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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5. 9. 23:13 책에서 발췌

 

 

 

<154쪽>

발레리 피스비-퀴글리는 폐암 투병 중이던 아버지를 집에서 직접 간호했다. 
"두어 번 정도 아버지의 말소리를 들었고 나는 그가 나를 부른다고 생각했어요. 아버지 방으로 가서 무엇이 필요한 지 물으면 '아무것도 필요 없어. 난 네 엄마와 이야기하고 있었어.'라고 대답하곤 했어요. 아버지께서 돌아가시던 날에는 '봐라. 저기 네 엄마와 데이비드(처남)가 있네. 그들이 다시 왔군. 이제 나도 가야할 시간인 것 같아.'라고 하셨어요. 나는 아버지가 잠들고 싶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며 '좋아요, 아버지. 그냥 눈을 감으세요. 지금 주무실 수 있어요.'라고 대답했어요. 그리고 나는 그의 손을 꼭 쥐었어요. 아버지는 베개를 베고 누워서도 여전히 반대편 벽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어요. 아버지는 그렇게 숨을 한번 길게 내쉬시더니 그 길로 돌아가셨어요. 나는 이 모든 것을아버지가 복용하시던 약의 탓으로 돌렸어요.

장례식을 치른 뒤 아버지 방을 청소하다가 나는 아버지에게 드렸던 알약들을 발견했어요. 아버지께서 드시고 계시는 것으로 믿었던 그 약들이 모두 침대 밑에 있더라고요. 아버지는 약을 하나도 안 드셨던 거죠. 그 순간 아버지가 환각상태에 놓인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머리를 때렸어요. 그는 정말로 나의 어머니와 외삼촌을 보았고, 그들은 여행을 떠나는 아버지를 도우러 온 것이었죠.

잰 머스토는 암으로 죽어가던 아버지의 마지막 시기를 이렇게 들려주었다.
"아버지께서는 돌아가시기 이틀 전부터 매우 달라지셨어요. 여전히 고통과 불편을 상당히 느끼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부드러워지고, 만족감을 보이고, 미소를 짓고, 소리 내어 웃기도 했어요. 아버지께서는 자기 아버지가 함께 하고 있다고 하시더군요. 그 전에 아버지께서 자기 아버지, 그러니까 나의 할아버지에 대해 말씀하신 적은 한번도 없었어요. 그리고 14년 전에 돌아가신 아내(나의 엄마)도 방 안에 와 있다면서 이야기를 나누더군요. 그러면서 아버지는 내가 어머니를 보지 못하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어요. 저는 이런 마음상태가 약물로 인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어요. 아버지는 해열진통제인 파라세타몰 외에는 모든 약을 거부했으니까요."

 

 

<173쪽>
줄리아 반스의 이야기다.
"1960년대 우리가 학생일 때, 내 약혼자는 나이지리아에서 의사로 일하던 어머니와 멀어져서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었어요. 우리는 나의 부모님 집에서 열린 새해맞이 디너파티에 참석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그가 걷잡을 수 없이 흐느끼며 슬픔에 휩싸이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는 다른 곳으로 주의를 돌리려고 주방으로 가서 설겆이를 했지만 소용 없었어요. 그는 결국 포기하고 아버지 집으로 차를 몰았는데 집 앞에서 만난 경찰이 어머니의 사망소식을 전해줬답니다. 어머니는 그날 밤 런던 공항으로 가는 도중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죠. 그는 자기 어머니가 그날 차로 이동 중이었다는 사실조차 몰랐어요. 그는 절대로 감정적인 사람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지요. 이 이상한 에피소드는 그날 이후로 나의 인생에서 가장 난해한 사건 중 하나로 남있답니다."
그는 자기 어머니가 위험에 빠졌다고 생각할 아무런 이유가 없었고, 그런 격한 감정을 느끼면서도 어머니를 떠올리지는 않았다. 빈틈 없이 들어맞는 타이밍까지 고려할 때 단순한 '우연의 일치'로 돌리기는 어렵다.

 


<185쪽>
BBC TV의 '내일의 세계Tomorrow's World' 프로그램 PD를 맡았던 고든 토머스는 독일 암전문의 요제프 이셀스Josef Issels의 활동에 관한 다큐멘터리 필름을 찍었다. 이셀스 박사와 그의 동료들은 20년동안 말기환자 5천여명을 돌보면서 겪은 경험을 많이 들려주었다. 그 중에서 자신의 화장실 슬리퍼를 침대 근처에 놓아달라고 부탁한 한 환자의 이야기가 흥미를 끌었다. 문을 마주하는 자리였다고 한다. 그 환자는 야간 근무 간호사에게 자신이 '곧 산책을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 환자가 못 움직이는 상태로 침대에 누워 지낸다는 사실을 알고있던 간호사는 말없이 미소를 지어보였다. 이튿날 간호사는 그 환자가 죽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또 다른 사례는, 입원환자의 가족 하나가 한밤중에 병원으로 뛰어들어왔다. 그녀는 잠결에 '나는 이제 멋진 곳에 와 있기 때문에 더 이상 아프지 않다'고 말하는 환자의 말소리를 듣고 깨어나 곧장 병원으로 달려온 것이었다. 몇 시간 거리인 병원에 도착해 환자의 사망시간을 확인할 결과, 그녀가 잠에서 깨어난 것과 불과 몇 분밖에 차이가 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195쪽>
캐롤 매켄티-테일러의 어머니는 매우 심각한 심장발작에서 이제 막 회복한데다 당뇨가 있고 혈압이 높아 언제든지 다시 심장발작을 일으킬 위험을 안고 있었다.
"1998년 7월 15일에는 아무런 이유도 없이 새벽 4시에 잠에서 깨어났어요. 물을 마시거나 화장실에 가거나 할 특별한 이유가 없었는데도 말입니다. 더없이 행복한 느낌과 평화, 환희가 느껴지더군요. 그 기분이 너무 좋아서 나는 아예 잠자리에서 빠져 나왔어요. 아래층으로 내려가 잠시 하늘을 내다보았지요. 그런 뒤에 다시 잠자리에 들었다가 오전 6시에 아버지의 전화에 깨어났어요. 아버지가 병원 예약 때문에 어머니를 깨우러갔더니 어머니가 죽어 있더라고 하더군요.

그때 내 딸은 자기 남자친구와 살고 있을 때라서 나는 그날 늦게까지 딸을 보지도 않았고 당연히 그 소식도 전하지 않았어요. 내가 어머니의 사망소식을 전하자 딸이 대뜸, 아무 이유도 없이 그날 새벽 4시에 저절로 잠이 깨어지더라는 이야기를 하더군요. 이른 시간에 잠이 깼는데도 더없는 행복과 평화가 느껴졌답니다. 우리 둘 다 그것이 나의 어머니가 작별인사를 하면서 우리에게 자신은 행복하고 평화롭다는 것을 알게 한 순간이었다는 걸 알았어요."

진 웨어햄의 어머니가 암으로 서서히 죽어가고 있을 때의 일이다. 진과 그녀의 여동생은 자기 어머니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채 몇 시간동안 어머니의 침대를 지키고 있었다.
"어느날 밤에 나는 매우 강렬한 경험을 했어요. 어머니가 밤에 나에게 와서 작별인사를 하러 왔다고 속삭이는 거예요. 이튿날 그녀가 죽었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이미 나는 알고 있었어요. 그녀가 이미 나에게 말했으니까요. 여동생을 만났을 때 나는 그애도 같은 시간에 똑같은 경험을 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지요."

