정의을 내렸는데, 카르마란 '우리를 지상의 삶으로 계속 돌아오게 하는 모든 것' 이다. 우리의 삶이 꿈이라면, 그리고 우리가 정말로 윤회한다면, 우리를 이 환영의 수레바퀴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도록 붙드는 것은 무엇일까. 운명같은 사랑이나 원한관계의 청산, 부귀영화 따위도 유혹적이겠지만 '사랑하는 이에 대한 책임감'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족쇄가 아닐까 한다. 로빈은 당차고 독립적인 딸 새라보다 애런에게 연연한다. 미안함, 죄의식, 자책 등의 감정은 이기심보다 더한 집착을 낳는다. 

 

영화는 한 발 더 나아가서 그 '미안함과 책임감'을 해부한다. 매니저 '알'은 말한다.

00:40:40

"<중략> 난 내 과거가 창피했어. 하지만 내심 나만의 강점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지. 남의 약점과 결함을 알아 보는 능력 말이야. 매니저로서는 꽤 유용한 기술이거든. 그렇게... 당신을 만난 거야. 나한텐 완벽했어. 천사처럼 사랑스럽지만 배우로선 최악의 결함도 갖고 있었지. 두려움이야.

 

 

 

극심한 두려움, 지독한 공포, 당신의 모든 욕망을 가로막는 공포... 중요한 회의 전엔 공황 상태가 됐고 비중이 큰 역을 맡으면 굳어 버렸어. 그 때마다 내가 도왔지. 

 

난 당신의 두려움과 약점을 뜯어 먹고 산 내면의 악마였어. 애들이 태어나자 그 두려움도 사라지더군. 정말 행복해 보였고 일도 그만 두고 애들과 있고 싶어했어. 난 버려진 것 같았어. 그 때 깨달았지. 난 당신을 사랑하고 있었던 거야. 날 떠날까 봐 겁이 났어. 그러다 갑자기 몇 주 사이에 애런의 상태가 나빠지기 시작했어. 난 그 틈에 다시 힘을 얻었지. 애런은 점점 더 멀어져 갔고 우리만 남겨졌어. 

 

지금 떠날 순 없어. 그 괴물 안에 갇혔잖아. 당신의 마지막 연기야. 당신을 구원해 주겠지. 모든 두려움과 모든 악마로부터... 그만 고통 받아. 그럴 이유 없어."

 

불필요하다 싶을 만큼 정말 긴 대사였다. 그러나 영화가 끝나고 돌이켜보면 심오한 장면이다. 수완좋은 매니저와 유약한 배우, 정 많은 엄마와 아픈 아들은 상호의존관계다. 보살핌을 주는이는 어쨌든 중요한(가치있는) 사람이 되고 보살핌을 받는이는 길들여져 종속된다. '널 사랑해서', '나도 희생했다'는 주장이 진실이라 해도... 알과 로빈은 각기 상대의 두려움과 약점을 뜯어 먹고 사는 내면의 악마인 것이다. 선한 의도로 그리했더라도, 원인이 아무리 뿌리깊다 해도, 서로간의 결속이 아무리 소중하다 해도 우리는 서로를 놔줘야 한다. 저 긴 고백을 끝으로 더는 등장하지 않는 매니저 알처럼, 로빈도 애런을 놓아준다면 구원받을 수 있을(아브라하마에서 나올 수 있을) 것이다. 

 

♡ 아브라하마호텔 로봇 랠프과의 대화;

00:56:06   근본적으로 모두 이치에 맞고, 모든 것은 마음 탓이죠.

<중략>

00:56:50   랠프, 정말 어두워요. 내 마음 탓이에요?

00:56:53   전부 마음의 작용입니다. 어둠이 보인다면 당신이 어둠을 택한 겁니다.

