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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 human doing but human being - P'ta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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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5. 18. 02:04 책에서 발췌

 

 

 

<223쪽>

앤드류 고든은 자기 할머니가 돌아가시던 날 밤의 꿈을 기억하고 있다. 

"그 당시 나는 겨우 여섯 살이었어요. 잠을 자다가 할머니가 밝은 빛 쪽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았어요. 할머니가 나에게 뭔가 말을 했지만 기억할 수는 없었어요. 그렇지만 나는 그 순간을 언제나 기억할 겁니다. 할머니는 미소짓는 얼굴로 나에게 손을 흔들며 위로 떠오르고 있었고, 나는 그 모습에 감동을 받았어요. 이튿날 잠에서 깨어났더니 어머니가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고 하더군요. 나는 전혀 놀라지 않았어요. 나는 그날 밤을 절대로 잊지 못할 겁니다. 할머니가 죽어가고 있었는데도 그 꿈은 언제나 나를 편안하게 만들어요."

 

알리의 이야기다.
"할머니의 머리와 얼굴 주변에는 흰색 빛 혹은 형태라고밖에 묘사할 수 없는 무엇인가가 있었어요. 너무나 밝은 그 빛 속에서 얼굴이 환하게 빛나고 있었어요. 나는 더 이상 다가갈 수 없다고, 방해하면 안된다고 느꼈어요. 나의 내면 깊숙한 곳에서 무엇인가가 '할머니가 이 세상을 떠나는 순간이야' 라고 속삭이는 것 같았어요. 그 순간 나는 그녀의 영혼 혹은 내면의 존재가 육신을 벗어나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어찌해야 할지는 몰랐지만 모든 것이 순조로웠어요. ... 그 빛 혹은 형태가 서서히 사라지더군요. 이제 방안에는 절대 정적뿐이었어요. 나는 조용히 다가가서 키스하면서 편안한 여행 되시라고 기도했죠. 나는 할머니가 더 이상 거기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어요. 방안의 빈자리가 너무 컸어요. 그 전에도 가끔 그 방이 비었던 적이 있었지만, 그때는 완전히 달랐어요. 그곳의 에너지 혹은 정기精氣도 함께 떠났던 것 같아요.

 

... 나는 그날의 일에 대해 좀처럼 말을 할 수가 없었어요. 말을 하고 싶었지만 내 세계의 사람들은 그런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죠. 내가 어느 가족에게 했다가 들은 반응은 '아니야.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어.'였습니다. 내 '경험'을 철저히 부정하는 그들을 도무지 이해를 못하겠어요."


존 페닝턴도 2006년 10월, 아버지의 임종 때 비슷한 경험을 했다. 
"내 여동생은 창문 바로 옆에, 내 아들은 반대편에 앉아 있었어요. 아버지의 입과 눈이 갑자기 닫혔다가 천천히 다시 열리더군요. 그의 얼굴이 편안하게 풀어지더니 다시는 움직이지 않았어요. 커튼이 갑자기 부풀려지면서 바람이 방안으로 들어왔어요. 바로 그 때, 마가렛이 놀라움의 소리를 가늘게 뱉더군요. 아들도 그것을 보고 느꼈어요. 그래도 그것이 무엇인지는 아무도 설명하지 못했어요. 창문이 약간 열려 있었고, 바깥에 바람이 전혀 없는 날씨는 아니었지만 그날 오전 내내 그 커튼은 한 번도 움직이지 않았어요. ... 나는 태생적으로 회의론자이며,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에 처하면 누구나 위안을 찾게 마련이라는 것을 잘 압니다. 그러나 그날 일은 우연의 일치라고 넘겨버리기에는 너무 신기했어요."

티베트인들은 임종자에게 일어나는 의식의 해체과정을 복잡하게 묘사한다. 달라이 라마가 말하는 죽음의 과정에도 몇몇 비슷한 점이 발견된다. 빛과 신기루 같은 아지랑이, 안개와 연기, 붉은 불씨나 반딧불이와 비슷한 무엇... 린다 린치는 오빠가 암으로 죽어갈 때 오빠의 아내와 동시에 같은 경험을 했다. "오빠의 몸 주변에서 작고 밝은 불빛이 발산되더군요. 나는 그 자리에서는 그 이야기를 하지 않았지만, 나중에 오빠의 아내도 나와 똑같은 것을 보았다는 걸 알았어요"

 

 

<246쪽>

소크라테스는 육체를 벗어난 영혼들이 사고와 지성의 삶을 누린다고 보았다. 플라톤의 기록에 따르면 소크라테스는 인간의 육신과 영혼을 이렇게 구분했다. 지각은 가능하지만 소멸과 파괴의 운명에 처한 육신, 그리고 지각은 불가능하지만 지적이고 불멸인 영혼. 생명은 영혼에 속하기 때문에 영혼에게는 죽음이 없다不滅고 보았다.

 

'이집트 사자死者의 서'와, 고대 이집트의 '관 텍스트Egyptian Coffin Texts'는 영혼이 다음 삶으로 가는 여행을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집트 사자의 서'는 '피라미드 텍스트'를 말하며, 부활과 영혼의 불멸성을 보여준다. 그 중 많은 것은 일부 피라미드의 내부 벽에 새겨진 상형문자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 피라미드 텍스트들은 B.C. 2350~2175년 사이에 쓰인 것들이며,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기록일 뿐 아니라 그보다 더 오래된 자료까지 언급하고 있다. 

 

주류 힌두교 사상을 대표하는 베단타 철학에서는 영혼은 영원하고, 파괴되지 않는다. 인간존재와 동물, 식물, 심지어 신에도 영혼이 존재한다. 

 

티베트 불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 육체에서 분리된 뒤 다시 태어나기까지 49일 동안 육체가 없는 존재로 산다고 가르친다. 다음 생에서 어떤 존재로 환생할 것인지는 이전 생에서 그가 살았던 삶의 품격에 따라 결정된다. 

