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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4. 27. 19:39 책에서 발췌

 

 

 

<75쪽>

거의 언제나 환영幻影들은 환영歡迎받는 것으로 보인다. 

"할머니가 갑자기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앉더니 웃으시는 거에요. 그녀는 '난 이제 가련다. 여기 아빠와 조지가 나를 데리러 왔네.'라고 말하더군요. 그런 뒤에 그녀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조용히 숨을 거두었습니다. 나의 어머니는 그 순간을 결코 잊지 못하세요."

 

어느 간호사는 자신이 일주일에 한 번씩 방문하곤 했던 80세 여성에 관한 이야기를 다음과 같이 들려주었다. 

"그 분은 이제 점점 더 약해져서 아플 정도의 자극을 줘야 겨우 반응을 보일 만큼 상태가 악화되었어요 그녀가 세상을 떠난 이튿날 나는 그녀의 가족들을 돕기 위해 그 집을 찾았습니다. 그녀의 딸이 어머니의 마지막을 설명해 주더군요. 그 할머니는 평화롭게 누워 있다가 갑자기 똑바로 앉더니 빛을 발하는 미소를 지으며 '조, 당신이 여기까지 나를 보러 오다니 너무 고마워.'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조는 그녀의 죽은 남편이었어요. 그녀는 다시 누웠고 바로 돌아가셨다고 해요."

 

환자가 그 방문객과 이야기를 나눌 때 곁에서 지켜 본 이들에 따르면, 거의 언제나 환자는 맑은 정신이었다고 한다.

"삼촌은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솜Somme 전투의 공포를 경험했어요. 그 악몽이 평생 그를 괴롭혔습니다. 당시 삼촌은 병사들을 지휘했으나 전투에서 살아 돌아온 사람은 겨우 3명이었답니다. 삼촌 본인도 심하게 부상을 입은 상태였어요. 그는 나중에 전공십자훈장을 받았어요.

 

 그가 암으로 죽어가던 30년 쯤 전의 일입니다. 내 어머니가 집에서 그를 돌보았어요. 어머니와 내가 나란히 앉아 삼촌과 함께 조용히 이야기를 주고받던 어느 날 밤을 기억합니다. 삼촌은 너무 아파서 대화에 자주 끼지는 못했지만 그는 우리가 잡담하는 것을 듣기를 좋아했어요. 그러다 갑자기 그가 앞으로 몸을 구부리며 방 건너편을 뚫어져라. 응시하는 것이었어요.

 

그의 눈에는 분명하게 보이지만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 어떤 사람들을 향해 그가 말을 하기 시작했어요. 갑자기 힘이 펄펄 살아나며 매우 행복해하더군요. 삼촌은 그들의 이름을 일일이 부른 뒤 어떻게 지내는지 묻고, 다시 만나게 되어 너무나 감격스럽다고 말하더군요. 삼촌의 말투로 봐서 그 사람들이 솜 전투에서 죽은 전우들임에 틀림없었어요. 그의 얼굴에 경이의 표정이 나타났고 고통은 잊은 듯 했어요. 나는 그날 밤을 절대로 잊지 못할 겁니다. 삼촌의 전우들을 눈으로 보지는 못했어도 그들이 거기에 나타났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전혀 의심을 하지 않아요."

 

다프네 빌리우리는 자기 어머니가 암으로 세상을 뜨기 전 며칠 동안의 이야기를 아주 재미있게 들려주었다. 다프네는 그리스 출신이며, 그녀의 어머니가 죽은 곳도 그리스였다. 그녀의 어머니는 생애 마지막 주에 견딜 수 없는 고통에 빠져 자신의 주변과 주위 사람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죽기 3일 전에는 자신이 자라난 지방의 사투리로 말을 했다고 한다. 

"어머니는 두 남자와 말을 하면서 4시간이나 보내더군요. 어머니의 말과 어머니의 시선이 방의 두 지점을 오가는 것으로 보아서 두 사람으로 짐작했지요. 한사람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살다가 그 1년 전에 죽은 어머니의 남동생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나이가 더 많은 다른 사람이었어요. 짐작컨대 어머니의 할아버지였던 것 같아요. 그들과 대화를 하는 내내 어머니는 매우 고양되었고, 행복했으며, 정신이 극도로 맑았어요. 그 전 어느 때와도 달랐어요. 그들의 대화는 어머니가 그 사람들에게 작별인사로 손을 흔드는 것으로 끝나더군요. 내가 어머니의 정신이 맑게 돌아왔다고 생각하고 그 일에 대해 말을 하려고 시도했으나 어머니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어요. 하지만 그 이후의 며칠 동안은 어머니가 고통을 느끼지 않는 것 같아서 다행이었죠."

 

"별안간 한 줄기 찬 바람이 창문으로 들어왔어요. 그러면서 길게 드리워진 반투명 커튼이 눈에 띌 정도로 위로 펄럭였지요. 그와 동시에 아버지의 표정이 급변했어요. 그때까지 착 가라앉아 있던 표정이 이제 미소가 가득하고, 밝고, 정상으로 돌아왔어요. 그때 아버지께서 말을 하더군요. 아버지로서는 말을 하기가 무척 힘들어 보였지만 목소리만큼은 강하고 분명했어요. 이렇게 말했죠. "예, 어머니, 알겠어요. 네. 그렇게 할게요. 좋아요, 어머니." 그는 다시는 눈을 뜨지 않았어요.

 

"나의 아버지는 깊이 상심한 채 할아버지의 침대 옆에 서 있었대요. 하지만 나의 할아버지는 차분한 목소리로 나의 아버지에게 '걱정 마. 난 괜찮다. 너무도 아름다운 것을 보고 들을 수 있거든. 그러니 걱정할 게 하나도 없다.'라고 말해줬답니다. 그리고 끝까지 맑은 정신으로 계시다가 조용히 돌아가셨다고 해요."

 

J. 태너는 어머니와 함께 할머니를 방문했던 어느 날의 이야기를 묘사했다. 그날 그녀의 할머니는 태너에게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구나! 방금 내 어머니가 문간에 서 있는 것을 봤거든. 지금 널 보듯이, 멀쩡하게 보이더라니까.' 태너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할머니의 어머니는 아마 30년 전에 돌아가셨을 겁니다. 나의 할머니는 2, 3년 전보다 더 아프지도 않았으며 정신도 완전히 멀쩡했어요. 엄마가 나에게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든다'고 말하더군요. 그녀는 언제나 '우리 인간은 죽기 직전에 죽은 친지의 모습을 보게 된다'는 이야기를 들어왔거든요. 그 이튿날, 할머니는 엄청난 심장발작을 겪으시고는 의식을 잃으셨어요. 할머니는 그렇게 혼수상태로 4일 동안 지내다가 세상을 떠났어요."

 

"할아버지는 교회에 다녀온 일요일 저녁에 몸 상태가 좋지 않다면서 바로 침실로 들어가셨어요. 할머니도 차 한잔을 들고 침실로 올라갔죠. 그랬더니 할아버지께서 '우리의 마벨과 도리스'를 봤다고 말을 하시더랍니다. 마벨과 도리스는 어릴 때 죽은 그들의 자식이지요. 할아버지는 그날 밤에 돌아가셨어요."