크리스 앨콕의 학교 친구인 키트는 1950년대 초에 젊은 육군 장교로 한국에서 복무중이었다. 어느 날 밤에 키트의 어머니와 그의 여자친구, 그리고 역시 키트에게 마음을 두고 있던 크리스 앨콕의 여동생이 각자 비슷한 꿈을 꾸었다. 키트가 그들의 꿈에 나타나 불안한 표정을 짓더니 '난 길을 잃었어.'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고 한다. 세 사람 모두 잠에서 깨어났으며, 그 경험이 너무나 생생했기 때문에 그들은 최악의 상황을 걱정했다. 뒤에 그들은 자신들의 경험이 한국에서 있었던 그의 죽음과 일치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202쪽>
"내 남편이 죽기 얼마 전에, 한 친구가 자기 동생이 죽던 시간에 동생의 유령을 봤다는 이야기를 들려줬어요. 그 이야기가 나를 무척 무섭게 만들었어요. 남편을 사랑하는 마음이 깊은 만큼 그 사람이 유령으로 나타나면 내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겁이 났어요. 그래서 남편에게 텔레파시로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유령으로는 보고 싶지 않으니 전화로 알려달라고 간청했지요. 남편은 그날 오전 일찍 세상을 떠났어요. 그 아침에 나는 잠자리에서 일어나기 직전에 나는 전화벨 소리를 듣는 꿈을 꾸었어요. 전화를 받았더니 그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더군요. 매우 쾌활하고 좋은 목소리로 '안녕'이라고 말했어요. 잠시 후에 그가 입원해 있던 호스피스 병동에서 전화로 남편의 사망소식을 전해줬어요. 이 모든 일이 이승의 삶 다음에도 뭔가 더 있음에 틀림없다는 생각을 갖게 만들었어요."

루시 그린의 아버지가 병원에서 혼수상태에 빠져 있을 때, 그녀와 그녀의 삼촌이 병상을 지키고 있었다.
"TV 화면이 완전히 먹통이 되었어요. 소리도 들리지 않았지요. 그때 간호사가 방으로 들어오면서 경보기를 누른 이유를 묻더군요. 바로 그 순간, 58세이던 나의 아버지가 마지막 숨을 거두었어요. 아무도 경보장치를 누르지 않았어요. 그런데도 간호사실에서는  경보가 울렸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조금 지나니 TV가 정상으로 돌아오더군요. 나중에 내가 간호사에게 경보장치가 울렸던 이유가 참으로 궁금하다고 했더니, 그녀는 누군가 죽을 때에는 그런 일이 곧잘 일어난다고 말하더군요. 그 일은 나로 하여금 그 누구도 이해하지 못하는 무엇인가를 받아들이도록 만들었어요."

"1970년대 초에 할머니의 남동생이 집에서 돌아가셨어요. 그 분은 우리 할머니 부부와 함께 사셨어요. 그의 침대 끝쪽 벽에는 문이 달린 낡은 시계가 걸려 있었어요. 한 100년은 된 시계였지요. 그에게까지 대대로 물려 내려 온 것이지요. 내가 아는 한, 그 시계가 움직였던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나의 할아버지 말씀으로는 죽어가던 그가 갑자기 그 시계를 가리켰다고 했어요. 시계가 오후 4시를 알렸답니다. 그 분이 세상을 떠난 바로 그 시간이었지요."

 

 

<213쪽>

동물들이 인간이 잃어버렸을지도 모르는 특별한 감각을 이용하여 정보를 얻는다는 이야기에는 새로울 것이 하나도 없다. 루퍼트 셸드레이크의 책 [주인이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을 아는 개들Dogs That Know When Their Owners Are Coming Home]을 보면 2,500건의 사례를 분석하면서 개와 고양이들이 3가지 영역에서 설명이 불가능한 행동을 보인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 텔레파시와 방향감각, 예감이 그것이다. 애완동물을 키우는 사람이면 거의 예외 없이 고양이나 개가 독심술사처럼 행동하는 예를 한두 가지는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개들은 몇 마일이나 떨어진 곳에 있는 자기 주인이 집으로 출발한 때를 정확히 아는 것처럼, 도착 시간에 맞춰 문에서 기다리는 경우가 자주 있다.

 

고양이들은 주인이 수의사에게 데려가기로 작정하는 순간 그 마음을 감지하는 능력으로 이름이 높다. 셸드레이크는 런던의 수의사 사무실 65곳을 접촉하여 애묘인들이 진료예약을 깨는 빈도를 물었다. 64곳이 그런 문제를 겪었을 뿐 아니라 일부 수의사 사무실에서는 고양이 주인한테서는 더 이상 진료예약을 받지 않는다고 밝혔다. '고양이 진료 약속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는 설명이었다. 주인이 바구니를 들고 고양이에게 접근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고양이들은 주인이 '약속이 11시 15분이니 이제 고양이를 찾아봐야겠어'하는 생각만 해도 그걸 감지하고 숨어버린다.

코끼리들은 병에 걸렸거나 죽어가거나 죽은 코끼리들에게 관심과 동정심을 보이는 것이 명백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리고 데이비드 도사David Dosa 박사가 '뉴 잉글랜드 의학저널'에 발표한 논문 [오스카라는 고양이의 하루A day in the life of Oscar the cat]를 보면 선견지명이 있는 동물의 행동이 우리를 사로잡는 매력을 알 수 있다.


로드아일랜드 주 프로비던스의 한 요양원에 살고 있는 '오스카'라는 고양이는 그곳의 거주자가 죽을 때를 정확히 알아내는 비상한능력을 갖고 있다. 어떤 환자의 죽음이 임박해지면, 거의 예외없이 오스카가 나타나 그 환자의 침대 위로 올라가서 곁에 눕는다. 이제 요양원 직원들도 오스카의 직관을 존중하기에 이르렀다.

 

오스카의 방문을 받는 환자가 있으면, 그 환자의 친척들을 부르는 것이다. 오스카는 단순히 상태가 나빠졌거나 아직 살 날이 며칠 남은 환자에게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한가지 가설은 고양이의 예리한 후각이 죽음을 맞은 사람의 신진대사에 나타나는 어떤 미묘한 변화를 탐지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그러나 고양이가 죽는 사람에게 그런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전혀 알 길이 없다.

 

앤 리델은 자기 어머니가 죽던 날 밤에 뉴펀들랜드 개가 보인 이상한 행동을 묘사한다.

"새벽 4시 30분쯤 개가 짖기 시작했어요. 평소같은 경계의 짖음이 아니라 길게 뽑는 구성진 소리였어요. 즉시 나는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걸 알았어요. 조금 있으니 병원에서 전화가 걸려오더군요."

 

 

<216쪽>

대부분의 종교적, 신비적 전통에서 '빛'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명상을 규칙적으로 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빛으로 이루어진 의식의 띠 속으로 들어간다고 말한다. 그 의식의 띠 속에는 축복과 동정심과 보편적 사랑이 가득하다. 빛은 근사체험의 두드러진 특징이며 언제나 긍정적으로 묘사된다. 따스하고, 사랑스럽고, 평화롭고, 동정적인 한편으로 강하게 끌어들인다.

"나는 아름다운 빛을 보면서 그것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어요. 나는 그 빛 속으로 들어가고 싶었어요. 너무나 평화로웠던 나머지 다시 돌아나오기 위해서 몸부림을 쳐야 했어요."

다이앤 브라운은 자기 남편이 척수에 농양이 생겼다는 진단과 함께 패혈증 진단을 받기 전날 일어난 일을 털어놓았다. 남편 앨런은 극심한 통증에 시달리다가 몇번이나 하느님에게 제발 좀 죽게 해달라고 간청했다고 한다. 그 때 그는 전형적인 임사체험을 했다. 
"갑자기 그가 그지없이 환상적인 색깔을 보기 시작했어요. 그때까지 경험한 어떤 것보다도 더 아름답다고 하더군요. 그는 붕 떠다녔고, 색깔들은 눈이 부실 정도로 밝고 하얀 빛으로 변하더랍니다. 통증은 모두 사라졌고, 구름들이 갈라지고 그 틈으로 그를 부르는 손짓이 보였다는군요. 그는 앞으로 나아갔고 안간힘을 다해 더 나아가기를 원했어요. 그에겐 나나 우리 아이들 생각은 전혀 없었어요. 그는 단지 빛 쪽으로 다가가고만 싶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어떤 녀석이 그의 등을 발로 차는 바람에' 다시 침대로 떨어졌다더군요. 그래서 그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답니다." 앨런은 살아남았다.