 

이 철학은, 수많은 생애를 목격한 '옛 영혼'이 있어서 윤회의 바퀴를 벗어나기는 대단히 어렵지만, 죽음의 과정 중에 보편의식으로의 탈출이 가능한 순간이 있다고 암시한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든 그 '자유로워지는 방법'을 모르는 상태에서 죽으면 안된다. 

 

티베트 불교의 전통에서는 죽은 사람의 영혼을 죽음에서 다음 환생까지 쭉 안내하는 사람은 승려이다. AD 8세기에 처음 글로 씌여진 '티베트 사자의 서'는 오래 전부터 구전으로 내려오던 전통을 두루 통합하고, 육신을 벗어버린 개인이 죽음의 순간에서부터 사후의 여러 상태를 통과하는 여정을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 여행은 임사체험의 일부 특징과 놀랄 정도로 비슷하다.

 

유대교 문헌을 보면 영혼에 대한 정의가 다양하게 보인다. 유대교 신비주의 경전인 '조하르'에서는 영혼을 세 부분으로 정의한다. '네페쉬Nephesh'는 한 사람이 태어나 처음으로 호흡을 할 때 육체 속으로 들어가서 죽을 수 있는 영혼의 한 부분이다. 중간 영혼인 '루아흐Ruach'와 좀더 높은 영혼인 '네솨마Neshamah'는 둘 다 개인의 행동과 믿음에 따라서 시간을 두고 만들어진다. 인간을 다른 살아있는 형태들과 다르게 만드는 것이 바로 네솨마이며, 사람들이 신의 존재와 현존을 자각하도록 만드는 것도 바로 이것이다. 사람이 죽을 때, 네솨마는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간다.

 

 

<310쪽>

레스 윌슨은 40년 전 그기 스물한 살이던 때의 경험을 전해주었다.

"아버지와 나는 친하게 지냈던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열여섯 살에 학교를 끝내고 6개월 후에 집을 떠났어요. 그럭저럭 영국의 남부에서 운송 분야에 일자리를 얻고 안정을 찾았지요. 그 다음 5년 동안 집을 한번도 찾지 않았습니다. 요크셔에 두고 온 가족들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지요.

어느날 아침 7시 30분, 그날도 나는 몇 년 동안 해 온 것처럼 직장으로 출근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늘 좌회전을 하던 곳에서 나도 모르게 우회전을 하는 것이 아니겠어요. 그러면서 런던을 향해 북쪽으로 차를 달리더군요. 나는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도무지 이해를 하지 못했어요. 갑자기 요크셔에 있는 집에 가야겠다는 충동밖에 없었어요. 느닷없이 그러고 싶어진거죠.

부모님의 집에 도착하자 엄마가 울음을 터뜨리며 뛰어나와 나를 와락안으며 '아이고, 네가 왔구나・・・ 너한테 연락할 길이 있어야지. 너의 아버지가 암으로 죽어가고 있단다. 너만 보면 되는데.' 하시더군요. 나는 이층으로 올라가 아버지와 화해를 했어요. 아버지께서는 이제 가족을 다 보았으니 갈 준비가 됐다고 했어요. 다음 날, 형이 집에 들렀을 때 아버지는 이미 침대에서 숨을 거둔 뒤였어요. 나는 이런 현상을 설명할 수 없어요. 그 기억을 떠올릴 때면 언제나 혼란스럽습니다."

호스피스 간호인들의 말이다.

"환자가 갑자기 기운을 내면 죽음이 임박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럴 때 환자를 보면 정말 나아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정말 이상하지요."


한 간호사가 맨체스터의 한 병원에서 야간근무를 할 때의 경험을 들려주었다. 자동차사고를 당한 노부부가 있었는데 남편은 심하게 부상을 입었지만, 아내는 다행히 찰과상을 입는데 그쳤다.
"자정에 잠깐 휴식을 취하고 돌아왔더니 그 신사분이 부상으로 돌아가셨더군요. 아직 그의 아내에게는 그 사실을 통보하지 않았지요. 나는 그녀의 침대로 가서 차를 마시고 싶은지 물었어요. 그녀는 흥분한 목소리로, 방금 남편이 병실로 찾아와서 새벽 4시에 다시 오겠다고 하고 갔다더군요. 함께 집으로 가자고 하면서요. 그래서 나는 그녀가 아직 사고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짐작했어요.

 

새벽 3시 30분이 되자 그녀의 혈압이 갑자기 떨어지기 시작했고, 책임 간호사가 의사를 불렀어요. 그녀는 남편을 기다리면서 문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어요. 의사는 그녀의 상태가 급격히 악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살리기 위한 모든 조치를 취했어요.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자신 앞에 선 누군가를 바라보는 것 같았어요. 사망시간은 새벽 4시로 기록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죽기 직전에 잠깐 제정신으로 돌아온다는 이야기는 무수히 많다. 혼수상태에 빠진 환자가 정신을 차릴 수도 있고, 오랫동안 마비상태에 있던 사지가 움직이는 경우도 있고, 몇 달 동안 누워지내던 환자가 벌떡 일어나 앉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 오랫동안 치매로 고생하던 환자가 가족들을 알아보고, 자기를 데리러 온 사람들과 멀쩡한 정신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경우도 있다. 

한 여성은 자기 아버지가 임파선 암으로 죽기 전 48시간동안 아버지의 병상을 지켰다.

"돌아가시기 전날 새벽 3시쯤, 아버지는 병실 안으로 세 사람이 들어왔다고 말했어요. 물론 나는 볼 수 없었죠. 아버지는 매우 고양되는 모습을 보였고, 심지어 1년 이상 움직일 수 없었던 팔까지 움직이더군요. 나는 아버지에게 그들이 누군지 물었어요. 그러자 아버지가'토머스(먼저 세상을 떠난 훌륭한 친구), 엘리자베스(매우 가깝게 지냈던 숙모), 필리스(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 - 나의 어머니)야.'라고 대답하더군요. 그들은 아버지 곁에 3시간동안 머물렀죠. 아버지는 웃었고 매우 행복해 보였어요.