 

'죽음의 예고' 임무를 맡은 환영과, 죽음 직전에 일어나는 환영을 명확히 구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양쪽 모두 같은 특징을 갖고 있으며, 병리학적인 영향을 받지 않는다.

"할머니는 세상을 떠나시기 몇달 전, 퇴근해서 집에 도착한 나를 붙잡고 마거릿(할머니의 친언니)이 그날 오후에 자신을 방문했다고 말해주었어요. 마거릿은 할머니의 다섯자매 중 가장 친했던 언니였지요. 할머니는 마거릿과 함께 가고 싶어했지만 마거릿이 '지금은 때가 아니기 때문에 그럴 수 없다'고 하더래요. 돌아가시던 날 밤 나의 할머니는 숨을 쉬려고 사투를 벌이고 있었어요. 그러다 갑자기 그녀의 두 눈이 활짝 뜨이고, 입가에 미소가 퍼지더군요. 사실 미소 이상이었죠. 얼굴 전체로 환한 빛을 받는 것 같았어요. 그러면서 누구를 맞이하는 듯 두 팔을 위로 올리더군요. 그 순간 이후로 할머니는 상당히 평온해지시더니 15분 후에 숨을 거뒀어요. 그때 나는 마거릿이 돌아왔다는 것을 확신했어요. 할머니가 그녀와 함께 떠날 시간이 되었던 것이죠."

 

"어머니는 세상을 떠나기 직전, 돌아가신 아버지가 흰색 말을 타고 도착하는 것을 보았다고 말했어요. 자기를 데려갈 뜻으로 왔다는 것이었지요. 그러나 어머니는 말 등에 오르지 않고 버티면서 아버지와 함께 가기를 거부했다더군요."

 

다른 몇 사람도 이런 종류의 지연 작전을 언급했다. 죽음을 앞둔 사람이 자신이 사랑하던 누군가에게 마지막 인사를 고할 수 있을 때까지 죽음을 미루는 것 같다는 보고는 매우 많다. 친척들이 모두 자기 곁을 떠난 뒤에야 죽음의 길을 출발하는 경우도 있다. 혼자서 죽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흥미롭게도 '죽음의 사자使者'가 죽음을 앞둔 사람으로부터 환영받지 못할 때도 있다. '죽음이란 두려워해야 하는 것'이라는 인간의 자연스럽고 보편적인 태도를 고려하면,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죽음의 전조를 침착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오히려 놀라운 일이 아닐까.

 

"12년 전의 일입니다. 그때까지 몇 년 동안 앓아오던 남편이 갑자기 쓰러져 병원에 입원했어요. 내가 그를 방문한 어느 날이었지요. 그 사람이 절망에 빠져 있는 것 같았어요. 몇 년 전에 돌아가신 자기 어머니를 보았다는 이유로 말입니다. 어머니가 말도 걸었다더군요. 무슨 말을 했는지 물었더니 남편은 '그냥 잘 지냈냐고 하던데?'라고 대답했어요. 그런데 남편은 어머니의 방문이 자신의 죽음을 의미한다는 걸 알았어요. 그래서 나는 남편을 위로하려고 노력했어요. 어머니가 오신 것은 남편을 돕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나도 그런 환영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고, 사후의 삶을 믿어요. 남편은 일주일 뒤에 세상을 떠났어요. 나는 시어머니가 남편이 그 영역으로 건너가는 것을 돕기 위해 왔다가, 아들이 가족들과 함께 지낼 여유시간을 조금 더 줬다고 생각합니다."

 

 

<90쪽>

우리가 받은 편지 중에는 경험이 풍부한 의료 전문가들이 보낸 것들이 많다. 사회복지사로 벨파스트의 호스피스 병동에서 말기환자들을 20년 동안 돌봐온 케이트 도넌은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환자들은 누군가에게 말을 하거나, 누군가를 잡으려고 손을 뻗거나, 단순히 누군가를 향해 미소를 짓는 것처럼 보였다. 다음 이야기는 특히 흥미롭다. 

"정신이 완벽하게 맑았던 어느 노부인이, 15살에 돌아가신 자기 어머니가 침대 끝에 서 있다고 말해주셨어요. ... 이 경험은 그녀에게 커다란 위안이 됐어요. 내가 이런 내용을 의료진에게 전하자, 그들은 '아마 약 때문일 것'이라고 일축하더군요. 그래서 나는 이 환자의 정신이 완벽하게 정상이었고, 정신혼란 증세가 전혀 없었다는 점을 강조해야 했어요. 이 분야에서 오래 일하다 보니 환자들이 약물의 영향을 받고 있는지 정도는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이런 경험에 대해 마음을 열지 않아 많이 속상해요. 그러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그런 이야기를 털어놓기를 꺼립니다. 그 노부인은 정신이 멀쩡했어요. '자네라면 나를 미치광이로 보지 않을 것 같아 이 말을 털어놓네.'라고 말했으니까요.

 

말기환자 병동에서 처음 일을 시작할 때만 해도 나는 불가지론자不可知論者였지만 이제는 그런 경험을 무시할 수 없는 입장이 되어버렸어요. 젊은 딸을 먼저 떠나보낸 어느 어머니는 자신이 보기에 딸의 영혼이 육신을 빠져나가는 것으로 여겨지던 순간을 매우 감동적으로 설명하더군요. 그녀에게는 그 순간이 너무도 생생하게 남아있었어요. 그녀는 매우 지적이고 신뢰할 만한 분이었어요."

 

'방문객'이 죽음을 앞둔 사람에게 알려주는 출발시간이 너무나 정확하게 맞아떨어지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노인들을 그들의 가정에서 돌보는 일을 했던 주디스 윌슨 부인이 보낸 편지를 소개한다.

"97세 부인의 기력이 떨어지고 있었어요. 그냥 사라지고 있었다고나 할까요? 그녀가 누군가에게 말을 하고 있었지요. 우리는 그녀가 말을 하는 모습을 볼 수는 있었지만, 거기엔 아무도 없었어요. 후에 그녀에게 누구랑 이야기했느냐고 물었더니, 6개월 전에 먼저 세상을 떠난 언니 앨리스였다더군요. 그녀는 앨리스가 내일 오후 2시 30분에 다시 올 거라고 했어요. 이튿날 내가 일을 시작한 것은 오후 2시였고요. 그래서 그녀에게 '앨리스가 여기 왔나요?'라고 물었어요. 그러자 그녀는 자신이 죽어가고 있다고 대답했어요. 오후 2시 30분이 되기 직전에 그녀가 잠깐 눈을 뜨더니 '앨리스'라는 나직한 속삭임과 함께 손을 내밀며 평화롭게 세상을 떠났어요."

또한 윌슨 부인은, 친척에게 '다음 날에는 내가 없을 테니까 방문하지 말아달라'고 말했던 부인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녀는 잠자리에서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노인의 가정을 돌며 간병하는 또 다른 의료인도 이런 일이 언제나 일어난다고 전해주었다.