 

재택 돌봄서비스 경험이 많은 주디스 윌슨의 말이다.

"죽기 며칠 전에 밝은 빛을 보았다고 말하는 사람을 몇명 봤어요. 그들은 모두 그 빛이 매우 아름다웠다고 했어요. 몇몇은 그 빛 안에서 사람을 볼 수 있었다고 하더군요. 이런 사람들은 다 평화롭게 눈을 감았어요."

다른 많은 사람들도 같은 현상을 확인했다.
"삶의 종말에 가까워지자, 마이크는 잠에 빠져들었다가 다시 깨어나 매우 강한 빛을 보았다고 말했지요. 그러면서 아직은 갈 때가 아니라고 하더군요. 나의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2주 전 쯤 나에게 죽은 가족들의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그들이 그를 방문했다고요. 특히 몇 년 전에 죽은 나의 엄마와 오빠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아버지는 거기에 밝은 빛이 있었으며,그들을 보며 말도 할 수 있었어요. 잠시 떨어져 있을 때 아버지가 불러서 그의 방으로 갔더니, '저 밝은 빛 좀 봐.'라고 말하더군요. 아버지는 그 빛을 응시하며 앉아 있었어요. "저 사랑스런 빛을 좀 봐, 정말 아름답지 않니?" 그렇지만 나에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어요."

 

"갑자기 남편의 가슴에서 더없이 휘황찬란한 빛이 나오고 있었어요. 빛이 위로 들려 올라갈 때는 너무나 아름다운 선율이 흐르고 노래 소리까지 들리더군요. 나의 가슴도 무한한 기쁨으로 가득했고, 심장도 이 빛과 음악에 합류하려는 듯 위로 향하고 있었어요. 그러던 어느 순간 어떤 손이 내 어깨를 잡더군요. 간호사가 '정말 죄송해요. 그 분이 이제 막 떠나갔어요.'라고 말하더군요. 그 빛과 음악도 사라졌어요. 나는 혼자 남았다는 사실에 마음이 몹시 아팠어요."

 

"어머니는 15년 전에 돌아가셨어요. 그녀가 죽기 몇시간 전에 나는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일을 경험했어요. 아주 아름다운 빛의 원이 방을 가득 채우더군요. 너무나 아름다워 결코 잊지 못할 무엇인가가 느껴졌어요. 나는 상상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계속 눈을 비볐어요. 그래도 그건 사라지지 않고 그 자리에 있더군요. 이런 말을 들으면 내가 수면부족으로 너무 피곤한 상태였기 때문이라고 말할 사람도 있겠지요. 하지만 나는 너무나 평화로웠고 방은 따스한 오렌지색 그늘 속에서 반짝이고 있었어요. 엄마는 몇 시간 뒤에 세상을 떠났어요. 나는 그 경험을 절대로 못 잊을 거예요."

 

 

posted by mooncle
2023. 5. 3. 18:23 책에서 발췌

 

 

 

<126쪽>

"밤에 침대에 누워 자다가 깨어났어요. 아니, 적어도 내가 깨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좀 지나고보니 내가 확실히 깨어있었는지 자신할 수 없게 되더군요. 나의 시야로 한줄기 밝은 빛이 들어왔어요. 빛이 그 거울 주변과 거울 속을 비출 때 할머니의 모습이 보였어요. 할머니가 거울을 통해 나를 보고 계셨어요. 자신이 이미 죽었다고 설명하셨지만 나는 울지 않았어요. 할머니가 너무나 행복해보였거든요. 더없이 평화롭고 차분한 순간이 있었어요. 나를 둘러싸고 있는 그 빛이 담요처럼 느껴졌어요. 나와 할머니에게 거울은 특별한 의미가 있어요. 내가 어렸을 때 할머니와 나는 거울을 들여다보면서 함께 시간을 보내곤 했거든요. 할머니는 나에게 거울을 통해 본 것들과 그 중요성에 대해 묻곤 했어요. 

일어나자마자 나는 어머니에게 전화해서 꿈 이야기를 했어요. 어머니는 할머니가 편찮으시다면 연락이 왔을 거라며, 내가 걱정이 지나쳐 그런 꿈을 꿨을 것이라고 했죠. 그날 오후에 숙모가 전화로 할머니가 하루 전에 돌아가셨다고 알려주었어요. 숙모는 병이 곧 나아질 것으로 기대했고, 갑작스런 죽음에 너무 당황해서 연락이 늦었다고 설명하더군요."

티나 마이어는 런던의 가족과 떨어져 26년째 호주에서 살고 있었다. 
1991년 어느 밤이었어요. 자다가 갑자기 깨어났어요. 졸린 눈을 억지로 뜨는 그런 상태가 아니었어요. 깊은 잠을 자다가 한순간에 화들짝 깨어난 것이었지요. 두 눈을 크게 뜨니 깜깜한 방 저쪽, 내 침대 끝에서 아주 빠른 걸음으로 나에게로 다가오는 얼굴이 하나 보이더군요. 런던에서 살던 오빠의 하얀 얼굴이었어요. 꿈이나 상상은 아니었어요. 나는 남편을 깨워 당시 일어난 일들을 말해주었어요. 이어서 나는 사랑하는 오빠의 사망소식을 들었죠. 감기가 기관지 폐렴으로 악화되었다고 해요. 나는 오빠가 세상을 떠날 때 나를 생각했고 그 순간 그의 영혼이 나와 함께 했다고 믿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1993년 12월 10일 새벽 2시에 세상을 떠났어요. 그녀는 유방암 치료를 받고 있었지요. 나는 어머니가 그렇게 심각한 상태라는 말을 듣지 못했어요. 어머니는 12월 7일에 병원에 입원했어요. 12월 8일에 도셋과 내가 병원을 찾았어요. 12월 9일 밤 나는 깊은 잠을 자다가 갑자기 눈을 뜨고 벌떡 일어나 앉으며 '엄마!'하며 불렀어요. 실제로 나는 병원으로 전화를 걸려고 했지만 시간이 새벽 2시였어요. 12월 10일 아침 7시 30분에 숙모가 어머니가 돌아가신 소식을 전해줬어요. 새벽 2시였답니다. 몹시 당혹스러웠던 그 순간은 절대로 잊지 못할 거예요.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눈물이 마구 흐르네요."

"아버지는 병원에 입원해 계셨지요. 그런데 새벽 3시쯤(돌아가신 시간), 아버지가 찾아와서 잠든 나를 깨우더군요. 아버지는 나의 침대 끄트머리에 서 있었어요. 그냥 미소를 지으며 나를 내려다보셨어요. 그것은 내가 그때까지 겪어본 일 중에 가장 경이롭고 아름다운 경험이었어요. 말은 한마디도 오가지 않았어요. 나는 더없이 만족하고 행복한 느낌을 받은 기억이 납니다. 나는 그 황홀한 상태에서 다시 잠에 빠져들었어요. 이튿날 나는 잠자리에서 일어나 평소처럼 집안일을 했어요. 그 전날 밤에 있었던 일은 까마득히 잊은 채로요. 그런데 전화벨이 울렸어요. 나는 어머니의 전화라는 걸 알았어요. 어머니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나는 아버지가 간밤에 돌아가셨다고 말했어요. 어머니는 그저 놀라워할 뿐이었지요."