 

로빈의 삶은 리얼월드에서든 환영(꿈) 속에서든 웃음과 행복감이 결여되어 있다. '몸'이 아닌 '의식'이 우리의 실체라면 행복도 불행도 그 의식의 상태에 달려있는 것이다. 로빈이 웃고 떠들고 어울리기를 좋아하는 성격이었다면 아브라하마에서 한결 잘 지냈을 수도...

 

이 영화는 '너는 리얼월드에 살고 있니?' 또는 '리얼월드가 뭐라고 생각해?'라고 묻는 것 같다. 난 모른다. 여기가 리얼월드라고 믿고 살아왔지만 뭔가 수상하긴 하다. 어쩌면 분주하게 장소를 옮겨다니며 고군분투하는 우리들은 무한반복적 헛수고 중인지도 모른다. 거울 속의 우주를 촬영하는 카메라맨(나 자신)을 자각하고 카메라를 꺼버리는 게 정답일지도....  

 

 

posted by mooncle
2018. 4. 24. 22:28 책에서 발췌

야자와 사이언스오피스/2006/전나무숲

 

 

 

<50쪽>  스테로이드 관련 일부만 발췌

스테로이드는 거의 모든 동물, 식물의 몸 속에서 스스로 만들어내어 호르몬으로도 이용되는 화합물(지질)이다. 화합물은 크게 5종류로 나눌 수 있는데, 이들 화합물에 조금씩 성질이 다른 물질로 세분화하면 몇 백 종류나 된다. 하지만 이들 모두에 공통되는 점은 그 분자구조에 특수한 형태의 스테로이드 핵을 갖고있다는 사실이다.

 

 

스테로이드로 총칭되는 호르몬 중 우리들이 흔히 볼 수 있는 스테로이드는 다음 세 가지다.

 

 

① 부신피질스테로이드(당질 코르티코이드) :

의약품으로서 일상적으로 널리 사용되는 스테로이드 호르몬으로, 면역반응을 억제하거나 염증을 진정시키는 강력한 작용을 한다(부신의 피질에서는 약으로 사용되는 당질糖質 코르티코이드 외에도 광질鑛質 코르티코이드와 남성호르몬이라는 두 종류의 호르몬을 분비한다). 의료계에서 스테로이드라고 하면, 이 당질 스테로이드를 가리킨다. 부신피질 스테로이드와 부신피질 호르몬, 코르티코 스테로이드(코르티코이드) 등의 이름으로 불리는 까닭은 신장의 위쪽에 있는 2개의 부신의 피질에서 분비되기 때문이다.

 

②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단백동화 호르몬) :

운동선수가 좀 더 탁월한 운동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나 혹은 근육을 발달시키기 위해 이용하는 호르몬으로, 실제로는 성호르몬 중 하나인 안드로겐androgen(남성호르몬)이나 이와 아주 유사한 구조의 합성호르몬이다. 최근 아마추어 스포츠 뿐 아니라 프로 스포츠 세계에서도 금지약물의 대표격으로 도핑문제를 일으키는 물질이다.

 

③ 성호르몬 :

고환이나 정소, 부신피질이 만들어내는 테스토스테론testosterone, 에스트로겐estrogen, 프로게스테론progesterone 등과 같은 성호르몬으로, 생식기의 기능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전립선암이나 유방암, 자궁암과 같은 생식기 암의 진행을 촉진시키는 경우도 있다. 이들 호르몬 물질은 모두 우리들의 몸 속에서 중요한 작용을 한다.

 

여기에서는 스테로이드제로서 사용되는 ①의 부신피질 스테로이드를 중점적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누워만 있던 류머티즘 환자에게 스테로이드를 먹이면 일어서서 걷는다.

무덤을 향해.'