 

의료인들 중에는, 자신들이 받아온 훈련 프로그램이 죽음의 과정에 나타나는 이런 측면에 대비하는 데 미흡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다. 훈련이 주로 육체적 보살핌에 치중되어 있다보니 모든 원인을 병이나 약에 돌리게 되기 때문이다. 의료인들은 환영을 경험하는 환자를 목격한다 해도 그 문제를 논의하기를 꺼린다. 조롱거리가 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저는 마음을 활짝 열어두고 있는 편이에요. 하지만 간호사 훈련을 받는 동안, 과학적으로 측량 가능하지 않다면 받아들여서는 곤란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임종의 자리에서 빛을 보았다는 사람들이 있으면 뇌 기능의 종식과 뇌세포의 죽음에 따른 화학적 환각일 것이라고 생각했지요. 그래서 사람들이 경험하는 환영에 대해 더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어요. 하지만 일련의 사례들을 보면서 저는 달라졌어요. 조사에 바탕을 둔 연구분야에서 완전히 손을 뗀 지금, 저는 다시 저의 마음이 활짝 열리고 있다는 걸 알아요. 세상의 일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거죠."

 

근사체험은, 환자의 모든 의도와 목표가 사라진 무의식 상태에서 일어나는 것 같다. 근사체험도 임종시와 마찬가지로 절대평화, 환희, 그리고 빛의 경험이 공통적으로 발견되며 '여행'의 개념이 핵심이다.

 

'일시적 죽음체험temporary death experience'의 경우에는 '임종시'에 비해 이야깃거리가 더 풍부하고, 환영의 영역도 훨씬 더 구체적이다. '일시적 죽음체험'은 시작과 중간, 마지막이 있는 여행이며 그 끝은 이 세상으로의 복귀이다. 간혹 그 여행은 '체외이탈 경험'으로 시작하며, 시커먼 터널을 지나 가끔 밝은 빛 속으로 여행을 하기도 한다. 거기서 죽은 친지나 친구 그리고 간혹 천사 같은 존재들을 만난다. 이때 그들의 역할은 우선 환자를 안심시키는 것이고, 그 다음에는 아직은 함께할 때가 아니므로 돌아가야 한다고 암시하는 것이다. 

 

임종시의 경우에는 이 세상과 또 다른 세상이 겹쳐지고, 두 세상이 동시에 경험될 수 있을 정도로 서로 녹아든다는 점이 다르다. 임종자가 두 세상을 혼동하는 경우는 무척 드물어서, 자신이 볼 수 있는 것을 다른 사람들은 볼 수 없다는 점을 늘 알고 있다.

 

죽음을 여행으로 여기는 까닭은 임종자가 자신의 죽음을 인식하지 못해서일까? 그렇지는 않은 듯 하다. 그보다 더 나은 설명은, '방문객'이 전하는 메시지가 삶의 종말이 아닌 연속성을 암시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낙관적인 메시지이다. 높은 곳으로 향하는 희망적인 여행의 가능성인 것이다. 임사체험자들이 전해주듯이 '죽음에는 두려워할 것이 하나도 없다'는 마음을 품게 하는 것이다.

 

 

posted by mooncle
2023. 4. 20. 23:54 책에서 발췌

 

 

 

<47쪽>

우리와 인터뷰한 의료인들은 '임종시臨終視' 현상을 비록 임상학적으로 정의하고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그 경험이 지극히 개인적이며 때때로 영적인 경험이라는 점에 모두 동의했다. 그들 중 몇 명은 임종시 현상이 죽음이 임박했음을 알리는 척도일 수 있으며, 환자를 이해하기 위해 그 '죽음의 언어'를 배울 필요가 있다고 느끼고 있었다. 그들은 환자가 죽은 친지들의 방문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면 마지막 순간이 가까워지고 있음을 알았다.

 

"죽은 이들이 방문하기만 하면, 저는 환자들이 이 물리적 세상에 대한 끈을 내려놓고 평화롭게 떠날 것이 확실하다는 걸 알아요."

"물리적인 세상을 버리는 한편, 그 다음에 일어날 일들에 대비하는 겁니다."

"임종에 즈음하여 환자에게 영적 변화가 일어난다고 저는 생각해요. 그들은 이렇게 말해요. '따스함을 느꼈어. 뭔가가 내 주변으로 왔고, 나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편안했어. 그걸 묘사하기는 쉽지 않지만, 그냥 다 괜챦으리라는 걸 알아.'"  

"거기에는 따스함과 평화가 있어요. 나도 그 느낌과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바버라 케인이 세세하게 들려주는 매혹적인 이야기는, 죽음을 앞둔 사람이 동시에 거주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두 개의 세계를 매우 선명하게 그리고 있다. 바버라는 90세이던 자신의 어머니가 2005년 크리스마스 무렵에 폐렴으로 죽어가면서 병원에서 보낸 마지막 날들을 묘사했다. 바버라의 어머니는 손자와 손녀를 비롯한 가족 모두에게 매우 차분하고 분명한 목소리로 말을 했으며, 정신에도 빈틈이 없었다. 그녀는 자기 손자에게 미래설계에 대해 말하면서 자기가 손자를 얼마나 자랑스럽게 여기는지, 그리고 손자가 훌륭한 배필을 만나기를 얼마나 간절히 바라는지 털어놓았다. 

 

"손자와 함께 했던 그 한시간 동안 어머니는 간간이 '사람들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는 걸 안다'는 말을 했어요. 그 사람들이 병실 밖 정원에 있다고 하셨대요. 그들이 덤불 뒤에 있었기 때문에 어머니는 그 사람들을 묘사할 수는 없었어요. 어머니는 손자에게, 그 사람들이 '자신이 쓰러질 경우'에 돕기 위해 그곳에 와 있다고, 자신이 병실에서 남편도 봤다고, 자기는 아무렇지도 않다고 말했다더군요. 그러자 제 아들이 할머니의 몸에 부착된 의료기계를 확인했는데 전혀 이상이 없었답니다.

 

손녀인 제 딸이 도착했을 때도, 어머니가 '그 사람들'을 다시 언급했을 때에도 그녀의 심장과 산소 수치는 변동을 보이지 않았어요. 그러다가 '그 사람들'이 병실 창문 안으로 들어섰다고 말씀하시면서 어머니는 차분한 표정으로, 지금은 손녀가 그들을 보지 못하겠지만 언젠가 때가 되면 이해할 거라고 설명하셨다고 해요. 어머니는 '그 사람들'에게 차분히 손을 흔들어 보이며 손녀에게 그들을 소개했어요. 마치 그 사람들이 제 딸에게 말을 걸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 뒤에 어머니는 크리스마스와 다른 일상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더군요.

 

한시간 뒤에는 제가 병원을 찾아 딸과 합류했습니다. 우리 둘은 나란히 앉아 어머니와 잡담을 했어요. 어머니는 나의 삶에 대해 말했어요. 많은 과거 상황들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계셨지요. 나의 미래에 대해서도 말했어요. 이야기 중간중간에, 이젠 침대 가장자리까지 다가와 있는 그 사람들에 대한 언급이 있었어요. 어머니는 내일이면 자신이 이곳에 없을 거라면서 '내가 쓰러지면 '그 사람들'이 나를 일으켜 여행을 안내할 것'이라고 설명했어요. 그 말에 우리는 약간 움찔했지만 어머니는 지극히 태연하더군요."