오전 6시 쯤 되자 아버지는 그들에게 손을 흔들며 입을 맞추더군요. 그의 눈길이 문 밖으로 나가는 그들을 따랐어요. 내가 잠을 자고 싶으냐고 묻자, 아버지가 '그래'라고 대답하더군요. 바로 그 때, 아버지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고, 그 사람들이 다시 방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더군요. 그들은 1시간 가량 더 머물렀어요. 아버지는 그날 오후 2시 15분에 돌아가셨어요."

많은 호스피스 종사자들이 '말기환자들이 자신이 떠날 시간과 생명스위치를 스스로 조정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한다. 베로니카 스탠튼의 여동생은 미국에서 돌아오자마자 급히 병원으로 갔는데, 할머니가 '너한테 작별인사를 할 수 있을 때까지 그들에게 기다려 달라고 부탁했어'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할머니가 설명해주지 않고 돌아가셨기 때문에 베로니카의 가족들은 '그들'이 누구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사랑하는 이가 세상을 떠날 때, 곁을 지키며 작별인사를 나누지 못한 사람들은 깊은 미안함과 자책감을 갖기 쉽다. 그러나 경험 많은 호스피스의 간호인들이 전하는 이야기는 남은 사람들에게 위안을 준다. 
"나의 딸 엘리너는 뇌까지 전이된 유방암으로 병원에서 죽어가고 있었어요. 그녀는 3일 동안 혼수상태였어요. 그런데 새벽 4시쯤 정상인처럼 정신을 차리더니 자기 언니에게 말을 거는 게 아니겠어요? '내 영혼이 침대에 걸터앉아 있어서 혹시 지금 가는 건가 싶었어. 근데 금방 아니야, 지금은 아니야' 하는 생각이 들더라.' 엘리너는 4주 동안 더 살면서 잠을 자다가 깨어나 말을 하곤 했어요. 그녀는 자신이 다른 장소를 본 것처럼 말하더군요. 너무 소중한 시간들이었어요. 그녀가 혼수상태에서 그냥 떠났다면 우리는 마음이 많이 아팠을 거예요.

 

엘리너는 너무나 평온하고 두려움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것 같았어요. 그녀가 다시 혼수상태가 되자 간호사가, '아마 가족이 자리를 비웠을 때 그녀가 떠날 것'이라고 귀띔하더군요. 병실을 밤낮으로 지켜온 우리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어요. 그날 일과가 끝나갈 무렵 간호사들이 병실 청소를 하기로 했고 우리는 바깥 대기실로 나갔어요. 그 때 다시 병실로 들어오라고 부르더군요. 엘리너는 우리가 방을 나간 다음에 숨을 거두었어요. 그곳의 간호사들은 이런 경험을 자주 한답니다. 그럴 때면 마치 죽어가는 사람이 사랑하는 이들이 방을 나간 뒤에, 혼자서 여행을 시작하기를 원하는 것처럼 보인다는군요."

 

<320쪽>

"1953년에 할머니는 심장병으로 죽음을 앞두고 있었어요. 그래서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그들의 집에서 지내는 것보다는 나의 부모와 함께 지내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하고 우리 집으로 왔어요. 어머니는 할머니를 돌보는 일을 훌륭히 해냈습니다. 어머니는 할머니의 몸을 주물러드리고 손을 잡고 이야기를 나누곤 했어요. 할머니의 의식이 희미할 때에도 그렇게 해드리더군요.

어느날, 어머니는 할머니의 말소리를 들었어요. 할머니는 매우 분명한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어요. '글래디(할머니의 친오빠), 나도 가고 싶지만 사람들이 나를 놓아주지 않아'. 나의 어머니는 이 일을 경험이 풍부한 중년의 간호사에게 이야기하고 조언을 구했어요. '슬프더라도, 그분을 청결하고 편안하게만 해 드리고 우리 곁에 더 머물러있게 하려는 노력은 하지 말아야 해요. 그분이 떠나기를 원하니까요.' 어머니는 그 뜻을 받아들였고, 할머니는 매우 편안한 모습으로 세상을 떠났어요."


죽어가는 사람에게 '죽음'에 대해 이야기해야 할까? 환자들의 입장을 살피되, 그들이 그 이야기를 나누고자 하는 눈치면 쉽게 털어놓을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적어도 그 문제를 회피하는 일 만큼은 하지 말아야 한다.

심리학자 마리 드 엔젤Marie de Hennezel의 말이다. 

"죽어가는 사람에게 가장 나쁜 것은 자신의 죽음에 대해 말할 수 없을 때의 외로움입니다. 떠날 날이 다가오고 있는데도 죽음과 그에 따른 자신의 느낌들을 공유할 수 없을 때, 신체적 고통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적어도 통증에 대해서만큼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테니까요."

 

마리 드 엔젤은 죽어가는 사람은 대체로 자신의 죽음을 알고 있지만 가족들의 절망 때문에 말을 꺼내기 어렵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필요한 도움은 그 '앎'을 명료하게 표현할 수 있도록 돕는 일 뿐이다. 그녀의 표현을 빌리자면, 환자가 '나 죽어가고 있어'라고 말할 수 있는 순간, 죽음의 희생자가 아니라 죽음의 주인공이 된다.

 

엔젤은 미테랑 대통령이 죽기 직전에 그와 대화를 나누었다. 삶의 의지가 의사들의 소견을 이길 때가 종종 있고, 본인 스스로 죽음의 접근을 잘 알 수 있으며, 마지막까지 완전하게 살아있을 수 있음을 설명했다. 

"죽음이 오기 전에 죽음을 시작해서는 안됩니다."

"사람이 스스로 자신을 '죽음의 두 팔'에  내맡기도록 허용하는 것은 신앙이 아니라, 살아온 모습이랍니다."

그녀는 그에게 절대평온 속에서 죽음을 맞은 한 여성의 말을 들려주었다. '나는 신앙은 없지만 호기심이 많아서 다음에 어떤 일이 벌어질 지 몹시 궁금합니다'.