"포츠머스에서 해군으로 복무하던 어느 월요일 밤에 브라이튼에 살던 어머니로부터 전화를 받았어요. 암투병 중이시던 아버지께서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겼으며, 그 주를 넘기지 못할 수도 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나의 계획은 이튿날 휴가를 내서 아버지에게로 달려가는 것이었어요. 그날 밤 나는 새벽 3시 30분쯤 갑자기 잠에서 깨어 침대에 벌떡 일어나 앉게 됐어요. 이어서 내 이름을 부르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어요. 아버지를 보지는 못했지만 목소리는 분명히 들었어요. 마치 아버지가 내 방 안에 계시는 것 같았으니까요.

 

그날 밤 잠은 제대로 못잤지만, 아침에 일어나서는 평소처럼 하루를 시작했지요. 그때 당번 장교가 아버지께서 새벽 3시 30분에 돌아가셨다는 내용의 전화를 받았다며 알려주더군요. 그러나 나는 이미 알고 있었지요. 아버지가 나에게 말해줬으니까요.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나를 불렀다는 이야기를 나중에 어머니로부터 들었어요. 나는 아버지를 너무 너무 사랑하고 있어요. 그날 이후로 나는 언제나 아버지의 존재감을 강렬하게 느낍니다."

말콤 맥콜럼은 누군가가 자기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그의 아버지는 3개월 전에 심장절개 수술을 받은 상태였지만, 죽음이 임박했다고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죽음을 맞던 날 밤에 아버지는 달링턴의 자기 집에 있었어요. 그때 나는 내 가족과 함께 이웃 마을의 내 집에 있었지요. 그날 밤 나는 내 이름을 부르는 아버지의 목소리에 잠에서 깼어요. 아버지가 내 이름을 부를 때 나는 그의 영혼으로 짐작되는 무엇인가가 밤하늘로 높이 올라가는 것을 봤어요. 이튿날 평소보다 일찍 전화벨이 울렸을 때, 나는 아내에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하는 어머니의 전화'라고 말해줄 수 있었어요."

앵기 베어드의 아기는 1979년 5월에 태어났지만 불행하게도 혈액질환을 앓아 출생하던 순간부터 병원에서 지내야 했다. 그 아이는 48시간 동안 힘들게 버텼고, 의사들도 최악의 상태는 벗어났다고 낙관했다.
"나의 침대는 간호사 대기실과 정반대 쪽에 있었어요. 3일째가 되던 날 새벽 3시에 나는 느닷없이 몸을 벌벌 떨고 눈물을 흘리면서 잠에서 깨어나, 간호사를 불러 바로 위층의 아기를 보러 가도 되는지 물었어요. 나는 결코 억지를 부리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때는 당장 그곳으로 올라가야한다는 예감이 너무나 강했어요. 간호사는 너무 이른 시간이라면서 당직실에 문의하겠다고 하더군요. 당직실의 전화는 통화중이었어요. 5분 정도 지나서 간호사실의 전화가 울리더군요. 당직실의 전화가 통화중이었던 건 당직실 직원이 아기가 죽었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전하려고 수화기를 들었기 때문이었죠. 정확히 새벽 3시에! 내가 그 새벽 3시에 느꼈던 기분은 너무나 강렬했어요. 나는 단지 뭔가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것은 인연을 맺은 시간이 제아무리 짧아도 어머니와의 끈은 매우 깊이 매여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예이지요."

우리가 들은 거의 모든 경험에서, 그런 접촉을 주도하는 것으로 보이는 쪽은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인 것이 매우 명백하다. 하지만 태어난 지 겨우 이틀 밖에 되지 않은 아기가 어른들이나 할 법한 그런 경험을 주도한다고 할 수 있을까. 갓 태어난 아기와 어머니 사이를 연결하는 그 끈은, 어머니와 떨어져 있어도 둘 사이를 단단하게 연결하고 있는 것일까?

앤젤리나 클레멘츠의 꿈 이야기는 텔레파시보다는 투시력의 범주에 더 가까운 것처럼 보인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그녀의 딸이 자동차 사고로 죽던 날 아침 6시 11분에 아직 침실에 누워있던 앤젤리나의 눈에 온실 같은 것이 하늘로 떠오르는 것이 보였다. 그렇게 점점 더 올라가자 온실 같은 것은 유리관으로 변해갔다. 당시에 그것은 그녀를 몹시 괴롭혔으나, 그 이유를 설명할 수는 없었다. 
"'그것 참 이상하네'했던 기억이 나요. 내가 방금 잠에서 깨어났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어요. 그렇다고 꿈 꾸고 있는 것 같지도 않았지요. 정신이 멀쩡하다는 느낌도 들고, 이제 막 어딘가에서 돌아왔다는 느낌도 들었어요.'

이후에 그녀는 자신이 이런 경험을 하고 있던 그 시간에 딸이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녀가 사진으로 확인한 딸의 자동차는 유리 지붕이 있고, 그 지붕 위에 흰색 로고가 쓰인 신형 미니쿠퍼였다. 그녀는 자신이 사고의 순간에 어떤 형태로든 그 현장에 있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만약 내가 사고현장에서 충돌하여 회전하는 자동차의 지붕을 내려다보고 있었다면, 온실을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 같았어요. 유리와 흰색 선들이 그렇게 해석될 것 같더라는 말이지요. ... 이 경험 이전의 나는 죽음과 사후세계에 대한 믿음이 희미했었지요. 이제는 딸이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나와 접촉하려고 했다는 사실, 그리고 나도 딸이 평화롭게 이 세상을 벗어나 다음 삶이 펼쳐지는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려고 딸 옆에 있었다고 믿고 있어요. 내가 죽음을 두려워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내 아이들이 다 자라서 나의 보살핌 없이도 스스로 살아갈 수 있기 전에는 죽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었지요. 그러나 이제는 언제 죽어도 걱정이 없어요. 내가 이 땅을 떠날 시간이 언제가 되더라도 우리 딸 사라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굳게 믿기 때문입니다."


마가렛 캐서린의 경험이다.
"15년 전에, 나는 새벽 2시에 누가 내 등을 힘껏 떠미는 것 같은 느낌에 놀라 잠에서 깨어났어요. 그 힘이 갑작스럽게 나를 깨웠지만 나는 두렵지 않았고, 돌아가신 시어머니가 나의 침대 옆에 서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누구인지 정확히 알았어요. 나는 다시 잠들었고 너무나 생생한 꿈을 꾸었어요. 22세인 아들이 말을 걸었어요. 자신은 죽은 몸이지만 모든 게 괜찮기 때문에 내가 걱정하거나 분노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더군요. 잠에서 깨어났을 때 내 기분은 엉망이었지요. 아이와 접촉하려고 무진 애를 썼어요. 그날 늦은 시간에 나는 그 아이가 전날 밤에 물에 빠졌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나는 아들이 나와 접촉했다고 확신했어요. 시어머니는 그 아이를 무척 아꼈습니다. 아들의 방문은 나에게 큰 위안이 되었어요. 나는 매우 세속적인 사람이지만 그 경험이 실제라는 걸 압니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거나 비슷한 경험을 가진 이들에게 그 이야기를 들려주곤 합니다."

주디 개스켈은 동생의 집에서 지내던 어머니가 죽던 날 밤에 일어난 일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나의 어머니는 한밤중에 특히 친밀했던 손녀 앨리스의 침대 발치에 나타났어요. 그녀는 앨리스에게 자신은 이제 죽은 몸이라면서 아침에 네 엄마가 충격받는 걸 원치 않으니, 지금 아빠에게 사망소식을 알려주라고 부탁했어요. 앨리스는 놀라서 얼어붙었지만 그럭저럭 아빠를 깨웠죠. 그는 장모님이 돌아가셨지만 아직 체온이 남아있음을 확인하고, 마을 의사에게 전화를 걸었어요. 의사가 와서 어머니는 방금 세상을 떠났으며 사망시간을 새벽 2시로 추정하더군요. 괘종시계는 새벽 2시에 멈춰 있었어요."