 

그날 오후 5시쯤 '그 사람들'은 바버라 어머니의 침대 위에, 손녀 바로 곁에 걸터앉아 있었다. 이제 바버라의 어머니는 그 사람들과 가족들을 상대로 3자간 대화를 했다. 그러다 그녀는 손녀에게 크리스마스 이브이니 병실을 나가 마음껏 놀라고 말했다. 손녀는 병실을 나갔지만, 사실은 주차장에서 바버라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제가 다시 도착한 것은 45분쯤 뒤였어요. 딸과 함께 병실로 들어갔어요. 침대 주변에 커튼이 드리워져 있었어요. 우리는 모니터를 보았죠. 혈압이 대단히 높더군요. 심장발작이었죠. 우리는 곧장 간호사실로 갔어요. 간호사들도 의사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우리는 다시 병실로 갔고, 간호사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깨워보려고 하더군요. 그러자 어머니가 두 눈을 떴어요. 하지만 진짜로 보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어요. 그런 상태에서 어머니는 "멋진 인생이었어."라고 말한 뒤 눈을 감으시더군요. 전화로 남편과 아들을 불렀어요. 어머니가 크리스마스 이브 9시 55분에 평화롭게 세상을 떠나는 모습을 우리는 침대 옆에서 지켜보았습니다.

 

어머니의 평온한 모습과 죽음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그녀의 자각에 우리 모두 큰 위안을 얻었어요. 그 모든 일에도 어머니가 평화로운 모습을 지킬 수 있다는 사실은 정말 다행이었지요. 죽어가는 사람이 환각을 일으키는 데는 의학적인 이유가 있다고 우리 모두 생각하고 있어요. 뇌 손상이나 약물 혹은 혈액 중 특정 성분의 부족 등이 원인이 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어머니의 경우에는 지극히 정상적으로 대화를 하는 중에 그런 환영이 나타났다는 사실은 너무 이상하지 않아요? 그리고 어머니가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는 죽음을 그렇게 선명하게 알고 있었다는 점도 정말 이상해요. 어머니는 숨이 끊어지던 시점에는 이미 그곳에 있지 않았을지도 몰라요."

 

이 이야기에서는 죽음이 가까이 다가올수록 '그 사람들'도 점점 더 가까워진다는 점이 참으로 흥미롭다. 처음에는 정원 덤불에 있다가, 마지막에는 그녀의 침대에 걸터앉지 않던가. 그리고 그녀가 가족과 완벽히 이성적인 대화를 나누고 있던 그 '진짜 세계'는 그녀가 그 사람들과 소통하던 '다른 세계'와 완벽하게 어우러지지 않는가. 그녀는 서로 나란히 존재하는 두 세계를 완벽하게 구분할 수 있었고, 자기만이 그 사람들을 볼 수 있지만 다른 이들도 때가 되면 그걸 이해하게 되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방문객들로부터 상당히 믿을만한 정보를 받았던 것이 분명하다. 그녀가 내일 아침이면 마침내 이곳을 떠나 그들과 함께 여행길에 오를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63쪽>
우리의 연구에서  종교적 인물이 환영으로 나타나는 경우는 겨우 2%에 지나지 않았고, 가까운 친지가 환영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70%였다. 낯선 사람이 나타나는 경우는 무척 드물었으며, 설령 나타난다 해도 거기 있는 다른 동행자에 의해 '그 사람이 오래 전에 죽어서 얼굴을 못 알아보는 것'이라는 소개가 따랐다. 우리의 연구에서는 살아있는 사람이 환영으로 나타났다는 케이스가 하나도 없었다.

 

크리스 앨콕의 아버지와 같은 경우에는 마지막 떠남을 늦추기 위해 천사와 협상을 벌이는 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그때 앨콕은 죽음을 맞이하고 있던 아버지를 만나러 스코틀랜드에서 글루체스터로 자동차를 몰고 있었다. 그러나 도중에 자동차가 고장이 나버렸고, 그의 여동생이 아버지에게 오빠가 늦어지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여동생이 병실 밖에서, 아버지가 병실 안의 누군가에게 심사가 뒤틀린 목소리로 말을 하는 소리를 들었대요. 그래서 자기 아이들이 병실에 들어가서 아버지를 귀찮게 했나 싶어 안으로 들어갔답니다. 침대에는 아버지밖에 없었대요. 그래서 동생이 아버지에게 누구와 말을 하고 있는지 물었는데, 아버지께서 '천사들에게 아직 떠날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말했지.'라고 대답했답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나를 볼 때까지는 살아 있기로 작정한 것이지요."

 

어떤 사람은 나이가 많은 자기 숙모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평생토록 죽음은 모든 것의 끝이라는 믿음을 굳게 지켰던 분이었다고 한다. 그들은 생전에 그런 믿음을 놓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이야기를 들려준 사람 자신은 죽음의 종말성에 대해 언제나 회의적인 시각을 갖고 있었기에 그런 논쟁은 늘 뜨겁게 진행되었다. 그러던 그녀가 죽음을 맞이하는 자리에서 조카와 단 둘이서 잠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지 물었다고 한다. 그녀는 조카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버트, 결국 너의 말이 옳았어."

 

33년 동안이나 환자를 간호해 온 까닭에 그런 환영과는 매우 친숙한 주디 휘트모어는, 자신이 간호했던 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사후세계라는 건 절대로 없다는 관점을 가진 친구를 간호하고 있었어요. 그녀는 마지막 2시간 동안 아주 평온하게 주기적으로 깨어나서, 분명하고 기쁜 목소리로 '나는 곧 알게 될 거야', '좋아. 이제 갈 준비가 됐어', '정말 아름다워'라는 말을 하더군요. 그녀는 이런 말을 툭툭 던진 뒤에는 곧바로 무의식 상태로 빠져들었어요. 그녀는 매우 만족하고 행복하고 평화로웠어요. 그것은 그녀의 파트너와 나에게 너무나 경이로운 경험이었습니다."

 

이반 마틴의 아내는 죽기 한 달 전쯤에 남편에게 자기 어머니를 보았다는 말을 자주 했다. 그런데 침대 발치에 나타나는 그녀의 어머니는 매우 말쑥하게 차려입은 젊은 여인의 모습이었다고 한다.

"당신, 꿈을 꾸고 있지 않은 게 분명해?"라고 내가 물었어요. 그랬더니 아내한테서 "나도 실제로 보는 것과 꿈 정도는 구별할 줄 알아."라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아내는 매우 행복해 보였고 말을 조금 더 하려는 듯 했어요. 나는 그 경험이 아내를 특별히 평온하게 만든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요. 저는 이 모든 일에 초월적인 어떤 힘을 부여하고 싶지는 않아요. 그런 일에는 내가 특히 냉소적이거든요. 나는 무신론자입니다. 사람의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것 그 이상의 무엇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머릿속에 있는 것이 우리 인간존재의 모든 것이잖아요. 사람이 죽으면 거기에는 더 이상 아무 것도 없게 되지요."

 

나의 환자 중에서 뇌종양으로 죽은 어느 환자의 아내는 자기 남편의 마지막 순간을 이렇게 설명했다.