 

유럽에서는 이처럼 스테로이드제의 약효를 비웃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스테로이드제의 부정적인 측면을 과장되게 강조하고 있지만, 동시에 스테로이드제의 성질을 잘 표현한 말이기도 하다. 실제로 스테로이즈제만큼 놀라운 효과를 나타내는 약은 없다. 예를 들어, 피부에 가벼운 상처나 염증이 생겼을 때 스테로이드제를 바르면 하루만에 누그러들고, 3일이 지나면 새로운 피부가 재생된다. 그밖에도 아토피, 천식, 류머티즘, 폐렴, 백혈병 등과 같은 암, 돌발성 난청, 장기이식 후의 면역억제 등 의료현장에서 스테로이드제를 필요로 하는 곳은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스테로이드제는 항생물질이나 항바이러스제처럼 병원체를 죽이는 약이 아니며, 두통약이나 항우울제처럼 병의 원인에 직접 작용하는 약도 아니다. 스테로이드제는 호르몬으로 우리몸에 원래 갖추어져 있는 기능을 이용해 병의 증상을 억제하는 대증요법제다. 몇일이 지나면 새로운 피부가 재생된다. 그 밖에도 아토피, 천식, 류머티즘, 교원병, 다발성경화증, 뇌 부종, 만성통증이나 식욕부진, 폐렴, 백혈병 등과 같은 암, 돌발성 난청, 장기이식 후의 면역억제 등 의료현장에서 스테로이드제를 필요로 하는 곳은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본래 우리 몸에서 만들어지는 당질 코르티코이드는 이것을 몸속에서 추출해서 사용한다 해도 크게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 몸 속에서 바로 분해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와같은 작용을 가지면서 좀더 장기간에 걸쳐 효과를 나타내는 합성 스테로이드가 약으로 이용된다. 프레드니솔론prednisolon, 덱사메타손dexamethasone 등 잘 알려진 스테로이드제는 모두 인공적으로 합성된 약이다.

 

당질 코르티코이드는 항상 뇌의 명령에 따라 분비량이 조절된다. 우리가 정신적, 육체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으면, 뇌가 부신에 명령을 내려 평소의 2~3배, 때로는 10배의 양이 한꺼번에 분비된다. 피로하거나, 저온환경에 노출되거나, 금식할 때도 분비량이 늘어난다. 당질 코르티코이드가 분비되면 체내의 신진대사가 활발해져 몸이 스트레스에 금방 대응할 수 있게 된다. 당질이라는 말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스테로이드는 먼저 혈당치를 올려 뇌나 심장에 충분한 당을 공급하고 몸의 기본적인 기능을 유지하려고 한다. 또 염증을 일으키는 물질의 생산을 방해하거나 면역세포의 작용을 방해해 염증을 억제하고(항염증 작용), 혈액을 쉽게 굳도록 해 상처가 빨리 회복되도록 하며, 중추신경을 흥분시켜 기분을 고양시키는 등의 효과도 낸다.

 

스테로이드는 1920년대에 '물질X'라는 수수께끼 같은 이름으로 처음 등장했다. 당시 미국의 유명한 병원인 메이요 클리닉에 근무하던 필립 헨치Philip Hench는 어떤 이상한 현상을 깨달았는데, 바로 류머티즘환자가 임신하거나 수술을 받으면 증상이 갑자기 좋아진다는 점이었다. 헨치는 사람의 몸 속에서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분비되는 물질이 류머티즘을 치료하는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하고, 이 물질을 임시로 '물질X'라고 이름붙였다. 그는 그 후 동료의사인 에드워드 켄들Edward Kendall이 부신에서 몇 가지 호르몬을 추출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중 하나가 물질X일 것이라고 추정했다.(2차대전후 노벨 의학생리학상 공동수상)

 

<59쪽>

스테로이드는 인체의 설계도라 할 수 있는 DNA에 직접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호르몬은 세포막을 쉽게 통과해 세포 안으로 들어가 오직 이 물질만을 받아들이는 단백질(수용체)와 결합한다. 그리고 이 둘의 결합물은 DNA상의 유전자를 활성화시키거나 반대로 활동을 억제시킴으로써 몸을 환경에 재빠르게 적응시킨다. 스테로이드제는 인체의 세포 내에서 활동 중인 유전자의 약 20%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이며, 바로 이것이 아주 폭넓은 효능을 발휘하는 이유이다. 하지만 잘못 사용하면 심각한 부작용과 신체적 의존성을 초래할 위험이 있다. 