 

 

<138쪽>
"우리가 병실을 나설 때, 나는 시아버지에게 '또 뵈요.'라고 인사했어요. 그러자 그는 머리를 흔들며 단호하게 아니라고 대답하더군요. 그리고 이틀 뒤 새벽 1시 30분쯤에 나는 땀에 흠뻑 젖어 잠에서 깼어요. 시아버지가 우리 침대 옆에 서 있었어요. 그가 나에게 아들과 작별인사를 하고 싶다며 존을 깨우라고 하더군요. 그러나 나는 너무 무서워서 그렇게할 수 없다고 대답했어요. 고맙게도 그는 나의 거절을 받아들이며 '걱정 말라'는 뜻을 전하는 것 같았어요. 그러더니 점점 사라져가더군요. 잠시후에 내 뒤척임에 깨어난 존이 무슨 일인지 물었어요. 내 이야기를 들은 그는 '괜찮아.'라며 마치 꿈 이야기처럼 받아들이고는 다시 자더군요. 그러나 나는 결단코 꿈을 꾸지 않았어요. 이튿날 아침 8시쯤에 존의 어머니가 전화로 시아버지가 밤에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해주셨죠. 새벽 1시 30분에 돌아가셨다고요."

잠에서 깨어난 사람이 임종자의 아들이 아닌 며느리인 이유에 대해 곰곰 생각해 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일 것이다. 우리는 조사를 하면서 사람마다 감수성이 다르다는 점을 발견했다. 초심리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양-염소 효과sheep-goat effect'를 알고 있다. 어떤 사람(양)을 대상으로 하면 연구가 제대로 진행되는 반면, 다른 사람(염소)을  대상으로 할 때는 연구가 절대로 진전을 보이지 않는다. 앞의 예에서는 한 침대에 양과 염소가 함께 자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데릭 화이트헤드의 다음 이야기에서는 고별방문을 받았지만,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겁을 먹고 경직되었다. 친구의 꿈 해석이 없었다면 그나마도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18세 때, 상선을 타고 태평양을 가로질러 호주로 향하고 있을 때의 일입니다. 어느 날 밤 나는 남성 잡지 '메이페어'인가 '플레이보이'인가를 읽으며 누워 있었지요. 어쩌다 내가 눈길을 위로 향하니 거기서 할아버지가 나를 내려다보며 서 계시더군요. 나는 침상에서 튀어오르며 비명을 질렀어요. 그래도 할아버지는 거기 그대로 서 계시더라고요. 나는 덜덜 떨면서 밖으로 나갔어요. 돌아왔을 때에는 할아버지가 보이지 않더군요.

 

그날 밤에는 꿈도 사나웠어요. 이상하게도 내가 드라이독dry dock乾船渠에 있는 배에 오르려는데 승무원들이 가로막는 거에요. 현실에서는 있을 리 없는 이야기이죠. 그들은 그 배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고 말하더군요.

 

나는 새벽 4시 30분쯤 잠에서 깨어나 밖으로 나갔고, 밖에서 일하고 있던 동료에게 일어난 일들을 털어놓았어요. 스코틀랜드 출신인 그 친구는, 선원 가족들에게는 건조한 땅에 올라선 배는 가족의 죽음을 예고하는 것으로 통한다고 하더군요. 나는 부모님에게 보낼 편지에 이 모든 이야기를 적었어요. 그리고 3주 후 우리는 호주에 도착해서 어머니의 편지를 받았어요.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날짜와 시간이 내가 그 경험을 하던 그 즈음이었더군요. ... 나는 이런 것들이 환상인지, 꿈인지, 기대인지, 망상인지, 도무지 모르겠어요. 그리고 싫어요. 내 현실감각을 혼란스럽게 하니까요."

카이스 스크리브너의 장인은 오랫동안 위암으로 고생하고 있었다. 카이스와 그의 아내는 그의 유일한 손자인 자신들의 아기를 요양원으로 자주 데려갔다. 아기를 볼 때마다 장인어른의 정신이 나아지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의 죽음이 임박한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어요. 그러나 혼자서는 움직일 수 없었고, 몸이 형편없이 말라 뼈대만 남았지요. 그 당시 아기는 우리 부부의 침대 옆에 놓인 아기침대에서 잤어요. 우리 모두 잠들어있던 밤에 갑자기 내가 잠에서 깨어났어요. 꿈을 꾸는 상태가 아니었어요. 눈을 크게 떴으니까요. 그런데 아기의 침대 위로 몸을 숙이고 있는 형상이 보였어요. 장인어른이셨죠. 앙상한 모습이 아닌 건강하던 때의 모습이었어요. 그가 내 쪽으로 몸을 돌리더니 '좋아, 그저 아기한테 작별인사를 하고 싶었을 뿐이야.'라고 하더군요. 당시 그의 나이가 50대였는데, 그보다 훨씬 젊고 눈이 부실 정도로 건강하고 행복해 보였어요.

 

나는 시계를 보며 시간을 기억했어요. 그리고는 그 방문이 전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다시 침대에 누웠어요. 실제로 내 마음은 매우 평온한 상태였어요. 나는 다시 잠들었어요. 아침에 일어나서 나는 아내에게 장인의 방문과 그 일이 일어난 시간을 일러주었어요. 뒤에 장모님이 전화를 걸어왔어요. 장인어른이 자기 손자에게 작별인사를 하던 바로 그 시간에 돌아가셨다더군요. 그때는 나도 장모님도 전화가 없었어요. 그래서 장인어른이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더 빨리 알 방법이 없었지요."

죽어가는 사람이 환영을 보는 모습을 목격하거나, 죽어가는 사람의 고별방문을 받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당시에 일어난 일의 현실감에 대해 의문을 품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보통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고, 일어나지 않는다고 믿기 쉽다. 그것이 우리의 현실관을 뒤흔들고 우리를 불편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posted by mooncle
2023. 4. 28. 00:19 책에서 발췌

 

 

 

<95쪽>

살다보면 어느 한순간 이상한 예감에 휩싸일 때가 더러 있다. ... 어떤 이가 곁에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데 실제로는 보이지 않는다. 잠에서 반쯤 깨어난 상태로 환영을 보는 경우, 자신이 사랑하는 누군가가 아프거나 죽어가고 있다는 느낌에 거의 압도당한다. 아니면 까닭모를 슬픔의 폭발이나 형언할 수 없을 정도의 불편한 느낌을 경험할 수도 있다. 

 

"정말 불행하게도 나의 동생은 20년 전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어요. 그날 나는 오후 5시까지 사무실에서 일을 할 생각이었지요. 그런데 오후 4시 20분이 되자 왠지 불편해지기 시작하더군요. 저도 모르게 성호를 그었어요. 그래서 이런저런 이유로 5시까지 일을 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가방을 챙겨 집으로 향했습니다. 내 동생이 음주운전 차량과 충돌하여 즉사했다는 소식을 들은 건 다음날 새벽 2시 30분이었어요. 동생이 죽은 시간은 전날 오후 4시 20분이었더군요."

윈 베인브리지가 사촌 여동생이 죽던 날을 묘사한 글이다. 윈은 암으로 고통 받던 그 사촌과 매우 친했다.
"2002년 1월 1일 낮 12시 45분이었어요. 컴퓨터로 작업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기분이 나빠지더군요. 뭐가 잘못되었는지는 알 길이 없었죠. 통증이나 울렁거림은 없었고, 내 몸에서 모든 것이 쑥 빠져나간다는 무서운 느낌 뿐이었어요. 이 느낌이 20분가량 이어졌어요. 그날 오후 조카가 전화로 자기 어머니가 죽었다고 알려주더군요. 의사는 그녀가 몇 개월 더 살 수 있을 거라고 예상했기에 짐작하지 못했던 소식이었지요. 나는 조카에게 어머니가 언제 죽었는지 물었고, 12시 55분이었다는 대답을 들었어요. 참으로 이상한 우연의 일치지요."