 

<334쪽>

버지니아 대학의 브루스 그레이슨Bruce Greyson 은 죽음에서 살아돌아온 사람들에게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진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핌 반 롬멜Pim Van Lommel은 심장박동이 정지되었다가 깨어난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 결과, 비록 근사체험을 한 사람은 10%에 불과했지만 그들 모두에게서 죽음의 공포가 크게 줄어들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죽음의 자리에서 환영을 보는 사람들에게도 같은 현상이 나타나는 것 같다.

 

죽음을 직면했던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변화는 '지금'을 사는 방식을 바꿔놓는다는 것이다. 삶에 집착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삶을 소중히 여기고, 하루하루를 마치 인생의 마지막 날처럼 소중하게 보내는 것이다. 근사체험자 엘리자베스 로저스의 말이다.
"요즘엔 하루하루가 선물처럼 느껴져요. 물질적인 것들은 덜 중요하게 되었어요. 지금은 죽는 그날까지 평화와 기쁨을 기대하고 있어요. 그 경험이 있기 전에도 나는 죽는 것이 그다지 무섭지는 않았지만 지금은 죽는 것이 기대됩니다. 그건 전혀 두려운 것이 아니에요. 최근에 누군가가, 지금 당장 죽는다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묻더군요. 그래서 나는 '지금 이 순간이 너무 사랑스럽다는 말을 할 것 같다'고 대답했어요."

 

 

 

posted by mooncle
2023. 5. 11. 21:57 책에서 발췌

 

 

 

<134쪽>
우연히 초기에 암이 발견되는 경우도 있다. 다행스러운 일일까? 설령 초기에 암세포를 떼어냈다 해도 그 후 일정기간마다 고통이 따르는 검사를 되풀이해야 하고, 무사히 5년이 지나가도 재발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살아야 한다. 조금이라도 몸에 이상이 생기면 '혹시?'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칠 테니 그 스트레스는 이만저만이 아니다. 거기에서 벗어나기란 결코 쉽지 않다. 

그렇다면 평소에 암 검진이나 정밀검사를 가까이 하지 않는 경우는 어떨까? 다들 암에 걸리면 아프다고 하는데 어째서 좀 더 일찍 알아채지 못하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간혹 아무 증상 없이 잘 지내다가 '몸이 마르면서 안색도 나빠 주변사람들이 보다 못해 검사를 받게 했더니 이미 손쓸 시기를 놓친 암이었다'는 식의 이야기를 듣곤 한다. 거듭 말하지만 '왜 그 지경이 되도록 병원을 찾지 않았을까?' 대답은 간단하다. 아프지 않았기 때문이다. 얼핏 '때늦은 발견'이란 대단히 불행한 일 같지만 생각해 보라. 당사자는 그때까지는 아무 걱정없이 자유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암 치료법은 크게 수술, 방사선치료, 항암제치료로 나뉜다. 이 밖에도 면역치료, 암 백신요법, 온열요법 등이 있는데 그 어느 것도 암을 뿌리뽑지는 못한다. 당연한 얘기지만 암을 완전히 없애버릴 수 없다면 암 치료는 의미가 없다. 조금이라도 잔당이 존재하면 어느새 증식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수술과 방사선치료만이 암을 근절할 수 있는 치료법일 것이다. 하긴 항암제도 맹독이므로 암을 없애려 하면 못할 것도 없다. 다만 암이 사라지기 전에 목숨이 먼저 사라지기 때문에 실용적이지 않을 뿐이다.

 

그럼에도 의료현장에서는 항암제가 '잘 듣는다'거나 '효과 있다'라는 말이 자주 쓰인다. 도대체 그것은 어떤 의미일까? 일반적으로 항암제가 잘 듣는다는 것은 ①치유, ②연명 효과, ③증상 완화, ④암 축소라는 네 가지의 의미를 담고 있다. 그리고 항암제가 잘 듣는 것으로 인정받고 채택, 승인되는 데에는 특정한 기준이 있다.


먼저 X선 사진 등 자료 상으로 암의 크기(면적)가 절반 이하로 줄어든 기간이 4주 이상 지속되어야 하고, 항암제를 사용한 환자의 20% 이상이 그런 상태를 보여야 한다. 비록 나머지 80%의 환자가 반응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잘 듣는 약'으로 인가받을 수 있고, 의료계는 이것을 '효과가 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사정을 모르는 환자 측이 '효과가 있다'는 말을 '낫는다' 혹은 '암이 사라진다'로 받아들인다 해도 누구를 탓할 수 있을까.

 

게다가 항암제는 거의 독약이나 극약의 성격을 갖고 있어서 당연히 심한 부작용이 따른다. 암세포만 공격하는 게 아니라 정상세포와 조직까지 공격하기 때문이다. 몇 개월의 연명효과는 있을지 몰라도 부작용이 너무 심해 기진맥진 상태가 된다. 결국 항암제로 인해 괴로운 기간만 더 늘어날 뿐이라면 너무 비참하지 않은가? 연명할 수 있다해도 어떤 상태로 연명하느냐가 문제인 것이다. 

 

 

<143쪽>
79세의 노인이 피를 토하는 바람에 병원으로 실려갔다. 이미 치료시기를 놓친 위암으로 판명이 났다. 게다가 중증의 치매가 있어 가족들도 적극적인 치료를 원하지는 않았다. 입으로 음식을 조금 먹을 수 있게 되자 가족들의 희망에 따라 우리 노인요양원에 들어오게 되었다. 사실 노인요양원이 병원으로부터 말기암 환자를 인계받는 일은 거의 없다. 일반 노인복지시설에는 상근의사가 없고 야근 간호사도 없다. 우리 시설처럼 상근의사와 간호사가 24시간 365일 근무하는 시설은 소수다.