 

신체적 의존성이란 외부에서 스테로이드가 공급되는 데에 몸이 익숙해져 버리는 현상이다. 약을 2~3주 이상 계속해서 사용하면 이같은 의존성이 나타난다. 치료를 위해 스테로이드제를 사용하면 혈액속에 충분한 양의 스테로이드 호르몬이 존재하게 된다. 그러면 뇌는 부신이 스테로이드 호르몬을 만들 필요가 없다고 간주하고 부신에 스테로이드 호르몬을 분비하라는 명령을 내리지 않게 된다. 즉 스테로이드제를 사용하는 동안에 부신은 스테로이드 호르몬을 만들지 않기 때문에 본래부터 갖추고 있던 스테로이드 생산능력이 저하되며, 스테로이드 사용기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부신의 기능은 더욱더 떨어진다. 

 

이럴 경우, 스테로이드제의 사용을 갑자기 중단하면 어떻게 될까? 체내에서 스테로이드 고갈상태가 일어나고, 몸은 항상성Homeostasis(안정상태)을 유지할 수 없게 되어 스트레스를 받으면 저혈당을 일으킬 염려가 생긴다. 염증이 있을 경우에는 평상시보다 체내의 스테로이드 양이 줄어든 상태이므로 염증이 도리어 악화될 수 있다. 이런 현상을 일반적으로 리바운드 현상(사용하고 있던 약을 갑자기 중단하면 증상이 심하게 악화되는 현상)이라고 한다.

- 중략 -

 

피부치료용 연고를 제외하고 모든 스테로이드제는 전신에 영향을 미치므로 부작용의 위험도 크다. 이 약의 성분을 받아들이는 수용체는 온 몸의 세포에 분포해 있기 때문에 스테로이드를 보충할 필요가 없는 여러 장기들까지 스테로이드의 영향하에 놓여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스테로이드제가 큰 치료효과를 나타내는 병이라 할지라도 약효가 강한 스테로이드제는 사용기간을 가능한 한 줄여서 사용하고, 일단 심한 증상이 치료되었다면 곧바로 투여량을 줄이거나 대체약을 사용함으로써 부작용을 최대한 억제하는 것이 치료의 철칙이다. 

 

스테로이드제의 부작용 중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혈당치의 상승이다. 스테로이드제는 몸 속에서 당의 생산을 활성화하기 때문에 단기적으로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오랜 기간 사용하면 부작용이 나타난다. 우선 원래 혈당치가 높았던 당뇨병 환자의 경우에는 악화될 우려가 있다. 스테로이드제에 의해 당이 생산될 때는 몸을 만들고 있는 단백질이나 지방이 그 재료로 사용된다. 이들 물질이 분해되어 당으로 변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약을 장기간 사용하면 근육이 여위어 감소되는 현상도 일어난다. 그리고 지방을 대사하기 때문에 혈액속에 지방산이 늘어나 고지혈증이 될 위험도 있다.

 

또 면역계의 활동이 저하될 우려도 있다. 스테로이드제는 백혈구의 활동을 억제하거나 면역세포 사이에서 정보를 전달하는 물질의 생산을 억제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염증을 금방 아물게 하는 작용을 한다. 그러나 이런 작용에 의해 면역력이 약해지면 바이러스나 세균에 감염되었을 때 이를 물리칠 수 없게 될 위험에 처한다.