재닛 라이트의 이야기도 죽는 사람과 남는 사람 사이의 밀접한 감정적 연결을 강조한다.
"남편은 2005년에 세상을 떠났어요. 그가 죽기 전날 밤, 아들과 딸은 나와 함께 그의 침대를 지켰어요. 아버지와 매우 가깝게 지냈던 딸은 사진사여서 이튿날 결혼식에서 사진을 찍어주기로 예약이 되어 있었어요. 딸아이는 마음이 내키지는 않았지만 이튿날 아침에 병실을 떠났어요. 남편이 세상을 떠난 것은 그날 오후 1시 30분쯤이었습니다. 그 전날 밤부터 의식을 찾지 못한 채 그대로 떠나간 것이지요. 그래도 딸에게 즉시 전화를 걸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의 결혼식을 방해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2시쯤 딸에게 전화가 왔어요. 그제서야 나는 아버지가 1시 30분쯤에 돌아가셨다고 알려줬어요. 전화선을 타고 딸이 숨을 고르는 게 느껴졌어요. 당연히 그 소식을 알려주지 않은 데 대해 화가 났다고 생각했지요. 그러나 그게 아니었어요. 딸이 병원으로 와서 좀 엉뚱한 이야기를 들려주더군요. 사진 찍는 작업에 제아무리 신경을 쓰려고 해도 좀체로 정신집중이 되지 않더랍니다. 그래서 자신이 일정대로 일을 처리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시계를 보았답니다. 그때가 1시30분이었다더군요. 그러면서 왠지 모르게 눈물이 쏟아지더랍니다. 다른 사람의 결혼식 도중에 말이죠. 그 시간이 너무나 정확했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우리는 언제나 남편이 세상을 떠나던 순간에 딸을 방문했다고 믿고 있습니다."

린다 데니의 시할아버지가 죽던 날의 이야기이다. 린다 부부와 3년을 함께 살았던 그는 식도암을 앓고 있었다.
"어느날 밤 뮤지션인 남편은 일을 나갔고 시동생이 그를 찾아왔어요. 나는 할아버지에게 차 한잔 드시겠냐고 물었어요. 그랬더니 '좋지. 한잔 주렴.'이라고 대답하셨죠. 나는 주방으로 가서 주전자를 불에 올리고 물이 끓기를 기다리는데, 전화벨이 울렸어요. 남편이 '할아버지 괜찮으셔?'라고 묻더군요. 그래서 나는 괜찮다고 대답했어요. 남편이 하는 말이, 기타를 연주하는데 갑자기 할아버지가 그곳에 나타나셨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더랍니다. 그래서 곧장 무대에서 내려와 전화를 걸었대요. 나는 남편을 안심시키고 전화기를 내려놓았어요. 내가 찻잔을 들고 방으로 들어서려는 순간, 시동생이 방을 나오면서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어요.'라고 하더군요. 할아버지는 그때 막 눈을 감은 것입니다."

죽어가는 사람이 가까운 지인에게 직접 방문하는 형태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찾아와서 말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 사람이 그곳에 왔다는 강렬한 느낌으로 끝난다. 죽음을 맞이한 사람은 자신이 죽어가고 있으며, 작별인사를 전하러 왔고, 언제나 자신은 괜찮다는 메시지를 암시한다. 이런 케이스들은 언제나 남은 사람들을 위로하고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다음은 앨릭스 커밍의 아버지가 아들을 마지막으로 방문한 이야기이다.

"2시15분이었어요. 일을 하면서도 나는 아버지가 나와 함께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아버지께서는 자신이 죽었으며, 그 사실을 나에게 알려 주려고 방금 왔다고 하더군요. 나도 아버지를 알아보면서 계속 일을 했어요.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셈이지요. 마음의 동요 같은 것은 전혀 없었어요. 오히려 저를 안심시키는 효과가 있더군요. 그리고 30분 뒤에 전화벨이 울렸어요."

"1979년에 74세이던 어머니는 어느 목요일에  응급실로 실려 갔어요. 이튿날 그녀는 기운을 회복했고, 토요일쯤이면 집으로 퇴원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생기를 되찾았어요. 나는 일요일에 어머니를 방문했어요. 그녀는 회복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월요일 이른 아침에 나는 잠에서 반쯤 깬 상태에서 어머니를 생생한 컬러로 본 것 같았어요. 캄캄한 곳에서 평상복 차림으로 각광spotlight 아래 서 있는 어머니를요. 두 손을 꼭 쥔 채 급하고 강한 말투로 '진, 걱정하지 마, 나는 괜찮아.'라고 하더군요. 어머니는 이 말을 몇 번 되풀이하시고 희미하게 사라졌어요. 나는 침대 옆의 시계를 보았어요. 새벽 3시 20분이었어요. 이튿날 나는 간호사한테서 어머니가 새벽 3시20분에 돌아가셨다는이야기를 들었어요. 너무나 이상한 경험이었기에 나는 꿈을 꾸고 있거나 아니면 내 정신이 약간 나갔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 이야기를 아무한테도 하지 않았어요. "

제인 허버트의 어머니는 그녀가 12세 때 세상을 떠났다. 다음 이야기는 그녀의 아버지가 들려준 이야기이다.
"어머니는 2년 동안 시름시름 앓으셨어요. 돌아가신 후에야 부검을 통해서 뇌종양이라는 걸 알게 되었지요. 그녀의 건강이 악화되고 있었던 것은 분명했지만, 죽음이 그렇게 급히 닥칠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죠. 그녀는 세인트 토마스 병원을 자주 드나들었고, 돌아가실 당시에도 그 병원에 입원해 있었지요. 그 병원의 의사였던 내 아버지는 별로 종교적이지도 않았고 환상 같은 것을 믿을 분도 아니에요. 그가 침대에 누워 책을 읽던 어느 날 밤, 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었던가 아니면 현존現存이 느껴졌다고 해요. 그래서 아버지는 아내가 떠나간다는 것을 이해했어요. 그래서 책을 내려놓으며 '여보, 괜찮을거야.'라고 대답하셨대요. 그리고 10분 뒤 어머니의 사망소식을 전하는 병원의 전화를 받으셨답니다."


<108쪽>
앤 리델은 어느 날 밤에 누군가가 자기 손을 꼭 잡는 느낌에 잠을 깼다. 이튿날 그녀는 그때가 할머니가 돌아가시던 시간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진 헨프리는 할머니가 돌아가시는 순간에 담요 속에 포근히 안기는 느낌을 받으며 잠을 깼다. 존 파르는 아버지가 돌아가시던 시간에 전화 때문에 잠에서 깨어났다. 그러나 전화벨 소리가 아닌 음악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고 한다. 그의 아버지는 음악가였다. 조너선 라이세라크는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던 날 누군가가 자기 소매를 잡아당기는 느낌을 받았다. 


제니스 애쉬톤의 이야기이다.
"아침 출근길에 남편은 8시 15분경 평소와 같은 장소에 나를 내려줬어요. 거기서 직장까지 15분쯤 걸어가면 되는데 그날은 자동차 문이 닫히는 순간, 나의 가슴을 무엇인가가 죄고 있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그래서 나는 남편에게 차를 세우라고 손짓했지만 허사였어요. 그래서 나는 어떤 건물 벽을 붙잡고 버텨보려고 애썼지요.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아버지처럼 심장에 이상이 생기면 안 되는데….' 그러자 통증이 사라지더군요. 그래서 나는 다시 걸어서 출근을 했어요. 업무를 시작한 지 10분도 안되었을 때, 아버지가 근무하던 사무실에서 전화가 왔어요. 아버지가 출근 직후 심장발작을 일으켜 병원으로 실려가는 중이라고요. 5분 후에 다시 전화가 왔어요. 아버지께서 숨을 거두었다는 통보였어요."