나는 그때까지 마약성 진통제를 사용하는 말기암 환자를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몰랐다. 그래서 우리는 그 환자를 받아들였다. 소생할 가망이 있지도 않았다. 그런데 새해가 밝자 놀랍게도 콜타르처럼 검기만 했던 환자의 변 색깔이 조금 옅어지기 시작했다. 한달 반쯤 지나자 변이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왔다. 곧이어 환자는 스스로 왕성하게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빈혈까지 개선되어 거의 정상치가 되어 있었다. 그 뒤로는 외출을 하는 등 여느 사람과 다름없는 생활이 8개월쯤 지속되었다. 통증은 전혀 없었다.

처음 얼마 동안은 식욕이 왕성하다가 시간이 지나자 점점 입에 달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만 손대기 시작했다. 당연히 영양 균형이 무너져 팔다리가 부어올랐다. 하지만 마지막에는 노쇠사 과정을 밟아가면서 부종은 사라졌다. 병원에서 퇴원할 때만 해도 남은 수명이 기껏해야 두세 달이라고 했지만, 결과적으로 그는 사망 직전까지 평범하게 생활하며 무려 1년 가까이 생존할 수 있었다. 의료처치는 거의 없었다. 수명을 연장했다는 사실보다, 그 환자가 고통없이 편안하게 자연사할 수 있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146쪽>
70세인 에비 씨는 식욕이 떨어지고 몸이 야위기 시작하는데다 위장 상태가 좋지 않다는 이유로 입원하였다. 검사결과, 진행성 위암으로 남은 수명은 3개월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게다가 암성 복막염도 일어나고 암에 대한 적극적인 치료의사마저 없어서 2주 만에 퇴원하여 노인요양원으로 돌아왔다.

통증은 전혀 없었다해도 암성 복막염으로 복수가 차올라 배가 심하게 부풀어 있는 상태였다. '너무 힘들어하면 아무래도 복수를 빼내야 하나...' 생각하고 있는데 환자가 의식을 잃으며 수면에 가까운 상태에 들어가 물 한방울조차 넘기지 못하게 되었다. 모처럼 편안히 잠들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링거주사나 인공호흡기로 방해하는 일은 하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에비 씨는 8일째 되는 날 더없이 평온한 모습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불룩하던 배가 푹 꺼져들면서 복수가 완전히 사라졌다.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수분이 필요하다. 따라서 살아 있는 동안에는 '더 이상 필요 없게 되는 순간까지' 몸에 있는 물을 전부 다 사용하는 것이다. 나는 우리 몸의 신비로움에 새삼 경탄했다.


103세의 후쿠이 씨는 조금 힘들다는 느낌과 함께 온몸에 황달이 와서 입원했는데 알고 보니 췌장암이었다. 담즙이 십이지장으로 가는 출구 부근을 막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담즙이 흐를 수 있도록 그 막힌 통로에 그물망 모양의 금속 튜브(스탠트Stent)를 넣는 시술을 받고 퇴원하여 요양원으로 돌아왔다. 병원 측에서는 어차피 암이 증식하면 이 그물망 모양의 튜브가 막히게 될 거라고 말했다.

하지만 후쿠이 씨는 그 후 7개월 뒤에 세상을 뜨기까지 음식을 먹는 데 별다른 이상이 없었다. 다만 밥 위주로만 먹고 반찬은 그다지 먹지 않았다. 그로 인해 영양 불균형으로 임종 2~3개월 전에는 팔다리가 부어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가끔 열이 39도까지 오른 적은 있어도 황달이 오거나 병원을 찾은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그리하여 마지막에는 자연스럽게 죽음을 기다리며 붓기도 사라지고 아무런 통증도 없이 편안히 떠날 수 있었다. 병원에서 어떤 진단, 어떤 예측을 하든 몸은 스스로 '자연스러운 죽음'을 찾는다. 

 

모리노 씨는 5년 전에 암전문병원에서 폐암진단을 받았다. 그 때 담당의사가 '연세가 여든이면 수술을 권하지 않는데, 환자분은 79세니까 수술을 합시다'라고 했다고 한다. 그 말에 의문을 갖기 시작한 모리노 씨는 우리 모임의 소문을 듣고 두세번 참석하더니, 이후로는 의료와의 연을 완전히 끊기로 결심했다. 그 후 오랫동안 아무런 통증이나 호흡곤란 증세가 없다가, 급격히 기력을 잃고 한달 정도를 앓았다. 그 때까지 4년 3개월 동안은 좋아하는 탁구를 치며 건강하게, 그야말로 평범한 생활을 거뜬히 유지했으니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는 그대로 돌아가시면 '의문사'라는 명목으로 경찰이 개입하는 성가신 일이 벌어질 수 있으니, 급히 주치의를 찾으라고 조언했다. 간신히 의사를 수소문해 찾아간 병원에서 '암에 걸리면 당연히 투병을 해야죠. 처음부터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는다는 건 말도 안됩니다. 당장 입원부터 하세요.'라는 말을 들었다. ... 모리노 씨는 어느날 오전에 사망했다. 처음에는 치료거부에 거세게 반대하던 자녀들도 나중에는 이런 '평온한 죽음'을 보여주신 것에 고마워했다고 한다.

 

 

<152쪽>
호스피스hospice'손님hospes'이란 뜻의 라틴어에서 나온 말이다. 중세시대 때 성지순례자들이 하룻밤 쉬어가던 곳이라는 의미에서 시작되어 오늘날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이하는 장소이자, 그것을 돕는 활동 전반을 가리키는 용어가 되었다. 일반적으로 호스피스는 육체적 고통을 비롯하여 정신적, 사회적, 영적 고통을 덜어주고 완화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설이지만 현재는 '통증 완화'를 중심으로 한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강렬한 육체적 통증은 인격을 무너뜨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인요양병원에서 일하면서 평균수명에 이른 70여명의 암환자를 지켜본 결과, 암에 대해 공격적인 치료를 전혀 안하는 경우 통증은 거의 없었다. 
 