"남편은 무의식에 빠져들고 있었어요. 내가 보기에도, 그 사람은 자기 앞의 어딘가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어요. 얼굴에는 누군가를 알아볼 때 짓는 미소가 서서히 퍼지더군요 마치 누군가를 맞이하는 것 같았어요. 그런 뒤에 남편은 편안하게 자세를 풀고는 세상을 떠났어요."

 

"나는 어머니의 눈이 활짝 열렸다는 걸 알았어요. 그 순간 어머니가 깨어났다는 생각에 황급히 침대 옆으로 갔어요. 어머니는 자기 앞의 한 점을 응시하고 있었어요. 대충 천장과 벽이 만나는 지점이었어요. 나는 어머니 위로 머리를 숙이며 어머니가 나와 눈을 맞추는지 확인했어요. 그래도 어머니는 여전히 나의 뒤 어딘가를 뚫어져라 보고 있었어요. 그래서 제가 "지금 어머니를 보고 있는 사람이 누구예요?"라고 물었어요. 대답을 기대했던 건 아니었고 문득 어머니가 자신을 만나러 온 누군가를 바라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 남동생은 폐기종으로 죽어가고 있었어요. 동생은 숨을 쉬는 것이 무척 힘겨워 보였어요. 그러다 숨쉬는 소리가 멈추는 것 같더니 갑자기 호흡이 정상으로 보였습니다. 동생은 45도 정도 위를 보면서 환하게 웃더군요. 마치 어떤 물건이나 사람을 바라보듯이 말입니다. 그러다 동생이 내 쪽으로 몸을 돌리더니 나의 팔에 안겨 갑자기 숨을 거두었어요. 오늘까지도 나는 그때 동생이 자신이 본 것을 나에게 말하려고 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어요. 그가 죽기 전 몇 초는 아마 영원히 나와 함께 할 겁니다. 너무나 강렬한 순간이었어요."

 

"그녀의 눈이 활짝 열리고 계속해서 똑같은 지점을 응시하고 있었어요. 한 12분 정도 그렇게 지속되었을 겁니다. 나는 담당 간호사를 불렀어요. 그 간호사가 다른 가족에게도 연락을 해야겠다고 하더군요. 아내와 내가 어머니를 내려다보고 있는데, 어머니의 호흡이 점점 가늘어지더군요. 그녀는 두 눈을 감았고 몇 초 뒤에 숨을 거두었어요."

 

간호사 힐러리 프루드가 들려준 이야기다.

"나는 동료 간호사와 함께 어떤 환자를 돌보고 있었어요. 새벽 4시쯤 되었던 것 같아요. 그 남자환자가 우리 두사람에게 자기 침대 옆에 서 달라고 부탁하더군요. 자신을 돌봐준 우리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기를 원했던 것이지요. 그런 뒤에 그 사람이 나의 어깨 너머로 창을 바라보면서 "잠시만 기다려. 조금 있으면 당신과 함께 갈 수 있어. 이 간호사들에게 나를 돌봐준 데 대해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은 것 뿐이야."라고 말하더군요. 그 환자는 몇 번 더 그 말을 되뇌이다가 세상을 떠났어요."

 

심각한 심장발작 후 2주 동안 혼수상태였던 사람의 이야기다. 그의 몸 절반이 마비되었고 볼 수도, 말할 수도 없었다. 그의 유일한 움직임은 머리와 눈, 왼쪽 팔과 왼쪽 다리 뿐이었다.

"그 사람이 죽기 4, 5일 전에 어떤 마지막 모임이 있었던 게 틀림없어요. 끝에는 그 사람이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의 손을 매우 그럴듯하게 잡고 악수를 하더군요. 적어도 세 사람은 되는 것 같았죠. 그는 마지막 사람의 손을 잡으려고 했어요. 그러다 보니 그의 손이 내쪽으로 아주 가까워졌어요. 그때 침대 옆에 앉아 있던 내가 허공으로 손을 내밀었지요. 그가 악수를 하려는 듯 나의 손을 움켜쥐더군요. 그러다 금방 내 손이 자기가 원하던 손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나봐요. 매우 강하게 나의 손을 뿌리쳤으니까요. 그러면서 그는 나를 째려보면서 '어디 감히!'라고 말하고는 자신이 원하는 사람의 손을 잡는 일로 돌아갔어요.

 

그가 가슴 뭉클한 작별인사를 한 것은 그 다음 날이었습니다. 그가 어렵게 나의 머리를 끌어당겨 자신의 머리와 어깨 사이에 붙이더군요. 그러면서 너무나 경이로운 포옹을 하면서 입을 맞추었어요. 육체적으로 거의 움직이지 못할 뿐 아니라 보지도 못하고 말도 못했던 남자였는데! 저는 너무나 감동한 나머지 말문이 다 막혔어요. 그리고 사흘 뒤 그 사람은 혼수상태로 빠져들었어요. 마지막 숨을 내쉴 때에는 머리를 창문 쪽으로 돌리더니 서서히 두 눈을 뜨더군요. 눈빛은 내가 그때까지 본 것 중에서 가장 예리하게 빛나는 푸른색이었어요. 그리고 몇초 뒤에 눈빛이 서서히 정상으로 돌아가더니 다시 두 눈을 서서히 감더군요."

 

테레사 위첼로가 죽어가던 자기 어머니를 지켜본 경험도 비슷했다.

"어머니가 암으로 앓아누웠을 때 나는 여동생과 함께 집에서 간호했어요.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기 이틀 전의 일입니다. 어머니가 침대 아래쪽의 벽으로 눈길을 주더니 우리에게 매우 분명한 목소리로 말했어요. '얘들아, 아빠한테 손을 흔들어 줘. 아빠가 우리에게 작별인사로 손을 흔들고 있잖아.'라고요. 우리 아버지는 6주 전에 돌아가셨어요. 여동생과 나는 그 전에 이런 이야기를 들었던 터라 눈에 보이지도 않는 아버지 쪽으로 손을 흔들면서 '잘 가요, 아빠.'라고 인사까지 했지요. 그런 뒤에 어머니는 서서히 무의식 상태로 빠져들었다가 죽을 때까지 우리에게 한마디도 하지 못했어요."

 

"우리 모두는 아버지의 침대 옆에 둘러서서 그의 손을 잡거나 팔을 주무르면서 가족의 사랑을 표현하고 있었어요. 그때 나는 침대 끄트머리에 서 있었어요. 문이 있는 쪽이었어요. 아버지께서 손짓으로 나를 부르더군요. 그래서 아버지 곁으로 갔어요. 그런데 아버지께서 제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씀을 하시더군요. 아버지는 침대 발치에 있는 문을 계속 응시하시면서 다시 한번 누군가를 불러들이려는 듯 문 쪽으로 손짓을 했어요. 그때는 아버지께서 완전히 평온한 상태였습니다. 호흡이 점점 더 얕고 느려지더니 끝내는 세상을 떠나시더군요. 그때도 여전히 아버지의 시선은 문을 가리키고 있었어요. 지금도 우리들은 아버지가 모두에게 작별인사를 하기 위해 기다렸으며, 그의 어머니와 아버지, 형제들이 아버지를 위해 그곳에 나타났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레이철 스캐롯의 아버지는 암에 걸렸고, 마지막 몇 주 동안에는 병세가 너무나 악화되어 도저히 집에서 돌볼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 그래서 그는 말기환자들을 위한 요양원으로 옮겨졌다.