- 중략 -

 

<65쪽>

2~3개월 이상 장기사용으로 인한 스테로이드제의 부작용

   ① 체중이 증가한다

   ② 얼굴이 둥글어진다

   ③ 감염증에 쉽게 걸린다

   ④ 혈압이 상승한다

   ⑤ 혈당이 상승한다

   ⑥ 피부에 상처가 잘 낫지않고 멍이 잘 들며, 피부가 얇아진다

   ⑦ 근력이 저하된다

   ⑧ 정신적으로, 고양되거나 우울해하는 등 불안해진다

   ⑨ 위궤양이나 십이지장궤양에 걸릴 수 있다.

 

 

posted by mooncle
2018. 3. 23. 00:54 책에서 발췌

 

 

 

 

<102쪽>
그는 주의깊게 내 얼굴을 살펴보며 말했다. "많이 컸구나. 싱클레어." 그 자신은 하나도 변하지 않아 보였다. 언제나처럼 똑같이 나이 든, 똑같이 젊은 모습이었다. 그가 합류해서 우리는 함께 산책을 했다. 순전히 시시한 일들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나누었고, 당장의 일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전에 몇 번 그에게 편지를 보냈지만 답장을 받지 못했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아, 그가 그것도 잊었으면 좋으련만, 그 멍청하고 멍청한 편지들이라니! 그는 그 편지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당시만 해도 베아트리체의 초상화도 없었고, 나는 아직 사나운 시절의 한복판에 있었다. 교외에 이르자 그에게 술집에 들어가자고 청했다. 그는 함께 들어갔다. 나는 허풍을 떨며 포도주 한 병을 주문해서는 잔에 따르고 그와 잔을 부딪쳤다. 대학생들의 음주습관에 매우 친숙한 내 모습을 보여주고는 첫 잔을 단숨에 들이켰다.
 
"술집에 자주 가나보지?" 그가 물었다. 
"응, 그래." 나는 무심하게 대답했다. "따로 할 일이 뭐가 있어? 결국은 그게 가장 재미있는 걸."
"그렇게 생각해? 그럴지도 모르지. 거기엔 아주 아름다운 점도 있으니까. 술에 취하는 것, 바쿠스적인 것! 하지만 자주 술집에 앉아있는 사람들은 대개 재미를 완전히 잃어버리던 걸. 술집을 돌아다니는 거야말로 진짜 속물적인 일 같은데. 그래, 물론 하룻밤 횃불을 밝히고 진짜로 화끈하게 취하는 거야 좋지! 하지만 거듭 한잔 또 한잔, 그거야말로 진짜가 아닌 것 같은데? 파우스트가 저녁마다 단골술집에 앉아있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어?"

 

나는 잔을 비우고 적대감에 차서 그를 바라보았다. "그래, 하지만 누구나 파우스트는 아니니까." 나는 짤막하게 말했다. 그는 약간 멈칫하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예전의 활기와 우월함을 드러내며 웃음을 터뜨렸다. 
"좋아, 뭣하려 싸우겠니? 어쨌든 술주정꾼이나 방탕한 사람의 삶이 흠 하나 없는 부르주아의 삶보다는 아마 더 생동하는 것이겠지. 게다가 언젠가 읽은 말인데, 방탕한 삶이 신비주의자가 되는 최고의 준비과정이라더라. 뒷날 예언자가 되는 성 아우구스티누스 같은 사람들이야 늘 있는 법이니까. 그도 한때는 향락을 즐기는 세속적인 사람이었지."


나는 불신에 가득찼고 그에게 지배당하지 않을 셈이었다. 그래서 거만하게 말했다. "그래, 누구나 제 입맛대로 살라지! 터놓고 말하자면 예언자나 뭐 그런 게 되는 건 나하고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야." 
데미안은 살짝 가느스름하게 뜬 눈으로 잘 안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았다. "친애하는 싱클레어." 그가 천천히 말했다. "네게 불쾌한 말을 하려던 건 아니었어. 게다가 네가 지금 어떤 목적으로 그 잔을 들이켜는지 우리 둘 다 모르지. 네 안에서 네 삶을 만드는 것은 그걸 이미 알고 있겠지. 그걸 아는 건 좋은 일이야. 우리 안에 누군가가 있어서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원하고, 모든 것을 우리자신보다도 더 잘 한다는 사실 말이야.  그런데 용서해라. 난 그만 집에 가야겠어."