죽어가는 사람이 의사에게 의지하는 것도 바람직하지는 않다. 죽고 사는 것은 인생의 문제이지, 의사가 해결해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의사는 의학공부로 의사면허를 취득한 사람이다. 특별히 인생공부를 했거나 인생수업을 받은 게 아니라는 얘기다. 게다가 젊은 의사인 경우 이렇다 할 인생 경험도 없다. 인생을 거의 다 살아낸 '베테랑'이 자식뻘 되는 의사에게 '어떻게 죽어야 하나?'라는 어려운 문제를 들이댄다는 것은 그야말로 딱하기 그지없는 노릇이다. 의사는 의사대로 짐이 너무 무거워 죽어가는 환자에게서 발길이 멀어지는 것도 전혀 무리는 아니다. 

 

 

<157쪽>
나 역시 노인요양원으로 옮겨올 당시만 해도 '말기암은 지독히 아픈 것'이라는, 이른바 의사계의 상식에 절어 있었다. 그래서 말기암 환자에게 통증이 시작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솔직히 겁이 났다. 게다가 의료적으로는 집단생활시설에 속하는 노인요양원이다 보니 이래저래 너무 힘에 부치지 않을까 염려스러웠다. 

하지만 고령자의 때를 놓친 암 관련 사례가 5건, 10건... 점점 늘어나는 동안 저절로 알게 된 사실이 있다. 처음 암을 발견할 당시에 통증이 없으면, 그 후 아무런 조치 없이 내버려 두어도 통증은 없다는 사실이다. 통증이 있다면 암은 더 빨리 발견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통증 때문에 병원을 찾는 경우는 드물고, 실제로는 피를 토하거나, 장출혈, 황달, 혈변, 체중감소나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차는 등의 이유 때문에 병원을 찾게 된다.

 

 

<163쪽>

생로병사 중 태어나는 것은 나의 의지가 아니지만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은 오로지 내 몫이다. 건강할 때 자신의 마지막 순간을 상상해 보면서 마음자세를 가다듬으라. ...... 생사일여生死一如. 삶과 죽음은 본디 하나인데 현대인들은 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 죽음을 별개로 보는 경향이 있다. 그 결과 소중한 '지금 이 순간'을 너무 소홀히 흘려보낸다. 그렇게 '끝'을 모른 채 살다가 죽음이 다가오는 순간 패닉에 빠지고 만다. 그리하여 어떻게든 명을 조금이라도 더 연장하기 위해 병원을 찾고 온갖 의료장치(심폐소생, 인공호흡기, 인공투석기, 인공영양, 수액주사...)에 매달린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늦은 뒤일 것이다.

 

 

 

 

"우리 모두에게 죽음이 찾아오리라는 사실은 누구나 안다. 

잠 잘 준비, 겨울 날 준비는 하면서 죽을 준비를 하지 않는 까닭은 무엇인가."   - 톨스토이

 

"지혜로운 사람에게는 삶 전체가 죽음에 대한 준비이다."   - 키케로

 

 

posted by mooncle
2023. 5. 11. 00:22 책에서 발췌

나카무라 신이치 지음, 신유희 옮길, 2012, 위즈덤스타일

 

 

 

<프롤로그>

노인요양병원에서 15년 가까이 근무해오는 동안 나는 수백 건의 자연사自然死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았다. 마지막 순간까지 수액주사나 산소호흡기 등 모든 의료적 간섭을 거부하고 스스로 자신의 죽음을 완성해가는 모습은, 지켜보는 이로 하여금 숭고한 느낌마저 들게 한다. 만일 이곳이 병원이었다면 그런 귀중한 체험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병원에서는 최후의 순간까지 이런저런 처치를 한다. 죽어가는 사람을 그냥 내버려둘 수가 없기에 자연사란 있을 수 없다.

 

사람들은 죽음을 고통스럽고 비참한 것으로 여기지만, 정확히 말하면 '의료가 개입된 죽음은 고통스럽고 비참한 것'이다. 암 환자조차도 의료적 개입없이 그냥 내버려두면 고통없이 평온하게 죽어간다. ... 노년기를 보다 편안하게 보내려면 의료에 지나치게 의존하지 않고 노화에 순응하며 병과 동행해야 한다. 몸이 조금만 안 좋아도 당장 의사니 약이니 병원이니 하며 법석을 떠는 사람에게 자연사란 너무나 허황된 소망일 것이다.

 

나는 유명하거나 부유한 사람이 아니라서 잃을 것도 없을 뿐더러 어차피 살 날도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두려울 게 전혀 없다. 때문에 앞길이 창창한 젊은 의사나 의료계의 고위직 인사라면 쉽게 할 수 없는 주장을 이 책에 서슴없이 펼쳐놓았다. 이것이 평생을 환자들 곁에서 살았던 한 노의사의 도리이며, 스스로 자연사를 택하여 존엄하게 생을 마무리한 수많은 노인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한다.

 

 

<55쪽>

아프리카 대초원에서 마치 나뭇잎이 떨어지듯 툭 쓰러져 죽는 사자를 생각해보자. '자연스럽게 죽는 것'은 우주적인 순리이다. 자연사自然死란 죽는 순간에 그 어떤 의료장치도 없이 몽롱하게, 기분좋고 편안한 상태로 들어간다는 뜻이다. 자연은 그리 가혹하지 않으며 우리 조상들은 모두 이렇게 '무사히' 죽어갔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죽을 때가 되면 모두들 당연하다는 듯이 병원을 찾게 되었고, 갖은 방법으로 어떻게든 수명을 연장하는 것이 병원의 사명처럼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 현장은 처절하기 그지없다.