"내가 아버지의 방으로 들어갔더니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있는 여자가 누구냐고 묻더군요. 나는 아버지에게 내 옆에는 아무도 없다고 대답했어요. 처음에는 아버지가 약을 많이 드신 탓에 허깨비를 보았다고 생각했어요. 그날 오후에 동생과 나란히 앉아있는데 아버지가 일으켜 앉혀달라는 겁니다. 아버지는 며칠 동안 말을 많이 하지 않았지만 그때는 돌아가는 상황을 정확히 알고 있는 것 같았어요. 불편하시냐고 물었는데 아니라고 하시면서, 그 여자가 자기 주위를 걷게 할 필요가 있다고 하시더군요. 아버지는 기대 앉은 채로 그 '여자'가 괜찮은지 보려는 듯 계속 머리를 돌리려고 했어요. 내가 아버지에게 그 여자는 세상을 편안하게 떠났으며 모든 것이 잘 처리되었다고 말씀드렸죠. 아버지는 이튿날 아침에 돌아가셨어요.

 

동생과 나는 몇 시간 동안 그 일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어요. 그러다 내가 동생에게 혹시 그 여자가 우리 어머니가 아닐까 하고 물어봤어요. 매우 현실적이었던 동생이 자기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대답하더군요. 우리 어머니는 알츠하이머병으로 6년 전에 돌아가셨고, 그때까지 아버지가 7년 동안 어머니를 간호하셨죠. 저도 그렇게 믿고 싶어요. 두 분이 건강을 되찾아 다시 함께 살고 있다고 말입니다."

 

 

 

posted by mooncle
2023. 4. 19. 00:24 책에서 발췌

피터 펜윅·엘리자베스 펜윅 지음, 정명진 옮김, 부글북스, 2008

 

 

 

<26쪽>

환영幻影에 대한 연구를 최초로 실시한 사람들은 19세기 말 심령연구자들인 에드먼드 거니Edmund Gurney와 프레데릭 윌리엄 헨리 마이어스Frederic William Henry Myers, 프랭크 포드모어Frank Podmore였다. 1886년에 처음 출판된 이들의 책 [살아있는 사람들의 환영들Phantasms of the Living]은 비상한 경험들을 모아놓은 아주 재미있는 책이다. 나는 그 중에서도 앨피리드 피치 장군에 관한 이야기를 특히 좋아한다. 

 

인도에 머물던 피치는 어느 날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나다가 옛 친구를 보았는데, 그 순간 '급한 일이 있어서 기별도 없이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피치는 친구를 따뜻하게 맞이하며 베란다로 안내한 뒤에 차 한잔을 부탁했다. 피치가 친구가 있는 베란다로 갔을 때, 그 옛 친구는 사라지고 없었다. 그 집에서 그 친구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2주 뒤, 피치는 자신이 그 친구를 본 바로 그 시점에 그 친구가 600마일 떨어진 곳에서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1920년대에 들어서 환영에 대한 과학적 연구를 처음 체계적으로 시도한 인물은 더블린에 있던 '로열 칼리지 오브 사이언스'의 물리학 교수였던 윌리엄 배릿William Barrett 경이었다. 그가 그 주제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산부인과 의사이던 자기 아내의 경험이었다. 배릿 부인은 도리스라는 여인의 출산을 돕기 위해 수술실로 들어갔다. 아이는 건강하게 태어났으나 도리스는 출혈로 죽어가고 있었다. 배릿 부인은 도리스가 누워 죽어가면서 어떤 식으로 환영을 보기 시작했는지를 묘사했다.

별안간 그녀가 수술실의 한쪽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상냥한 미소가 그녀의 몸 전체에서 피어 올랐다. 그녀가 "오, 정말 사랑스럽네."라고 말했다. 무엇을 보고 있는지 묻자 그녀는 "사랑스런 빛, 경이로운 존재들."이라고 대답했다. 조금 뒤 그녀는 이렇게 외쳤다. "아니, 아버지잖아! 아, 내가 온다고 너무 반가워하시네. 너무나 기뻐하셔. 이제 남편만 오면 모든 게 완벽한데." 도리스는 아버지에게 "제가 가고 있어요."라고 말한 뒤에 배럿 부인을 향해 "아버지가 정말 가까이 계셔요."라고 덧붙였다. 그러고 나서 도리스는 다소 당혹스런 표정을 지으며 "아버지가 비다와 같이 있어요. 비다가 아버지하고 같이 있어요."라고 말했다.


윌리엄이 그 이야기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도록 만든 것은 그녀의 마지막 말이었다. 비다는 도리스의 동생이었다. 두 사람은 아주 친하게 지냈다. 실제로는 비다가 3주 전에 세상을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도리스의 예민한 몸 상태 때문에 가족들이 그 사실을 그녀에게 알려주지 않고 있던 터였다. 그럼에도 동생이 이미 죽은 아버지와 동행한 모습을 보았다는 사실은 윌리엄에게 그것을 무의미한 것으로 지나쳐서는 안 된다는 예감을 주었다.

사실 그 사건이 너무나 강한 인상을 남겼기 때문에 그는 이와 비슷한 경험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1926년에 출간된 그의 책 [죽음의 자리에 나타나는 환영들Deathbed Visions]은 이런 경험들이 단지 뇌가 죽어가는 데 따르는 현상이 아니고, 죽어가는 사람들의 정신이 멀쩡할 때에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는 또한 죽어가는 사람의 임종을 지켜본 의료진이나 친지들이 죽어가는 환자의 환영을 함께 본 케이스도 여러 건 보고했다.

환영들에 관한 연구를 처음으로 포괄적이고 객관적으로 실시한 사람들은 칼리스 오시스Karlis Osis와 얼렌더 해럴드슨ErlendurHaraldsson이었다. 1961년에 오시스는 내과의사와 간호사 각각 5천명을 대상으로 그들이 돌본 말기환자들에게서 관찰한 환각상태에 대해 설문조사를 여러 차례 실시했다. 그 중 하나는 1961년부터 64년까지 미국에서, 다른 하나는 1972년부터 73년까지 인도에서 실시되었다. 흥미로운 부분은 환영에 나타나는 여행 동반자의 모습에 문화적 차이가 분명하다는 점이다. 미국에서의 환영은 죽은 친지와 친구였으며 종교적인 인물의 에스코트는 훨씬 드물었던 반면, 인도인들의 경험에서는 죽음의 신이 보내는 사자死者인 얌두트yamdoot같은 종교적 환영이 많았다.

내가 임종시(臨終視:임종 전에 보는 환영)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폴린 드류가 나에게 보내준, 그녀의 어머니가 죽기 전날의 묘사다.
"갑자기 어머니가 창쪽으로 눈길을 주더니 창을 뚫어져라 응시하는 것 같았어요. 그러다 어머니는 갑자기 내 쪽으로 눈길을 돌리더니 "폴린, 죽는 것을 절대로 두려워하지 마. 아름다운 빛이 보였고 나는 그 빛 쪽으로 다가서고 있었어. 그 빛이 얼마나 아름다웠던지 이렇게 다시 돌아나오기 위해서는 나 자신과 싸워야 했어."라고 말했어요.