우리는 짧게 작별인사를 나눴다. 나는 불쾌한 기분으로 앉아서 병을 몽땅 비웠다. 그리고 돌아가려는 순간 데미안이 이미 술값을 치렀음을 알았다. 그 사실이 나를 더욱 화나게 했다.
 
내 생각은 다시 이 짧은 만남에 머물렀다. 온통 데미안 생각뿐이었다. 그리고 그가 그 교외의 술집에서 했던 말들이 다시금 기억에 떠올랐다. 이상하게도 생생하게 떠올랐다. "그걸 아는 건 좋은 일이야. 우리 안에 누군가가 있어서 모든 것을 안다는 사실 말이야!"
창에 걸린 채 이제 완전히 어둠 속으로 사라진 그림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빛나는 두 눈이 보였다. 그것은 데미안의 눈빛이었다. 아니면 내 안에 있는 그 누군가였다. 모든 것을 아는 그 누군가.
데미안이 얼마나 그리웠던가. 그에 대해서 나는 아무것도 몰랐다. 그는 내가 닿을 수 없는 곳에 있었다.

 

 

<123쪽>
"이리 와보게." 잠시 뒤에 그가 소리쳤다. 이제 철학을 좀 해보자고. 그러니까 입은 닥치고 배를 깔고 엎드려 생각을 좀 하자는 거지."
그는 성냥을 긋더니 자기 앞에 있는 벽난로 속 종이와 장작에 불을 붙였다. 불꽃이 피어올랐다. 그는 부채질을 하면서 신중하게 불꽃을 살렸다. 나는 그의 곁으로 가 너덜너덜한 양탄자 위에 엎드렸다. 그는 불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는데, 불꽃이 내 마음도 사로잡았다. 우리는 그렇게 아무 말도 없이 한 시간가량 파닥거리는 장작불 앞에 배를 깔고 엎드려 불꽃을 바라보았다. 이글이글 타오르다가 바지직거리고, 아래로 스러졌다가 꿈틀거리며, 활활 타오르다가 경련하고 마지막에 고요히 가라앉아 작열하며 생각에 잠기는 모습을.
 
"불꽃 숭배는 지금까지 고안된 것 가운데 가장 멍청한 건 아니지." 그가 혼잣말처럼 웅얼거렸다. 그 말 말고 우리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나는 불꽃을 뚫어져라 바라보면서 꿈과 고요 속에 빠져들어 연기의 형상들과 재의 그림들을 보았다. 한번은 소스라치게 놀라기도 했다. 함께 불을 보고있던 그가 잉걸불 속에 송진 한 조각을 던져넣자, 작고 날씬한 불꽃이 솟구쳐 올랐다. 그 속에서 노란 새매의 머리를 한 그 새를 보았다. 스러져가는 벽난롯불 속에서 황금색으로 빛나는 실들이 그물처럼 엉켜 철자와 그림들이 나타나고, 얼굴, 동물, 식물, 벌레, 뱀들에 대한 기억이 나타났다. 내가 깨어나서 그를 바라보자 그는 두 주먹을 턱에 괸 채 완전히 몰두하여 열광적으로 재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 벌써 어린 시절에 나는 자연의 기묘한 형태들을 바라보려는 성향이 있었다. 관찰이 아니라 그 본래의 마법에, 그 뒤얽힌 깊은 언어에 마음을 빼앗겼다. 목화木化된 긴 뿌리, 암석에 나타난 여러 색깔의 광맥들, 물 위에 떠다니는 기름얼룩, 유리에 난 균열들 - 이런 모든 것이 내게는 때때로 대단한 마법을 부렸으며, 무엇보다도 물과 불, 연기, 구름, 먼지, 그리고 특히 눈을 감으면 보이는 빙글빙글 도는 색깔점이 그랬다. 피스토리우스를 방문하고 난 다음 며칠동안 그런 것들이 다시 생각나기 시작했다. 내가 그 뒤로 느낀 어느 정도의 활력과 기쁨, 나 자신에게서 나오는 감정의 상승이 순전히 활활 타오르는 불을 오랫동안 바라본 덕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불을 바라본 일이 특이하게도 좋은 영향을 미쳐 마음을 풍요롭게 해 주었다!
 