더 이상 먹을 수 없게 된 사람에게 콧속으로 튜브를 삽입해 위까지 연결하거나(비강영양), 위에 구멍을 뚫어 직접 관을 삽입하여 식사를 돕는 시술(위루술)로 영양을 공급한다. 탈수증세가 있으면 링거주사로 수분을 계속 넣어주기 바쁘다. 빈혈에는 수혈을, 소변이 나오지 않으면 이뇨제를, 혈압이 떨어지면 승압제를 쓴다. 그러나 이 모든 행위가 결국 자연이 마련해 준 최후의 선물 즉, 불안도 적막감도 느껴지지 않는 행복하고 몽롱한 분위기 속에서 낙엽처럼 하늘하늘 죽어갈 수 있는 그 마지막 과정을 완전히 빼앗아 간다.

2011년 2월, 일본노년의학회에서 의사들을 대상으로 스스로 음식물을 섭취하지 못하는 85세의 알츠하이머 말기 환자를 어떻게 조치할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조사를 실시한 바 있다. 설문에 응한 1,554 명 가운데 '모든 것을 삼가고 아무 조치도 하지 않겠다'는 사람은 10%에 불과하고, 위관영양 21%, 비강영양 13%, 끝으로 팔다리에 수액주사를 놓는다'가 51%로 과반수를 차지했다. 이때 팔다리 수액주사의 경우 환자에게 의학적으로 필요하다'라는 의견이 놀랍게도 38%나 되었다. 

다 죽어가는 식물에 비료를 줘야 할까? 비료를 준다 해도 어차피 흡수하지 못하기 때문에 식물에 해가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인간의 경우는 다르다. 다른 경로를 통해 비료를 몸속에 억지로 집어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죽어가는 사람에게 그것이 얼마나 큰 고통과 부담을 안겨주는 짓인지 상상해 보라. 언젠가 동년배 장의사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옛날엔 노인들이 바짝 시든 상태로 죽었기 때문에 납관 작업이 수월했지. 헌데 요즘처럼 병원에서 죽은 시신은 무거워서 너무 힘이 들어." 마지막 순간까지 링거를 맞고 물을 보충하기 때문에 이른바 '익사' 상태가 되었으니 무거울 수밖에.

 

나는 환자의 가족들에게 '요즘은 위루라는 강제 인공연명 장치가 있으니 가족분들끼리 잘 상의해서 결정하시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나중에 가족들로부터 원망을 듣는 등 불쾌한 소동에 휘말릴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자연사를 강요하거나 유도하지 않는다. 편안한 죽음을 맞이하지 못하는 환자에 대해서는 애석한 마음이 들지만.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슨NEJM의 편집장 인겔하임은 일찍이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질병의 80%는 의사에게 보일 필요가 없다. 의사의 진찰이 필요한 경우는 10% 남짓이며, 의사에게 보이는 바람에 오히려 더 나빠진 경우가 10%에 조금 못 미친다." 세계의 모든 의사가 들고 일어날 법한 발언 아닌가? 그런데도 이후로 아무런 반론이 없는 것을 보면 완전히 잘못된 말은 아닌 모양이다. 

 

 

<75쪽>
의학적인 관점에서 볼 때 자연사의 실체는 '기아와 탈수'의 과정을 거치며 죽는 것이다.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먹고 마시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생명력이 약해짐에 따라 음식의 필요성이 점차 사라지면서, 뇌 속에 '엔도르핀 유사체(모르핀양물질,아편양물질,아편류)'가 분비되어 기분이 좋아지고 행복감을 느끼게 된다고 한다. 탈수 역시 혈액이 농축되는 것이기 때문에 정신이 몽롱한 상태가 된다.


몸져누운 노모를 모시고 살던 아들이 어머니의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며 병원에 데려온 적이 있다. '출근하면서 어머니 머리맡에 마실 물과 주먹밥을 놔두고 갔는데 돌아와 보니 그대로더군요' 한여름 무더위에 충분히 먹고 마시지 못하다 보니 결국 사흘째가 되어 거의 의식을 잃었다. 병원에서 링거주사로 묽은 식염수를 계속 점적하여 진해진 혈액을 묽게 만들었더니 의식이 돌아왔다.

 

'어머니, 며칠동안 힘드셨죠? 아무 것도 못 드셔서...' 아들의 물음에 노모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하나도 기억이 안 나는구나.' 고통을 전혀 못 느꼈다는 것이다. 만약 그 상태로 그냥 두었다면 아무런 고통없이 세상을 떠났을 것이다.

죽음이 가까워오면 호흡도 약해진다. 호흡이 원활하지 않으면 산소결핍 상태가 되는데 이때 뇌 속에 엔도르핀 유사체가 분비된다고 알려져 있다. 유도 선수들에게 물어보면 조르기 기술에 걸렸을 때 하나같이 '기분이 좋았다'고 말한다. 엔도르핀 유사체 때문이다. 죽음은 흔히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가혹하거나 고통스럽지 않다. 그러니 귀에 대고 큰소리로 부르거나 몸을 흔든다든지 하기보다는 그냥 가만히 지켜봐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가만히 놔두는 것', 이것이 죽음을 앞둔 이에게 가장 좋은 배려이다.

 

 

<82쪽>
위루술은 예전에는 전신마취를 하는 외과수술로 위에 구멍을 만들었기 때문에 꽤 신중하게 시술하는 편이었지만 요즘은 위 내시경이 있어 15분 정도면 간단히 끝난다. 위루술이 이렇게 간편해졌다는 것은 그만큼 쉽게, 자주 실시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떤 병원에서는 가족들에게 위루관 수술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위루를 만들어도 다시 입으로 먹을 수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라고 안심시키는 경우도 있다. 그럼 가족들은 '다시 입으로 먹을 수 있을 때까지만'이라는 생각으로 수술에 동의하게 된다. 하지만 누구나 그렇게 될 수 있게 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점점 더 인간답지 못한 비참한 모습으로 변해간다.

위루관 수술을 한 지 4년 뒤에 사망한 85세 여성이 있었다. 팔다리 관절이 굳고 완전히 뒤틀린 채, 얼핏 봐선 어디가 팔이고 어디가 다리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처참했다. 그대로는 관에 넣을 수도 없고, 또 그렇다고 양팔을 묶을 수도 없었다. 이미 죽은 사람이니 아무것도 느낄 수 없겠지만, 지켜보는 사람의 마음은 어떨까.