 

이튿날 나는 집으로 돌아가면서 어머니에게 "엄마. 잘 자고 내일 봐요."라고 인사했어요. 그러나 어머니는 나를 똑바로 바라보면서 "난 내일 따위는 걱정하지 않는단다. 너도 그래야 해. 나에게 약속해."라고 말했어요. 슬프게도 그녀는 이튿날 아침에 세상을 떠났어요. 하지만 저는 어머니가 그날 마음의 평화를 주는 뭔가를 보았으며, 이제 몇 시간 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생각해요."

나는 영국 사우스햄튼 대학의 연구원인 샘 파르니아Sam Parnia 박사와 함께 심장치료센터에서 일어나는 근사체험을 연구하고 있다. 심장박동이 정지되었다가 살아난 환자들이 보고하는 경험이 주를 이룬다. 다른연구원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심장박동 정지에서 회복한 사람 중 10% 가량이 심장박동이 멈춘 동안에 근사체험을 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실제로는 이 사람들이 당시에 임상적으로 죽은 상태였기 때문에 그 경험을 '근사체험NDE;near-death experience'이라고 부르기보다는 '실제죽음체험actual death experience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적절할 것 같다.

이 '실제죽음체험'도 근사체험과 똑같은 특징을 보인다. 즉, 빛 속으로 들어가고, 보통 영국 시골의 정원처럼 보이는 어떤 영역으로 옮겨가고, 자신을 맞이했다가 간혹 돌려보내기도 하는 죽은 친지들과의 만남이 이뤄지는 것이다. 그러나 막상 죽음을 앞둔 사람의 입장에서 가장 중요하고 뜻깊은 특징은 평화와 평온이며, 강한 연민과 사랑과 빛이다. 죽음을 앞둔 사람들은 죽은 친지들과 함께 가면 자신도 죽을 것이며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안다.

내가 스코틀랜드의 한 신문과 삶의 임종시에 대해 인터뷰한 기사에 대한 반응을 통해서 나는 그런 경험에 관한 자료를 엄청 많이 모을 수 있었다. 그 인터뷰 기사에 대한 대중의 반응은 죽음 직전에 환영을 보는 현상이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으며, 환영의 종류도 매우 다양하다는 점을 확인시켜 주었다. 다음의 경험은 특별히 설득력 있다고 여겨졌다.

"1950년 무렵에 먼 친지 한 분이 인버니스의 병원에 입원했어요. 그날은 일요일이었고, 제 아버지는 존을 방문하러 나가셨다가 존이 그날 아침 시간에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그 병원의 관계자가 아버지께 존의 가까운 친지들에게 부고를 좀 전해줄 수 있는지 물었어요. 존의 여동생인 케이트와 그녀의 남편은 이스터 로스의 외진 곳에서 전화도 없이 살면서 양을 치고 있었답니다. 그래서 아버지와 나는 20마일 가량을 차로 달려가서 다시 농장까지 산을 올라갔어요. 거기서 케이트를 만났는데 대뜸 "여기까지 오신 이유를 알아요. 오빠가 세상을 떠나면서 '케이트, 케이트'라고 부르는 소리를 들었어요."라고 말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녀는 오빠의 죽음에 대해 훤히 알고 있었어요. 시간까지 병원에서 기록한 그대로 맞췄어요. 정말 신기한 경험이었지요. 세월이 흘렀지만 그 경험은 결코 잊을 수 없었고 앞으로도 잊지 못할 겁니다. 그 당시 저는 열일곱이었습니다."

간혹 이런 경험이 더 깊어지는 경우, 죽어가는 사람은 그 방문자와 함께 '중간 세계intermediate reality'까지 함께 여행할 수도 있다. 이때 죽어가는 사람은 그곳을 현실세계보다 더 현실적이라고 깨닫는다. 그 중간 세계는 빛과 사랑, 연민이 깊이 스며든 세계이다. 이 영역에서 친지들과 이방인들이 두루 보일 수 있는데 거의 모두가 포근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을 돕고, 의식의 지속성을 약속하기 위해 그곳에 와 있는 존재들이다.

한 어머니는 유방암으로 죽어가던 32세 딸의 인생 마지막 2, 3일 동안의 일을 나에게 이렇게 묘사했다.
"딸은 자기 머리 위로 시커먼 지붕과 밝은 빛을 의식했어요. 딸은 대기실 같은 곳으로 옮겨갔어요. 거기엔 존재들, 특히 딸의 할아버지가 딸을 도와주고 모든 것이 괜찮을 거라고 위로하기 위해 와 있었어요. 딸은 이 영역에 들어갔다가 나온 뒤로는 그것이 꿈이 아니었다고 굳게 믿었어요."

 

<36쪽>

죽음의 시점에 무엇인가가 육신을 떠나간다는 느낌은 많이 논의되지는 않지만, 죽음을 앞둔 사람을 돌보는 사람들과 친지들에게는 중요한 대목이고 직접 그 부분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에만 보고하는 현상이다. 그에 대한 설명은 매우 다양하다. 이 경험의 핵심은 그 현장에 있던 누군가가 죽는 사람의 육신에서 빠져 나간다고 본 것의 형태 혹은 모양이다. 드물게 죽는 사람의 발을 통해 무엇인가가 빠져나간다는 보고도 있지만 대체로는 입이나 가슴 또는 머리로 빠져나가는 것으로 보고된다.

 

육신을 빠져나간 그것이 천장으로 사라지기 전에 육신 위를 떠도는 경우도 간혹 있다. 방 안에 있던 모든 사람이 다 그 환영을 보는 것은 아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나타나며 약간의 방해에도 금방 사라져 버린다. 누군가가 그 방으로 들어오거나 말을 해도 그 환영은 쉽게 사라지고 만다. 그런 경험을 했던 이들은, 특히 그 환영이 사랑과 빛과 연결되어 있을 때 대단한 위안을 느낀다. 그 느낌은 죽음 후에도 며칠동안 이어질 수 있으며, 더 중요한 것은 그 후로도 몇 년 동안 위안거리로 남는다는 점이다.

"별안간 남편의 가슴에서 너무도 휘황한 빛이 빛나는 것이었어요. 그 빛이 위로 오를 때, 거기에는 매우 아름다운 선율과 노래 소리가 흘러나왔어요. 나의 가슴도 무한한 기쁨으로 차오르는 것 같았고, 내 심장은 이 빛과 음악과 함께 하기 위해 위로 올라가는 느낌이었어요. 그때 갑자기 어떤 손이 내
어깨를 건드리더군요. 간호사가 "참 안됐지만, 남편분이 이제 막 떠나셨어요."라고 말했어요. 그러자 빛도 보이지 않고 음악도 들리지 않더군요. 나는 홀로 뒤에 남겨졌다는 생각에 깊은 상실감을 느꼈어요."