상선을 타던 레이몬드 헌트는 1966년 5월에 폐암으로 입원한 아버지를 위해 휴가를 내어 집에 머물고 있었다.
"아버지를 방문하고 돌아온 나는 집에서 평소처럼 맥주를 몇 병 마시고 깊이 잠들었어요. 그러다 가슴 통증과 호흡곤란으로 잠에서 깨어났어요. 침대 옆의 시계를 본 기억이 납니다. 새벽 4시 15분이었죠. 통증이 점점 심해졌고 나는 숨을 쉬려고 안간힘을 썼어요. 이제 통증이 참을수 없을 정도가 되더군요. 그러다 어느 순간 통증이 가라앉았고, 나는 대단한 평화와 사랑의 느낌을 받았어요. 통증이 싹 사라지고, 나는 형언할 수 없는 그 느낌을 경험했지요. 간절하게 그것이 끝나지 않기를 바랐어요. 어디를 가든 그 느낌이 함께 했으면 싶었어요. 나는 내 몸이나 이 세상으로 돌아오고 싶지 않았어요.

 

내가 잠에서 깨어난 것은 누군가가 문을 두드린 아침 7시쯤이었어요. 출근하던 이웃사람이었어요. 친절하게도 병원에서 걸려오는 전화 메시지를 받아서 전해주기로 약속한 사람이었어요. 그때 우리 집에는 전화가 없었거든요. 물론 나는 문을 열기도 전에 그가 무슨 말을 할 것인지 알았어요. 아버지가 지난 밤에 돌아가셨다는 소식이었거든요. 그 경험은 내 몸에는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았어요. 나는 이전처럼 건강합니다. 하지만 나의 내면에는 엄청난 영향을 미쳤지요. 나는 나 자신에게 일어난 변화를 부정할 수 없어요. 나는 꽃과 나무 등 가릴 것 없이 살아있는 모든 존재는 다 소중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우리 모두는 서로의 마음이나 육체에 해를 입히지 않고 서로를 도움으로써 좀더 나은 세상을 만들려고 노력해야 해요. 나의 이 경험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해요. 이제 나는 죽음에는 두려워할 구석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압니다. 나의 아버지는 행복했어요."


레이몬드의 경험은 임사체험과 매우 비슷하다. 마치 의식이 육체를 떠난 것처럼 격심한 고통이 갑자기 사라진 점, 그가 육체나 이 세상으로 돌아가기를 꺼렸던 점, 그 경험이 남긴 인상이 매우 강렬하고 오래 지속된다는 점, 그리고 죽음의 가능성 앞에서도 두려움이 전혀 없다는 점 등은 임사체험의 특징이다. 레이몬드 이야기는 자기 아버지의 경험을 공유했던 것처럼 들린다.

죽음을 앞둔 사람의 고별방문 중 대다수는 꿈 속이나, 잠에서 깨어나는 비몽사몽간이나, 반쯤 깨어있고 반쯤 잠든 최면상태에서 일어난다. 최면상태에서는 사람이 실제로 꿈을 꾸고 있는지 아닌지를 정확히 모른다. 의식이 완전히 깨어 있는 일상생활 중에 고별방문이 일어나는 경우는 무척 드물다. 낮시간의 '방문객'은 그 곳에 있다는 느낌을 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음에 소개하는 두 이야기는 특이하다. 

글래디스 애스틴의 딸이 자기 어머니의 요청으로 우리들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의 편지를 보내왔다.
"이 이야기는 제2차 세계대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어머니는 '군 위문 봉사단'의 일원으로 밴드와 함께 가수로 활동하던 여동생 이렌을 방문하러 갔어요. 그날 점심시간에 두사람은 강변을 따라 산책을 하고 있었답니다. 그때 이렌이 영국해군 소속 조종사 유니폼을 입은 어떤 남자가 다리 위에서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발견했어요. 이렌이 나의 엄마에게 '아니, 다리 위의 저 사람 해롤드 같지 않아?'라고 물었어요. 해롤드 쇼는 이렌의 남자친구였어요. 두 사람은 그런 것 같다면서, 정말 해롤드인지 아니면 그와 닮은 사람이 해롤드의 유니폼과 똑같은 것을 입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다리 쪽으로 걸어갔는데, 그들이 다리에 닿았을 때 그는 사라지고 없었어요. 주변에는 그들 두 사람 외에는 아무도 없었답니다. 어디를 둘러봐도 사람은 보이지 않았으며, 딱히 숨을 만한 곳도 없었다고 해요. 저 아래에서 보였던 사람이 언제 어떤 식으로 사라졌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이 당혹스러운 일로 인해 두 사람은 종일 그 일을 떠올렸대요.

이튿날, 그들은 함께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습니다. 이렌이 자신의 어머니(나의 할머니) 생일날 불시에 방문해서 깜짝 놀래줄 생각이었지요. 할머니가 집에 돌아왔을 때, 이렌은 어머니를 놀려줄 생각으로 재빨리 등받이 의자 뒤에 숨었어요. 그러나 할머니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이렌이 의자 뒤에 숨어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저의 어머니에게 놀라운 소식을 전했다더군요. 해롤드가 영국 오크니 섬 위를 비행하다가 적군의 공격을 받아 추락해 죽었다고요. 해롤드의 전투기가 추락한 것은 그 전날 점심 무렵이었어요."

이 이야기의 흥미로운 대목은 자매 모두가 그 사람을 보았고, 두 사람 모두 그가 해롤드라고 확신했다는 부분이다. 또한 해롤드를 목격한 시간이 두 사람 다 의식이 깨어있던 한낮이었다. 제니 스타일스가 보내 온 다음 경험 역시 낮에 이뤄졌다. 어머니의 형상을 보았다는 제니의 남동생은 자기 어머니가 죽었다는 사실은커녕 아프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었다고 한다.

"어머니는 2006년 크리스마스를 앞둔 12월 17일 저녁에 돌아가셨어요. 어머니는 6주 전에 심각한 심장발작을 일으켰고, 회복의 가능성이 거의 없었어요. 나는 미국에 살던 남동생에게 어머니의 상태가 급속도로 나빠지고 있음을 알려줘야 했어요. 남동생이 내쉬빌에서 워싱턴 D.C로 옮겨갔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주소나 전화번호는 몰랐어요. 아무리 노력해도 허사였지요. 그런데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흘째 되던 날 밤에 뜻밖에도 남동생이 전화를 걸어왔더군요. 동생은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말을 듣고도 놀라지 않았어요. 동생은 그 전 일요일 오후에 어머니가 워싱턴 거리를 걸어 다니는 것을 보았다고 하더군요. 영국과 미국의 시차를 감안하면, 동생이 어머니를 보았다는 시간은 어머니가 숨을 거두던 그 때였어요. 동생은 어머니의 옷차림까지 묘사했어요. 크림 색깔의 정장이었다더군요. 그러나 나의 동생은 근 10년 동안 어머니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어머니가 그 옷을 샀다는 것을 알 리가 없었습니다."

죽음을 앞둔 사람의 고별방문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때는 꿈을 꾸거나 갑작스럽게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이다. 우리가 확보한 100여 건의 사례 중에서 66%가 꿈속이나 갑자기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에 일어났다. 1987년 10월에 테리 우즈는 영국해군 소속 군인으로서 잠수함을 타고 8주 예정의 정찰활동에 참가하고 있었다.