또 다른 강제 인공영양법으로 비강영양이 있다. 최근에는 위루술이 점점 늘어나면서 상대적으로 비강영양은 줄었지만, 위루술과 달리 몸에 상처가 나지 않기 때문에 보호자들이 비교적 쉽게 동의하는 편이다. 비강영양은 코를 통해 식도나 위, 혹은 십이지장 등으로 가느다란 튜브를 넣어 미음이나 죽을 주입하는 방법이다. 코에 튜브를 삽입하면 불쾌하고 괴롭기 때문에 누구라도 틈만 나면 튜브를 잡아 빼려고 한다. 의식이 있는 경우에는 이게 왜 필요한지 설명해줄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튜브를 뽑아내지 못하도록 양팔을 묶어둘 수밖에 없다. 게다가 침이나 약물 그리고 음식물이 튜브를 타고 기도로 잘못 들어갈 수 있어 오연성 폐렴을 일으킬 수 있다. 


나는 노쇠사를 앞둔 노인에게는 원칙적으로 수액주사나 산소흡입은 실시하지 않는다. 그런 장치들은 당사자가 행복하게 죽을 수 있는 과정을 방해하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액주사 정도는 놔주길 바라는 가족들이 가끔 있다. 탈수가 시작되면 의식이 흐려지고 몽롱한 상태가 되니 나쁘지 않다고 아무리 설명을 해줘도 그들은 수액주사가 무슨 영양 덩어리라도 되는 양 그저 주사를 놔달라고 졸라댄다. 하긴 병원에서 지금껏 '영양제 주사'라는 이름 아래 수액주사가 이루어져 왔으니 오해할 만도 하다. 그래서 나는 (스포츠 음료나)미네랄 워터를 마시라고 권한다.

수액주사도 없이, 입으로 물 한 방울조차 넘기지 못하게 된 경우에는 얼마나 생존할 수 있을까? 대략 7~10일쯤이다. 배뇨는 사망하기 2~3일 전까지 이루어지고, 생존일수가 짧을 때는 사망 당일까지도 배뇨가 있을 수 있다. 물 한 방울 못 넘기는데 어떻게 소변이 나올까? 체온을 유지하고, 심장을 움직이고 호흡을 하기 위해서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바로 이 에너지 생성과정에서 물과 탄산가스가 만들어지며 이것이 소변으로 배설되는 것이다.

탈수 상태에서는 체온이 38~39.5도 정도까지 오를 수 있다. 이것은 자동차 엔진과 냉각수의 관계와 같다. 엔진을 가동하면 열이 나고, 이것을 식히기 위해 냉각수가 필요한데 만일 냉각수가 없다면 당연히 엔진이 과열될 수밖에 없다. 사람도 에너지 생산과정에서 열이 나고 이 열을 식히기 위해 물이 필요한데, 한 방울의 물도 넘기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에 냉각수 부족으로 체온이 올라가는 것이다. 이 시점에서 당사자는 새근새근 잠을 자는 상태이며 고통은 전혀 없다. 

 

프랑스에서는 노인의료의 기본을 이렇게 정의한다고 한다. 

"스스로 음식을 넘기지 못할 때 의사의 일도 끝나며, 다음은 목사의 일이다."

 

 

<97쪽>

과거 일본에서는 출산을 부정한 것으로 여기는 미신이 있어 '산옥産屋'이라는 격리된 장소에서 출산이 이루어졌다. 출산이 부정한 것이라면 그렇게 태어난 우리들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오늘날 몇 군데 남아있어 문화재로 지정된 산옥을 보면, 이런 차디찬 곳에서 어떻게 아기를 낳았을까 싶은 곳도 있고 6평 정도의 공간을 반으로 나눠 분만실과 생리실로 쓴 형태도 있다. 그런데 한가지 주목해야 할 것은 산옥 천장에 매달아 늘어뜨려져 있는 밧줄이다. (이후는 '좌위坐位'의 중요성에 대한 내용. 몸을 일으켜야 중력을 이용할 수 있고, 힘을 쓸 때 몸은 저절로 앞으로 기울어지게 되어있으므로 출산, 식사, 배변 등은 누워서 하기보다는 가능한 한 앉은 자세로 할 수 있게 도와야 한다.  ...)

 

 

<119쪽>

나는 '죽기에는 암이 최고'라는 생각을 고수하고 있다. 그 이유는 첫째, 죽어가는 과정이라는 '최고의 유산'을 남겨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 거의 모든 암환자가 병원에서 그 과정을 완전히 숨긴 채 병마와 싸우며 힘겹게 죽어가는 것은 너무도 큰 낭비인 셈이다. 둘째, 암은 비교적 마지막까지 맑은 정신으로 의사표시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암으로 인한 사망은 날짜를 비교적 확실히 특정할 수 있어서 남은 사람들에게 감사와 작별의 인사를 전하는 등의 신변정리를 제대로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암으로 인한 사망을 그다지 환영하지 않는다. 암이라고 하면 누구나 극심한 통증을 연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암이 그렇지는 않다. 아무리 지독한 암이라도 그 가운데 30%는 통증을 수반하지 않는다. 요컨대 세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은 아프지 않다는 것이다. 분명히 암인데도 통증 없이 사망한 사람들이 꽤 많다. 내가 '모임'을 시작할 무렵, 어느 산촌에서 온 참가자가 이런 말을 했다.

"가까운 일가친척 가운데 세 분이 암으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런데 세 분 모두 암을 너무 늦게 발견하는 바람에 손쓸 틈도 없이 돌아가셨죠.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의료의 손에서 벗어나 조용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었으니까요. 저는 솔직히 암이 두렵지 않습니다. 병원이 아닌 집에서, 그 흔한 항암치료도 받지 않고 평화롭게 떠나는 모습을 봤으니까요. 그런 식으로 죽을 수 있다면 암도 나쁘지 않습니다"


 

posted by moon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