죽어가는 사람과 정서적으로 밀접하게 연결된 누군가가, 심지어 죽어가는 사람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고 그 사람이 아프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을 때에도 그 사람의 죽음을 자각한다는 보고가 많다. 이런 경험들은 짧은 시간만 지속되며, 죽어가는 그 사람이 '방문'하는 형식을 취할 수도 있다. 아니면 별안간 그 사람이 죽었다는 확신이 들 수도 있다. 이때는 그 사람이 작별인사를 하기 위해 나타났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그런 느낌을 받는 사람은 대체로 죽음을 앞둔 사람이 평소 잘 알던 자신을 방문할 수 있는 허락을 받았다는 식으로 받아들인다.

죽음을 앞둔 사람이 나타날 때에는, 비록 그 사람이 삶을 살다가 어떤 외상을 입었다 하더라도 다시 예전의 온전한 모습으로 돌아가 있다. 말을 하는 경우는 좀처럼 없으며, 단지 자신이 죽어가고 있으며 모든 것이 괜찮다는 암시만을 준다.

"나는 침대에 누워 뒤척이고 있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깊은 시간이 아닌데도 아버지께서 침대 옆에 나타났어요. 아버지께서는 오랫동안 병을 앓고 계셨는데, 그때는 환자의 모습이 아니더군요. 삶의 전성기 때 모습으로 돌아가 계셨어요. 아버지는 아무 말씀을 하지 않으셨어요. 나는 긴 뒤척임 끝에 마침내 잠이 들었어요. 아침에 일어나서야 알았어요. 아버지께서 그 전날 밤 늦은시간에 돌아가셨고, 다음 생으로 들어가시는 길에 저를 방문할 허락을 받았다는 것을 말입니다."


죽음의 시간과 연결된 다른 '우연의 일치'는 대형 괘종시계에 관한 옛날 노래 '할아버지의 낡은 시계'에서처럼 시계가 멈추는 것이다. 동물의 행동에 이상한 점이 나타난다는 보고도 있고, 죽어가는 이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동물이나 새가 보이는 경우도 있다.

 

 

2007년 2월, 우리는 임종시가 얼마나 흔하게 일어나는지를 파악하는 한편, 이 책을 위한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사례들을 기사로 싣기로 결정한 저널리스트 대니 펜맨과 이 주제에 대해 토론했다. 그 직후에 채널4의 '리처드 앤드 주디'라는 쇼 프로그램에 초대를 받아 임종시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프로그램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방송이 나가고 2, 3주 만에 수백 통의 편지와 e메일이 쏟아졌다. 이런 일들을 몸소 겪은 사람들, 그런 경험을 한 지인의 모습을 지켜본 사람들, 가족 누군가로부터 그런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이 보내온 것이었다.

그 중에는 다른 사람들에게 그 경험을 한 번도 털어놓지 않은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도 자신과 비슷한 경험을 한다는 사실에 큰 위안을 받았다. 친구와 가족들에게 이야기를 털어놓자 미묘한 이야기들이 더 나왔다. 4천 마일이나 떨어져 살던 아버지가 죽던 순간에 갑작스레 대재난이 일어난 느낌을 받았다는 우리 딸의 친구 이야기에서부터, 어떤 친구의 숙모가 죽을 때 그녀의 무릎에 즐겨 앉던 고양이가 도저히 설명 불가능한 행동을 보이더라는 이야기까지.

우리가 받은 이야기들에서 중요한 세 가지가 거듭 확인되었다. 첫번째는 이 경험들이 당사자와 목격자 모두에게 너무나 편안하게 다가온다는 점이고, 두번째는 그 경험들이 꿈이나 바람, 상상 혹은 약물로 인한 환각이 아니라고 확신한다는 것이고, 세번째는 그런 편지를 보내온 사람들이 자신에게 강렬한 영향을 미친 그 경험에 대해 처음으로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음에 큰 위안을 느꼈다는 점이다. 시나 하든의 다음 이야기는 전형적이다. 

 

1968년, 시나의 어머니는 폐렴과 늑막염으로 이중의 고통을 받고 있었다. 최악의 상태에서 사경을 헤매던 어느 날 밤에 어머니는 침대 발치에 누군가가 서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순간 평온한 느낌이 그녀의 전신에 퍼져 나갔다. 그녀는 그 사람이 최근에 죽은 자기 아버지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가 그녀를 향해 미소를 지어보이며 손을 내밀고 있었다. 아버지를 따라가길 원한 그녀는 그와 함께 가기 위해 자신의 몸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녀의 아버지가 머리를 흔들며 딸에게 아직 세상을 떠날 때가 아니며 가족들이 그녀를 더 필요로 한다는 뜻을 전했다. 그녀는 아버지와 함께 감으로써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너무나 간절했기 때문에 큰 혼란을 느꼈다. 그러나 그는 딸에게 때가 되면 다시 와서 데려가겠다고 말했다. 시나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10년 뒤인 1978년 1월에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수술을 받은 뒤라 많이 아팠지요. 어느 날 오후 내가 어머니를 찾았을 때, 그녀는 자신이 간 뒤에 내가 해야 할 일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어요. 가족을 돌보는 방법 등에 관한 이야기였지요. 나는 어머니에게 어디로 가는지 물었어요. 그러자 어머니는 자신이 죽을 것이라고 말하더군요. 그날 오후 어머니의 가족(그녀의 어머니와 남동생과 여동생이 8년 사이에 모두 세상을 떠남) 모두가 어머니를 방문했어요. 그들은 천국에서 어머니를 맞이할 준비를 끝내놓고 있었고, 그땐 어머니가 갈 시간이었던 것이지요. 어머니의 아버지는 다시 한번 '아주 빨리' 돌아와서 딸을 데려가겠다고 약속했어요. 어머니는 자기 가족들이 반원을 그리며 서 있고, 모두가 매우 행복해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가족들과의 만남에 매우 흥분했어요.

 

제 아버지는 의사들에게 그녀의 상태에 대해서만 물었어요. 의사들은 어머니가 '호전'되고 있고, 비록 회복이 느리기는 해도 위험상황에서는 벗어났다고 대답했지요. 그러던 어머니가 이튿날 아침 이른 시간에 갑자기 돌아가셨지 뭡니까! 그 이후로 30년간 저는 종종 그때를 떠올리곤 해요. 하지만 가족들 사이에도 그 일을 놓고 진정으로 이야기를 나눴던 적은 없어요. 그 당시에 어머니께서 하신 말씀을 가족들에게 들려주었던 기억이 납니다. 아버지께서는 나의 말을 믿고 내 생각에 위안을 얻는 것 같았지만 오빠와 언니들은 도무지 믿으려 들지 않았어요. 

 

그 다음 몇 년 동안에 친한 친구 몇 사람에게도 그 이야기를 들려주었지만, 그들이 그런 경험에 약간의 의미라도 부여하려 드는 나의 정신상태가 이상한 것 아니냐는 식으로 받아들인다는 걸 느꼈어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 어머니가 겪은 두 번의 그 '생생한 꿈'이 모두 안구에까지 약물의 효과가 미쳤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더군요. 나의 솔직한 심정을 말씀드리지요. 어머니의 가족들이 그녀를 찾아왔으며, 어머니는 평화롭게 그들의 손에 이끌려 갔다고 진정으로 믿을 때도 간혹 있어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환영들' 때문에 어머니가 삶을 포기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떨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그 꿈 때문에 자신이 죽을 거라고 믿었을 수도 있으니까요."


 

posted by moonc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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