지금까지 내 삶의 원래 목적을 향해 가는 도중에 겪은 몇 안되는 경험에 이 새로운 경험도 더해졌다. 그런 형태들을 관찰하다보면, 그러니까 비합리적이며 이상하고도 꿈틀거리는 자연형태에 몰두하다보면, 이런 형태들을 있게 한 의지력과 우리의 내면이 서로 일치한다는 느낌이 생겨난다 - 물론 곧바로 그런 일치감을 우리자신의 변덕으로, 우리자신의 창작으로 여기려는 유혹을 느끼지만 - 

 

우리는 자신과 자연 사이에 있던 경계가 흔들리면서 무너지는 것을 보게 되며, 또한 이런 형태들이 외부의 인상이 우리 망막에 맺혀서 생긴 것인지 아니면 내면의 인상이 눈앞에 나타난 것인지 모르겠는 상태를 경험하게 된다. 우리가 얼마나 대단한 창조자인지, 우리 영혼이 언제나 끊임없는 세계의 창조에 얼마나 많이 동참하고 있는지를 그렇게 쉽고도 간단하게 알아낼 수 있는 길은 이런 연습 말고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 나뉘지 않는 동일한 신이 우리 안에서, 그리고 자연에서도 활동하고 있는 것이다. 

만일 외부세계가 붕괴한다면 우리 중 한명이 세계를 다시 세울 수 있을 것이다. 산과 강, 나무와 잎새, 뿌리와 꽃, 자연의 모든 형태가 우리 안에도 미리 새겨져 있으며 바로 영혼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영혼의 본질은 영원성이며 우리는 그 본질을 알지 못하지만, 그것은 우리에게 대개는 사랑의 힘, 창조의 힘으로 느껴진다.  ......
"......인류가 어느 정도 재능을 가진 아이 단 한 명만 남기고 모조리 멸종한다 해도, 그리고 이 아이가 수업을 받은 적이 없는 아이라 해도 이 아이는 모든 과정을 다시 찾아낼 거야. 신과 데몬과 낙원과 계명과 금지들, 그리고 신구약 성경, 모든 것을 다시 창조해 낼 거란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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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보기와는 달리 인류의 의식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고, 개별 인간은 인류전체를 포함한다는 이 낯선 개념은 SF에서는 꽤 흔하다. 영화 '다크시티'는  '깨어난 한사람'이 어둠 뿐이던 도시에 바다와 땅과 태양을 만들고 지구를 재건하면서 끝난다. 같은 감독의 영화 '노잉Knowing'은 지구의 종말을 보여주는데, 두 명의 어린이만이 외계존재들에 의해 새로운 행성에서 삶을 이어갈 수 있게 된다. 그 곳에 지구를 새롭게 재건할 인류 대표선수로서.

 

 

 

매트릭스 3부작의 마지막에도 비슷한 장면이 있다. 100년이상 지속된 인간과 AI와의 전쟁은 네오의 영웅적 희생으로 종전을 맞이한다. 새로운 매트릭스 안에서 깨어난 꼬마 사티는 눈부신 일출을 가리키며 자신이 '했다'고 말한다. 네오를 위해서.

 

 

 

 

 

<2017/08/24에 쓰고 2018/03/23에 옮겨 옴>

posted by moon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