"잠수하고 이틀 뒤에 나는 할아버지가 죽는 꿈을 매우 생생하게 꾸었어요. 할아버지가 사시던 곳에서 우리 가족 모두가 기다리고 있었다는 점에서 매우 이상한 꿈이었어요. 내가 마지막으로 그곳에 도착했어요. 할아버지는 나를 보자 모두가 한자리에 모였다는 것을 확인하시고는, 조카의 자전거를 집어타고는 '이제 됐어. 나는 간다.'라고 말한 뒤 페달을 밟으며 길로 사라지더군요. 나는 이튿날 아침에 일어나서 친한 친구에게 '간밤에 할아버지가 죽는 정말 이상한 꿈을 꾸었어.'라고 말했어요. 그러자 친구는 그건 꿈일 뿐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위로하더군요.

정찰활동에 나선 잠수함 승무원들에게는 나쁜 소식은 절대로 전하지 않죠. 가족 전보로 승무원들에게 전할 수 있는 소식도 1주일에 40단어로 제한되어 있습니다. 내 아내는 '할아버지 별세'라는 메시지를 보냈지만, 해군은 3주 동안 나에게 온 가족전보를 몽땅 보류했지요. 나는 뭔가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다 함장이 나에게 가족전보를 보여주지 않은 이유를 알려주기로 결정했어요. 할아버지가 돌아가셨기 때문이었지요. 1987년 10월18일 새벽 3시쯤이었다더군요. 나는 할아버지가 아프시다는 사실조차도 몰랐어요.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던 그 시간에 나는 200피트 아래 대서양 물 속에서 잠을 자고 있었어요. 매우 생생하고 이상한 꿈을 꾸며 말이죠."

필립 힐리도 어머니의 죽음을 예고받았다. 그와 매우 친밀했던 어머니는 치매를 앓고 있었다. 그는 아버지, 여동생과 함께 최대한 그녀를 직접 보살폈지만 결국 요양원에 맡기기로 했다.
"나는 7월 26일 아침에 예고라고 받아들일만한 꿈을 꾸었어요. 천연색이었어요. 그때까지 그런 꿈을 꾼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어머니가 전화를 걸어 '필립, 잘 지내니?'라고 물었어요. 그래서 '어머니, 건강 괜찮으세요?'라고 되물었지요. 그러자 어머니는 '그래, 나는 괜찮다만 이제 가야겠어.'라고 말하더군요. 나는 잠에서 깨어나 그게 현실이었음을 알았어요. 어머니는 이튿날 아침에 세상을 떠났어요."

 

로라 스케일스는 자기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던 날 밤에 일어난 일들을 이렇게 묘사했다.
"생생한 꿈을 꾸었어요. 반바지와 양털 재킷에 운동화 차림을 한 어머니가 식당으로 걸어오더군요. 어머니는 완벽하게 건강해 보였고, 한결 젊어 보였어요. 그녀는 버들가지로 만든 낡은 의자에 앉더군요. 나는 주방에 있다가 어머니를 보자마자 그쪽으로 달려가며 '여기서 뭐하세요? 훨씬 좋아보이세요.'라고 외쳤어요. 그러고나서 우리 집 복도였던 곳으로 눈길을 돌렸는데, 병원이 보이고 간호사 한사람이 다가오더군요. 그래서 나는 간호사를 향해 '어머니가 많이 나아졌네요.'라고 했어요. 그때 어머니가 나를 보며 '나, 이제 떠날 준비가 됐어.'하시더군요. 그 즉시 나는 어머니가 이 세상을 떠나려는 의미라는 걸 알아차렸어요. 나는 어머니를 바라보며 '하지만 우리 아직 인사를 안 했잖아.'하며 어머니와 입맞춤을 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그녀가 거기 없는 것처럼 나의 얼굴이 어머니의 얼굴을 그냥 통과하지 뭡니까. 우리 둘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조용히 말했어요. '하느님, 딱 한번만요.' 그제서야 나는 어머니와 제대로 키스를 할 수 있었고, 어머니가 그 꿈에서 사라지더군요.

나는 갑자기 잠에서 깨어나 침실의 시계를 보았어요. 그때가 새벽 2시 15분이었어요. 나는 새벽5시에 일어나 소식을 초조하게 기다렸어요. 전화벨이 7시에 울리더군요. 병원에서 걸려온 전화였으며, 어머니가 새벽 2시 50분에 돌아가셨다는 소식이었어요. 내가 꿈을 꾸고 나서 정확히 30분 뒤의 일이었지요. 그 꿈을 더욱 특이하게 만드는 것은 어머니가 9개월가량 나의 집을 방문할 수 없었다는 사실이지요. 어머니는 걸을 수가 없었기 때문에 그런 여행은 애초에 불가능했지요. 그 당시 나는 집의 식당 구조를 크게 바꿔 놓았는데 어머니는 그것을 한 번도 보지 못했어요. 꿈속에서 본 식당의 구조는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본 모습이었어요. 이를테면, 내가 어머니의 눈으로 식당을 보는 것 같았지요. ... 그 꿈은 나의 인생에서 특별한 순간으로 영원히 남을 것입니다."

 

<123쪽>

대학에서 강의를 하면서 은퇴를 앞두고 있는 리처드 버프튼은 1970년대 초만 해도 페르시아만에서 잠수부로 일하고 있었다.
"나는 바레인에서 배를 타고 사우디아라비아의 라스타누라로 가고 있었어요. 이제 막 그 배의 조종을 다른 잠수부에 넘긴 뒤였지요. 영국 우편 근로자들이 파업 중이라 우리는 한동안 편지를 한 통도 못받았어요. 나는 배 앞쪽에 누운채로 반쯤 잠이 든 상태였는데, '환'영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뭔가가 눈앞을 지나가더군요. 가느다란 리본 같다고나 할까요. 거기에 글자가 쓰여 있었어요. 마음속으로 읽었는데 짤막했어요. '할아버지 별세'. 나는 화들짝 깨어나 서너 계단을 한걸음에 뛰어올라 선실로 들어갔어요.  친구에게 급히 집으로 전화를 좀 해야겠다고 말했지요. 바레인 전화국을 통해 영국에 있던 어머니와 전화가 연결되었어요. 어머니가 전화를 받더니 슬픈 소식이 있다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내가 말을 가로막으며 전화를 건 이유가 바로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을 알았기 때문이라고 말했지요."


진 치스먼의 남편은 양극성 장애를 앓다가 1989년 2월에 자살로 삶을 마감했다. 그 당시 부부는 별거 중이었지만 좋은 친구로서 매우 가깝게 지내고 있었다. 두 사람은 그 전날에도 만나 함께 시간을 보냈으며, 그때만 해도 그는 삶에 매우 적극적인 것처럼 보였다.
"내가 매우 생생한 꿈을 꾸다가 울면서 잠에서 깬 것은 새벽 3시였어요. 꿈속에서 빈센트가 내 침대 끝에 앉아서, 이제 더 이상 울지 말라고 나를 달래더군요. 이제 다 끝났고 마침내 평화를 얻게 되었다면서 말입니다. 나는 다시 잠자리에 들었어요. 아침에 일어나서는 평소처럼, 필요한 일들을 조금 했어요. 8시쯤에 고객 2명에게서 전화가 왔어요. 아마 그들은 내가 '남편이 방금 죽었기 때문에 휴가를 내야 한다'고 말했을 때 아마 변덕을 부리는 줄로 알았을 겁니다. 나는 우리의 애완견 멀린과 함께 그의 아파트로 가서 경찰을 불렀어요. 검시관의 보고에는 빈센트가 새벽 3시쯤 죽은 것으로 되어 있었지요."

방문객들이 전하는 메시지가 한결같이 자신은 괜찮다는 뜻을 담고 있기 때문에 고별방문을 받는 사람들은 보통 대단한 위안과 안도를 느낀다. 

 

posted by moonc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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